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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8 FEATURE

가을엔 이 영화

  • 2018-10-05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도 책을 집어던지면서까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피처 에디터들이 고른 가을 영화 4편.

차마 비난할 수 없는 인물의 집합, <원더 휠>
엄마와 의붓딸이 젊은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신경전. 어쩌면 근친상간 같은 이 상황은 뉴욕 브루클린 남쪽에 있는 놀이동산 ‘코니아일랜드’의 1950년대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서울의 청명한 가을 하늘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영화는 아름다운 컬러의 영상미와 우디 앨런의 블랙유머를 더한 깊이 있는 대사로 지난여름 마블 시리즈에 지친 우리의 눈과 귀를 새롭게 환생시키기에 충분하다. 꿈도 희망도 접은 채 코니아일랜드의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니는 5년 전 남편과 이혼한 후 배불뚝이 늙은이 험프티와 재혼해 일상의 기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무료한 삶을 살고 있는 중년 여성. 권태를 못 이겨 현실도피를 꿈꾸는 그녀에게 대학생이자 해변에서 안전 요원으로 일하는 젊은 남자 미키와의 만남은 이미 영화 시작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일인지 모른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달콤했던 사랑은 어린 나이에 철모르고 마피아와 결혼해 지금은 남편에게서 도망쳐 쫓기는 신세가 된 험프티의 딸 캐롤라이나가 코니아일랜드에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진다. 캐롤라이나와 미키의 관계를 눈치챈 지니는 의붓딸을 시기하고 둘 사이를 이간질하며 여자의 질투가 얼마나 유치하고 무서운 것인지 보여준다. 영화 막바지에 코니아일랜드까지 쫓아온 마피아에게 캐롤라이나가 살해당할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도 고민 끝에 의붓딸의 손을 놓기로 결정한 순간 지니가 짓는 표정은 이 영화를 단순히 권태를 못 이긴 40대 중년 여성의 불륜물로 볼 수 없다는 걸 증명한다. 미키는 지니의 행동에 실망하고 결국 그녀를 떠나지만, 누가 지니를 욕할 수 있을까? 망상과 편집증적 증상을 보이는 지니가 “나는 매일매일 웨이트리스 연기를 하고 있어요”라고 고백했듯, 우리도 결국 나라는 사람을 연기하는 것일 뿐인데. _김이신






여름의 태풍이 지나간 후에 보는 <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 영화는 2년 전 여름에 개봉했다. 하지만 난 제목처럼 여름의 태풍이 다 지나간 가을에야 이 영화를 봤다. 이 영화에는 감독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 누군가를 잃은 이들이 등장한다. 남편이 죽고 연립주택에 홀로 남은 엄마, 이혼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가족을 만나는 주인공 료타. 내용은 단순하다. 료타는 소설가로 살길 원하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남의 뒤를 캐는 흥신소에서 일한다. 헤어진 아내 교코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 아들 싱고를 가끔 만나지만,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며 심리적 거리만 확인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태풍이 곧 몰아친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네 식구는 료타의 엄마가 살고 있는 낡은 연립주택에 모여 우연히 뜻하지 않은 하룻밤을 보낸다. “모두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원하던 삶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게 중요하다.” 이는 이 영화의 뿌리가 되는 대사. 더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극 중 료타의 삶을 나타내는 대사지만, 어른이 된 우리 자신에게 ‘나는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게 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칫 울적한 가족의 이별사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매만지며 조율한다. 대화의 끝에 료타는 결국 아내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싱고는 엄마를 따라가지만, 등장인물 중 누구도 울지 않는다. 태풍이 지나가도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단, 이전에 보지 못한 걸 보게 되고 그 순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여름 영화라 하기엔 너무 잔잔하고, 겨울의 것이라 하기엔 비를 흠뻑 맞은 극 중 연립주택의 초록 잔디 내음이 물씬한 영화. 그래서 가을에 봐야 하는 영화. _이영균






새로움에 가려진 익숙함, <우리도 사랑일까>
나는 꽤 무뚝뚝한 사람이라 마음이 간지러운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한데 지금 소개하려는 <우리도 사랑일까>는 결혼5년 차에 접어든 주인공 마고가 앞집 청년 대니얼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외도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로맨스 장르 같지만 <우리도 사랑일까>는 로맨스의 탈을 쓴 인생 드라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사랑을 속삭이는 달달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줄곧 남편과 앞집 남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마고의 모습만 화면에 담을 뿐이다. 한 예로 마고와 친구들이 남자를 주제 삼아 수다를 떠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던 이들에게 이름 모를 할머니가 “헌것도 새것이었고, 새것도 결국 헌것이 된다”라는 한마디를 던진다. 그리고 감독은 이 장면에서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대비시켜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주제로 범위를 확장한다. 노인의 충고에 무언가를 깨달은 마고는 ‘헌것’인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권태를 이겨내지 못하고 ‘새것’인 대니얼에게 가고 만다. 이내 레너드 코언의 ‘Take This Waltz’가 흐르고 음악의 기승전결에 따라 둘의 사랑은 새로움, 절정 그리고 익숙함으로 변하는 과정을 따른다. 그렇다. 대니얼이 준 짜릿한 감정은 고작 3분짜리. 그녀의 인생은 다시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여기서 감독은 다시 한번 말한다. 사랑도, 인생도 새로움이 주는 설렘은 잠깐이라고. 마고의 행동은 엄연한 외도임에도 그녀를 비난하는 건 쉽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 익숙함에 감춰진 소중함을 잊고 새로움을 찾아 떠나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같은 고민에 잠긴다. 내가 마고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_이효정






내가 아는 가장 예쁜 고백, <무지개 여신>
영화는 평소 보기 힘든 수평 무지개를 비추며 시작한다. 구름 사이를 곧게 가로 지른 직선 무지개를 본 도모야는 사진을 찍어 아오이에게 보낸다. 참 풋풋했던 이 영화의 첫 장면. 얼마 후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은 도모야 뒤로, 추락한 비행기의 유일한 일본인 탑승자 아오이의 사망을 보도하는 뉴스가 흐른다. 둘의 인연은 대학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은 도모야가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접근하기 위해 같은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아오이에게 말을 건네면서다. 아오이의 도움에도 결국 도모야의 사랑은 실패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친구가 된다. 도모야가 영화 동아리에서 일하는 아오이의 작품 주인공을 맡기도 하고, 연애 상담을 하거나 여름 축제에 함께 가며 시시콜콜한 우정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쯤에서 도모야를 향한 아오이의 마음을 눈치채는 사람은 왜 도모야가 아니고 관객일까? 아오이는 졸업후에도 둘의 관계엔 여전히 진전이 없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도모야를 자신의 회사에 소개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그에게 붙잡아달라는 속내를 내비치면서 계속 도모야를 향한 마음을 키워간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모야는 아오이를 말없이 그냥 떠나보낸다. 영화의 막바지, 죽은 아오이의 집을 찾아간 도모야는 부서진 아오이의 휴대폰과 자신이 대필을 부탁한 러브 레터를 발견한다. 휴대폰의 배경 화면엔 자신이 보낸 수평 무지개 사진이, 러브 레터 뒷면엔 아오이가 부치지 못한 진짜 마음이 담겨 있다. 짝사랑하는 상대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던 아오이는 뒷장에 자신의 속 마음을 썼다. “우유부단한 점도 좋아. 끈기 없는 점도 좋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점도 좋아. 둔감한 점도 좋아. 웃는 얼굴이 제일 좋아”라고. 편지에조차 끝내 상대의 이름을 쓰지 못한 아오이의 마음을 대신 전한다. “도모야가 제일 좋아.” _백아영

 

피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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