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MARCH. 2016 FEATURE

나는 울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 2016-02-22

순정이 그득 묻어나는 이 제목은 오는 3월 21일부터 5월 21일까지 홍콩의 리먼 머핀과 화이트 큐브에서 동시에 열리는 트레이시 에민의 개인전 타이틀이다. 거친 표현주의적 붓질에 사랑과 욕망을 담아낸 드로잉은 과거의 널브러진 침대 작품과 구도나 표현 방법이 확연히 다르지만, 인간관계의 본질을 탐색한 그녀의 고민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점에서 “역시 그녀”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런던 스튜디오에 도착해 그녀가 내려오길 10여 분 기다렸을까.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위층 계단에서 내려온 그녀는 취재 일행을 보자 금세 환한 얼굴로 따뜻하게 환영했다. “당신이 의자에 앉아요. 그래야 내가 소파에 좀 누울 수 있으니까요. 지금 너무 피곤해서요.” 자리를 옮겨 앉자 그녀는 소파에 몸을 웅크렸다. 마치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온 것처럼 머리는 쿠션에 기댔고, 이어 뭔가 의지하는 듯한 눈빛을 건넸다. 그러고는 “네, 의사 선생님!”이라고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런던 동쪽 끝의 스피털필즈 마켓 근처에 있는 그녀의 스튜디오는 텅 비어 있었다. 홍콩 리먼 머핀과 화이트 큐브의 전시 때문에 모든 작품이 홍콩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의 규모는 아카이브팀이 일하는 1층을 포함한 3개 층이 모두 그녀의 작업 공간이다. 지하에는 언제든 모든 걸 잊고 잠시 뛰어들 수 있는 수영장이 있고, 옥상에는 주변 경관을 맘 놓고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한 테라스를 조성했다. 여기뿐 아니라 남프랑스와 뉴욕, 마이애미에도 집을 가지고 있다. yBa로 이름을 알린 후 미술계에서 25년 넘게 활동하며 쌓아온 자랑스러운 성취물이다.
1980년대에 영국에 등장한 일군의 젊은 작가 그룹을 일컫는 ‘yBa(young British artist)’라는 꼬리표가 이제는 어색해진 쉰넷의 그녀는 영국인 어머니와 터키계 키프로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쌍둥이 동생 폴과 함께 영국 동남쪽의 해변 도시 마게이트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을 계속된 자살 기도와 강간, 낙태 등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바탕으로 그녀는 내밀한 드로잉, 수를 놓은 담요와 조각적 설치 작품을 가감 없이 선보이며 1990년대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작품은 그녀가 사랑한 사람의 이름을 텐트 안에 수놓은 1995년 작 ‘나와 함께 잔 모든 사람(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그녀가 지금껏 함께 밤을 보낸 약 102명의 이름을 새긴 그 작품으로 그녀는 악동 대열에 이름을 올렸고, 이후 런던 테이트 브리튼 전시에 헝클어진 침대 ‘My Bed’를 출품하며 1999년 터너상을 수상했다. 지저분한 침대 주변에 보드카병, 말보로 담뱃갑, 재떨이, 탐폰, 면도기가 흩어진 이 작품은 혼란스러운 붕괴의 현장을 연상시켰다. (이 작품은 7월 중순까지 테이트 브리튼에서 만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드로잉과 침대 작품을 위해 미술관 소장품 중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 2점을 선택해 나란히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트레이시 에민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쾌락주의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은 완전히 바뀌었다. 조용해졌고 술과 담배를 끊었으며 일주일에 세 번 수영을 한다. 그녀의 삶은 생각과 감정을 환기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리먼 머핀과 화이트 큐브에서 동시에 열리는 개인전 <나는 울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는 외로움과 누군가를 갈망하는 상태에 관한 그녀의 사색이 반영된 전시다. 그녀의 작품에는 여성이 나체로 홀로 있거나 남녀가 함께 등장하기도 하며, 때로 남자 형상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악동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기만 한 그녀와 녹차를 홀짝이며 새로운 전시, 작품이 되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Lonely Chair drawing II, 2012 2015년레오폴드 미술관에서 열린 에곤 실레와의 특별 2인전을 위해 출품한 작품
ⓒ Bildrecht, Vienna 2015
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and Hong Kong

사진 제공 레오폴드 미술관




I Tried to Hold Your Soul, Acrylic on canvas, 152.5×183cm, 2015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16. Photo ⓒ George Darrell
Courtesy of Lehmann Maupin and White Cube

사진 제공 레오폴드 미술관




My Bed, 1998. ⓒ Tracey Emin

사진 제공 테이트 미술관




 

홍콩 리먼 머핀과 화이트 큐브에서 동시에 전시를 연다고 들었습니다. 갤러리를 나누어 전시하는 건 작가에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닌데, 각 갤러리마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했나요?
색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온통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화이트 큐브에서는 핑크와 레드 계열의 작품을, 공간이 작고 그래서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리먼 머핀에서는 주로 노랑과 파랑 계열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같은 기간에 동시에 열리는 전혀 다른 2개의 전시를 누가 와서 볼지 저는 짐작도 할 수 없어요. 그 때문에 전시를 위한 카탈로그 작업을 더 재미있게 하고 있죠. 위험부담도 크지만, 그만큼 재미있어요.

예전에 홍콩을 방문한 적이 있나요?
작업 때문에 가본 적은 없어요. 2014년에 홍콩의 페닌슐라 호텔에서 빅토리아 항까지 보일 정도로 거대한 프로젝션 작업을 선보인 적이 있는데, 당시 많은 사람이 제게 사진을 찍어 보내줬고 그 이미지가 급속도로 퍼졌지만, 당시 저는 뉴욕에 있었어요.

전시 제목이 ‘나는 울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입니다. 바꿔 말하면, ‘당신이 울지 않는다면 그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그래요. 전에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 울곤 했어요. 때론 사랑이 불가능했어요. 저는 눈물 없이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요. 누군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그건 정말 슬픈 일이라고.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아니요. 당신이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고 그 사람을 느낀다면 당신도 울게 될 거예요.”

당신 말처럼 이번 전시는 과거의 사랑과 감정을 돌아보는 작업인가요?
아니요. 그건 미래도, 현재도 될 수 있어요. 꼭 과거일 필요는 없죠. 과거 시제처럼 들리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나는 당신을 사랑해서 울었어”, 또는 “나는 당신을 사랑해서 울어”, 아니면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울어”. 그건 시제보다는 감정적인 거예요.

지금 당신의 환경이 새로운 작업에 영감을 주는 편인가요? 네, 완전히. 그건 제가 한 일이에요.
저는 홀로 있는 형상을 그렸고, 두 인물을 그렸고, 두 인물을 지웠고, 다시 혼자 남겨졌죠. 그리고 다시 두 형상을 그렸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이 외로운 형상의 고독과 내 마음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향한 열망 혹은 욕망과 계속 싸울 수 있죠.

이 그림(빨간 머리 여자의 나체 드로잉)은 자화상인가요?
제 자화상은 아니지만, 제가 머리로 느낀 걸 그린 거죠. 빨간 머리로 물들인 적이 있는데 아무도 안 좋아하더라고요. 만성 편두통을 앓는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 설명한다는 점에서 저는 맘에 들었어요. 그림 속 인물이 저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저는 그림으로 무언가를 성취했어요. 저는 지난 6년간 솔로였고, 12년째 혼자 살고 있어요. 희망은 없습니다. 나이 드는 것보다 지금 혼자인게 더 최악이에요. 나이 들면 많은 사람이 혼자가 되기 때문이죠.

이러한 작품 활동을 통해 당신의 삶이 어제보다 오늘 더 괜찮다고 느끼나요?
물론이죠. 저는 작품과 대화를 해요. 제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터놓는 매우 훌륭한 동료예요. 제가 완전한 인간으로 살고 있다고 느끼게 도와줘요. 만약 당신이 50세고 뭔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깨달으면서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면, 그건 영혼을 파괴하는 최악의 일일 거예요. 그런데 저는 지금 이렇게 생각해요. ‘와,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어.’ 저는 감정적 압박과 거기서 기인하는 감정을 끌어내려고 노력하면서 매우 추상적으로 그림을 그려요. 이미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림 그리기와 놀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합니다. 때로는 거기서 벗어나야 하지만 다시 돌아오고 말죠. 마치 하나의 독립체처럼 그림이 저를 통제함으로써 황홀경을 얻어요. 이것이 예술적 과정이에요.

이번 홍콩 전시에 선보일 자수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제 드로잉 자수 작품은 기본적으로 바느질과 아플리케로 만듭니다. 많은 천을 사용하죠. 2~2.5m 정도로 크기가 큰데 상당히 부드러워요. 멀리서 보면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예요. 거기엔 글자도 없죠. 이번 전시에선 ‘Hurt Heart’라는 작품에만 텍스트가 있어요. ‘Hurt’에 줄을 그어 지우고 ‘Heart’ 위에 ‘Art’라고 쓰기 시작한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전시 제목을 네온 작업으로도 만들었죠?
리먼 머핀에선 해바라기의 노란빛을, 화이트 큐브에선 하얀색을 전시해요. 해바라기의 노란빛은 자살 충동을 의미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마치 골드처럼 보여요. 네온의 색이 문장과 모순되면 그건 작품을 잘 만들었다는 의미예요. 저는 20년 넘게 네온을 만들어왔어요. 그걸 처음으로 손글씨로 만들었죠. 제 손글씨는 정말 아름다워요. 그게 그럴싸해지도록 아주 많이 써봤죠.




Hotter, Acrylic on canvas, 29.9×29.9cm, 2015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16 Photo ⓒ George Darrell Courtesy of Lehmann Maupin and White Cube

‘My Bed’가 테이트 브리튼에 다시 전시되고 있어요. 이 작품을 처음 전시했을 때, 에드바르 뭉크의 회화 ‘The Day After’(1894~1895년)와 연결 지어 생각했나요? 그 그림에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여성이 침대에서 자고 있고, 옆 테이블에 술병이 놓여 있거든요.
전혀 아니에요. 잠재의식으론 그럴 수 있겠죠. 네, 그랬던 게 틀림없어요. 저는 ‘My Bed’에 대해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누군가 거기에 있었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그것이 시간의 흔적이라는 점이 중요하죠. 그 작업은 제 과거의 타임캡슐이에요. 그 작품을 보면 무척 자랑스러워요. 이 작품은 제 경력과 미술사, 사회적 인정이라는 면에서 저를 보호해 주거든요. 그건 아이콘이에요. 그 작품을 본 수 많은 사람의 눈에 얼마나 명확히 각인됐을지 생각해보세요.

이 작품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개 그림을 함께 보여준 이유가 뭔가요?
제 작품에는 분명 침대에 관한 제정신이 아닌 무언가가 담겨 있어요. 또한 저는 베이컨의 개 그림을 좋아해요. 미쳤으니까요. 당신은 미쳐가는 개를 볼 수 있어요. 그건 프랜시스 베이컨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아주 잘 나타낸 그림이에요. 개의 얼굴에 칠한 어두운 색의 물감을 보며 저는 베이컨이 물감을 사용하는 방식과 통제를 선망하며 울기도 했어요. 테이트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건 믿을 수 없어. 내 삶을 봐. 난 여기 테이트에 있어.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내 침대와 함께 놓을 작품으로 선택했어.’ 만약 누군가 30년 전에 내게 이런 상황을 얘기해줬다면 어땠을까요? 그게 제가 운 이유이기도 하죠.

1990년대 yBa 운동을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우리가 만든 그 어떤 작품도 믿지 않아요. 저는 맷 콜리쇼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뭘 했지? 우리가 어떤 작품을 만들었지?” 우리는 하루 24시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명확하게 알았죠. 사람들은 “오, 당신은 아주 젊었네요”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린 그렇게 젊지 않았어요. 마흔 살을 4년 앞둔 서른여섯 살이었으니까요. 그땐 스물다섯 살처럼 보였고 열다섯 살처럼 행동했죠. 그런데 지금은 매우 달라졌어요. 그때 같이 활동한 작가들을 만나기 힘들어요. 다들 바쁘기도 하고, 저도 여행을 자주 다니기 때문에 3개월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죠.

과거를 돌아볼 때 후회스러운 일은 없나요?
흡연요. 그리고 내가 함께 잔 사람들이 내가 정말 사랑한 사람이었으면 해요. 제가 사랑한 사람에 대한 어떤 순수함이 지금도 지속되길 바라거든요.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그런 걸 더욱 강하게 느끼고 있어요.

작품에 워낙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녹여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어요?
네. 그것은 분명 제가 누군가를 만나는 데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저에 관한 모든 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아요.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가 죽기 전에 함께 회화 작업을 했는데, 그녀에게서 무엇을 배웠나요?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루이즈 부르주아는 친구이자 환상적인 롤모델이었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 작가였어요. 우리가 같이 작업한 2년 동안 전 사실 별로 한 게 없는데 그녀는 자신의 몫을 해냈죠. 그녀가 내게 말했어요. “걱정하지 마. 너에겐 시간이 있잖니.”

현재 로열 아카데미 드로잉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아트 상품을 살 수 있는 에민 인터내셔널 숍도 운영 중이고, 롱샴을 비롯한 여러 브랜드와 협업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남았나요?
궁극적으론 재단을 설립하고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앞으로 30년 정도 시간이 주어지겠죠? 그 시간에 제가 원하는 일을 하는게 제 목표예요. 모든 게 시간 낭비였다고 생각하면서 죽고 싶진 않아요. 전 작가니까, 사람들이 삶을 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전 항상 무엇이 진짜일까에 관한 작품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림과 조각으로 그걸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으로 영혼을 끄집어내는 거죠. 어릴 땐 제가 무언가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무엇이 저를 만들고 있어요. 그건 과학자의 실험 방식처럼 흥미로워요. 또 다른 당신과 당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거죠.




There is nothing left but you, 2013
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and Hong Kong
ⓒ Bildrecht, Vienna 2015

사진 제공 레오폴드 미술관




 




About Her
1963년 런던 출생. 메이드스톤과 로열 칼리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자신의 사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각 설치를 비롯해 회화, 드로잉, 수작업, 네온 설치 등 장르 구분 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97년 발표한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로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모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1999년 터너상 후보에 올라 자신의 더러운 침대를 소재로 한 ‘My Bed’를 발표, 또다시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200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영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됐으며, 2011년에는 피오나 레이와 함께 로열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됐다. 창립 이래 첫 여성 교수다.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번역 김재석(jskim@noblesse.com)  진행 허민(He Min), 안나 샌섬(Anna Sansom)  사진 David Sheldrick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