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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01

수집의 기쁨

마크 테토가 살고 있는 한옥집에는 한국의 유물부터 현대미술 작품까지 그가 수집한 물건으로 가득하다. 지극히 한국적인 이 수집의 여정은 8년 전에 시작되었고, 하나씩 컬렉팅하면서 뚜렷한 목표도 생겼다.

인파로 북적대는 북촌 한옥 마을. 금융 전문가 마크 테토(Mark Tetto)는 그 언덕 자락에 위치한 아담한 한옥 ‘평행재’에서 살고 있다. 이 한옥은 한국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이기도 하다. 한옥에 대한 책을 낸 친구와 인연이 닿아 한옥 구경을 하다가 지금의 평행재를 만나 구입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 좌식 생활이 불편한 데다 손이 많이 가서 한국 사람들도 한옥에 살기를 꺼리는데, 미국 사람인 마크가 8년째 이 집에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생각하는 한옥의 매력은 바로 슬로 라이프, 천천히 살기다. “아침에 출근하려면 여기 있는 모든 문을 하나씩 잠금장치를 돌려 잠가야 해요. 다 잠그려면 5분 정도 걸리는데, 이럴 때 잠깐이라도 숨도 쉬고 정신도 차리게 됩니다. 뭐 하나 고치려 해도 손이 많이 가서 더 천천히 차근차근 하게 되죠.” 그의 ‘한국살이’도 한옥에 살기 전과 후로 나뉜다. “한옥을 사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어요. 기존 집에 있던 가구는 어울리지 않아 쓸 수 없었죠. 그래서 공간을 다 비우고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최소한의 가구만 갖추고 한옥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자신만의 느낌으로 공간을 하나씩 채워갔다. 서재에 놓을 책장을 고르던 그는 한옥에 어울리는 가구를 참고하기 위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쓰던 가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서재와 잘 어울리는 18세기 조선시대 책장을 구했다. 처음에는 책장만 두었다가 그 위에 단아한 회청색 가야 토기, 대나무로 만든 인장함도 구비했다. 그런데 위쪽이 뭔가 허전해 보여 고민하던 중, 2년 만에 권영우의 단색 추상화를 벽에 걸고서야 근심을 내려놨다. 또한 평소 한국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던 그는 관련 칼럼을 쓰면서 많은 작가를 만나 취재하다가 작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작가들을 만나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고 갖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윤라희, 배병우, 김희원, 이이남, 이배 작가의 작품도 소장하게 됐죠.”





최랄라 작가의 'woman', 2018
19세기 조선시대의 붓함.


고민을 거듭하며 가지고 있는 작품들로 완성한 공간은 한옥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완성한 곳은 바로 화장실과 옷장. “그동안 수집한 제품을 집 안 곳곳에 녹여내고 싶어 화장실과 옷장을 대대적으로 레노베이션했어요. 이 창살문은 경복궁에서 본 창살의 반복적 곡선 무늬가 아름다워 그대로 본떠서 제작했죠.” 궁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화장실 창살문 안쪽으로는 전시 공간처럼 핀 조명이 내려오는 선반 위로 삼국시대 수막새와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인 유개고배가 위아래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수막새는 관심이 많아 꽃부터 도깨비 모양까지 많이 모았어요. 장속에 보관 중인데,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꺼내고 있죠.” 툇마루에서 옆집 지붕을 보다 기와 끝에서 수막새와 암막새를 발견하고 그 유려한 선에 매력을 느껴 수집하게 됐다는 그는 몇 년 전 삼국시대 수막새 스물세 점을 미국 경매 사이트에서 발견하고 직접 구입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전통 문창살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제작한 옷장 안에는 검은색과 빨간색 자개함이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요즘 자개함은 매우 화려하잖아요. 조선시대 초기 제품으로 추정되는 이 자개함은 꽃 모양이 단순한데, 묘하게 매력적이더라고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절제미가 돋보인달까. 빨간색 자개함은 얼마 전 미국 경매 사이트에서 구매한 건데, 어제 아침에 도착했어요.” 보통 외국 경매 사이트에서 한국의 고가구나 소품을 발견하고 경매에 참여하는데, 경매 특성상 원하는 제품을 입찰받지 못할 때도 있다. “한번은 너무 마음에 드는 조선시대 촛대를 발견하고 경매에 참여했어요. 원래 400만원 정도에서 시작했는데 여러 사람이 입찰을 원해서 금세 가격이 올라갔죠. 마지막에 어떤 사람이랑 둘만 남아서 계속 비딩을 했는데 결국은 2000만원이 넘어가서 포기했어요. 원래 제 버젯은 좀 더 적었는데 너무 사고 싶어서 욕심을 냈죠. 그런데 지금도 그 촛대가 가끔 생각나요.”







권대섭 작가의 백자와 은행나무로 만든 19세기 조선시대 공고반.
이이남 작가의 'Kim, Hong-do Bamboo Painting', 2013
유호웅 명인의 신라요와 윤라희 작가의 'Block'(Black and Celadon Green), 2013
19세기 조선시대의 오동나무 찬합.
민병헌 작가의 'Flowers', 2007


투자회사 운영만으로도 바쁜 그가 틈틈이 외국 경매 사이트를 방문하며 한국 유물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미국 대학 시절에 친했던 재미 한인 선배가 한국에 와서 한국 지도를 계속 사는 거예요. 왜 사느냐고 물으니 일본해(The Sea of Japan)가 아닌 동해(East Sea)로 표기된 지도를 수집한다는 거예요. 지도를 모아 제대로 된 동해 표기법을 알려주기 위해 미국 모교에 기증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선배의 지도 수집 취지에 크게 감동받은 마크는 그때부터 외국으로 반출된 한국 유물을 한국에 환수하는 것을 수집 이유로 정했다. 장기적이면서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에 환수된 유물을 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는 것. “사람들이 ‘투자’나 ‘가치’에 따른 컬렉팅만 할 게 아니라 ‘행복’한 컬렉팅을 하면 좋겠어요. 제가 한옥에 살면서 힐링을 얻고, 사명감으로 한국의 유물을 컬렉팅하면서 기쁨을 얻는 것처럼요.” 그의 수집 사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구본창 작가가 촬영한 청화백자 사진과 작가가 직접 만든 병풍.

 

에디터 이정윤(julie@noblesse.com)
사진 레오 보르가르 Leo Beaureg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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