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그 찬란함에 대하여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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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3

청춘, 그 찬란함에 대하여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는 영원한 청춘을 살고 싶은 그의 바람이 담겨 있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로 ‘빛과 그림자의 균형’을 꼽으셨습니다. 선생님이 설계한 ‘뮤지엄 산’ 이야기를 해볼게요. 처음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산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받은 인상은 어땠나요? 그리고 이를 어떻게 건축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나요? 단풍이 붉게 물든 계절에 처음 원주를 방문했어요. 능선을 물들인 풍부한 색감이 아름다웠고, 땅에선 강한 생명력을 느꼈죠. 이들을 최대한 살리고자 자연풍경과 하나가 되는 듯한 설계를 했습니다. 콘크리트와 석벽을 활용한 이중 구성 역시 석재가 풍부한 한국의 특성을 반영했어요.
안도 다다도의 건축이라는 큰 틀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뮤지엄 산과 나오시마의 ‘지추(地中) 미술관’이 지닌 개성이 궁금합니다. 뮤지엄 산에서 마주했던 빛과 그림자가 자아내는 콘트라스트가 지추 미술관보다 덜 극대화됐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본디 건축이란 장소와 상황에 맞춰 이야기를 달리하는 예술이니까요. 비록 작은 규모이나, 지추 미술관은 건축가의 자유로움을 보장한다는 조건 아래 설계된 곳이에요. 알다시피 ‘빛과 그림자’는 지극히 보편적인 건축 주제입니다. 지추 미술관과 뮤지엄 산 모두 같은 맥락이지만, 제게 두 공간은 전혀 다르게 다가와요. 지추 미술관이 단어 그대로 ‘땅속 미궁’을 형상화했다면, 뮤지엄 산은 ‘산상 낙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죠.
빛과 그림자 외에도 ‘물’이 중요하다는 걸 깜박할 뻔했네요. ‘물의 절’, ‘물의 교회’로 대표되는 건축에서 조용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물은 어떤 의미인가요? 물은 주변의 녹색, 바람, 빛, 소리 같은 자연의 숨결을 표면에 비춰줍니다. 추상화된 자연으로 인식하는 거죠. 마치 공간 속 빛이 그려내는 어떤 형상처럼? 또 제 건축에서 물은 과거와 미래, 인공과 자연, 전통과 현대 등 서로 다른 세계를 잔잔하게 연결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러한 요소를 모두 갖춘 뮤지엄 산에서 전시를 기획 중인데, 나의 손길이 닿은 공간에서 나의 숨결을 머금은 작업을 선보인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건축 전시는 어떤 의미에선 모순적이에요. 전시장에 건축 ‘작품’이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요. 건축물이 완성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흔적을 무언가로 대신해 보여줄 뿐이죠. 그러나 뮤지엄 산에서 열리는 전은 다릅니다. 제 건축적 사고와 실험의 산물인 드로잉·모형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탄생한 공간 자체를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뮤지엄 산 자체가 가장 큰 전시 ‘작품’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감을 열고 감상해주시길 바라요.
도쿄, 파리, 밀라노, 상하이, 북경, 대만에 이은 일곱 번째 순회전입니다. 기존 전시와 비교해 구성은 거의 그대로인데, 전시 제목이 도전·노력에서 ‘청춘’으로 바뀌었어요. 2017년 도쿄 국립 신 미술관에서 시작한 전시가 2023년 4월 원주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있죠. 사회 시스템의 급격한 변화로 세계정세가 어느 때보다 크게 요동치고 있어요. 이때 필요한 것은 먼 곳을 내다보는 ‘인간력(됨됨이와 역량처럼 인간으로서 잘 살아가기 위한 종합적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간력의 원천이 되는 건 각자 삶의 목표, 다시 말해 ‘언젠가 그곳에 다다른다’는 희망의 빛이에요. 자신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몇 살이 되든, 어떤 상황을 마주하든, 희망을 품고 영원한 청춘을 살고 싶은 바람을 담아 전시 제목을 ‘청춘’으로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도전과 노력, 청춘이 주는 소회란? 새뮤얼 울먼의 시 ‘청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어요.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닌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늙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잃어버릴 때 늙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건축가로서 반세기를 돌아보는 자리지만, 회고전이라 부르고 싶진 않습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건축할 것인가?’ 같은 미래를 생각하는 계기를 찾고자 기획했거든요. 참, 뮤지엄 산 입구에는 풋사과가 전시되어 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앞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도전 의식과 좌절하더라도 계속 정진하겠다는 청춘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1995년에 수상한 ‘프리츠커상’으로 화제를 돌려보죠. 자료를 찾아보는데,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르코르뷔지에와 노출 콘크리트 관련 이야기만 나오더군요. 그래서 다소 짓궂은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당시 건축계의 노벨상을 받고 발표했던 소감은 무엇이었나요? 그해 1월 한신 대지진이 발생했어요.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죠. 수상 소감을 발표할 때 일본의 지리적 상황을 인식하고, 건축의 안전(내진 설계와 비상 계획)에 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원래 건축은 자연으로부터 가장 근본적인 피난처를 제공해왔으니까요. 고대 로마 건축 이론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의 개념인 ‘유틸리타스(utilitas, 유용함)’와 ‘피르미타스(firmitas, 견고함)’, ‘베누스타스(venustas, 아름다움)’도 언급했습니다. 실체적으로만 접근하려는 현대건축을 이야기하려는 의도였어요. 베누스타스, 그러니까 상상력이 점점 사라지는 경향이 안타까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 건축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이상을 이상에 머무르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이란 단순한 표면적 장식을 의미하진 않아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형이상학적인 거죠.





1970년대부터 노출 콘크리트 건축을 선보여온 이유에 대해 “제한된 예산 때문이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선생님의 콘크리트를 만져보면 매우 부드럽습니다. 물과 시멘트의 비율, 철근 간격, 거푸집 패널의 정밀도 등을 철저히 수치화한 결과물이겠죠. 덕분에 나무와 종이에 익숙한 동양 사람들이 콘크리트를 이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해요. 그런데도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 콘크리트를 선택한 건 단순히 건물 내부와 외부를 일체로 만드는 경제성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용해보니 건물을 다양한 표정으로 만들 수 있는 가소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콘크리트라는 현대의 가장 흔한 건축 공법으로 누구도 할 수 없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싶다는 소박한 도전 의식도 생겼고요. 사실 콘크리트는 만만찮은 소재입니다. 제 이상향은 나무와 종이 건축에 익숙한 일본인의 미의식에 부응하는 섬세하고 매끄러운 촉감의 콘크리트예요. 그런데 현장에선 구현하기가 매우 까다롭죠. 물과 시멘트, 자갈을 섞어 거푸집에 붓는 단순한 공정으로 보이지만, 쉬워 보이는 게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거듭했어요.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설계자들의 과제일 뿐이에요. 실제로 손을 움직여 만드는 것은 시공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이 일에 자부심을 느낄지 고민해야 해요. 결국 콘크리트의 성패가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서양의 기하학적 구조와 경치를 바라보는 큰 창문과 비움을 강조하는 하이쿠 같은 동양적 요소를 결합하는 것은요? 서양의 기하학적 구조를 고집하는 이유는 공간에 건축가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고 설계할 때 특별히 ‘서양’과 ‘일본’을 의식하진 않지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질과 형식이 아닌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는 건축을 만드는 거예요. 이러한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무지 캔버스 같은 건축도 시도합니다. 여기에 빛이나 바람 같은 자연의 조각이 더해져 자아내는 분위기, 나아가 우리 영혼에 뭔가를 호소하는 듯한 에너지를 기대하죠. 그게 전부예요.
저는 선생님의 건축물을 보면서 ‘눈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콘크리트를 활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자연 속에서 튀지 않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데 회색만큼 적정한 색도 없을 테니까요. 사진에서 ‘18% Gray’가 ‘눈이 편안한 적정 노출’을 의미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죠. 흥미로운 분석이네요. 콘크리트가 물질 자체로만 인식되는 것을 넘어 사진 액자 같은 하나의 틀로 자연과 자연 속에서 행해지는 활동을 돋보이게 한다는 내용을 상상하면서 건축에 임하고 있으니까요.
좁고 긴 동선 역시 매력 포인트예요. 미로 같은 길을 걷다 보면 마지막에 무엇을 만날지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일본의 젠(zen)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글을 읽었는데, 청소년 시절 권투 선수로 활동했던 경험이 건축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권투라는 운동은 좁은 링 위에서 벌어지는 ‘자신과의 싸움’이니까요. 고독하게, 한계를 극복하며 한 걸음 나아가는?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는 건축가와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서는 권투 선수는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르지만, 둘 다 마음의 불안을 이겨내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권투는 가혹한 훈련과 감량을 반복하며 준비한 것을 한 번의 시합에 쏟아내는 스포츠입니다. 링 위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몸뿐이죠. 하지만 육체와 정신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깨닫는, 혹은 성취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계 자유도가 낮고, 예산집행이 늘 수월하진 않기에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니까요. 예로, 1989년 오사카에서 초저예산으로 만든 ‘빛의 교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극한의 조건이라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적 미학을 제외하면, 저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이 선생님 고향인 오사카처럼 따뜻한 기후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노출 콘크리트는 구조상 추위에 약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오사카보다 추운 서울에 노출 콘크리트 건축이 늘어나더군요. 건축가로서 지역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유행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특정 장소에 적합한 건축이란 어떤 것인지, 어떤 재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건축가마다 다르죠. 저 역시 나름의 기준이 있지만,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는 적확히 말하기가 어렵겠네요. 그러나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있습니다. ‘이 건축이 50년 후, 100년 후를 고려해 설계된 것인가?’ 혹 집을 짓는다고 가정하면, 전통 가옥을 공부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까지 남은 집들은 인고의 시간을 버텨왔다는 것을 증명하니까요.
저서에서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때로는 힘든 일일 수 있다.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내겠다는 각오를 해주기 바란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칫 의뢰인보다 건축가의 욕심이 앞선다는 뉘앙스로 오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주거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모든 기능적 요구를 만족시키면 개성은 자연스레 사라집니다. 무엇을 쾌적하다고 생각하는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바라보는지는 사람마다 달라요.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주거의 본질이 충족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의 개성만큼 다양한 주택이 탄생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를 건축가의 ‘에고’라고 할 수 있겠네요.
미즈노 시게노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를 보다가 웃음이 터진 장면이 있었습니다. 중국 상하이의 ‘폴리 그랜드 시어터’를 작업할 때 “해보고 안 되면 사과하지 뭐”라는 쿨한 발언 때문이죠. 동시에 무함마드 알리의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을 생각할 자유가 있다”라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건축가가 아닌 인간으로서 안도 다다오의 도전정신과 의지가 오늘날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지금을 힘껏 살라는 뜻입니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데서 오는 긴장감을 인생의 마지막까지 유지하려면 내적인 힘을 길러야 해요. 이를 위해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죠. 저는 암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지만 그때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힘든 일에도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발걸음을 내딛고자 했어요. 그래서 조금은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굳은 의지가 있음에도 당연히 우리는 길을 잃고 좌절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땐 고향이라든지, 나를 나다운 존재로 만드는 곳에서 잠시라도 자신을 돌아봤으면 해요. 분명 그곳엔 당신이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버텨준 뿌리가 있을 테니까요.





안도 다다오. © Kazumi Kurigami
뮤지엄 산, 원주, 2013. © Tadao Ando
Koshino House Addition, Ashiya, 1984.
Festival, Naha, 1984. © Tadao Ando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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