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움직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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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30

예술적 움직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움직임을 각기 다른 예술로 승화하는 세 사람을 만났다.

슬리브리스 톱 Aeae, 부츠 Dr.Martens, 오른손에 착용한 링 Succubussviral, 체인 브레이슬릿 Buzzerbe, 형태감이 있는 브레이슬릿 Lazydawn, 무늬가 돋보이는 브레이슬릿 Portrait Report, 왼손 검지에 착용한 링 Succubussviral, 약지에 낀 링 Avecthing, 브레이슬릿 Portrait Report,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현대무용가 서일영
그간 여러 댄서를 만났지만, 서일영은 결이 조금 달랐다. 촬영장에서 그가 보여준 움직임에선 우아함과 날것의 냄새가 공존했는데, 음악의 흐름에 따라 휙휙 바뀌는 몸의 감정에 춤이 아닌 연기를 보는 듯했다. 일단 ‘현대무용가’로 소개하지만, 이 단어로 그를 정의할 수 없음을 미리 밝힌다. “사실 저도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그저 춤추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 몸짓이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면, 그건 정규 교육을 받은 무용수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 거예요.” 그 여정은 중학생 때 동네 오락실 뒤에서 시작됐다. “친구가 어디선가 팝핀을 배워와 보여줬어요. ‘인간이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구나!’ 싶어 큰 충격을 받고 댄스 학원으로 달려가 춤을 배우기 시작했죠. 다양한 스트리트 댄스를 배웠지만, 역시 근육을 튕기는 스킬로 어떤 동작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팝핀이 가장 좋았어요.” 춤을 더 추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집 없이 생활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스트리트 댄서로 이름을 알렸다. 2012년 비보이병으로 군에 입대해 춤을 멈추지 않은 그는 군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읽으며 종전과 다른 시각으로 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원시 부족이 다른 부족과 맞닥뜨렸을 때 처음 하는 질문이 ‘너희는 무슨 춤을 갖고 있니?’였다고 해요. 그들에겐 춤이 삶 그 자체였던 거죠. 독일의 현대 표현주의 무용가 피나 바우슈도 그때 만났습니다. 말이나 표정 같은 모든 움직임이 춤이 될 수도 있다는 개념이 이후 작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전역 후 참가한 Mnet 프로그램 <댄싱9> 시즌 2에서 남다른 실력과 개성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그는 그곳에서 크리에이터 그룹 무버(MOVER)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김설진을 만났다. “감독님에게 춤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는데, 그렇다면 같이 해보자고 선뜻 제안해주셨어요. 감독님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과 교류하고 무대에 오르며 현대무용으로 작업을 확장할 수 있었죠.”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국립현대무용단 일원으로서 <스윙>, <봄의 제전>, <쓰리 스트라빈스키>, <검은돌 모래의 기억> 등 주요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가장 아팠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필요에 따라 발레 등 다양한 무용을 연습해야 했는데, 근육의 질감이 바뀌면서 내장 기관의 위치도 바뀌더라고요. 신기하죠?(웃음) 몸으로 부딪히며 받아들인 모든 것이 다음 작업의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그는 바로크음악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재현한 공연 시리즈 <스프링 바로크 2022>에서 ‘댄싱 바로크’라는 무대에 올랐다.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와 현대무용이 만난 이 공연은 서로 다른 감각을 자극해 색다른 감동을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떤 무대를 준비할 때 핵심이 되는 키워드부터 살펴보는 편이에요. 바로크는 포르투갈어로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더군요.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어긋난 ‘대조’되는 개념에 주목해 청각과 시각의 대조, 시대의 대조, 행위의 대조 등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공연마다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고, 반응이 좋아 성취감을 느낍니다.” 서일영을 잘 아는 김설진 감독은 4년 전 한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본격적으로 무대에서 하게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베를린에서 파인 아트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무용이라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몇 년 후 그가 어떤 고민의 결과물을 선보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서일영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대일 것임은 장담할 수 있다.





드레스는 sonjungwan, 이어링 Soo-Soo, 오른손에 착용한 링 Succubussviral, 왼손에 착용한 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발레리나 홍향기
한국 클래식 발레 무대를 양분하는 유니버설발레단. 기사를 준비하며 이곳의 간판스타 홍향기를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11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해 코르 드 발레(군무 무용수)로 시작해 2018년부터 수석 무용수로 활약 중인 그녀는 지난겨울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수여하는 ‘2021년을 빛낸 무용수상’을 수상하며 눈부신 성취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마음은 입단 초기와 별 차이 없는데, 어느덧 10년이 흘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만 놀랍게 느껴집니다. 그간 꾸준히 성장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하고, 스스로 독하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선화예술중학교와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졸업한 홍향기는 바르나 국제 발레 콩쿠르 동상(2006년)과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 3위(2006년)를 차지하는 등 앞날이 기대되는 유망주였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무엇보다 발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보통 뭔가를 배우면 괜히 하기 싫을 때가 있잖아요. 발레는 한순간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말이 아닌 몸으로 저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 모습에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죠.” 그녀에게도 힘든 순간이 있었다. 입단 1년 차에 발목의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한 것. “수술이 두려워 발레를 그만둘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쉬는 동안 객석에서 발레단의 공연을 보며 마음이 바뀌었어요. ‘저 위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자리가 정확히 어디인지 깨달은 거죠.” <지젤>의 지젤,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와 오딜, <돈키호테>의 키트리, <잠자는 숲속의 마녀>의 오로라 공주, <호두까기 인형>의 클라라 등 작품의 주요 배역을 두루 맡아온 그녀. 그중에서도 오랜만에 공연을 앞둔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 발레 <춘향>과 춘향 역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고난도 테크닉이 많고 평소 쓰지 않는 근육까지 활용해야 하죠. 처음 이 작품을 준비할 때 많이 울었어요. 몸은 힘든데 연습은 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어느 때보다 많이 발전해 있더군요.” 그녀가 뽑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이별 파드되’. 안타까운 헤어짐에 슬퍼하는 춘향과 몽룡의 심경을 담은 부분이다. “춤추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감정선이 최고조에 이르러요. 첫날밤을 보내는 춘향과 몽룡의 두근거리는 설렘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초야 파드되’와 대조를 이룹니다.” 오래전 인터뷰에서 홍향기는 박수 칠 때 무대를 떠나 후학 양성에 힘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땐 제가 좀 어렸어요.(웃음) 나이가 들수록 발레가 더 좋아져요. 발레리나로서 꽤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아깝고요. 은퇴 후를 그리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려 합니다. 아, 물론 박수 칠 때 떠나고 싶다는 말은 유효해요. 그러려면 관리를 잘해서 오래도록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죠.” 프로 세계에서 정상 자리를 지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왕관을 쓴 만큼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것. 그럼에도 발레가 여전히 새롭고 즐거울까? “물론이죠! 아직도 배울 게 많은걸요. 새로 익힌 걸 연습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설렘을 느낍니다. 또 여러 작품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내게 이런 감정이 있구나’ 깨달을 때가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발레에서 삶을 배우기도 합니다.” 이 인터뷰로 발레 공연에 관심이 생겼으나, 특유의 고상한 이미지 때문에 관람이 망설여질 수도 있을 터. “유니버설발레단에선 공연마다 자세한 해설을 곁들이고 있어요. 혹은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하고 느껴지는 그대로 느껴도 좋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찾은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에서 애써 홍향기를 찾을 필요는 없다. 시선이 머무르는, 가장 밝게 빛나는 무용수가 그녀일 테니.





포켓 재킷과 팬츠 모두 Maxxij.

퍼포먼스 디렉터 손성득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K-팝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BTS가 있다. 전방위 아티스트로서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전 세계가 들썩인다. 이 움직임을 만든 일등공신은 바로 손성득, 하이브 산하 빅히트 뮤직의 퍼포먼스 디렉터다. “안무만 담당하는 것이 아닌, 아티스트의 음악과 컨셉에 맞춰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퍼포먼스 요소를 기획하고 만듭니다.” 처음부터 디렉터는 아니었다. 그가 지금 일을 잘할 수 있는 건 디렉터인 동시에 출중한 댄서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사람들 앞에서 우연히 춤을 췄는데 사람들이 그 모습을 좋아해주고, 또 스스로도 춤출 때 감정이 특별해서 춤에 빠져들었습니다. 여러 장르 중에서도 아티스트와 댄서가 조화를 이루는 대중가요의 안무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댄스팀에서 신화, 핑클 등 톱 가수의 안무를 맡으며 실력을 쌓은 손성득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방시혁 의장과의 인연으로 2009년 하이브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안무를 짜고 가르치는 일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회사에선 더 많은 역할을 요구했고, 그러면서 한층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전문성을 인정하고 기회를 주며 함께 발전하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지금의 하이브가 있는 것 같고, 저 또한 오랫동안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K-팝 아티스트의 안무와 무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손성득보다 잘 아는 이도 없을 것이다. “음악이 가장 중요해요. 여기에 담긴 내용과 컨셉에 맞춰 안무를 만들죠. 그저 멋지게 꾸미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멤버 개개인의 매력, 팀으로서 전체적 그림을 모두 고려합니다. 한편으로 아티스트의 무대는 안무가는 물론 스타일리스트, 마케팅 담당자 등이 모여 함께 완성하는 종합예술이기도 합니다. 스태프들이 각자 분야에서 음악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업하고 있어요.” 물론, 안무를 만드는 데에는 순간의 영감도 중요하다. “일상에서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영화나 사람들의 행동에서 보이는 감정과 제스처가 그것이죠. 요즘처럼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시기엔 장르와 나라를 구별하지 않고 해외 콘텐츠를 보면서 연구합니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은 작업으로는 BTS가 지난여름 발표해 화제를 모은 ‘Permission to Dance’ 안무를 꼽았다. “처음 이 노래를 들을 때는 그저 신나는 멜로디라고 생각했는데, ‘춤추는 데 허락은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특히 수어 안무로 좀 더 많은 분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 더 애착이 가고 뿌듯합니다.” 손성득의 행보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K-팝 생태계를 위해 더 나은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안무가 출신 정직원을 늘리는 일의 중요성을 꾸준히 이야기해왔고, 이는 하이브를 비롯한 국내 기획사의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선 안무가와 아티스트의 유대가 중요합니다. 아티스트의 히스토리를 정확히 아는 안무가, 그런 안무가를 신뢰하는 아티스트가 의견을 주고받으며 나오는 시너지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안무가가 정직원으로 있으면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한층 디테일하게 이해할 수 있죠. 마지막으로 안무가들이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업무적으로 확장해나갈 수 있다면, 그들의 노하우가 회사와 업계에 경쟁력과 차별성을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춤이 좋아 무대에 오른 청년은 어느새 안무를 만들고 무대를 기획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런 그가 현시점에서 자신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스스로가 아닌 아티스트를 위한 작업을 하기에 아티스트가 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음악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또 그것을 팬들과 대중에게 잘 전하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최종 목표를 묻는다면, 오래오래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는 안무와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
헤어 & 메이크업 강다슬
스타일링 현국선, 정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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