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선, 발레리나의 언어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ARTIST&PEOPLE
  • 2023-10-18

강미선, 발레리나의 언어

어떤 말보다 호소력 있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강미선의 몸짓.

레오타드 REPETTO, 튈 스커트는 개인 소장품.

발레리나 강미선 1984년생으로 유니버설발레단아카데미(UBA)에서 발레를 처음 시작했다. 선화예술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워싱턴DC 키로프발레아카데미에서 수료했다. 2002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 코르드발레부터 드미솔리스트(2005–2006), 솔리스트(2006–2010), 시니어솔리스트(2010–2012)를 거쳐 2012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승급했다. 2009년 한국발레협회 프리마발레리나상 수상, 2022년을 빛낸 무용수상 외에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무용수로서 기량을 입증해왔다. 2023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했다.

발레리나로 21년을 무대에 서는 것은 흔하지도 않고, 쉬운 일도 아니다.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 강미선은 그 긴 시간을 코르드발레(군무)로 시작해 수석 무용수가 되기까지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스스로를 증명해왔다. 큰 무대에 서는 것보다 새 레퍼토리에 대한 갈증이 컸다는 그녀는 그것이 곧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꿈을 좇았다. 2년 전 출산 후 완벽한 모습으로 복귀함으로써 여성 무용수의 한계라 여겨온 허들을 뛰어넘은 그녀에게는 ‘갓미선’이라는 찬사 어린 닉네임도 따라다닌다. 발레리나에게 연륜이 쌓이고 출산을 경험하는 것은 무대와 이별해가는 단계라 여기던 이들에게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소식은 그녀가 한 번도 그저 무대 위에 오래 머물기 위해 춤춘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1991년 모스크바국제무용협회(현 국제무용협회)에서 제정한 이 상은 전설적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이끌어온 세계 최고 권위의 무용상이다. 더 높이 날겠다는 야심보다 늘 한 단계 더 발전하고자 노력한 행보에 찬란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지난 7월의 어느 여름날, 강미선이 품어온 꿈에 대해 물었다.





엠브로이더드 드레스 ALLSAINTS.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무용계의 오스카상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무용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통하는데 수상을 예상하셨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출품작 〈미리내길〉이 국악을 베이스로 한 공연이라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가 오롯이 전해지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후보 리스트에 세계적 발레단 수석 무용수들이 포함돼 있어서 기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요. 여느 콩쿠르와 달리 먼저 영상으로 심사를 진행하고 수상 후 갈라 공연을 하는 방식이라 해외 공연을 떠난다는 마음으로 갔어요. 그런데 오히려 수상하고 나니까 더 긴장되더라고요. 수상작이니 그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수상작 〈미리내길〉은 어떤 작품인가요?
〈미리내길〉은 저와 유병헌 감독님 그리고 남자 파트너가 함께 만든 작품이에요. 국악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감독님께 여쭤본 후 음악을 찾아 듣고 해석하면서 만들었어요. 가사가 옛말로 되어있는데, 전반적으로 ‘내 님은 언제 올까, 난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데’라는 의미가 들어 있어요. 이걸 받아쓰고 해석하면서 스토리 라인을 감독님과 상의했죠. 남녀 간 이별 이야기가 담기면 감정을 넣기 편할 거 같다고 말씀드렸고,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이야기가 담기게 됐어요. 처음부터 함께한 작품이라 재미있었고 표현하기도 좋았던 거 같아요.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요?
공연 후 영상으로 본 것보다 훨씬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을 건넨 심사위원이 많았어요. 심사 과정 중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작품을 보고 나니 옳은 결정이었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고요. 안무가상을 수상한 분은 공연을 보면서 ‘예술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지’라는 생각이 들며 오랜만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고 말해주기도 했어요. 그 말이 참 고맙고 기억에 남았죠.
안타깝게도 국내 발레 팬층이 넓지는 않아요. 많은 사람에게 브누아 드 라 당스라는 이름도 생소할 정도인데, 수상 후 조금은 인식이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저 때문에 눈에 띄게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제가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다섯 번째 한국인 무용수거든요. 이미 강수진 단장님, 김주원 선배님, 김기민, 박세은 무용수가 수상했죠. 그분들과 달리 제가 국내 발레단 소속이어서인지 국내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을 많이 받았고, 가능한 한 모두 응했어요.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임한 이유는 저조차 세계 발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에요. 대중에게는 발레가 더 생소할 테니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오타드 REPETTO, 튈 스커트와 토슈즈는 개인 소장품.

2년 전에 출산하고 불혹의 나이에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점에 감탄하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도 여전히 무대에 설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연륜이 쌓이며 생기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체력이 전보다 떨어진 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몸으로 느끼니까요. 대신 여유가 생긴 거 같아요. 예전에는 공연을 두 번, 세 번 반복해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긴장이 있었다면 지금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긴 거죠. 어릴 때는 잘하고 싶어서 200% 힘을 내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날 때도 있었어요. 경직되고 빨리 피로해지기도 하고요. 이제는 무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때문에 잘 표현하면서 즐길 수 있게 됐죠.
무대에 반복적으로 서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다행히 아직 한 번도 지겨운 적은 없었어요. 무용수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레퍼토리로 2–3주 정도 공연하다 보면 지겹다는 말이 들리기도 해요.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같은 작품이라도 똑같이 하지 않으려는 버릇이 있어요. 같은 동작도 몸을 다르게 써본다든가, 표현을 새롭게 해본다든가. ‘다르게’를 늘 고민해요. 그러다 보니 늘 새로운 걸 배우는 기분이라 지겨울 새가 없는 거 같아요. 지겹지 않으니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거 같고요.
유니버설발레단 근속 21년 차 발레리나예요. 이토록 긴 시간을 함께한 이유가 있나요? 발레 관객이 훨씬 많은 나라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꿈도 꿨을 법한데요
유니버설발레단아카데미를 거쳐 선화예술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며 객원으로 출연할 기회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입단을 꿈꾼 거 같아요. 무엇보다 발레단 레퍼토리를 좋아했거든요. 유니버설에만 있는 〈심청〉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고, 입단 초기 다양한 모던 작품을 해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스토리에 집중한 드라마 발레가 많은 점도 좋았고요. 사실 서른 초반에는 해외 발레단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때마다 제가 여기서 완벽하게 준비되었는지 돌아봤어요. 그런데 준비가 안 되었더라고요. 스스로 국내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인정해야 세계 무대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계속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21년간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면서 제일 좋아하게 된 작품이 뭔가요?
좋아하는 작품과 캐릭터가 너무 많아요. 그중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인 거 같아요.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발레리나 알렉산드라 페리의 영상을 정말 많이 봤거든요. 〈심청〉도 좋아해요. 모던 발레도요. 결국 하나를 꼽기는 어렵네요.
그렇다면 발레를 하기 싫었던 순간은 한 번도 없나요?
싫었던 적은 없어요. 마음이 힘든 적은 있었죠.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느낄 때 주로 그랬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는 특히 춤추고 싶은 배역을 얻지 못하거나 잘할 수 있는데 주어지지 않았을 때 많이 힘들었어요. 지나친 자신감이나 욕심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 거 같아요. 캐스팅이 안 된 건 결국 ‘아직 아니다, 부족하다’라는 평가를 받은 거라고 생각해서 더 힘들었죠. 다행히 뭐든 빨리 잊는 편이라 고비가 왔을 때 한 번 울고 잊어버리거나 교외로 나가 바람을 쐬며 잊고 다시 시작했어요.





레오타드 REPETTO.

어떤 발레리나에게는 강미선이라는 무용수가 꿈일 텐데, 아직도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나요?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은 높기 마련이거든요. 저는 제 공연 영상을 잘 보지도 못해요. 기대와 다른 모습이 모니터에 비치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어요. 부족한 동작이 보이고 표현이 아쉽고 그러죠. 자주 보지는 않지만 그때마다 제가 무엇을 채워나가야 할지 생각하게 되죠.
반대로 ‘발레하길 참 잘했다’라고 느끼는 순간도 있겠죠?
요즘요. 수상 때문만은 아니고 얼마 전부터 계속 그래요. 매일 아침 무용수들이 몸 푸는 시간을 ‘클래스’라고 하는데, 그때마다 그런 감정을 느껴요. 어릴 적엔 조금 쉬고 싶다 생각할 때도 많았는데 지금은 바를 잡고 시작할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한 주를 시작할 때,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그래요. 행복하다는 걸 실감해요. 바를 잡는 순간 ‘아,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하죠.
공연 예술의 종류도 무척 다양합니다. 연극과 뮤지컬처럼 대중적으로 더 인기 있고 친숙한 공연의 수준도 상당히 높은데, 발레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른 공연 예술처럼 발레도 종합예술입니다. 음악을 듣고 무대를 보면서 춤을 따라 스토리를 이해하는 거예요. 대사가 없기 때문에 많은 분이 어렵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점이 분명히 있어요. 말로 전하는 이야기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무용수들의 몸짓을 해석하고 느끼는 그 자체만으로 더 깊은 감동을 느끼고 인상 깊게 기억할 수 있어요. 발레가 너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는 〈심청〉이나 〈춘향〉 또는 클래식 발레부터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걸요.
언제까지 춤추고 싶은가요?
제 욕심 때문에 버티기 힘든데 억지로 해내는 공연 말고요. 관객들은 모두 자신의 시간과 돈을 쓰며 좋은 공연을 기대하고 오는 거니까 제 무대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불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보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 자신에게도 옳지 않고요. 그러니까 좋은 컨디션으로 좋은 공연을 올릴 때까지만 무대에 서고 싶어요.

 

에디터 남미영(denice.n@noblesse.com)
사진 박귀섭
패션 스타일링 김지원
헤어 안미연
메이크업 오미영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