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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6

가장 고전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발레 <백조의호수>와 무용 <산조>의 매력 비교

2020년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서 초연한 프렐조카주 발레의 <백조의 호수>.

세계 곳곳에서 실험적 작품이 숱하게 쏟아지지만 잘 만든 전막 작품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각각의 장이 독립적이면서도 1시간 넘는 흐름 속에서 씨줄과 날줄이 되어 전체 그림을 완성해야 하니 말이다. 공연 한 편을 위해 막을 드리우는 횟수가 점차 줄어드는 극장 환경의 변화처럼, 스펙터클한 영상 콘텐츠와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서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야 하는 공연의 길이는 줄어들고, 절정에 도달하는 시간은 짧아지며, 복선의 깊이는 얕아진다. 그런 점에서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프렐조카주 발레(Ballet Preljocaj)의 <백조의 호수(Le Lac des Cygnes)>,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무용단의 <산조>는 여유롭고 끈질긴 시선으로 바라볼 만하다.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무대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혁신을 거듭하며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창작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는 무용가이자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Angelin Preljocaj)가 2019년 선보인 <프레스코화(La Fresque)> 이후 4년 만에 LG아트센터를 찾는다. 1996년 처음 내한한 그는 고전발레에 근거해 동시대에 어울리는 현대성을 추구하며 국내 관객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고전발레와 컨템퍼러리 댄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프렐조카주의 춤 스타일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했다. 알바니아인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발레를 배운 그는 독일 표현주의를 접하면서 컨템퍼러리 댄스에 관심을 두었고, 발레의 낭만적 테크닉과 표현주의에 바탕을 둔 섬세한 춤 언어, 공간을 바라보는 추상적 관점과 동선의 구상 등이 어우러져 그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 공연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동명의 고전발레에서 출발한다. 전작 <백설공주>로 이미 텍스트를 재구성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그는 150여 년 전에 탄생한 고전발레를 통해 현시대에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자연과 생태계를 상징하는 백조는 모두 죽고, 맑고 깊던 호숫물이 기름진 웅덩이로 변하는 결말은 인간이 당면한 환경 이슈와 자연과의 공생을 이야기한다. 플롯은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지만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원곡을 완전히 해체해 재구성했다. 프렐조카주는 이미 <백설공주>에서 말러의 교향곡으로 새롭게 구성한 음악을 선보이며 탁월한 음악 구성 능력을 보여주었다. <백조의 호수>에서는 차이콥스키의 악보 가운데 대표적 멜로디를 남기고 뉴뮤직 그룹 79D의 사운드 디자인을 더해 새롭고 현대적인 클래식으로 소생시켰다.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백조는 가녀리고 우아하기보다는 야성적인 모습에 가깝다. 훤히 드러난 맨발과 팔 마디의 분절을 사용해 섬세하게 동물적 감각을 살리고 대표적 장면 ‘네 마리 백조’에서는 부분적으로 토슈즈를 신고 등장해 원작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다. 또 화려한 무대 세트는 없지만 사실적 영상을 배경으로 장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푸르다 못해 캄캄한 심연과 미니멀리즘 음악에 가까운 일렉트로닉 사운드, 웅장한 음악에 맞춰 슬로모션으로 무너져내리는 철골 구조물을 보여주는 영상에 무용수의 움직임이 어우러져 고전과 현대의 감각을 마구 뒤섞는다.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를 한 번이라도 본 관객은 이 작품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세부와 필치를 생각하는 것이 발레라면 프렐조카주의 발레는 움직임에 녹아 있는 체면치레와 과시를 걷어내고 역동적으로 진화했다. 동시대적으로 변형, 재조립한 안무가 오래된 고전을 배경으로 교차하는 풍경은 여전한 고전의 위엄과 동시대적 미학을 동시에 상기한다.





2021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국립무용단의 <산조>.

<백조의 호수>가 원작을 토대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든다면, <산조>는 전통적 기악 독주에 담긴 추상성을 잘 짜인 3막의 무대예술로 확장한다. 국립무용단과 몇 차례 호흡을 맞춘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을 맡아 전통에 깃든 현대적 미학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산조’는 민속악 가운데 기악 독주 양식을 이르는 말로, 연주자 스스로 음악성과 기교를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흩어진 가락’이라는 말뜻처럼 음악은 비정형적이고 기교를 강조하며 즉흥성을 띤다. 산조를 연주하는 연주자에게 때때로 작곡가의 역할까지 부여하는 셈이다. 고요한 가운데 거문고 대점 한 번으로 마음을 울리기도, 가야금의 화려한 글리산도로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동안 춤의 미감을 새롭게 하는 간결한 의상과 세련된 연출로 열렬한 호응을 얻은 정구호가 덜어낼 것은 과감히 삭제하고 부각할 부분은 극단적으로 확대해 한복을 동반하는 한국무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산조>는 그가 국립무용단과 호흡을 맞춘 여섯 번째 작품이다. 전작의 연출이 대개 단정하게 빚은 고전의 아름다움에 요즘의 미감을 불어넣는 방식이었다면, 이 작품은 해석의 가능성이 활짝 열린 추상적 주제를 정해 도리어 구상으로 만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1막 ‘중용’에서는 비움의 미학과 절제미를 드러내며, 2막 ‘극단’에서는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발견하고, 3막 ‘중도’에 이르러 불협과 불균형의 조화를 이뤄낸다. 막이 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지름 6m의 대형 바위와 흑백 의상으로 꾸민 여성 무용수의 춤은 해석의 발판이 되는 전통을 향한 경의를 드러낸다.
국립무용단에서 활동하다 안무가로 합을 맞춘 최진욱은 오랜 시간 체득한 전통을 바탕으로 춤의 변주와 확장을 시도한다. 부채(혹은 비녀), 봉 등 소품으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산뜻하게 하고 군더더기를 걷어낸 간결한 움직임이 무대에 놓이는 각종 오브제와 조화를 이룬다. 전부 기록하기도 어려운 산조의 복잡미묘한 음표 하나하나를 무용수로 치환한 풍경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올여름, 아름다운 무대 미학을 선보이며 고전과 현대를 오가는 두 공연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자.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김태희(무용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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