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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1

지금, 다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로미오와 줄리엣〉이 창극과 현대무용으로 재탄생해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올가을 숀 켈리 LA에서 선보인 이드리스 칸의 작품.

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명작으로 인정받는 예술과 그런 작품에 다시금 시대성을 불어넣은 예술을 동시에 만나는 건 현대 관객으로서 누리는 큰 기쁨 중 하나다. 21세기에도 우리는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 위고의 작품을 다시 읽고, 쇼팽과 베토벤을 비롯한 고전·낭만 시대 음악가는 여전히 거장으로 불린다. 고전이 영원한 이유다.
예술가의 언어로 기록된 작품은 또 다른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다. ‘재해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잇따라 새롭게 탄생하는 작품이 그렇다. ‘명작의 재해석’, 공연을 홍보하는 문구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 표현에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기대와 암시가 깔려 있다. 명작을 기초로 했으니 꽤 괜찮은 작품이리라는 것, 누구나 아는 작품을 선택했으니 해석을 새롭게 비틀어보겠다는 것.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이 창극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대무용으로 재탄생했다. 비단 극 작품만이 아니라 뮤지컬, 영화, 무용 등 무궁무진한 장르로 5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끝없이 변주된 셰익스피어 작품의 강력한 생명력은 현대의 풍부한 상상력과 만나 어떤 모습으로 거듭났을까?
400여 년 전에 발표한 〈리어왕〉의 줄거리는 바로 어제 내 이웃에게 일어난 일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왕국을 거느린 리어왕은 자신이 늙고 병들자 세 딸에게 재산을 나눠주기로 결심한다. 두 딸은 왕의 환심을 사고자 달콤한 말을 마다하지 않지만, 오직 막내딸만은 솔직한 표현으로 아버지에게 충고하는데, 정작 그 때문에 미움을 사 왕국에서 쫓겨나고 만다. 왕은 행복한 말년을 기대했지만, 그 결과는 독자들이 예상한 대로. 재산을 얻은 두 딸에게 리어왕은 버림받고, 점점 더 커지는 인간의 욕심과 증오가 뒤엉키며 파국을 맞게 된다. 잠시의 기쁨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리어왕의 우매함,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수난은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국립창극단의 〈리어〉. ©국립극장.

영원한 고전 〈리어왕〉이 국립창극단에 의해 창극으로 재탄생했다. 서사를 가진 ‘극’과 절절한 한이 깃든 우리 ‘소리’가 만나 더없이 완전한 창극 〈리어〉로 거듭난 것. 국립창극단은 이미 2016년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을 창극으로 선보여 국내 관객은 물론 싱가포르와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미국 관객까지 울린 경험이 있다. 2022년 초연한 〈리어〉는 연출가 겸 안무가 정영두, 극작가 배삼식, 음악감독 한승석·정재일 등 창극을 가장 잘 아는 드림팀이 모여 완성한 수작.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기반으로 ‘우리 시대 극작가’로 불리는 배삼식 작가가 새롭게 대본을 썼다. 이야기 구조를 유지하되 삶의 비극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물’의 철학으로 일컫는 노자의 사상과 엮어냈다. 인물 간 관계와 갈등, 욕망을 대비시키면서도 그것이 세대나 시대에 관계없이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2막 20장에 걸쳐 원작과 또 다른 물결을 이룬다.
맛깔스럽게 감기는 우리말 대사와 그 안에 담긴 묵직한 사유는 한승석 교수의 노랫말과 정재일 감독의 음악으로 완성됐다. 특히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어울림이 돋보이는 정재일의 음악은 작품이 단순히 명작의 ‘재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명작의 ‘재탄생’으로 거듭나게 했다. 창극 〈리어〉는 앞물이 흘러가고 뒷물이 흘러들듯 우리 세상은 세대교체가 계속됨에 따라 다양한 욕망이 갈등을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며, 각자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을 물에 빗대 오늘날 우리가 다시 〈리어왕〉을 반추해야 하는 이유를 들려준다. 동시대 관객을 위한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국립창극단이 〈리어〉(3월 29일~4월 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를 다시 무대에 올리는 것도 관객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일 테다.
한편, 셰익스피어의 아름답고도 슬픈 러브 스토리 〈로미오와 줄리엣〉이 무용 작품으로 찾아온다. 요즘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안무가이자, ‘남성 백조’로 국내 관객에게 잘 알려진 매슈 본(Matthew Bourne)의 2019년 안무작 〈로미오와 줄리엣〉(5월 8일~19일, LG아트센터 서울)이 그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은 젊은 연인의 사랑을 대표하는 이야기의 특성상 극 작품만큼 유독 무용 작품으로도 많이 발표됐다. 서사 구조를 토대로 프로코피예프, 차이콥스키, 베를리오즈의 동명 음악이 있어 춤을 만들기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표한 이래 서로 다른 안무가가 완성한 발레 작품만 무려 80여 편에 달한다. 그래서 더 이상 새롭지 않을 춤 무대에, 오랜만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 매슈 본과 그의 무용단 뉴 어드벤처스(New Adventures)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는 데 뛰어난 안무가 매슈 본은 2007년 한 차례 ‘로미오, 로미오’라는 제목으로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다뤘으나, 당시 관객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2019년,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새 프로덕션으로 선보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불멸의 사랑 이야기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가져와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젊은 세대의 순수함과 열정으로 치환해냈다. 작품의 배경을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현대사회로 옮겨왔고,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무대를 화려하게 꾸몄다. 더불어 대규모 공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한 16세부터 19세 사이 무용수들과 함께 10대의 사랑을 신선한 방식으로 그려냈다. 그저 아름다운 것으로 치부하던 젊은이들의 사랑이 현 사회에서 얼마나 연약하고 불안하며 위태로운지, 우리 사회를 향해 작품이 건네는 질문들이 공연 내내 당신의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김태희(공연 칼럼니스트)
에디터 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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