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을 멈추지 않는 예술가 이건 프란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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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21

도전을 멈추지 않는 예술가 이건 프란츠

파운드리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로 개인전을 연 작가 이건 프란츠와 나눈 언어의 틀, 그 너머의 이야기.

©Liz Wendelbo

파운드리 서울이 2021년 10월 7일부터 12월 19일까지 뉴욕 브루클린과 코네티컷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986년생 작가 이건 프란츠(Egan Frantz)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를 개최한다. 언어의 틀 안에서 담아낼 수 없는 사태의 본질을 미술로 포착하고자 하는 그가 지난 10년간의 작업을 선보일 예정. 전시가 열리기 전, 지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가장 도전적인 동시대 젊은 작가 중 한 사람인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Lowghost #12’, 2014.
Courtesy of Galerie Nagel Draxler ©Simon Vogel

코로나19가 2년째 기승을 부리는데, 이런 환경은 작가님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 준비도 포함해서요. 4년 전 아내와 함께 뉴욕 교외로 이사했습니다. 집을 ‘살기 위한 기계(machine for living)’가 아닌 ‘작업을 위한 기계’로 꾸몄죠. 특히 첫 번째 록다운 이후 모든 방을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어요. 각각 회화, 음악 프로듀싱, 아카이빙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친구와 가족을 만나고 라이브 음악을 즐기던 순간이 그립기도 하지만, 제겐 좋은 작업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현재 전시장 모형을 보면서 파운드리 서울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등 전시의 모든 과정을 함께 계획하고 있어요. 곧 서울을 방문하여 직접 작품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전시에선 작가님의 지난 10년 작업을 총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출품작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 관람객이 특히 주목했으면 하는 작품이 있을까요? ‘Fish Neither’(2021)는 제목이 곧 주제인 작품입니다. ‘성질이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아 구분하거나 분류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뜻의 영어 표현 ‘neither fish nor fowl’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어떤 대상이 물고기(fish)도 새(fowl)도 아니라면, 그건 아마 예술 아닐까요?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모두 예술이란 삶의 위대한 신비에 대한 것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명확히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요.

전시명 ‘Not Enough Words’가 흥미로운데,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을 미술로 표현한다는 의미인가요? 맞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표현할 수 있었다면 미술을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특히 회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집중을 요구하죠. 어떤 면에선 글 쓰는 일과도 비슷해요. 다만 단어마다 펜과 잉크를 바꿔가며 올바른 모양으로 써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가 있으니까요.

작업 초기 개념적 조각과 설치 작품을 주로 선보였는데,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회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회화로 방향을 튼 계기가 있나요? 독일에서 조각 전시를 마친 뒤 한 갤러리스트가 다음엔 회화 작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군요. 조각에 매기는 수입 관세가 회화보다 월등히 높다면서요.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같은 갤러리에서 회화 작품을 선보였고,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2018년까지는 채도 낮은 모노크롬 페인팅 작업을 주로 했어요. 영수증을 레이저로 각인하거나 소변으로 금속을 부식시켜 작품을 만드는 등 제작 과정에 방점을 두기도 했고요. 그러다 2019년부터 색을 한층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캄캄한 방에 불이 켜지듯,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됐죠. 제 작업에 좀 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직 캔버스에 구현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많아요.

회화 근작에선 분할된 화면이 눈에 띕니다. 각각 다른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전반적 색 배합이나 구성을 어떻게 염두에 두는지 작업 프로세스도 궁금합니다. 화면 위로 열차가 지나가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걸 좋아합니다. 작품 너머로 이미지가 계속된다는 암시를 주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리드가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몬드리안의 마름모꼴 작품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업 프로세스의 경우, 정돈된 구성으로 시작해 점차 화면을 비틀고 변형하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저는 작업하면서 영감을 얻는 스타일인데, 먼저 시도해보고 싶은 작품의 크기와 색상 조합을 정한 후 빠르게 물감을 만들어냅니다. 회화의 경우 대체로 스스로 가야할 길을 알려주기에 묵묵히 따라가면 됩니다.





왼쪽 ‘Supi’, 2021.
오른쪽 ‘Fish Neither’, 2021. Courtesy of Galerie Nagel Draxler ©Egan Frantz

몇몇 회화 작품 속 텍스트의 존재도 흥미롭습니다. 눈길을 끄는 요소가 많아 작가님의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볼 때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세히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의 경우 작은 요소로 쪼개어 보거나, 문화적 맥락과 연관해 다루는 것만으로는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워요.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면 좋겠어요. 작품 속 텍스트는 의미를 지닌 단어지만, 동시에 하나의 형태니까요.

한 가지 재료나 스타일을 고수하는 작가가 많은데, 작가님은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듯합니다. 예술에 접근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변치 않는 이미지나 스타일을 찾아내 완벽하게 만드는 건 제게 흥미롭지 않아요. 이미 많은 거장이 다양한 스타일로 작업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블로 피카소와 프랑시스 피카비아가 떠오르네요. 자신만의 놀라움, 호기심, 유머러스함을 잘 지킨 작가들이죠. 브랜드가 되기보다는 만들어내는 일 자체를 진심으로 즐긴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저 역시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NFT 아트의 성장 등 예술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과 회화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예술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NFT가 작가들을 특별히 자유롭게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새로운 기술이 예술 양식을 변화시키겠지만, 내용까지 바꾸지는 못할 것입니다. 고대 동굴벽화부터 현대미술까지 예술은 결국 인간의 영혼을 담아내는 일이니까요. 저는 말 꼬리로 만든 붓을 사용해 작업하지만, 작업을 계획할 때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해요. 하지만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작품 주제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예술은 기술이나 정치, 그 외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예술은 삶의 위대한 신비에 관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는지요. “예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위스의 예술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On your knees.” 대답을 기대하며 기도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기도하죠. 그냥 열린 마음으로 전시를 보러 오면 됩니다. 모든 걸 알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전시장을 나설 때 뭔가 더 좋아진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제공 파운드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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