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담은 컬렉션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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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31

정체성을 담은 컬렉션

1980년대 후반부터 '남성'과 '남성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수집해온 앨런 허곳과 커트 셰퍼드의 이야기.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집에는 미술 작품이 가득 차 있다. 왼쪽에 앉아 있는 이가 앨런 허곳, 오른쪽이 커트 셰퍼드다. 뒤에 걸린 미술 작품은 크리스 오필리의 회화.
Chris Ofili, Odyssey 11, Oil, gold leaf and graphite on linen, 309.9×200cm, 2019

두 분은 1980년대 말 10대 청소년에게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이와 레즈비언 단체를 위한 로스앤젤레스 기금 모금 행사에서 처음 만났지요. 처음 함께 발견한 작품 중 하나가 리처드 프린스의 1990년 작품 ‘나는 이 남자를 안다’라고 들었어요. 이것이 지금의 컬렉션 주제를 아우르는 최초의 작품이었나요?
Alan Hergott(AH) & Curt Shepard(CS): 우리 컬렉션의 중심 테마를 설명할 수 있는 작품으로는 첫 번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프린스는 현대 신화와 규범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작품 하단에 적힌 농담 섞인 메모의 내용은 “나는 첫 여자친구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샐리였다. 여자가 맞았냐? 여자가 맞았냐?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물었다”입니다. 이렇듯 리처드의 메시지는 진부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선 미학적이며, 유머와 예술을 초월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초기에 컬렉션 주제에 대한 주위의 비판 때문에 잠시 다른 주제의 작품을 수집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간 컬렉션의 주제가 어떤 식으로 진화했는지 말씀해주세요.
AH & CS: ‘퀴어 아트’를 수집할 때는 진부함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아는 일부 성 소수자도 감정적이거나 에로틱한 이미지를 담은 음울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었죠. 예술계 사람들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술가에게 우리가 가치 있는 길을 걷고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 때로는 힘들기도 했죠. 색다른 컬렉션을 구상하고 이루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술계에서 결국 해낼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와 같은 ‘테마 컬렉션’은 유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문화계 일각에선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학문적으로 인정받은 시대나 역사적 운동을 반영하지 않은 경우라면 말이죠. MOCA의 큐레이터 팀이 기획한 전시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는 그들이 작품을 선보인 혁신적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컬렉션을 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미술관은 서로 동반자가 되었죠. 이렇게 미술관과 여러 조력자의 도움으로 우리 컬렉션은 성장했고, 전 세계 뛰어난 작가의 작품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들은 동성애자, 이성애자, 어떤 경우에는 논바이너리 젠더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성 정체성의 표상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컬렉션의 핵심입니다.





(왼쪽) Henry Taylor, Untitled(Ethiopian Pharmacist), Acrylic on Canvas, 212.7×183.5cm, 2016
(오른쪽) Llyn Foulkes, Where did I Go Wrong?, Oil and Mixed Media on Board, 180.3×137.2cm, 1991





Tala Madani, The Bruise, Oil on linen, 43.2×50.8×2.5cm, 2016





(왼쪽) Carroll Dunham, Wrestlers/Yellow sky, Acrylic and pencil on linen, 86.7×111.8cm, 2017~2018
(오른쪽) Glenn Ligon, More Bitch Than Me #1, oil and acrylic on canvas, 81.3×81.3cm, 2004
Courtesy of the artist, Hauser & Wirth, New York, Regen Projects, Los Angeles, Thomas Dane Gallery, London and Chantal Crousel, Paris
ⓒ Glenn Ligon

최근 성과 퀴어의 정체성을 탐구한 주요 작품 22점을 MOCA에 기증했습니다. 기증을 결심한 이유와 기증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AH & CS: 전에도 작품을 기증했지만, 우리가 MOCA에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한 번에 많은 작품을 기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2016년 리네커 데이크스트라, 더그 에이킨,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매슈 바니, 엘리엇 헌들리, 길버트 & 조지, 캐서린 오피, 래리 피트먼, 콜리어 쇼어, 안드레스 세라노, 스기모토 히로시 등의 작품을 대거 기증했습니다. 우리는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는 것이 곧 시민으로서 헌신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증한 작품은 마크 브래드퍼드의 영상 ‘스파이더맨’입니다. 해머 박물관과 MOCA를 위해 공동 기증했습니다. 이 작품 하단에는 자막으로 이루어진 화면이 있고, 마크가 직접 만든 캐릭터 ‘스파이더맨’을 연기하는 음향을 덧입혔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세상 물정에 밝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향이 있는 친구로,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여러 주제를 다룹니다.
1980~1990년대에는 할리우드에서도 공식 퀴어 커플이 드물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은 지난 34년간 당당하게 함께 일하고 컬렉션하고 작품을 기증해왔습니다. 성 소수자 작가의 활동과 두 분의 컬렉션이 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바꾸고 있다고 보십니까?
AH & CS: 그렇습니다. 예술가는 늘 시대를 선도하고, 작품은 그들을 대변합니다. 우리가 관심 있는 분야의 작품을 여러 미술관에 빌려주거나 기증함으로써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사회에 스며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컬렉션이 공개적으로 전시된 것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집니다.





Louis Fratino, Waking up First, Hard Morning Light, Oil on canvas, 228.6×177.8cm, 2020 ⓒ Louis Fratino





이들의 집은 건축가 마이클 몰츤이 미니멀리스트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왼쪽) Lukas Duwenhögger, Choreographie für 3 Männer, Oil on Canvas, 95×130cm, 1994
(오른쪽) John Currin, Two Guys, Oil on Canvas, 121.9×91.4cm, 2002 ⓒ John Currin





Nicole Eisenman, Maquette: Sketch for a Fountain (Standing Man), Bronze, 106.68×48.26× 40.64cm, 2018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ton Kern Gallery, New York ⓒ Nicole Eisenman





Maria Lassnig, Schlafende Männer (Sleeping Men), Oil on Canvas, 150×200cm, 2006 ⓒ Maria Lassnig Foundation

앨런 허곳은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일하는 변호사고, 커트 셰퍼드는 해머 박물관의 임원입니다. 직업이 예술에 대한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AH: 얼마 전에 퇴사하긴 했지만, 저는 항상 클라이언트들이 소장한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들 덕분에 특별한 작품을 수집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CS: 해머 박물관에서 스태프로 일한 3년간은 노숙자 청년, 성 소수자와 관련한 비영리단체를 위해 일한 20년이라는 세월에서 잠시 숨을 돌리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죠. 해머 박물관에서 일하며 오랫동안 키워온 현대미술에 대한 제 열정이 전문적 역량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또 박물관을 대표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죠.
베벌리힐스가 내려다보이는 두 분의 집은 1998년 건축가 마이클 몰츤이 설계했습니다. 2000년 AIA 캘리포니아 의회 공로상(AIA California Council Merit Award)을 수상하기도 했죠. 건축가에게 도널드 저드, 솔 르윗 같은 미니멀리스트 작가의 작품을 영감의 원천으로 추천했다고 들었는데, 그 아름다운 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CS: 마이클에게 설계를 의뢰할 때 카를 앙드레를 비롯한 미니멀리스트 작가에게 영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집이 모든 각도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죠. 따로 필요한 공간을 언급한 것 외에는 집이 어떻게 생겼으면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습니다. 우리는 컬렉션 작품을 주기적으로 바꿔 걸며 집이 ‘미술관’처럼 기능하게 하는 데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회화, 사진, 조각 등 대형 작품도 전시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언덕 위에서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절경도 함께 고려했습니다. 집의 안팎, 어디서 봐도 그 모든 것을 건축에 반영하는 데 마이클이 성공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정기적으로 집 안에 전시한 작품을 교체한다고 들었어요. 수장고가 따로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컬렉션을 디스플레이하는지 궁금합니다.
AH: 주로 18개월에 한 번씩 작품을 교체합니다. 집에 전시되지 않은 작품은 모두 지역 미술품 보관 시설에 맡깁니다.
CS: 앨런은 우리가 새로운 작품을 구입하면서 생긴 하위 테마에 따라 일관되게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고심합니다. 요즘 거실에서는 현대와 고대 신화를 둘러싼 작품이 두드러지고, 서재에서는 성 소수자 남성의 일상을 표현한 주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이닝룸에서는 폴 세푸야와 UCLA에서 그를 가르친 캐서린 오피의 작품 2점이 함께 시각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Lukas Duwenhögger, Choreographie für 3 Männer, Oil on Canvas, 95×130cm, 1994





(왼쪽부터)
Elliott Hundley, Cithairon Stained, C-print, 15.2×10.2cm, 2010 Edition of 5, 1 AP
Elliott Hundley, Ivan as Dionysus, C-print, 15.2×10.2cm, 2010 Edition of 5, 1 AP
Elliott Hundley, Levi as Dionysus, C-print, 15.2×10.2cm, 2010 Edition of 5, 1 AP
ⓒ Elliott Hundley / Courtesy of Regen Projects, Los Angeles





Kai Althoff, Untitled, Synthetic polymer paint on paper, 50.5×52.7cm, 2007

두 분의 컬렉션으로 2015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 미술관(UMMA)에서 <그(He)>라는 전시가 열렸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H: UMMA의 새 디렉터 조지프 로사에게 우리 컬렉션의 사진 작품 전시를 제안했고,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치니 재단의 유리공예품 전시 큐레이터 마리오에게 큐레이팅을 부탁했습니다. 함께 일하면서 즐거웠고, 마리오는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요즘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작가, 그리고 최근에 구입한 작품이 궁금합니다. 또 특별한 추억이 깃든 미술 작품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주시겠어요?
AH: 팬데믹 기간에도 작품을 수집하며 바쁘게 지냈습니다. 루이스 프라티노, 사냐 칸타롭스키, 코지마 폰 보닌, 브랜든 랜더스, 이시 글린스키 작가의 작품을 얻었고, 팬데믹 직전에는 모니카 마졸리의 작품도 수집했죠. 모니카와 브랜든의 작품은 최근 해머 박물관의 <메이드 인 LA> 쇼에서 전시했습니다. 루이스와 사냐의 작품도 MOCA에 기증을 약속하게 되어 기쁩니다. 특별한 추억이라면 너무 많죠. 모든 컬렉션은 어떤 면에서 자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를 생각하면 우리 컬렉션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컬렉터라면 누구나 작품을 탐색하는 과정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마침내 우리 것이라고 부를 만한 훌륭한 작품을 얻을 때까지 그걸 창조한 작가, 딜러와 함께하는 탐색 과정이죠.
CS: 수년간 컬렉션을 하며 우리는 예술가, 갤러리스트, 미술관 디렉터와 큐레이터, 컬렉터 등 평생 함께할 친구를 얻었습니다. 컬렉션과 관련한 추억의 많은 부분도 이런 따뜻한 인연과 관련이 있죠.
요즘 MZ세대가 미술품의 투자가치에 매료되어 컬렉션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컬렉션을 시작한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AH: 미술관에서 많은 전시를 보고 스스로 단련하는 만큼 당신의 감각은 더 나아질 겁니다.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 분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텐데, 이 또한 좋은 컬렉션을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주요 예술 잡지도 챙겨 보세요. 당신이 몸담은 분야는 물론이고 최고의 미술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컬렉터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세요. 여행을 떠날 때는 비즈니스가 목적일지라도 그곳의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2~3일 정도 일정을 추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술 전시 관람을 위해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요? 관심 가는 한국 작가가 있는지요?
AH & CS: 한국에는 한 번 가봤지만, 너무 좋았어요! 광주비엔날레 시기에 맞춰 따로 갔는데, 각자 MOCA 일행과 해머 박물관의 일행을 이끌고 갔습니다. 컬렉션을 위한 한국 작가 작품에 대해서는 아직 집중적으로 살펴보지 않았지만 한국의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MOCA 일행이 김용익 작가의 전시를 보고 반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미술관을 위한 작품을 구매해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사진 Eric Staudenma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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