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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4

컬렉터에게 전하는 안부

아나운서이자 미술 전문가 김지은이 새로운 책 <디어 컬렉터>를 출간했다. 컬렉터 21인의 집에 담긴 친근하고 내밀한 현대미술 이야기 속으로.

벽에 걸린 작품은 국대호 작가의 2009년작 ‘Paris-06’.

최근 <디어 컬렉터>라는 책을 발간했어요. 서울,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 각지에 사는 컬렉터 21명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엮은 책이죠. 소통과 교류가 쉽지 않던 팬데믹 시기에 이런 프로젝트에 도전한 계기가 있나요? 팬데믹 시기에 자연스럽게 집을 재정비하고 인연을 정리하며 필요와 욕망이 구분되기 시작할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일 전 지구적 ‘가택연금’과 여행 불가능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통할 것이며, 누구와 무엇을 교류하게 될까?’ 이 의문에 답하고 싶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를 그리운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지금 서로의 모습과 간결해진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 나누자고요.
프롤로그에서 ‘디어 마르크(Dear Marc)’로 시작되는 메일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언급했는데, 처음 보낸 메일의 답장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나요? 30년 지기인 스위스 출신 작가이자 큐레이터 마르크 훙게르뷜러(Marc Hungerbuhler)에게 당장 참여하겠다는 답장이 왔어요. 첫 문장은 ‘너에게 박수를 보낸다’였죠.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기 시작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각자의 삶의 축소판인 집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의견에 동의해주었어요. 일상에 깃든 예술이 주는 위안을 증명할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라고도 했고요.
<디어 컬렉터>에 소개한 21명의 컬렉터를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팬데믹을 통과하는 우정의 기록이 콘셉트였기에 가까운 친구들로 범위를 정했습니다. 제 절친 중 ‘현대미술 중독자’가 상당히 많거든요. 그들을 기준으로 ‘취향이 같은 오래된 친구’ 혹은 그 친구의 절친을 섭외했어요. 그래서 책에 실린 컬렉터는 모두 국적,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예술’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우정을 맺어온 사람들입니다.
어떤 친구와는 100통이 넘는 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스토리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래리(Larry)와 캐럴(Carol)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요. 로 앵글에 맞춰 촬영한 사진을 계속 보내는 래리에게 몇 번이나 다른 앵글을 요청했는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암 투병 중 휠체어에 앉아 직접 사진을 찍어 보냈다는 걸 말하지 않았어요.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디어 컬렉터>였던 거죠.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부인 캐럴이 프로젝트를 이어갔습니다. 영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이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와의 인연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작가 알프레도 마르티네스(Alfredo Martinez)가 유산처럼 남겨준 결과고요. 책의 첫 챕터에 등장하는 린다 로젠(Linda Rosen)의 경우 갑자기 몇 달간 소식이 끊겨 애를 태웠는데, 넷째 아이를 출산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더군요.
단순히 공간과 컬렉션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작품마다 작가에 대한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함께 담겨 있어요. 별도의 자료 조사와 스터디도 많이 필요했을 듯해요. 책에 실린 460여 점의 작품 중 절반가량은 제게도 낯설었어요. 당연히 공부해야 했고,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할 때는 작가에게 직접 연락해 인터뷰를 했죠. 그 과정에서 누구도 귀찮아하지 않고 정성껏 대답해주었습니다. 작가에 대한 기본 연구가 끝난 뒤에는 컬렉터들에게 그 작품을 왜 사랑하게 됐는지 등 디테일한 질문을 할 수 있었어요. 얼마나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았는지 짐작이 가시죠?(웃음) 팬데믹 시기였기에 오히려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소개한 21명 중 취향이 가장 비슷하거나 닮고 싶은 컬렉터가 있나요? 21명 모두와 교집합이 있지만, 뉴욕 변호사 게일 엘스턴(Gale Elston)을 먼저 언급하고 싶네요. 그는 뉴욕의 아트 신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컬렉팅과 변호를 통해 전시회조차 열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 놓인 작가들을 헌신적으로 지지한 점이 제가 지향하는 바와 일맥상통하거든요. 또 한 명의 뉴욕 컬렉터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작품을 집에 배치하는 방식이 매우 시적이에요. 작품을 통해 집을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신시키는 것이야말로 컬렉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닮고 싶은 컬렉터 중 한 명이죠.
한국 대표 아나운서로 꾸준히 활동하며 미술 전문가로서 책을 집필하는 등 아트 관련 프로젝트를 이어왔어요. 예술 분야에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예술 언어와 대중 언어의 장벽을 하루빨리 허물고 싶어요. 특히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작가를 인터뷰하는 것은 사명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작품을 사랑하지만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컬렉터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표현은 작품과 나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동반하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표현의 장을 소규모로 열어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에게 ‘아트’란 무엇인가요? ‘닫히지 않는 성장판’입니다. 아트를 사랑한다는 것은 한계 없이 성장하고 확장되는 스스로를 느끼며 세상을 여러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디어 컬렉터>를 접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얻었으면 하는지, 바람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디어 컬렉터>를 인테리어 잡지 혹은 현대미술 입문서처럼 슬렁슬렁 넘겨가며 볼 것을 권합니다.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작품 주변의 글을 천천히 읽어보고요. 그러다 ‘끌리는’ 작품이 생기면 취향의 발견이 시작되는 거죠. 친구 집 구경하듯 집과 내부 공간을 편하게 즐긴 뒤 ‘작품’에 중점을 둔 나만의 인테리어도 구상해보세요. 그 생각의 과정이 곧 컬렉팅의 출발점이 될 테니까요.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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