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SPECIAL
  • 2020-07-28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

다루는 매체가 다양해졌을 뿐, 예로부터 작가는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1 이해강이 디렉팅한 실리카겔의 ‘낮잠’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제 생각을 표현할 플랫폼이 많잖아요. 자연스레 다른 장르에 흥미가 생기고,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죠.” 확실히 요 몇 년,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좋은 매체는 무엇일까?’ 또는 ‘다른 플랫폼을 활용하면 작업을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시야를 넓히게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관심사는 영상, 음악, 출판, 공간 디자인 등 폭넓고 다양하다. 한 우물만 파는 작가를 찾는 게 더 힘든 요즘이다. 여러 장르에 손을 뻗는 게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술사를 돌이켜보면, 오히려 한 가지만 한 작가가 드물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서화(詩書畵) 일체를 최고로 친 조선에서는 시와 그림에 모두 능통한 사람만 화가로 인정했다. 서양에서도 미켈란젤로는 건축을, 앙리 마티스는 성당의 실내 공간을 디자인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예술가는 그 시기에 존재하는 매체를 두루 섭렵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지 플랫폼이 다양해졌다는 것 하나뿐, 작가들은 언제나 매체를 넘나들며 자신의 작품을 좋은 쪽으로 강화해왔다. 그렇다면 동시대 작가들은 어떤 장르를 다룰까?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는 블러(Blur)의 ‘Country House’,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는 시귀르 로스(Sigur Rós)의 ‘Varúð’, 앨릭스 다 코트(Alex da Corte)는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New York’ 뮤직비디오를 디렉팅했다. 같은 시각 매체라서일까? 뮤직비디오 영역에서 활동하는 미술 작가는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영상에 그만의 시그너처인 시각 요소를 심어놓는다. 앨릭스 다 코트의 작품을 상징하는 쨍한 컬러와 초현실적 이미지가 고스란히 들어간 세인트 빈센트의 ‘New York’이 대표적 예로, 기존 스타일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생산하지 않는 게 이들이 제작하는 뮤직비디오의 특징이다.
윌 코튼(Will Cotton)도 여러 가수에게 앨범과 뮤직비디오 디렉팅을 의뢰받았다. 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오직 케이티 페리(Katy Perry)의 ‘California Gurls’의 뮤직비디오 제작 요청에만 응했다. 오랜 팬이라서? 아니다. 케이티 페리의 팝한 캐릭터가 자신의 작품과 어울려서다. ‘California Gurls’ 뮤직비디오는 작가의 페인팅에 자주 보이는 뭉게구름, 사탕, 파스텔 컬러로 가득 차 있다. 윌 코튼 역시 페인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자세를 취했다. 여담이지만 그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인상 깊은 경험을 했다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California Gurls’의 조회수가 1억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아트 신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규모죠. 뮤직비디오는 제가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퍼뜨렸습니다.” 이처럼 다른 장르에 대한 도전은 활동 영역의 확장 외에 대중적 인지도라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2 빌리 차일디시의 ‘trees and sky’(2019). 그의 시가 직설적이라면 회화는 은유적이다.

이와 반대로 이해강 작가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작업을 시작한 케이스다. 지금은 페인팅으로 더 유명하지만 먼저 다룬 매체는 애니메이션이다. 군 복무 중 그만의 캐릭터 ‘삘삘이’ 그림 총 2265장을 이어 붙인 애니메이션으로 다이나믹듀오의 ‘남자로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이를 기점 삼아 본격적 활동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페인팅,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오는 6월 27일까지 리만머핀 서울에서 전시를 여는 빌리 차일디시(Billy Childish)와 7월 5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전소정은 여러 예술 분야를 아우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빌리 차일디시는 그림을 그리고 시와 소설을 창작하며 음악도 만든다. 영국의 한적한 작은 마을과 자연 풍경을 담는 그의 회화는 참 정적이다. 반면, 시에서는 평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노골적으로 읊는다. 소설은 어떠한 상징도 없는 픽션, 음악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펑크 장르다. 앞서 말했듯 작가는 표현하고픈 내용에 따라 매체를 취사선택하는 방식을 따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직설적인 텍스트를,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자연을 논할 때는 시각언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3 전소정의 책 <ㅁ>의 표지.

전소정도 프로젝트에 따라 적합한 형식을 선정한다. <부바 키키-공감각에 관한 단상>과 <EUQITIRC>를 포함한 책, 밴드 검은 밤으로 활동하며 발매한 앨범은 당시 떠올린 아이디어를 구현하고자 택한 매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피면 <부바 키키-공감각에 관한 <단상>은 공감각을 주제로 안소현 큐레이터와 주고받은 편지 형식의 글, 쇤베르크의 전시를 기획한 파니 술만과의 대화를 수록한 책으로 일종의 리서치 북이자 독립 작업물이다. <EUQITIRC>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이상적인 작품에 대한 비평문’을 8명의 필자에게 제안한 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묶은 것으로, 작가는 이 책이 여러 필자가 전해온 온갖 색채와 사운드, 움직임, 미래 예측, 긴장으로 가득한 보이지 않는 전시 공간과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프로젝트에서 시도해보지 못한 실험적 형식은 밴드 검은 밤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이해강과 전소정에게 이렇듯 여러 매체를 오가는 이유와 그 이점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에요. 한 가지 작업만 고집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고요. 작업을 하며 여러 장르를 거쳤기에 자연스레 여러 장르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회화와 애니메이션이 서로를 발전시키는 관계예요. 앞으로도 이런 모습을 보여드릴 것 같아요.” 이해강의 답변이다. “영상과 책, 음악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영상이 말하지 않는 비밀을 음악이 풀어내고, 영상이 탄생하기까지 사유 과정을 책에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 반대이기도 하고요. 장르 간 연결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따로 봐도 무방해요. 이들 모두 쓰기라는 유사한 제스처를 포함하지만 영상적 글쓰기를 통해 이미지와 사운드, 이미지와 말의 간극을 만들어내는 일이 흥미롭거든요.” 전소정은 말했다. 이들의 답변을 살피면 작가들이 왜 다양한 장르에 발을 걸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