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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9

바텐더의 술

여덟 명의 바텐더, 여덟 가지 해장술

즉흥 스카치 코코넛 소다
고백한다. 해장술을 즐기는 부류의 애주가는 아니다. 하나, 몇 년 전 친구가 초대한 홈 파티에서 거나하게 취해 잠든 어느 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함께 마신 친구들은 바텐더인 내게 해장술을 요구했고, 한정된 재료로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코코넛 워터를 산 뒤 전날 마시고 남은 약간의 스카치위스키를 더하기로 했다. 비율은 코코넛 워터 5: 스카치위스키 1, 그리고 적어도 1년은 방치해둔 것 같은 먼지 쌓인 소다 스트림을 다시 부활시켜 탄산수를 제조해 가미했다. 스카치 코코넛 소다에 얼음을 넣어 마신 기분은? 내가 엄청난 일을 해냈구나! _ 임병진(참)






숙취를 저격하는 레드 스내퍼
해장술로 유명한 블러디 메리의 사촌 격인 레드 스내퍼. 블러디 메리와 맛도 비주얼도 비슷하지만, 레드 스내퍼는 진 특유의 향으로 좀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찰스 H의 레드 스내퍼는 진 50ml, 토마토 주스 100ml, 레몬즙 15ml, 우스터소스 4방울, 매운맛을 선호하는 정도에 따라 타바스코 3~8방울, 후춧가루 약간, 곱게 간 셀러리 씨와 고운 소금을 혼합한 셀러리 소금 3꼬집, 레드 와인 10ml를 넣어 완성한다. 여기서 관건은 토마토 주스의 점성을 살리는 것. 격렬한 셰이킹으로 멋을 뽐내는 일은 잠시 내려놓고 핸드드립하듯 살살 저어 희석하면 맛이 더욱 좋다. _ 키스 모시(포시즌스 호텔 서울, 찰스 H)






통째로 간 배 토닉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술 마시며 거나하게 취했을 때, 당시 갓 출시한 음료 ‘갈배사이다’를 마시고 술이 빠르게 깨는 기적을 경험했다. 적어도 해장에서 배는 과학이었다! 이후 일본 기타큐슈 지역의 오거닉 바 ‘The Certain Bar’에서의 게스트 바텐딩을 준비하다 가게에 늘 구비된 재료로 오거닉 칵테일을 만들어보았다. 청사과 뉘앙스를 풍기는 시카고산 오거닉 진 코발과 배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코발 진 40ml, 생제르맹 리큐어 5~10ml, 레몬 5~10ml, 국산 배 1/3개, 토닉 워터, 타임 가니시한 칵테일은 배를 갈아 진토닉 스타일로 만든 청량한 느낌의 ‘진또배기’ 칵테일이다. 생제르맹의 은은한 엘더플라워 향과 기분 좋게 씹히는 배의 과육이 청량감 있게 입안을 맴돈다. _ 이수원(숙희)






추억의 맛, 토마토 하이볼
언젠가 도쿄의 한 이자카야를 방문했을 때 메뉴에서 토마토 하이볼을 발견하곤 무릎을 탁 쳤다. 이걸 변형해 만들면 재밌겠는데? 서울로 돌아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완성한 토마토 하이볼은 사실 만드는 법도, 맛도 거창할 것이 없다. 토마토에 설탕을 솔솔 뿌린,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추억의 맛일 테니. 토마토 퓌레를 만들어 면포에 거른 맑은 토마토 워터를 사용해 가볍고 산뜻한 풍미에 강한 탄산감, 풋풋한 채소 향이 기분 좋게 다가와 호불호가 없는 맛이다. 만드는 방법은 치타 싱글 그레인 위스키 30ml, 토마토 워터 60ml, 설탕 시럽 5ml, 소다 워터. 해장에 탁월한 토마토와 수분을 이 한 잔에 가득 담았으니, 이만한 해장술이 어디 있겠는가. _ 박성민(티앤프루프)






갈아 만든 ldH 펀치
‘갈아 만든 배’가 해외에서 숙취 해소제로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아는지. ldH 펀치(외국인이 ‘배’를 ‘ldH’로 읽는 데서 착안한 이름이다)의 시작은 이러했다.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의 특성상 그들의 테이스트에도 거부감이 없고, 한국 술의 개성도 보여주어야 했다. 바텐더 서동재와 함께 실험 끝에 배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한국 술 이강주와 갈아 만든 배를 조합하기로 했다. 이강주 45ml, 바질 3개, 꿀 15ml, 레몬주스 15ml, 갈아 만든 배 60ml. 신선하고 맵싸한 바질 향이 코끝을 스치면서 입술을 부드럽게 자극하고, 마침내 싱그러운 배 향과 맛이 혀에 닿는다. 마지막은 이강주의 생강 향이 천천히 얼굴을 내민다. 본래 의도는 해장용이 아니지만 수분, 단당류 탄수화물인 배가 메인 재료라는 걸 감안하면 역시 해장엔 이 칵테일만 한 것이 없다. 숙취에 시달리며 글을 쓰는 지금, ldH 펀치를 한 모금 크게 들이켜고 싶다. _ 이종환(라이즈 호텔, 사이드 노트 클럽)






이것은 수프인가 술인가, 블러디 메리
기억은 5년 전, 바 오픈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낮에는 칵테일을 연구하고 밤에는 영업하느라 밤낮으로 취해 있던 시절, 블러디 메리 칵테일용으로 대량을 만들어둔 믹서(메인 술인 보드카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미리 만들어놓고 숙성시킨 것)는 바텐더들에게 최고 인기를 누렸다. 바텐더 사이에 블러디 메리의 장인으로 등극한 이진용 바텐더는 냄비에 가득 담긴 블러디 메리로 끝내주는 해장술을 만들었고, 우리는 늘 참새 떼처럼 달려들었다. 흔히 알려진 블러디 메리 레시피에 오이와 들기름, 매운맛을 가미했을 뿐인데, 밥을 말아 먹고 싶을 정도로 감칠맛이 뛰어났다. 보드카 45ml, 토마토 주스 180ml, 레몬 주스 15ml, V8 블러디 메리 믹서 22.5ml, 올리브 주스 5ml, 타바스코 5dash, 들기름 3dash,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오이·셀러리 적당량을 조합한 이 한 잔을 마시고 15분 정도 푹 자면 지독한 숙취로 그토록 밉던 술이 다시 당기기 시작한다. _ 김용주(앨리스)






Blood is Green
3년 전 싱가포르에서 월드 클래스 칵테일 대회가 열렸다. 당시 주제가 ‘멕시코’였는데, 과카몰레와 타코에 심취해 있던 나는 타코와 블러디 메리의 만남을 연출한 음료로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토르티야, 과카몰레, 살사, 사워크림 등 여러 재료를 조합해 다채로운 맛과 향, 텍스처의 세계를 보여주는 타코의 복잡 미묘한 맛의 팔레트를 한 잔 술로 옮긴 것. 테킬라 베이스에 레몬과 초록 토마토, 직접 만든 과카몰레와 간장 소스, 그린 타바스코가 어우러진 칵테일에서 각각의 재료는 장점을 또렷이 간직하면서도 조화롭다. 거기엔 양파, 마늘, 간장, 설탕을 넣어 직접 만든 간장 소스의 어시스트가 한몫한다. 특유의 단맛, 짠맛, 감칠맛을 지닌 소스는 각기 따로 놀 수 있는 재료의 연결을 돕고 맛을 밸런스를 살려준다. 칵테일의 기묘한 이름만큼 칵테일의 여운도 오래 남는다. _ 신재윤(JW 메리어트 서울, 모보 바)






탱이 레몬 라임 비터스
기분 탓인지 마시다 보면 술이 깨는 것 같은 술이 있다. 바로 ‘페르넷 브랑카’. 바텐더들은 장소를 막론하고 어떤 바에서든 친구가 되기 마련인데, 이때 하나의 의식처럼 공유하는 샷 중 하나가 허브 리큐어인 페르넷 브랑카다. 묘하게 쓰면서 상쾌한 허브 향과 맛, 마지막에 살짝 스치는 달큰한 터치감이 그간 마신 술맛을 개운하게 정리해주고 정신을 차리게 한다. 거기서 착안한 해장술이 탱이(Tangy) 레몬 라임 비터스다. 페르넷 브랑카 1shot, 리몬 첼로 1/2shot, 레몬주스와 라임주스 각각 15ml, 생강 베이스 10ml, 설탕 시럽 1/4shot, 소다수를 넣어 만드는 저도수 칵테일이다. 생강의 스파이시한 향과 레몬, 라임으로 바짝 끌어올린 산미가 쉴 새 없이 잽을 날리듯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다 꿀꺽 삼킨 뒤에는 강한 탄산감이 식도, 위장까지 차갑게 만든다. 안팎으로 정신이 번쩍 드니 해장에 도움이 안 될 리가. _ 이민규(연남마실)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일러스트 이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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