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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28

세 개의 시선으로

이미 크뇌벨은 한국에서 보낸 긴 질문에 짧은 답을 보내왔다. 그의 작품처럼 여러 층의 레이어를 숨긴 채.

1 Element 33.2, 2018
2 이미 크뇌벨.

이미 크뇌벨
1940년 독일 데사우에서 출생했다. 1971년 독일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유럽을 기반으로 크고 작은 전시를 열었다. 개념미술을 바탕으로 사각 캔버스 틀에서 벗어나 재료에 구애되지 않고 기하학적 또는 유기적 형태로 작품을 만들어 ‘추상회화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로서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미국 MoMA, 시카고 미술관을 비롯해 스페인 현대미술관, 오스트리아 알베르티나 등 오늘날 각 나라의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여러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3 지난 9월 4일부터 10월 31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이미 크뇌벨 전시 전경. 가운데 ‘Bild’(2016)가 보인다.
4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이미 크뇌벨의 작업실.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에서 전시할 때도 오프닝엔 참석하지 않았어요. 집 근처였는데도 말이죠. 많은 사람을 만나면 힘들 것 같았어요.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지난 9월, 이미 크뇌벨(Imi Knoebel)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세 번째 개인전 < Big Girl and Friends >를 열었다. 하지만 그는 내한하지 않았고, 그가 이 인터뷰 자리를 빌려 보낸 사과의 메시지와 작품 13점만이 도착했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작업한 신작으로, ‘BIG GIRL’과 ‘Figura’ 연작이 주를 이뤘다. 컬렉터들은 미리 움직였다. 실물을 보기 전에 이미 몇 점은 새 주인이 생겼을 만큼 반응이 좋았다.
당연했다. 세상이 이미 크뇌벨을 ‘독일 추상회화의 거장’이라 명확히 말한 지 오래다. 그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서양미술사의 주요 인물을 탐구하면서도 쉽게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건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한껏 무거워지는 대가들. 추상화의 탄생과 이론 정립에 기여한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그의 스승이던 개념미술 작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색면 추상화가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이 있다. 이 복잡 미묘한 작가의 세계를 생생한 말로 듣고 싶어 독일 작업실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는 말수가 적다. 그러나 메일을 보낸 지 한참 후에 도착한 짧은 답장을 읽었을 땐 실망 대신 작가의 순수함이 엿보여 그간의 긴장감이 해소되었다. 크뇌벨의 간결한 대답 사이에 드러난 생각은 작품과 비슷했다. 외형은 심플하지만 복잡한 레이어들. 이럴 때를 대비해 이미 크뇌벨 곁에는 아내이자 매니저인 카르멘 크뇌벨이 있다. 그녀는 남편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한다. 둘은 한국에서 보낸 질문에 한 몸처럼 말했고, 답변이 충분히 이해되도록 작업실 사진과 설명을 덧붙여 보내주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보아달라거나 부연 설명을 하기보다는 보는 사람이 느끼는 그대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카르멘이 심오한 답을 갈구하는 먼 나라 관람객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왠지 이 사람이라면 애매모호하고 긴 대답을 원하지 않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이미 크뇌벨과 카르멘 크뇌벨 그리고 전시를 소개한 모두의 목격담을 토대로 정리했다. 하나의 대답일지라도 작품을 만드는 사람과 곁에서 보는 사람, 그리고 정면에서 바라보는 관찰자의 눈을 짐작해가며 읽기를 바란다.

“젊은 시절 나는 다른 학생들과 거리를 두려는 조용한 학생이었습니다. 예술을 하기 위해 고심하던 20대에는 ‘(예술 속에서) 모든 시도가 이미 다 이뤄졌다’고 생각했죠. 루초 폰타나(Lucio Fontana)는 캔버스라도 잘랐는데,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창백한 얼굴에 볼이 붉은 청년을 상상하게 되는 순간. 루초 폰타나는 194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 시대를 마주하며 ‘공간주의’를 주창한 작가다. 빈 공간, 즉 우주를 묘사할 수 있는 요소를 예술 안에서 찾고 실험했다. 여러 도구로 캔버스를 뚫거나 잘라서 2차원 평면이 3차원, 입체가 되는 과정을 선보였다.
“무언가를 해내고 싶고 살아 있는 작가가 되려면 당신은 적어도 급진적인 것을 생각해내야 합니다.” 시대는 달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이미 크뇌벨은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신은 이제 그 시기를 지나 거장으로서 안정기에 진입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가는 앞으로 계획을 물었을 때에도 애매모호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아름다운 초록 정원이 펼쳐진 자택에서 올해 말 열릴 프랑스 파리 타데우스 로파크 갤러리 전시를 비롯해 몇몇 갤러리와 미술관 전시 준비로 바쁘게 보내고 있다. 이미 많은 작품이 전시를 위해 해외로 이동 중이어서 작업실에는 2018년부터 선보여온 3cm 두께의 소형 신작 몇 점만이 특유의 오묘한 색깔을 입기 위해 대기 중이다.




5 그의 오랜 연작 중 하나인 ‘Figura My’(2019). 피구라(Figura)는 ‘형태’라는 뜻이다.
6 Big Girl J.1, 2019
7 Figura N, 2018

“작업을 시작한 이래로 내 작품을 읽는 것은 이미지에 대한 결정(an ontological determining)이 끝난 질문들과 같았습니다.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확장되고, 향상되고, 재형성되고 있습니다. 내가 오래된 작품을 언급하고, 반복하고, 재건하고, 연장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작가에게 나무와 아크릴물감, 금속과 종이 등 이질적 재료를 다루면서도 하나의 회화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는 먼저 자신의 대답을 이해하기 위해 1968년 설치 작품 ‘19호실(Raum 19)’을 참고하길 권했다. 이 작품은 이미 크뇌벨이 요제프 보이스의 제자가 된 이후 처음 완성한 것이다. 납작한 몇 개의 나무판자와 흡사 가구처럼 보이는 둥글거나 반듯한 박스 등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데, 전시 공간에 따라 위치를 달리한다. 그러니까, 같은 작품이라도 공간에 따라 관객과 어떤 관점을 나누고 관계를 갖게 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각기 다른 색의 테두리로 둘러싸인 사각형 작품, 라틴어로 ‘심혼의 세상’이라는 의미의 ‘Anima Mundi’(2011) 같은 연작을 꾸준히 해왔다. 크뇌벨은 다른 인터뷰에서도 “나에겐 모든 것이 회화죠. 당신이 잠재적인 모든 장소에서 마주하게 되는 존재들입니다. 모든 상황에서 회화를 끄집어낼 수 있어요”라고 말한 바 있다.
반복 속에 새로운 변화는 쉼 없이 드러났다. “작업실에서도 많은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겠지만, 작품에 맞는 색을 찾기 위해 수없이 조색해 칠하고, 작품 형태를 구상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색을 실험하는 데 더 깊이 빠져들고 있죠. 다양한 색을 구현해가고 있어요. 나는 단지 색에 다가가기를 원해요. 색을 칠하고, 그 위에 또 더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색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8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유서 깊은 랭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이미 크뇌벨이 2008년 디자인했다.
9 LUEB, 2013
10 Weiss Schwarz15, 2010

활동 초기에 흑백 회화 작업을 주로 했던 이미 크뇌벨은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색채 탐구에 몰두했다. 최근에는 전혀 다른 색을 두께가 좀 더 느껴지도록 여러 번 칠하는 것으로 변화를 주었다. 적어도 스무 번쯤 반복해 자신만의 색감을 표현한다. “나는 정말 다양한 색을 조합해요. 색은 늘 열려 있으니까, 내가 사용하지 않는 색은 없다고 봐도 좋아요. 이런 방식을 통해서 여러분은 기존에 생각해본 적도 없는 아름다운 작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온전한 색의 변화와 충돌. 이미 크뇌벨을 처음 만나는 젊은 관객에게도 하나의 시그너처로 여겨지는, 가위로 오린 듯 자유로운 형태의 알루미늄 바탕 작품들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이제는 좀 더 심플하고 양감(量感)이 느껴지도록 변화하고 있다. 색 덩어리같이 생긴 작품을 자세히 보면 갈색 뒤에 초록색이, 흰색 구름 같은 작품엔 반짝이는 펄 페인트가 숨어 있는 식이다. 단색이 서로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차이와 바탕이 물감을 흡수하지 않아 그대로 남은 붓질의 질감. 그 미묘한 변화와 충돌이 각도와 작품이 놓인 곳의 조명에 따라 달라 보이기에 카메라의 눈과 도록의 지면에는 다 담기지 않는다. 많은 명작이 그렇듯, 이 독특한 소재는 이미 크뇌벨에게도 우연히 시작되었다.
“언젠가 ’알루미늄’ 작업은 우리 집 거울에서 시작됐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집에 오랫동안 있던 것인데, 작품을 만들고 싶은 충동이 거울을 우연히, 다시 보게 한 거죠. 거울 가장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겹겹의 층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역시도 우연일까? 1940년생인 그가 작가로서 감을 잃지 않고 새로운 창작을 위해 몰두할 수 있는 비결 역시 그의 집에 있다. 어떤 사유보다 어려운 방법이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과 작가로서의 시간이 모두 충만하기에 가능합니다. 결혼한 딸들, 손주들 역시 우리 집 근처에 살아서 다 같이 자주 보지요.”
삶의 균형을 전제로 한 거장의 길. 다소 떼를 쓰는 기분으로 그에게 스타 작가가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물었다. “미술 시장에 무관심한 편이에요.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거든요. 한때 그림으로는 절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제 작품이 팔릴지,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할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좋습니다. 작가는 그저 계속 작업을 할 뿐이죠.”
인터뷰 답변을 읽는 내내 담담하다고 생각한 작가의 태도가 바뀐 것을 느낀 것은 뜻밖에도 역사적 질곡이 많은 현대사를 살아온 독일인임을 염두에 두고 역사와 사회적 문제에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에서였다. “2008년, 프랑스 국왕 즉위식이 열린 랭스 대성당(Reims Cathedral)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새롭게 디자인한 적이 있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에 대한 독일 작가의 화해의 제스처였고, 내겐 무척 영광스러운 작업이었습니다. 마티스를 의식한 구성과 제 특유의 커팅 기법(paper cut-outs)이 들어갔습니다. 기회가 되면 직접 가서 보라고 하고 싶군요.” 수많은 작업 중 어쩌면 가장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작품이었던 걸까? 그의 작품 아래 수많은 색깔과 면으로 깔려 있는 냉철한 철학과 겸손함 속에서 언제든 끓어오를 수 있는 용암 한 덩이를 훔쳐보았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제공 리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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