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향한 소망, 예술로 승화되다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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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8

달을 향한 소망, 예술로 승화되다

이배 작가가 청도에서 태워 올린 달집.

이배 작가. Courtesy of the Artist and Johyun Gallery Photo by Jaeho Jung

작가 이배가 자란 경북 청도는 그가 어린 시절 전기도, 라디오도 없던 시골 마을이었다. 문명보다는 자연에서 오는 체험이 대부분이던 그에게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는 유년기의 가장 강렬한 기억이었다. 이 경험은 나중에 그가 프랑스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작업 재료로 숯을 선택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소나무의 수명은 100년이지만, 불이 주는 변화의 시간을 거쳐 숯으로 재탄생하면 천년의 생명을 얻는다. 또 예부터 달집태우기 이후 남은 숯덩이는 정결함의 상징으로 여겨 마을에 시집오는 새 신부가 바닥에 깔린 숯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게 하거나, 출산 후 대문 금줄에 매달기도 했다. 숯은 연약하고 잘 부서져서 다루기가 어려운 재료다. 그렇기에 작가는 이것이 오히려 역동적으로 표현될 때 더욱 강한 느낌을 선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섯 종류의 나무로 만든 숯을 사용하는데, 수종에 따라 각기 다른 빛의 검은색을 발산한다. 그리고 작품에 색을 배제하고 흑백 농담을 사용해 작업하는 것은 현실을 초월하고자 한 정신성의 발현으로, 동양의 수묵 정신과 연결된다. 이배의 작업에서 획은 인간의 몸짓과 호흡 그리고 리듬이 실린 생명력을 의미하며, 바탕이 되는 숯은 영원이라는 시간을 함축한 연금술적 재료로 땅의 물질이 불의 힘을 빌려 하늘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종교적 갈망을 상징한다.





청도에서 개최된 달집태우기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Johyun Gallery Photo by Sangtae Kim

이번에 진행한 이배의 달집태우기 행사는 지역 공동체 축제를 개인의 작업 속으로 들여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달집을 태우는 현장에는 미디어와 인플루언서보다 지역 주민과 작가의 지인들이 더 많이 참석했다. 전시 홍보를 위한 행사가 아닌, 작가 스스로 작업 여정의 거듭남을 추구하기 위한 의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작가가 달집에 불을 붙이자 동그란 움막 형태의 달집 안에서부터 불꽃이 커지며 활활 타올랐다. 이날은 바람의 도움으로 하얀 연기 구름이 회오리 형태로 피어올랐는데, 그 장면이 마치 달집을 둘러싼 새끼줄에 매달린 수천 가지 소망이 하늘로 전해지는 긴 터널처럼 보여 탄성을 자아냈다. 또 참석한 사람들은 달집을 태우기 전 귀밝이술과 손두부를 나눠 먹고, 이후 저녁 식사로 오곡밥과 산나물 그리고 부럼을 깨어 먹는 과정을 즐겼다. 식사 자리에서는 소리꾼이 축문을 낭독하며 올해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달집태우기는 이날 참석한 독일 갤러리스트, 이탈리아 큐레이터가 한국 작가 이배의 작업 이면에 담긴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초월적 존재를 향한 인간의 갈망이 존재해왔고, 이는 예술로 표현되어왔다. 이배는 프랑스 유학 시절 앙리 마티스가 말년에 작업한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방스의 로사리오 예배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작은 예배당의 흰 벽을 채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과 어우러진, 검은 선으로 간결하게 그려진 성직자의 모습에 그는 매우 감명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그 느낌을 떠올리며 이번 베네치아 전시에서 달빛이 전시 공간을 가득 비추는 장면에 숯으로 표현된 수묵 정신을 담은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는 기획을 했다. 오는 4월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방문한다면 청도에서 시작된 달을 향한 소망이 이배의 작품으로 승화되어 베네치아의 밤을 어떻게 밝히는지 감상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전시 과정에서 발현된 전통 제의의 환생과 현대적 재해석이 오늘날 우리에게 결핍된 공동체 의식을 고취함으로써 무엇을 시사하는지도 생각해보자.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가 끝날 무렵 사그라지는 불꽃이 청도천의 물에 비쳐 일렁이는 모습은 마치 환한 보름달이 지상으로 내려온 듯 보였다.





청도에서 개최된 달집태우기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Johyun Gallery Photo by Sangtae Kim

 

에디터 박수전(soojeunp@noblesse.com)
사진 조현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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