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2021년 주목한 작가, 최찬숙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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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09

국립현대미술관이 2021년 주목한 작가, 최찬숙

이주자이자 이민자, 이방인으로서의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 최찬숙의 '큐빗 투 아담'.

올해의 작가상 2021 수상 후보로 선정된 최찬숙 작가.

최찬숙
작가 최찬숙은 2007년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이후 동 대학에서 미디어 아트 석사과정을 밟았다. 2009년에는 동 대학에서 실험 미디어 마이스터 과정을 이수했다. 2010년 갤러리 쿤스트독의 개인전 <Metamorphose>를 시작으로 성공미술관, 대안공간 루프, 훔볼트 포룸, 아트선재센터, 대만의 디지털 아트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19년 현대자동차 제3회 VH 어워드를 수상하고, 2020년 베를린에서 골드라우슈 여성 작가 지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60호,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1. 사진 홍철기





큐빗 투 아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1. 사진 홍철기

<올해의 작가상 2021>전을 통해 오랜만에 한국에서 전시를 선보입니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코로나19 때문에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국립미술관에서 많은 지원을 해준다는 점이 고무적이었어요. 그런 기회는 흔히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굉장히 즐겁게 작업했는데, 전시에 작품을 올리고 보니 생각보다 무게감이 느껴지더군요. 매년 열리는 전시인데도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하다는 점이 놀라워요. 동시에 전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는 점도 흥미로웠고요. 어느 때건 경쟁 구도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모두가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오랫동안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쟁적 구도가 더욱 와 닿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에겐 경쟁보다는 잘하고 싶은 부담감으로 다가왔어요. 주로 활동하는 베를린에서는 예술가의 연대를 정말 많이 강조해요. 그리고 작업하면서 그 중요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죠.
그렇게 다른 세계를 오가는 작가님의 모습이 작품에 투영되는 듯합니다. 이주와 이동, 공동체를 주제로 그간 작업해왔다는 짧게 압축한 프로필을 읽으며 공감했어요. 또 이주를 물리적 이주와 정신적 이주로 나누셨는데, 정신적 이주라는 말이 저에겐 특히 인상 깊었어요.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해외에서 생활하며 제가 정말 재미있다고 느낀 지점이 있어요. 베를린에는 많은 이민자가 모이는데 아시아, 중동, 유럽 등 어디서 온 사람이건 기존에 자신이 머물던 곳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더군요. 예를 들면 한국인인 제가 베를린으로 이주했지만 한국 사람과 더 자주 어울리고,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한국식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한인 마트에 가는 것과 같은 거죠. 결국 몸은 이주했지만, 정신은 이주하지 못한 상태예요. ‘나의 정신이 어디에 묶여 있느냐에 따라 사회적 배치가 달라진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말씀을 듣다 보니 물리적 이주와 정신적 이주가 동시에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죠. 대체로 몸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지만 정신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부분도 있고요. 몸을 이동시켰을 때 정신적 상황이나 상태도 변화한다는 점을 잘 감지하지 못하기도 하죠. 제 생각에 만약 정신과 몸의 싱크가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이주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아마 종교일 겁니다. 그 어떤 형태라도 말이죠. 그래서 저는 꼭 그런 상황을 작품 소재로 다뤄보고 싶어요.





양지리, 피그먼트프린트, 스테인리스 스탠드, 가변 크기, 15×20cm, 2017. 사진 김재범





Babara, 피그먼트프린트, 물, 21×30cm, 2021, ‘for gott en’ 시리즈. Photo by Robert Beske

개인적으로 이번에 선보인 ‘큐빗 투 아담’이란 작품을 넋 놓고 봤습니다. 그 경험이 계기가 되어 이렇게 또 만나뵙게 됐고요. 작가님은 그간 이주, 이동, 공동체 등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는 ‘토지’를 통해 이를 풀어내셨죠. 설명을 먼저 읽은 후 작품을 봤는데, 광산 채굴에서 가상화폐 채굴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주제를 저는 좀 힘겹게 따라갔습니다. 작가님의 언어로 풀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결국 땅도 또 하나의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은 인간의 몸에 천착해 이동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 몸이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땅과 그 소유권에 대한 문제에도 집중하게 됐죠. 그런데 이 지구의 땅은 유한한 자원이죠. 시간이 지나 인간이 기술로 또 다른 차원을 열면서 ‘가상공간’에 새로운 땅이 생겨났고, 토지를 소유한다는 개념 역시 가상의 공간으로 이전하게 됐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가상공간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곳인데 유한한 자원을 소유하듯 그곳의 자원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되풀이되죠. 저는 이 부분에서 ‘과연 이렇게 소비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우리가 지금 가상공간을 두고 이야기하는 건 ‘데이터’죠. 그런데 결국 데이터도 물질세계의 산물 아닐까요? 과연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걸까요? 어느 날 지구가 폭발한다면 그 자원 역시 소실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삶의 전환점을 맞았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사용하고 또 상용할지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어딘가를 집으로 삼고, 다양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또 노동하며 그곳에 뿌리내리는 것. 결국 저는 작가님이 그간 선보인 작품을 통해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시고자 한 것에 대해 들려주세요.
제게 가장 큰 관심사를 꼽는다면 아마 ‘사람’일 거예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 정주하지 않고 이동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점 등을 다루는데,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인간의 시선도 그렇지만, 이 땅을 구성하는 비인간의 시각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칠레 사막에 ‘회전초’라는 식물이 있어요. 여러 군집이 모여서 뿌리 없이 바람에 이리저리 실려 다니며 씨를 뿌리고, 그러다 땅의 환경이 맞으면 정착하기도 하는 식물이죠. 저는 이게 꼭 어떤 힘이나 이유로 인해 자신의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식물을 통해 밀려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죠. 참고로 저는 궁금한 걸 잘 못 참는 성격이에요. 꼭 직접 확인해야 하죠.
처음 작업의 실마리는 어떻게 잡는지, 또 이를 어떻게 발전시키는지 같은 메커니즘도 굉장히 궁금해지네요.
무모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저는 직관을 믿는 편이에요. 연상과 상상에 많은 것을 의존하죠.(웃음) 작업은 이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현장에서 리서치를 하는 편이에요. 많이 보고 직접 경험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 비해 어떤 장면이나 현상에서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드네요. 물론 작업이나 리서치에 대해서는 어젠다와 스케줄이 있지만, 변수를 만나기도 해요.
그렇다면 ‘큐빗 투 아담’은 어떤 질문에서 비롯한 걸까요?
결국은 ‘몸’이었을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면서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우리 ‘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계속 던졌어요. 작품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인 ‘미라’가 대표적일 수 있겠네요. 처음 칠레의 광산에서 발견한 미라는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였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된 미라였기 때문에 굉장한 소유권 분쟁에 시달렸죠. 지역 광산권을 임대한 관리인, 땅 주인, 그 미라를 사서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한 JP모건을 거쳐 칠레 정부까지. 아직도 미국과 칠레 사이에서 미라는 큰 분쟁거리예요. 2월 26일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번 전시와 연계한 퍼포먼스 작품을 하나 선보였는데, 저는 거기서 가상으로나마 그 미라의 몸을 해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라의 부분부분을 NFT로 만들어 땅에 관한 관람객의 사연과 맞바꿨죠. 결국 잘 보존된 하나의 몸이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 같았거든요. 조각난 미라의 몸은 여전히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치 있을까요? 그래도 누군가의 사연으로 값을 치렀으니 그에 대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슈퍼포지션, 디지털아트센터 타이페이, 전시 전경, 2021. Photo by I-Hsuen Chen





Re Move, 베를린 그림 미술관 전시 전경, 2016. Photo by Torben Höke

작업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지금 시점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죠. 1977년 한국에서 태어난 한 사람의 시각과 언어로 풀 수 있는 이야기인지가 중요해요. 과거의 사건을 다루더라도 1977년생 작가 최찬숙의 시점으로 어떻게 특별하게 엮을 수 있을지 꼭 자문하죠. 그 작품이 전시장에 들어갈 땐 관람객의 자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전시 공간도 무척 중요하죠. 공간에 맞춰, 관람객의 시선에 맞춰 자꾸만 일이 커지기도 하는 문제 아닌 문제도 있네요.(웃음)
사진, 영상, 설치까지 두루 활용해 작업하십니다. 이렇게 사용하는 예술 언어 간 차이가 있나요? 또 ‘미디어’로서 이를 어떻게 한데 엮는지도 궁금합니다.
조금 전에 언급했듯이 저는 호기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에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다양한 예술 언어를 구축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많은 관람객이 이렇듯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 설치 작품을 보면서 마치 오케스트라 같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사실 저는 매우 다른 시점으로 접근해요. 하나의 악보를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완전히 다른 문법을 가진 매체를 독립적으로 다뤄야 하고, 이를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제 작업은 대체로 실험적일 수밖에 없죠. 작가의 역할이 많은 매체가 어우러진 작품을 하나로 묶는 연결 고리인 셈이에요. 소통 가능한 통로이자 언어로 만들어내는 것이 제가 제 작업에서 맡은 역할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혹시 계획했으나 진행하지 못한 프로젝트, 혹은 중간에 그만둔 프로젝트가 있나요? 어떤 아이디어가 있었는지, 또 그걸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Re-Move’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으로 이주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일본, 양지리 등에서. 그중 일본 위안부에 대한 작업도 진행하려 했는데, 그분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풀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죠. 어떻게 보면 위안부 이후의 삶을 바라보려 했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분들을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분들의 사회적 위상이나 역할이 너무 분명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그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다른 방식으로 우회해도 결국 이야기의 끝은 같았어요.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예술을 잘 이해하고 또 즐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저도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해왔어요. ‘예술은 무엇일까?’, ‘이 예술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나?’ 같은. 국가나 정부가 왜 예술가를 공적으로 지원해야 할까요? 자본주의사회에선 우리를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자영업자로 여기잖아요. 대부분의 예술가는 사회에 대한 애정 결핍이 있어요. 이해와 인정을 받고 싶어 하죠. 저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저는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질문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균열을 내는 방법이죠. 감각의 균열일 수도, 이성적으로 인지 가능한 것이나 상황에 대한 균열일 수도 있죠. 다시 말해 감각과 인지의 세계에 내는 균열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거나 실체가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 사회가 이러한 예술가의 역할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모든 예술가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고하고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주면 어떨까요?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이현정(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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