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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9 FEATURES

에디터의 취향 - 2019년 가을

  • 2019-09-04

이 황망한 계절에 떠오르는 누군가. 가을로 대변되는 어떤 남자에 대한 단상.



상실을 위로하는 목소리, 이문세
자연이라곤 자투리땅에 조성한 관상용밖에 없는 삭막한 서울에서, 가을은 단풍보다 그의 노래를 타고 온다. 미로 같은 도심을 헤매는 일상의 도중, 택시를 탔을 때, 혹은 늦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식당 문을 열었을 때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노래가 들린다면 가을이 온 것이다. 그의 읊조리듯 툭툭 터지는 음색은 녹음도 단풍으로 만들고, 푸른 하늘도 노을로 변화시킨다. 또렷하지만 부드럽고, 차분하지만 애절한 목소리다. 그런 생각이 든 건 이영훈과 함께한 3집 이후부터다. 그들이 함께한 모든 노래를 사랑하지만 이 계절엔 역시 ‘소녀’가 좋다. 무언가와 헤어지는 계절에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잔잔한 슬픔은 가을 그 자체다. 늦은 새벽 골목 깊숙이 자리한 오래된 LP 바에서 맥주 한잔과 소녀 한 곡이면 가을을 맞이할 수 있다. 꽤나 덤덤하게 이 계절을 보낼 수 있다. 에디터 조재국




Fall for Chester Bennington
때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어느 가을 혹은 늦가을, 이따금 내 앞에 나타나 절절하게 부르짖던 남자가 있었다. 록 밴드 린킨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의 이야기다(린킨파크는 2003년 10월 29일, 2007년 11월 30일, 2011년 9월 8일 총 세 번 내한 공연했다. 왜 하필 가을이었을까?). 2000년 전후 전 세계 음악 신을 뒤흔든 아이콘 린킨파크는 학창 시절 나의 감수성에 상당 부분 기여한 뮤지션이다. 저항적 시대정신을 무장했다면 촌스러움도 조금쯤은 무마되던 록 밴드 신에서 린킨파크가 보여준 완전한 멋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멤버 전원이 정비복으로 맞춰 입고 사정없이 퍼붓는 래핑과 턴테이블 믹싱으로 꾸민 무대는 앙숙 같던 힙합 팬과 록 마니아를 대동단결하게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체스터 베닝턴이 있었다. 그의 보컬을 들을 때면 늘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시원하게 내리꽂는 쨍쨍한 목소리 뒤엔 늘 언제 덮칠지 모르는 검은 먹구름, 혹은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았다. 어떨 땐 맑은 하늘에 번쩍 스치는 천둥번개 같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내가 가을이란 계절을 떠올릴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체스터 베닝턴은 2017년, 가을이 미처 다가오기 전 마흔한 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해 가을은 유독 쓸쓸하던 기억이 난다. 에디터 전희란




憧憬
바스락거리는 낙엽 더미를 헤치고 걸어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맘때면 휘날리는 코트가 무척 잘 어울리는 세르주 갱스부르가 떠오른다. 그를 알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초지일관 황홀하게 무르익은 가을과 꼭 닮아 있다. 그는 본 투 비 파리지앵으로 싱어송라이터, 시인, 피아니스트, 화가 등 8개의 직업을 가진 다재다능한 사람이지만, 내 시선은 온통 그의 스타일에 머물렀다. 발등을 살짝 덮는 길이의 부츠컷과 과감하게 풀어헤친 셔츠 앞섶, 재킷 위로 꺼낸 칼라 등을 보고 있으면 그의 패션 센스에 혀를 내두를 정도. 하지만 가장 그다운 스타일은 역시 트렌치코트나 발마칸, 더플코트를 입었을 때. 화려한 패턴이나 장식을 배제한 간결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아우터를 입은 그의 모습은 시크하고 멋스러워 보인다. 이러니 동경하지 않을 수가! 심지어 생 로랑 수장 안토니 바카렐로는 2020년 S/S 컬렉션에서 세르주 갱스부르에게 영감을 받은 룩을 선보였다. 화이트 슈트와 레이스업 슈즈, 자연스럽게 풀어헤친 셔츠, 타이를 맨 슬릭한 블랙 슈트는 그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 뇌리에 선연한 비주얼을 남긴 그를 위해 오늘도 존경의 마음을 한사코 담아본다. 에디터 현국선




선망의 남자, 폴 뉴먼
선선한 바람과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타고 가을이 온다. 마침내 남자의 옷차림이 가장 흥미로워지는 계절이다. 새로운 유행도 중요하지만, 이맘때면 클래식한 복장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스티브 매퀸의 해링턴 재킷, 세르주 갱스부르의 트렌치코트처럼 언제 봐도 영감을 주는 이들의 모습처럼! 말쑥한 슈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번 시즌에는 폴 뉴먼이 즐겨 입은 슈트와 블레이저 차림이 남성에게 좋은 지침이 될 듯하다. 영화 <하퍼>에서 입은 다크 브라운 슈트와 브라운 실크 스키니 타이의 조합,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코듀로이재킷을 입고 등장한 모습 등이 바로 그것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한 그의 가을 옷차림은 스크린 밖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버튼다운 셔츠에 브이넥 니트 스웨터를 겹쳐 입고, 코듀로이 팬츠와 스니커즈를 매치하거나 코듀로이 재킷에 셔츠나 티셔츠를 받쳐 입는 식이다. 이렇듯 수수한 옷차림은 그의 특출한 외모를 좀 더 담백하고 겸손하게 중화하는 느낌을 주지만, 6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근사한 옷차림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참고로, 이번 F/W 시즌 셀린느와 아미 등 레트로 무드를 접목한 컬렉션에서 선보인 건 클럽(gun club) 체크 블레이저는 동시대적 폴 뉴먼 스타일을 해석하고 싶은 이에게 좋은 아이템이 되어줄 것이다.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친 것은 물론 자선 활동에도 앞장선 폴 뉴먼. 올가을, 그의 아름다운 인생과 스타일을 소환해보는 건 어떨까. 에디터 정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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