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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7 FEATURE

휴머니티를 증명하다

  • 2017-11-08

2004년 광주비엔날레 초청 작가로 한국을 방문한 엘 아나추이가 바라캇 서울(11월 26일까지)에서 첫 국내 개인전을 열었다. 역사를 소환하는 작업 방식으로 전 세계인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 엘 아나추이는 이번 신작을 통해 한국의 관람객에게 재차 강조한다.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예술을 분류해 작품을 감상하지 말고, 서로 다른 관계와 관점의 조합으로 색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열린 예술의 지평을 상상하라”고.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퐁피두 센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드 영 미술관, 워싱턴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뒤셀도르프 쿤스트팔라스트 박물관, 도쿄 세타가야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기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1990년·2007년·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2012년 파리 트리엔날레 등 다양한 국제 전시 행사에서 꾸준히 소개해온 작가.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까지 수상한 작가. 바로 엘 아나추이(El Anatsui)다. 그의 이름이 혹여 생소하거든 작가의 얼굴 대신 영국의 왕립미술원(Royal Academy)이나 베를린 구국립미술관을 장식한 거대한 설치 작품을 떠올려보자. 그래도 연상되는 것이 없다면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병뚜껑과 철사를 이어 만든 5m 높이의 화려한 대형 장막을, 그리고 누군가가 그 작품에 덧댄 ‘클림트의 키스의 환생’이라는 비유를 힌트 삼는다면 엘 아나추이의 태피스트리 작품이 당신의 머릿속에 실제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다.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조각가로 아프리카 가나와 서구권, 양자의 시각 전통과 동시대적 삶에 대한 보편적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엘 아나추이는 조각에 대한 전통적 관습과 정의를 거부하는 예술적 실험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다양한 정치적·역사적 입장을 표방해온 사회 참여적 예술가다. 그는 이어지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아프리카 출신으로 작가를 구분 짓던 기존의 예술 분류 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폴로지(topology)의 개념을 제안하는데, 공간 속 물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배치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확장한다는 개념의 토폴로지는 엘 아나추이의 작업에서 중요한 키워드다. 서구 열강에 의한 식민 시대, 반강제적 무역협정에 따라 수입된 술병 뚜껑을 모아 제작하는 그의 대표작인 태피스트리 신작과 6점의 판화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 오프닝을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만났다. 문명의 허물, 일상의 증거, 자국의 전통 등을 절묘하게 버무려 새로운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엘 아나추이의 작업 이야기, 그리고 그가 말하는 현대미술의 역할.




1 엘 아나추이의 ‘Ozone Layer’(2010)가 베를린 구국립미술관을 장식하고 있다.
2 아프리카인들이 사용하는 트레이에서 모티브를 얻은 판화 신작 ‘Cadmium-Vermillion Eclipse’(2016).

우선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축하드립니다. 2004년에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이번 서울 방문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약 3박4일 일정의 짧은 방문이라고요. 광주비엔날레에 초청되었을 때는 광주에만 머물렀어요. 서울은 이번이 처음인데 도시 분위기가 서로 많이 다르네요. 짧은 일정이지만 전시 오프닝 후에는 미술관도 둘러볼 생각입니다.

어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관용의 토폴로지’라는 이번 개인전 타이틀이 매우 맘에 든다고 했습니다. ‘연결과 관계에 의해 변형되는 공간과 대상’을 지칭하는 용어 토폴로지는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 아닌데, 이번 전시와 토폴로지라는 개념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나요? 토폴로지는 출신 지역별로 작가를 구분하는 예술 분류 체계를 벗어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예술에서 1세계, 2세계, 3세계 등의 구분이 굳이 왜 필요할까요? 예술은 예술일 뿐인데. 뭔가를 구분 짓고 명확히 편을 가르고 그것을 확고히 하는 것보다, 예술 안에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언제든 그 형태와 의미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관람객에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처럼 당신의 작품에는 정해진 것,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이고 접히고 굽힐 수 있는 재료가 많이 등장합니다. 철사로 이은 병뚜껑이나 흙으로 만든 트레이 등이 그렇죠. 이런 것 또한 모두 토폴로지의 일부겠죠?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두 가지 모습이 제 작품에 있습니다. 그런 것 모두 토폴로지라고 볼 수 있죠.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프린트 작품도 보시면 초기에 작업한 나무 접시와 딱딱한 병뚜껑을 압축하기 위해 바닥에 깔았던 목판을 차용했어요. 목판 위에서 수천 개의 병뚜껑을 누르고 구멍을 뚫다 보니 목판에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의 흔적이 쌓여 있습니다. 병뚜껑 작업이 목판에 흔적을 남기고, 다시 목판을 모티브로 새로운 작업을 하고, 이러한 일련의 작업 과정이 모두 토폴로지라는 개념 안에서 설명이 됩니다.

당신의 작품은 결과물도 무척 매력적이지만 그 과정이 더욱 궁금해져요. 우선 제 작업 방식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전에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 작업을 시작하면 항상 실패해요.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이 ‘주제 없이 시작하자’입니다. 주제에 집착하기보다는 매체(media)나 공정(process)을 가지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시도합니다. 그러다 보면 뭔가가 만들어지죠. 그것이 나중에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요. 쉽게 말하면 매체와 공정으로 움직이는 예술가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두 가지가 저를 작품으로 이끌어주는 셈이죠.

한국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아프리카 작가를 소개하는 일은 드문 편입니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워낙 멀기 때문이겠죠.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당신이 태어난 가나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당신의 작품 속에 어떤 의미로 형상화되어 있는지요. 식민 지배를 받은 제 배경 때문인지 세계 무대에서 소개할 때면 늘 출신 지역을 언급합니다. 그건 한국 작가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예술은 예술일 뿐, 출신 국가로 구별하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모든 국가에 각각의 문화가 문화 그 자체로 존재하죠. 물론 식민지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구 문화에 관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진짜 내 문화는 무엇인가’에 남들보다 좀 더 몰두한 것 같긴 합니다.

과거 인터뷰에 작가였던 부친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던데 그분의 영향이 예술가가 되는 데 크게 작용했나요?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의 영향도 컸죠. 두 분 모두 예술가였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분이었으니 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태생적으로 아티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 아닐까요? 부모님이 저에게 어떤 특별한 교육을 시킨 건 없습니다. 사실 전 목사님인 삼촌과 같이 살았어요. 물리적으로도 부모님과 제가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죠. 예술적 유전자만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한 것도 어쩌면 그런 운명 때문이겠군요. 어릴 때는 음악, 미술 등 예술 과목을 무척 좋아했어요. 만약 제가 아티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뮤지션이 됐을지 모를 만큼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미술은 접할 기회가 많아도 음악의 기초를 배울 만한 곳은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조금씩 독학으로 악기를 다룰 줄 알게 되었고 대학에서는 밴드에 들어가 트럼펫과 드럼 연주도 했습니다.

미술을 공부하던 1960년대 당시, 아프리카에서 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어땠나요? 저는 미술관, 갤러리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어요. 사실 아티스트로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몰랐어요. 주변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정한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 컸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시 제가 살고 있던 지역의 부모 역시 자식이 의학, 법학, 공학을 전공하길 바라지 미술을 공부하라고 하진 않았어요. 저도 대학 입학 통지서를 받고 삼촌에게 합격했다고 말씀드리니 무척 기뻐하면서 “전공이 뭐냐” 하시길래 “순수미술학과”라고 하니 순간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삼촌도 주변에서 예술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못 봤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셨을까요? 아마도요. 그 후 방학에 삼촌 댁에 놀러 갈 때마다 제가 작업한 도자기, 직물 등을 보여드렸어요.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너는 왠지 교수가 될 것 같구나”라고 말씀하셨죠. 근데 너무 신기하죠? 졸업하자마자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 지금껏 나이지리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가나나 나이지리아도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같은 학교의 이공계 교수들이 자신의 아들딸에게 미술 전공을 권할 정도니까요. 예술가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로 바뀌었죠.

콰메 은크루마 과학기술대학교에서 서양 고전 회화를 전공했고, 본인만의 기법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셨습니다. 나무, 돌, 흙 같은 주변의 다양한 소재와 매체를 실험해왔는데 회화로 시작해 설치미술, 조각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 계기가 뭔가요? 식민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아프리카 본토의 문화 대신 서양의 문화를 배웠죠. 그런데 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공부하면서 아프리카 고유의 기호나 심벌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배운 교육과정에 뭔가 빠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매체나 공정을 통해 고유의 환경이나 문화, 전통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해왔고 그것이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한창 활동하던 197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도 실험적 작업이 시도된 시기입니다. 관습적 미술 교육에 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혹시 그런 세계적 흐름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생각보다는 ‘아티스트로서 가야 할 길은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갈 길을 스스로 찾는 과정에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 사항 같은 게 있었나요? 작가적 이상이랄까? 저는 ‘예술이란 남과 똑같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존경하는 아티스트는 많지만 굳이 그들과 비슷하게 작업하기 싫었어요. 일반적으로 미술대학에서는 여러 가지 공정을 배웁니다. 고전적 공정부터 서양적 공정까지. 저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을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습득해야 하지만 그대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졸업 후 학교에서 배운 매체와 공정은 다 잊고 나만의 매체, 나만의 공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현재 엘 아나추이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바라캇 서울에서는 ‘Skylines?’(2008) 등 그의 대표적인 병뚜껑 태피스트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당신을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은 버려진 수백, 수천개의 위스키 병뚜껑을 사용한 거대한 금속 태피스트리입니다. 이 작업 또한 그런 작가적 철학의 연장선에 있겠죠? 저는 조각가이니만큼 늘 소재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살던 거리에는 늘 병뚜껑이 많이 버려졌죠. 그것을 작업실에 가져와 이걸로 어떻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나갈까 고민하다 병뚜껑이라는 소재가 사람의 체온이 닿고 만지고 사용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하나하나에 역사가,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병뚜껑이라는 소재 자체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병뚜껑은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버린 것입니다. 당신의 작업실이 있는 나이지리아 느수카(Nsukka) 지역에 위치한 마을 주민들이 그것을 하나하나 압축하고 구멍을 뚫어 철사와 구리선으로 이어 붙여서 금속 태피스트리를 완성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태피스트리 작업은 아프리카인 개인의 이야기이자 지역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이용한 병뚜껑은 사실 식민 시대에 불합리하고 반강제적인 무역협정에 따라 수입된 제품의 흔적입니다. 쓰고 버린 병뚜껑은 이를 소비한 개인의 기억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이 아프리카에 술을 공급하기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는 집단의 기억이기도 해요.

이번 전시에서는 병뚜껑 태피스트리 외에 마드리드의 팩텀 아르테 기관과 협업한 프린트 신작을 선보입니다. 판화지에 다른 종이를 붙이는 신콜레(chine-collé) 기법을 사용했는데 금박 위 잉크 작업인 ‘Untitled(from the Circular Series)’가 특히 눈에 띕니다. 동그란 모양이 달을 연상시켜요. 사실 병뚜껑 같은 금속 재료보다 먼저 저에게 영감을 준 것은 나무로 만든 둥근 트레이예요. 아프리카에는 둥근 나무 쟁반으로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는 풍습이 있죠. 병뚜껑 작업도 그렇지만 이 트레이 판화 작업도 사람들이 어울려 먹고 마시고 나누는 연결 관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처럼 마을 주민과 작품을 엮어내는 작업은 제가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이기도 해요.


흔히 예술의 시작은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예술이 결핍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종의 배설구라는 의미인데, 당신의 경우는 오히려 매체의 연구나 탐구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이죠. 제가 보는 것이 맞나요? 제 작업이 결핍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건 매체와 공정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목재를 가지고 작업할 때 과연 나무를 파서 조각하는 방법밖에 없는지 생각해보는 겁니다. 모양을 만들 때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이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매체는 물, 공기까지 포함합니다. 그렇게 확장해나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소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공정에 대해 고민할 때는 ‘무엇이 가능한가?’를 묻습니다. 가능성은 무한대죠. 학교에서 배운 대로, 통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해온 방식대로는 하지 않아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작업합니다.

당신의 작품은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문제와 사회 또는 국가 간 관계 모두를 담고 있습니다. 그 두 부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작업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저는 장난감을 따로 산 적이 없어요. 늘 주변에 있는 것을 가지고 놀았죠. 저는 예술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play’의 개념이랄까요. 주변에 있는 것, 주변 환경에서 창조한 것이라야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고 그것이 관람객과 작가를 연결해준다고 믿어요. 그래야 누구에게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죠.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는 것은 장르를 넘어 예술의 가장 기본적 역할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현대미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이 제 작품을 보고 편지를 보내옵니다. “감동을 받았다”, “작품을 보니 눈물이 났다” 등등. 그런 걸 보면 예술이라는 건 모든 나라에서 통하는 보편적 언어이자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하나로 묶어주는 도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술에는 어떤 경계도 없어요.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편성이죠. 이렇듯 예술은 이 세상을 하나 되게 하고, 이 세상에 휴머니티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모로코의 마라케시 비엔날레(Marrakech Biennale)에 선보인 ‘Kindred’(2016).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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