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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1

김윤철의 정체성

끊임없이 면밀하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조정하며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작가 김윤철. 유럽에서 오랜 활동을 마치고 이제 한국을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

김윤철 설치, 드로잉, 사운드, 텍스트와 기타 미디어를 통해 방대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다. 수학, 과학, 기술, 음악, 철학, 시, 우주론을 혼합해 물질로 얽히고설킨 우주의 비밀을 예술적으로 탐닉한다. 2009년부터 한국, 독일, 중국,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영국, 브라질, 호주, 캐나다, 에스토니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크고 작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여왔다. 올해 중국 베이징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또 한번 개인적 도약을 앞두고 있다.

‘김윤철’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혹자는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떠올릴 수도,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김윤철 작가는 대학에서 전자음악을 공부하던 중 현대미술에 매료되어 독일 유학 중 진로를 틀었다. 이후 순수 과학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선보인 작업이 조명을 받으며 ‘과학자 같은 예술가’로 우리에게 눈도장을 찍었는데,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알린 것은 바로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나선〉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보다 국가를 초월한 자유로운 예술을 하고 싶었다는 김윤철. 그는 이를 통해 생과 사의 무한한 순환을 표현하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물질세계와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흐르는 에너지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그를 ‘과학과 밀접한 예술가’로 인식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가 과학을 탐구하고 그 방법론을 차용하는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또 그의 작업에서 읽을 수 있는 맥락은 그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해외를 돌고 돌아 이제 한국을 기반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그에게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두루 물었다. 이 긴 글 끝에 다다르면 그의 작업에서 과감히 ‘과학’이라는 단어는 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Chroma V, Acrylic, aluminum, polymer, LED, motor, microcontroller, 800×225×235cm, 2022, Exhibition View of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2022. Photo by Roman März. Courtesy of the Artist.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 베이징 798 예술구 큐브 미술관에서 오랜만에 대규모 개인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원래 공장이던 곳을 레노베이션해 만든 컨템퍼러리 아트 스페이스입니다. 비엔날레 이후 그룹전 위주로 선보이다가 올해 첫 번째 개인전을 여는 아티스트로 선정됐어요. 스튜디오 식구 모두와 함께 답사를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공간이 너무 커서 그간 만든 작품을 거의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규모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3년여간 중국에서 순회 전시를 하게 될 듯합니다. 전시장에 따라 선보이는 작품이 조금 달라질 수는 있어요. 제 작업의 특성상 나사를 하나하나 조립해 설치하다 보니 운송과 설치에 전문 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품 하나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곳이다 보니 모두가 긴장한 채 준비 중이에요. 전시 제목으로는 ‘양극의 타원: 내면의 입자와 흐름’을 생각하고 있어요.
전시 제목이 흥미롭네요. 타원의 양극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대학을 졸업할 때 우연히 소설가 박상륭 선생의 〈죽음의 한 연구〉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땐 너무 어려워서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데 중간중간 내용이 와 닿아서 그것으로 졸업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만든 음악 제목이 ‘양극을 갖는 타원’이었어요. 지금 이 시점에 왜 다시 그 제목이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이제야 제가 그 책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박상륭 선생이 얘기한 골자는 인간에게는 몸의 세계가 있고, 여기서 나아가면 말의 세계가 있고, 그다음에는 마음의 세계로 접어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순환의 과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이 선행되어야 해요. 우리가 밥을 해 먹기 위해서는 쌀이 먼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에너지원으로 바뀌는 거죠. 금속도 마찬가지예요. 땅에서 광물을 캐내 그것을 완전히 녹이는 것을 하나의 죽음으로 본다면, 금이나 다이아몬드 역시 거기서 재탄생하는 거죠. 계절도 그래요. 봄이 죽어야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야 겨울이 오는 것 아니겠어요? 삶과 죽음은 이렇게 타원의 꼭짓점처럼 순환하는 겁니다. 이번 전시에서 이를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어요.
정말 인문학적인 접근이군요! 세상을 이루는 자연의 영원한 법칙에 대해 고민이 많은 듯합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 많은 인터뷰에서 제 예술을 통해 과학과 예술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 노력한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제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방법론을 과학에서 많이 차용했을 뿐이지, 안에 담는 내용은 우리가 사는 세상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것입니다.





Chroma VII, Polymer, aluminum, motor, microcontroller, LED, polycarbonate, acrylic, 135×235×145cm, 2023. Courtesy of the Artist.
아래 2015년 김윤철 작가의 실험실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오랜만에 여는 개인전인데 어떤 신작을 출품하셨나요? ‘지층(Strata)’이라는 작품입니다. 나무에서 추출한 셀룰로스 입자로 만든 작품이에요. 일명 ‘구조색’이라고 하는데, 분자 구조가 빛을 다르게 반사해서 나오는 색이죠. 수천 개의 작은 유리관이 큰 조형 작품을 이루게 됩니다.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기도 하는 물질이죠.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라 일단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설치물이 될 것 같네요.
하나의 신작을 구상해 만들어내기까지, 즉 시작부터 완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나요? 실험을 진행해 만드는 작품은 최소 1년, 많게는 2~3년도 걸립니다. 이번 신작 역시 아이디어는 몇 년 전부터 있었어요. 그런데 물질 자체를 일반인인 제가 구하긴 쉽지 않더라고요. 순수한 재료를 구하고, 그것으로 여러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 재료는 특수한 과학 연구소에서 구할 수 있어요. 위험 물질은 아니지만, 사용 목적을 일일이 밝히고 그걸 증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죠. 또 실험할 때 필요한 기술과 특수 기계도 있어서, 그 모든 걸 구비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제가 과학 커뮤니티에 정식으로 등재된 사람은 아니다 보니 접근할 수 있는 과학 자료도 한계가 있어요. 수백 번 실험을 거쳐 완성한 작품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들고,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테크놀로지 시대가 도래하면서 예술계에서도 이를 어떻게 이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참 많이 했어요. 예술과 과학의 어원이 같다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이 언급됐죠. 그럼에도 작가님처럼 두 분야에서 모두 인정받는전문가는 드뭅니다. 대학 시절 협업으로 참여한 ‘광주비엔날레’가 터닝 포인트였어요. 그 당시 실험 음악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는데,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백남준 선생의 작품을 맞닥뜨린 순간 ‘아, 내가 하고자 한 것이 이미 완성된 작품으로 세상에 나와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며 많은 생각이 스쳤죠. 집에 가는 길에 여러 고민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미술 전시를 굉장히 많이 보러 다녔어요.





왼쪽 Argos—the Swollen Suns, Geiger-Müller tube, Glass, aluminum, microcontroller, 250×200×390cm, 2022, Exhibition View of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2022. Photo by Roman März. Courtesy of the Artist.
오른쪽 La Poussière de Soleils, LPDS solution, acrylic, aluminum, motor, microcontroller, 150×100×260cm, 2022, Exhibition View of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2022. Photo by Roman März. Courtesy of the Artist.

그때도 여전히 전자음악을 하셨습니다. 독일에서 유학할 때 오디오 비주얼 미디어로 전향하셨죠. 다양한 실험적 작업을 전개하던 때였어요. 문학과 시각예술 전반이 제 작업에 녹아 있었죠. 테크놀로지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요. 사람들이 그랬어요. ‘이미 멀티미디어를 다루는데 꼭 작곡할 필요가 있을까?’ 그 말을 듣고 보니 과감하게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그런데 제 작업은 항상 시간을 다루는 거였어요.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고 하잖아요. 미디어와 멀티미디어 작업도 모두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거예요. 이미 익숙했기 때문에 작업 스타일의 변환이 어렵진 않았어요. 지금도 시간성을 내포한 작업을 전개하죠.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수백 번, 수천 번에 이르는 실험 역시 작업의 일환이니까요.
이후 독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셨습니다. 그간 해외를 기반으로 작업한 작가들, 그리고 인정받은 작가들을 떠올려보면 한국 혹은 개인의 정체성에서 출발한 작업과 그것의 확장으로 주목받아온 경향이 좀 짙은 것 같아요. 정체성은 요즘 많이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해외에 거주할 때는 어디서 왔든, 지금 어디에 살든, 무엇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관없다고 여겼어요. 오히려 한국에 돌아와 생각이 바뀌었죠. 20~30대에는 서양 문화와 예술사에 대해 궁금해서 탐닉했다면, 한국에 오니 막상 이곳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뿌리가 뭐가 중요한가 싶었어요. 그런데 제 주변 자연과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 작업 방식 등 여러모로 하나둘 알아가다 보니 지금은 그 정체성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차학경 선생의 〈딕테〉에도 나오잖아요. 문화는 받아쓰기가 가능하지만, 저 속 깊은 데 있는 언어는 결코 쉽게 꺼내 쓸 수 없다는 거죠. 비록 독일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며 어울려도 결국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낯섦’을 느끼는 거죠. 제가 버리고 싶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게 아닌 것이 바로 ‘정체성’인 것 같아요. 작품에 완연하게 드러내지 않더라도 매일 보고 듣는 북한산, 한국 문학, 음악 등이 은연중에 뿜어 나오겠죠.
작가님은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마주한 편견의 순간이 있었나요?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가장 먼저 생각나네요. 아무래도 제가 동양인이다 보니 어떤 작품을 가지고 가든 주변에서 그건 무슨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냐, 혹은 종교적 의미를 담은 것이냐 같은 질문을 많이 했어요. 정작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저도 그들에 대한 어떤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례로 한국 동료와 제가 ‘종소리’를 가지고 작업한 것이 있는데, 독일 교수님이 어떤 종소리를 차용한 것인지 묻더군요. 유럽에서 종소리는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종소리가 다르고, 하루 중 언제 울리는 소리인지에 따라 또 다르죠. 갑자기 많은 생각이 스치며 문화의 다름에서 오는 수용과 표현의 한계를 생각했어요. 제가 아는 것에 생각이 그친다는 걸 그때 체감했죠. 지금까지 작가로 살면서 많이 힘이 된 말이 있어요. 백남준 선생이 “비디오 아트는 가벼운 배낭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그전에 어떠한 문화적 맥락도 형성하지 않은 ‘새로운 매체’니 무엇이 되든 가볍다는 말이에요. 이미 성행한 장르와 매체는 문화적 맥락이 있으니 무거운 배낭이라는 거죠.





Impurse, Microfluid dynamics installation, Non-pulsating pump, solenoid valve, microcontroller, acrylic, aluminum, 230×200cm, 2018.

작가님은 자신만의 배낭을 찾으셨나요? 스스로 1.5세대라고 생각해요. 백남준 선생이 고민한 것들이 제 고민과 맞닿은 지점이 분명히 있거든요. 요즘 젊은 작가는 애초에 스마트폰과 함께 시작하고, 사고방식 역시 거기에 맞춰져 있잖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다루고 싶은 매체를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결국 음악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항상 작곡과 연주를 놓지 않기도 했고, 박상륭 선생의 〈죽음의 한 연구〉를 다시 보며 몸과 말 그리고 마음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잖아요. 지금 저는 완전한 ‘물질’ 그 자체를 다루고 있는데, 그에 반해 음악은 물질적이지 않고, 원형도 없으며, 공기 중에 한순간 흩어진다는 점에서 그가 말한 ‘마음의 세계’에서 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예술가로서 작가님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요? 몇 가지를 꼽아보면 ‘단계’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있고, ‘구조’에서 깨닫는 미학이 있습니다. 또 자연 그대로의 색에도 감동해요. 사실 모두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딱 하나를 꼬집긴 어렵네요. 이번 신작을 예로 들면, 나무에서 추출한 이 분자 물질이 어떻게 이곳 양주 스튜디오로 올 수 있었을까 싶은 거죠. 그 분자의 구조가 가진 탄탄함이 저를 감탄하게 합니다. 그리고 빛에 따라 달라지는 발색 역시 어떤 색이라고 딱 정의할 수 없는 자연의 빛깔이기에 특별하죠.





Impurse(detail), Microfluid dynamics installation, Non-pulsating pump, solenoid valve, microcontroller, acrylic, aluminum, 230×200cm, 2018. Courtesy of the Artist.

스스로 과학자라고 생각하는지, 예술가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이제 지겨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무엇이 예술가를 예술가답게 만든다고 생각하시나요? 매 순간 자유와 싸우는 거 아닐까요? 그 누구도 저에게 작품을 만들 때 수천 개의 플라스크를 사용하라고 지시하지 않았어요. 그냥 한두 개의 큰 덩어리로 만들어도 될 것을 굳이 나누어서 고통의 길을 가는 거죠. 작품을 언제 끝맺을지 정하는 것도 온전히 예술가의 자율적 선택이에요. 그 누구도 질문하지 않을 것을 저는 스스로에게 하게 되죠. 이걸 ‘소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작품이 부르는 거예요. 자유와 속박이 마치 타원의 양극에서 저를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모든 것을 의지로 순환시켜야 하는 게 예술가의 소명인 셈이죠. 결국 고통마저 자유롭게 선택한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대중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예술가도 있지만, ‘예술가의 예술가’ 같은 사람이 있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연구한 박상륭 선생과 백남준 선생 모두 후대 예술가에게 끊임없는 영감과 희망을 주죠.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김윤철 스튜디오(Studio Lucus So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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