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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0

휘트니 비엔날레의 시작과 끝

가장 미국적인 전시로 명성을 쌓아온 휘트니 비엔날레. 2014년 휘트니 비엔날레를 직접 둘러보고 온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를 만나 생생한 관람 후기를 들었다.

왼쪽부터 펜실베이니아 ICA의 차석 큐레이터 앤서니 엘름스, 뉴욕 MoMA의 미디어 & 퍼포먼스 디렉터 스튜어트 코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교수이자 작가인 미셸 그래브너

미국 현대미술의 현재 흐름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점쳐볼 수 있는 휘트니 비엔날레 2014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3월 초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관람한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3명의 외부 큐레이터를 영입했다는 점이다. 펜실베이니아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의 차석 큐레이터 앤서니 엘름스(Anthony Elms), 뉴욕 MoMA의 미디어 & 퍼포먼스 디렉터 스튜어트 코머(Stuart Comer),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교수이자 작가인 미셸 그래브너(Michelle Grabner)가 휘트니 미술관의 2, 3, 4층을 각각 한 층씩 맡아 전시를 선보였다.

각 층별로 스타일이 확연히 달랐는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미셸 그래브너가 큐레이팅을 맡은 4층이었다. 그녀는 시카고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지만, 시카고 출신 아티스트뿐 아니라 여성, 흑인 아티스트 등 소위 마이너리티로 분류되던 비주류 작가의 작품을 대거 소개했다. 이는 최근 해외 현대미술계에서 강세로 떠오른 흑인 아티스트의 활약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화 연구 측면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최근 2~3년 사이 미술계에도 점진적으로 확산되면서 흑인 아티스트들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4층 전시를 보며 이런 현대미술계의 흐름에 대한 평소 생각을 확인할 수 있어 더 깊이 공감했다. 미셸 그래브너는 흑인 아티스트뿐 아니라 여성 추상 작가도 다수 소개했다. 최근 20세기 초기의 추상표현주의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트렌드로 떠올랐는데, 물감뿐 아니라 디지털 테크닉을 활용해 마치 브러시 페인팅처럼 보이게 한 작가도 있었다.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의 작품인 휘트니 미술관. 2015년 미트패킹 지역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다.




1 호주 출신 작가 리키 스왈로가 세라믹으로 만든 조각 작품
Ricky Swallow, Chair Study/Ripple (soot), Patinated bronze, 63.5×22.9×6.4cm, Edition no. 1/1+1 AP, 2013
2 작가 존 메이슨이 과거에 만든 작품은 소재에 대한 활발한 연구 덕분에 새롭게 주목받았다.
John Mason, Blue Figure, Ceramic, 149.9×60.3×60.3cm, 2002

4층 전시에서 발견한 또 다른 특징은 최근 조각의 재료, 물성에 집중하면서 세라믹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 특히 세라믹 조각 작품을 발표한 작가 중 호주 출신의 리키 스왈로(Ricky Swallow)는 꼭 알아두길 권한다. 멀리서 얼핏 볼 땐 골판지에 물감을 묻혀 만든 작품 같았는데 가까이 보니 모두 주물을 떠 만든 것이라 놀라웠다. 팝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은 표현 방식이 매우 우아하면서도 미니멀했지만 동시에 장식적인 면도 강해 요즘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는 작품이다. 일본 작가 구사카 시오(Shio Kusaka)는 생활 도자기 수백 개를 모았는데 하나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워 10m가 넘는 길이로 길게 늘어놓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됐다. 존 메이슨(John Mason)이 선보인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돌이나 알루미늄 같지만 역시 가까이에서 확인하니 세라믹이었다. 1970~1980년대에 만든 작품인데 재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존 메이슨은 물성에 대해 선구안이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 오브제인데 굉장히 거칠게 주무른 그의 작품은 매끄럽고 글로시한 유럽의 장식적 세라믹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3층을 맡은 스튜어트 코머는 아트 아카이빙에 포커스를 맞춰 기록, 저장의 의미를 담은 미니 북, 도큐멘트 등 페이퍼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그와 함께 전시장 곳곳에서 미디어 퍼포먼스를 소개했는데 전체적으로 다소 산만하고 복잡해 아쉬웠다. 그에 비해 2층에서 열린 앤서니 엘름스의 전시는 2015년 휘트니 미술관의 이전을 앞두고,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의 작품인 현재 건물에서 개최하는 마지막 비엔날레라는 점에 주목했다. 내년에 업타운 시대를 마감하고 미트패킹 지역으로 옮겨가는 휘트니 미술관의 공간과 건축적 측면을 주제로 색다른 전시를 보여줬다. 휘트니 미술관을 지은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는 그 당시 ‘맨해튼이라는 지역에서 미술관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가’, ‘미술관 건축이란 무엇인가’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2층 전시에는 20명 남짓의 작가와 그룹 프로젝트 팀이 참여했는데, 그들은 마르셀 브로이어의 첫 질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나름의 답을 보여줬다. 특히 폴란드계 미국 작가 조 레너드(Zoe Leonard)는 2층 전시 공간 한쪽의 빛을 차단하고 작은 구멍을 통해 휘트니 미술관 주변 길거리 풍경이 벽면에 투영되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휘트니 미술관이 쌓아온 역사와 더불어 지역 미술관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조 레너드는 2015년 이전을 앞둔 휘트니 미술관의 주변 거리를 주제로 만든 영상을 공개했다. Zoe Leonard, Installation view 945 Madison Avenue, 2014, lens and darkened room by Zoe Leonard, Whitney Biennial 2014

비엔날레를 관람하고 나서 든 생각은 결과적으로 외부 큐레이터를 영입하는 열린 시도는 긍정적 결과를 낳았으며 미술계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휘트니 비엔날레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전시를 선보이니 볼거리와 담론이 더욱 풍성해졌다. 예전에는 비엔날레라고 하면 일회성 작품 전시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2000년대 이후 미술계의 주도권이 큐레이터가 아닌 마켓으로 넘어가면서, 비엔날레도 소장 가능한 작품 위주로 흐름이 변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미술계 시스템의 순환과 유통 구조가 과도기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영향력 있는 컬렉터가 비엔날레를 방문해 직접 구매 의사를 밝히기도 하고, 커리어가 없던 작가도 컬렉터의 눈에 띈 후 이어 평론계의 주목을 받고 미디어에 등장하는 식으로 순서가 달라졌다. 상업적인 면과는 거리가 먼 전위적 전시도 많았는데 비엔날레도 미술계의 큰 흐름에 부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와 같은 변화를 맞이한 가운데에서도 휘트니 비엔날레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최근 미디어나 평론계에서 주목하는 눈에 띄는 작가를 리서치해보면 휘트니 비엔날레 출신이 많다. 현대미술 시장이 점차 런던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뉴욕은 현대미술계의 중심이고, 뉴욕 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 거론되면 하루아침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뉴욕이 지닌 힘이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뉴욕에서 열리는 유일한 비엔날레고 휘트니 미술관에서 주도하니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하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메인 스트림의 트렌드를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 아트 바젤 등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을 전시 기획에 반영할 때도, 반영하지 않을 때도 나름의 이유와 기준이 생긴다. 알면서 반영하지 않는 것과 몰라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2016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만날 새로운 작가와 그들이 던질 질문을 기대하는 이유다.

About Whitney Biennial
1973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지금의 비엔날레 형태로 자리 잡은 휘트니 비엔날레는 미국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신진 작가를 배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초기에는 미국 시민 작가만 대상으로 했으나 1997년부터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까지 참가 자격을 확대했다. 전위적이고 정치적인 작품을 많이 선보인 시기도 있었으며 미국 현대미술의 현재 흐름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비엔날레라고 할 수 있다.


에디터 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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