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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7

컬렉팅은 열정

아트 컬렉팅에서 돈은 분명 큰 힘이 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주는 안목, 컬렉팅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이 ‘고단하지만 행복한’ 그 길을 걷게 한다. 20년 동안 아트 컬렉팅을 해온 대구 탑여성앤탑성형외과의원 홍원표 대표원장의 컬렉션에서 그런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엔젤 오테로의 ‘Chasing the tear’ 앞에 선 홍원표 대표원장.

대구 대봉동 대로변에 자리한 ‘호박타워’는 모양이나 색깔에서 건물 이름과 전혀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건물 안에 들어서면 그 이유를 금세 이해할 수 있다. 내부 쇼윈도에 가로 130cm, 높이 125cm짜리 노란 호박이 위풍당당하게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대구미술관에 33만 명이 다녀갔다는 전시 [KUSAMA YAYOI, A Dream I Dreamed]의 전시 작품 ‘Great Gigantic Pumpkin’ 중 하나가 홍원표 원장의 컬렉션이 된 데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당시 전시 준비를 위해 대구에 머물던 쿠사마 야요이의 양아들이자 쿠사마 스튜디오의 대표 이사오 다카쿠라와 오타 파인 아츠 관계자를 우연히 소개받은 홍원표 원장은 이들이 일을 마친 저녁이면 매일 대구 일대의 재미있는 곳을 구경시켜주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세계적 작가가 대구에서 대규모 전시를 하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호의를 베푼 것인데, 이것이 일본 스태프에게 큰 감동을 준 모양이었다. 오프닝 전날, 일본 스태프가 홍원표 원장에게 “원하는 작품이 있으면 구해줄 테니 얘기하라”고 제안했다. 몇 번의 고사에도 거듭된 제안에 홍원표 원장은 전시 중인 노란색 호박 조각을 소장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관계자가 그 자리에서 흔쾌히 구입하게 해주겠다고 해 놀랐다고. 이후에도 그들과의 인연은 계속되어 전 세계 어디든 쿠사마 야요이의 대규모 전시가 열리는 곳이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축하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누군가는 좋은 구두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준다고 믿지만, 홍원표 원장은 좋은 작품이 좋은 곳으로 데려가주는 데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도 해준다고 믿는다. 그는 “미술은 자신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라며 아트 컬렉팅이 삶의 큰 에너지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메리 코스의 'Untitled(Black Band)'.
이건용의 '76-1'과 '76-3'.
쿠사마 야요이의 'Great Gigantic Pumpkin'.
병원 건물 10층에 전시된 앨리슨 주커만(Allison Zukerman)의 'The First Royal Portrait'.
코라크릿 아루나논드차이(Korakrit Arunanondchai)의 'Untitled'와 이건용의 '76-2' 작품 사이에 선 홍원표 원장.
병원 건물 9층에 전시된 빌리 차일디시(Billychildish)의 'Self-portrait wearing hat and coat'와 A.R. 펭크(A.R.Penck)의 'World of Eagles VI'.
홍원표 원장의 첫 컬렉션, 이수동의 '겨울사랑'.
박서보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작품이 걸린 주방에서 마주 앉은 홍원표, 사공재희 부부.


컬렉팅을 한 지는 얼마나 됐나?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첫 컬렉션을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지? 25년 전, 갤러리에서 그림을 대여해 집에 걸어두고 수시로 감상했다. 그런데 1년 대여 금액을 따져보니 웬만한 그림 한 점은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마침 병원 주변에 갤러리가 많아 시간이 날 때마다 작품을 구경하러 다녔다. 처음에는 갤러리에 들어가는 게 영 어색했는데, 그것도 몇 번 해보니 극복할 수 있었다. 작은 그림 몇 점을 조금씩 사긴 했지만 큰 그림을 처음 산 건 20년 전이다. 자작나무 숲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이수동 작가의 ‘겨울사랑’ 100호 작품이다. 지금도 병원에 걸려 있다.
20년 동안 컬렉팅하면서 본인만의 기준이나 테마가 생겼을 것 같다. 어떤 작품에 끌리는지? 컬렉팅에 특별한 기준은 없다. 구상, 비구상 혹은 특정 미술 사조에 구애받지 않는다. 개인적 취향이 있기는 하다. 어두운 것보다 밝고 아름다운 색상의 작품을 선호하고, 작은 사이즈보다는 100호 이상의 큰 작품을 구입하는 편이다. 큰 그림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 분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그것에서 오는 감동도 크고 진한 것 같다. 몇 년 전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작품을 해외 옥션에서 낙찰받은 적이 있다. 작품은 참 좋았는데 10호짜리였다. 아내는 좋아했지만 나는 막상 작품을 받고 보니 존재감이 덜 느껴지고 그만큼 감동도 덜한 것 같았다. 그래서 소장한 지 얼마 안 돼 팔아버렸다. 컬렉팅에 나만의 원칙이 있다면,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고 최고라고 인정받는 것을 사려고 노력한다는 거다. 그런 작품은 나중에 팔고 싶을 때도 거래가 쉽게 성사된다.
쿠사마 야요이, 조지 콘도, 데이미언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백남준, 이우환, 박서보, 이건용 등 미술을 잘 모르는 이들도 알 만한 작가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컬렉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또 해외와 국내 작가의 컬렉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20년 가까이 모았으니 적지 않은 편이다. 한 200점? 정확히 세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집과 병원, 부모님, 남동생네 등 곳곳에 작품을 두었다. 해외와 국내 작가 작품 비율은 8:2 정도다. 미술의 중심지인 미국, 유럽, 중국 작가의 작품을 컬렉팅하는 편이다. 한국은 미술 시장 규모가 작아 고점에서 동력이 떨어지는 시점이 오면 가격 변동이 심해 위험 부담이 크다.
소장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식상한 답변이겠지만, 다 좋다. 정말 간절히 원하고, 신중하게 생각해 컬렉팅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구입한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굳이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다. 네 점 정도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 거실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둔, 컬러로 된 ‘다이얼로그(Dialogue)’를 특히 좋아한다. 종종 작품을 비추는 조명만 켜두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한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영감이 떠올랐을까?’ 마치 작품과 대화하듯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시간을 가진다. 몰입감이 깊이 들 때는 흡사 작품이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최근 소장한 작품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스콧 칸(Scott Kahn) 작가의 작품을 구입했다. 아직 갤러리에서 작품을 건네받지는 않았다. 작년 11월 홍콩의 한 경매에서 76세 원로 작가의 작품 한 점이 750만 홍콩달러, 우리 돈으로 약 11억5000만 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 원로 작가가 스콧 칸이다. 2017년만 해도 그의 작품은 미국 소규모 경매에서 한화로 60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홍콩 경매 전까지 그의 작품은 가장 높은 낙찰가가 60만 원이었다. 그런데 불과 4년 만에 1500배나 올랐으니 모두가 경악을 할 수밖에. 그는 현실에 기반한 기억과 경험을 자기만의 감성과 상상력으로 풀어낸 몽환적인 풍경화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초현실주의 작가다. 2019년 서른다섯 나이에 요절한 천재 화가 매튜 왕(Matthew Wong)이 죽기 직전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화가로 스콧 칸을 꼽았다. 아마 이 사건으로 단숨에 세계 미술계가 스콧 칸을 주목하게 된 것 같다. 은둔자처럼 평생 묵묵히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온 노장을 세계적 작가가 호명하는 순간, 비로소 미술계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작년 7월, 글로벌 메이저 갤러리 알민 레쉬(Almine Rech)가 스콧 칸의 개인전을 연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위쪽 조지 콘도와 쿠사마 야요이 작품 앞에 선 홍원표·사공재희 부부.
아래쪽 이우환의 ‘다이얼로그’, 백남준의 ‘비디오 첼로’, 코헤이 나와의 소품이 놓인 거실.
조지 콘도, 샘 길리언, 다니엘 리히터(정면 작품, PERLENMULL) 등의 작품이 걸린 거실 복도.

망설이다가 안타깝게 놓쳐 후회되는 작품이 있는지? 향후 꼭 소장해야겠다 싶은 작가의 작품이 있다면? 요즘 컬렉터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의 작품이다. 지금처럼 비싸지 않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해외 경매 프라이빗 세일에 자료를 요청해 따로 받아두었는데, 마침 작품도 좋고 가격도 적당한 100호짜리가 나와 거의 결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당시 알고 지내던 아트 딜러와 작가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딜러는 니콜라스 파티가 파스텔로 작업해 나중에 보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추천하지 않더라. 마침 그때 구매할까 고민하던 다른 작품이 있어 파티 작가의 작품을 포기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경매에서 파티 작가의 작품이 150만 달러에 낙찰됐다. 더 이상 내가 작품을 소장할 수 없는 작가가 되어버린 거다.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기회가 닿으면 그의 작품을 꼭 한 점 소장하고 싶다.
취향을 이어가는 데는 끊임없는 배움이 수반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컬렉팅을 해오면서 노하우가 많이 쌓였겠지만, 요즘은 미술 시장 트렌드도 너무 자주 바뀐다.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 같은데, 이와 관련해 어떻게 컬렉팅 공부를 하는지? 컬렉팅할 만한 작가를 찾는 과정을 보물찾기에 비유하고 싶다. 좋은 작가를 찾기 위해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경매마다 낙찰 결과를 확인하며 나만의 안목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경매 결과를 통해 어떤 작가의 작품이 현재 상승세인지 하락세인지 가늠할 수 있다. 어느 작가의 어떤 도상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는지도 체크한다. 또 요즘은 인스타그램도 적극적으로 찾아본다. 다른 컬렉터들이 관심을 두는 작가가 누구인지, 내가 아예 모르는 작가면 전시 이력이나 국공립 미술관의 작품 소장 여부 등을 따로 찾아보며 공부한다. 주변 컬렉터나 아트 딜러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하고. 작품 판매가가 1억 원 이상인 작가의 경우, 따로 비평 담론을 찾아 읽으며 전문적인 의견을 참고할 때도 있다. 결국 그림은 많이, 다양하게 볼수록 안목이 는다. 둘러가는 방법은 없다.
그런 안목과 직감으로 현재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는지? 그 작가를 주목하는 이유는?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 작가를 주목하고 있고, 그의 대표 작품을 소장하려고 계획 중이다. 아프리카 대륙 미술의 대표성을 다 보여주는 흑인 초상화가다. 기존 흑인 작가들이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정신을 드러냈다면, 아모아코 보아포는 흑인으로서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표현한다. 붓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다양한 패턴의 화려한 옷을 입은 흑인의 역동적인 근육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최근 수년간 흑인, 젊은 여성 작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원래 미술계는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세계다. 그래서 과거에는 흑인, 여성 작가가 설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플로라 유크노비치(Flora Yukhnovich), 로이 홀로웰(Loie Hollowell), 자데이 파도주티미(Jade Fadojutimi), 에바 유스키에비치(Ewa Juszkiewicz) 등에 관심이 있다.
부부가 함께 컬렉팅 취향을 공유하는데,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우선 대화의 공통분모가 있다는 점에서 좋다. 그림, 또 그것을 걸어둘 공간 인테리어를 함께 의논하는 건 신나는 일이다. 주변에 컬렉팅을 시작한 이후 소원하던 부부 관계가 좋아졌다고 하는 이도 있다. 휴일에 전시도 같이 보러 가고, 가끔 해외 아트 페어를 핑계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소장한 작품 가격이 더 올랐다고 하면 아내 표정이 달라진다.(웃음) 아내는 나만큼 컬렉팅에 열을 올리는 편은 아니라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 작품을 볼 때가 있는데, 그 점이 되레 내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컬렉팅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다년간 쌓아온 컬렉팅 노하우를 전수해준다면? 어느 정도 컬렉팅을 하고 있다면, 소장하고 싶은 작품의 작가가 소속된 갤러리의 갤러리스트와 관계를 잘 맺어두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프라이빗 세일이나 경매 시장에서 작품을 사느라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런 2차 시장은 가격 메리트가 없다. 또 요즘 들어 확고한 주관 없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분위기에 휩쓸려 작품을 사는 초보 컬렉터를 많이 본다. 미술품은 내재 가치가 없고 단순히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순식간에 자산 가치가 0원이 될 수 있다. 지금의 과열이 가라앉으면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는 작품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성급하게 작품을 소장해야겠다는 마음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컬렉팅에 앞서 미술이 주는 즐거움을 진심으로 느껴야 한다. 그 힘이 컬렉터의 길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에디터 손지혜(프리랜서)
사진 이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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