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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이방인은 어디에나

올해로 60회를 맞이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모든 인물을 한자리에 소환하는 이강승 작가.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작가로 초대받았어요. 아티스트로서 거대한 바다를 향해 천천히 항해하는 듯한 인상이 듭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중요한 전시에 초대받아 영광입니다. 지난해 3월, 다소 일찍 신작으로 본전시에 참여할 것을 제안받았기에 베니스에서 작업을 끝낸 후에는 시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난달 베니스에서 설치를 마치고 LA로 돌아온 지금은 다음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베니스 전시와 관련한 일은 이미 마무리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본전시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Foreigners Everywhere)’입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로 남미 출신 큐레이터 아드리아누 페드로자(Adriano Pedrosa)가 예술감독을 맡았죠. 주제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아드리아누 페드로자 감독은 자신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 중인 상파울루 미술관(MASP)에서 2016년부터 ‘히스토리아스(Historias)’라는 전시 시리즈를 선보인 것으로 알려진 큐레이터입니다. 2024 MASP의 주제는 ‘퀴어 히스토리(Queer Histories)’이며, 올 하반기 그곳에서 전시가 예정되어 있어 감독과는 비엔날레를 위한 신작 구상 시기부터 긴밀하게 소통해왔습니다. 이 전시의 핵심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지구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자 ‘방문자’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을 우리 모두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본전시에서 두 곳의 사이트를 활용해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출품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자르디니의 센트럴 파빌리온에서는 공간 전체를 이용한 신작 설치 작업 ‘Untitled(Constellation)’를, 아르세날레에서는 2023년에 만든 비디오 ‘라자로(Lazarus)’를 전시할 예정입니다. 주요 작업은 약 8×3m 크기의 바닥 설치 작업입니다. 이 작업에는 지난 10년 동안 진행해온 다양한 프로젝트의 주제가 된 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흑연 드로잉, 수채화, 금실 자수, 염소 가죽 그리고 수십 개의 수집물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며 어우러져 있습니다. 여러 대륙과 도시, 세대를 가로지르는, 동떨어진 듯 보이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퀴어 역사가 마치 성좌처럼 보여 ‘Constellation’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아르세날레에서 선보일 2023년 작 '라자로'. 고추산과 브라질 개념 미술 작가 조세 레오닐슨에 대한 헌정을 담은 비디오 작품이다. © 이강승

3월 31일까지 열린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띈 작품은 신작 영상 ‘라자로’였습니다. 싱가포르 출신의 혁신적 안무가 고추산과 브라질 개념 미술 작가 조제 레오닐슨의 시공간을 연결해 새로운 관점을 이끌었는데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요. 2021년 갤러리현대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고추산의 삶을 조명하고 있는데, 그를 발견한 계기와 특히 주목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추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약 15년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접한 세계적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Mikhail Baryshnikov)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습니다. 1981년에 바리시니코프는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 수석 무용수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고추산은 네오 클래시컬 발레라는 장르에서 무섭게 떠오르는 안무가이자 워싱턴 발레단의 레지던트 안무가였어요. 다큐멘터리에는 약 7~8분간 고추산의 인터뷰가 등장하는데, 아시아계 댄서와 안무가가 거의 전무했던 미국의 발레 신을 생각할 때 그의 존재감은 실로 강렬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남겨진 기록이나 유산은 전무하다시피 했죠. 싱가포르 출신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웡빙하오(Wong Binghao), 고추산의 가족과 친구들, 퀴어 작가인 밍웡(Ming Wong), 지미옹(Jimmy Ong) 등 여러 인연과 우연이 이어지며 그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대륙과 도시에서 사라져간 많은 퀴어 작가의 삶과 작품을 그의 서사와 연결하는 한편,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퀴어 예술가와 협업해 ‘고추산 같은 우리 이전 세대의 퀴어 예술가의 유산을 통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두 작업이 ‘손의 심장’(2023)과 ‘라자로’(2023)입니다.
퀴어 역사와 미술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견한 특수한 사건과 인물을 재발견해왔습니다. 여러 정보와 스토리 중 작업으로 이어지는 서사의 조건이 있나요? ‘우연(accidents)’이 모여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삶의 많은 일이 그렇듯이 주변 사람들, 관계, 사건의 영향을 받곤 합니다. 작업의 기준이 있다면 가능한 한 하나의 프로젝트에 한 사람 이상 이야기를 배치하는 것, 친밀함과 낯섦에 대한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것, 시각언어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해보는 것 등입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작업 속에 작은 변화를 향한 바람을 꾸준히 담아왔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했던 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나요? 우리가 염원하는 대부분의 사회적·근본적 변화는 우리 생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경험한 대부분의 변화는 이전 세대에 많은 사람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일종의 선물과도 같습니다. 세상이 항상 앞으로 나아간다고 느껴지지 않아도 나선형 계단처럼 변화하고 있다고 믿으며, 제게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려 합니다.





자르디니의 센트럴 파빌리온에서 처음 공개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Untitled (Constellation)'. © 이강승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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