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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5

‘나’라는 콘텐츠 연출법

30년 가까이 ‘국민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해온 여운혁 PD를 만났다.

영역을 불문하고 기획자와 크리에이터를 자처하는 시대. 방송사에서도 제작과 연출, 기획 등 다방면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윤리와 상식의 기준을 넘지 않는 선에서 완성도를 요하는 방송 프로그램 기획자라면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대중평론가들은 2000년대 들어서야 예능 방송에서 PD 개개인의 연출 스타일을 평할 수 있었다. 여운혁은 지금 문화계의 대세가 된 마이너리티 정서와 대본 없이 출연자 캐릭터에 맞춰 연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MBC <목표달성! 토요일>을 통해 소개하고 ‘B급 작가주의’라는 수식어를 가장 빨리 차지한 인물이다.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라디오 스타>, <무한도전>, jtbc <썰전> 등 수많은 성공작을 보여줬고 방송인 유재석의 조율자, 강호동의 직설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의 경력은 우리나라 영상 채널 사업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운혁은 MBC(1993~2011년)를 거쳐 jtbc(2011~2015년) 이후 2017년부터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 미스틱스토리 영상사업 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가수 윤종신의 기획사로 먼저 알려진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한 이후 회사는 ‘모든 콘텐츠는 스토리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바꿨다.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이름 석 자가 방송의 레이블이 되는 ‘스타 PD’ 시대를 연 여운혁을 만나 이 시대 기획자가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인간의 희로애락 중 ‘락(樂)’을 30여 년간 책임져온 사람에게 들은 일과 삶의 성공법은 간단하다. ‘인생은 짧고 아깝다’는 점을 잊지 말 것.



편하게 웃으시는군요. 대한민국 평균 중년 남성은 대부분 카메라 앞에서 표정이 굳어지거든요. 예능 방송 PD를 하다 보면 그래요. 10년 정도 되니 무조건 이런 표정이 나옵니다.(웃음) 맞아요. 자본주의 웃음. 연출할 때 재미없어도 반응을 해줘야 출연자가 더 잘하거든요.

1993년 MBC에 입사해 지금까지 현장에 계시죠. 대학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고요. 뜻한 바가 있었나요? 솔직히 원래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입시를 치러보니 어려운 거예요. 재수는 하기 싫고. 그럴 바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가자 싶었죠. 왠지 여학생도 많을 것 같고.(웃음) 사실 저는 꿈이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재밌게 살지 하루하루 고민한 것 같아요. 쪽팔리는 건 싫고, 그러지 않으면서 재밌게 살려니 여기까지 온 거죠. 물론 이왕 열심히 할 거, 꿈이 있으면 좋겠지요. 조금 더 방향성을 갖고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하지만 젊은 사람에게 눈앞의 현실을 무시하고 꿈만 가지라고 하는 건 반칙 같아서, 뭐라 말하긴 어렵네요.

대학 시절 어딘가에 소속되는 게 싫어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방송국은 어떻던가요? 제가 입사할 때는 PD와 기자를 한 직군으로 뽑았어요. 당시에는 바둑 중계도, 요리 강습도 모두 방송에서 해냈거든요. 만만해 보여서 저런 걸 하면 되겠다 싶어 예능국에 지원했어요. 다행히 잘 맞았고요. 어디든 처음 일을 배울 때는 힘들죠. 익숙해지면 조금 편하고요. 사람은 누구나 그렇잖아요. 무슨 일이든 힘들게 하는 사람은 항상 힘들고, 즐겁게 하는 사람은 항상 즐겁죠. 대충 하는 사람은 또 대충 하고. 자기 태도에 달려 있죠. 당시 MBC가 사회적으로 누린 혜택이 컸기에 밤샘 촬영이나 외부 로케이션 등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덜했을 거예요.

당시 MBC는 말 그대로 예능 강국이었죠. IMF 회복 시기에 국민 캠페인을 겸한 <느낌표>(2004~2007년)를 시작으로 이른바 스타 PD 시대가 열렸고요. 그때도 시청자에게 여운혁이란 이름이 익숙했는데, 모습은 잘 드러내지 않는 연출자였어요. PD가 자신을 드러내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방송사가 3개밖에 없는 데다 일하면서 다른 힘이 필요 없을 때니까. 어차피 방송국 안에서 내 마음대로 하고 있으니 외부에 알려질 필요도 없었죠. 그런데 7~8년 차가 되면서 불만이 많아졌어요. 선배들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말발이 먹히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이런 말 하면 자찬이지만,(웃음) 그래도 선배들한테는 귀여움을 많이 받았어요. 기술적 문제를 지적받은 적은 있지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든가 “너는 애가 왜 그러니?” 같은 말은 들어본 적 없거든요.

지금 20대는 <무한도전-연말정산 뒤끝공제>(2010년) 동영상을 통해 PD님 모습을 접했을 거예요. 영상에서는 굉장히 직설적이시던데 내부에서는 귀여움을 받았다니, 의외네요. (함께 영상을 보며) 머리숱도 많고 잘생겼네요.(웃음)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제가 부러워요. 원래 저는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누가 먼저 물어보기 전까지는 질문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말할 때는 눈치 보지 않고 격의 없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뭔가 도와주고 싶은 후배였던 것 같아요. 뭘 하는 데 방해하는 사람이 없었죠. ‘할 말은 하자. 예의 갖춰서 하자.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건 꼭 따로 찾아가서라도 하자’를 실천했어요. 그럼 나중에라도 회사나 선배가 기회를 줬고요. 캐스팅할 때도 그래요. 모든 기획자는 ‘특A 스타’부터 섭외하고 싶어 하거든요. 응하지 않으면 상처를 받는데, 저는 그런가 보다 하며 다음에 다시 연락해요. 제가 기다리는 건 참 잘하거든요.




<스튜디오 음악당>은 Btv와 유튜브에서 시작해 시즌 2 부터는 Mnet으로 확장됐고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유투브와 KBS joy를 합쳐 전체 1억 조회가 넘었다.


뭐든 만드는 사람에게 기다리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 말을 예능 PD에게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늘 빠른 실행이 중요할 것 같거든요. 빠른 건 있죠. 제가 회사 생활을 별다른 트러블 없이 할 수 있었던 건, 누구도 저한테 “프로그램 내려라”라는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내가 그만하자고 스태프를 설득하고 미안해한 적은 있지만요. 상사한테 그 말을 듣기 전에 프로그램이 잘 안 될 것 같으면 제가 먼저 내리자고 했거든요.(웃음) 눈치가 빠른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닥치면 못 견딜 것 같으니 먼저 해버리는 거죠.

방송은 시청률로 흥행을 가늠하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CP(Chief Producer)로서 총괄기획을 하게 되는데, 책임자로서 어떻게 성과를 예측하나요?  일단, 제게 시청률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의 성패는 이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 친구를 만났을 때 알아요. 뭔가를 만든 사람 면전에서 당신이 만든 거 별로라고 하지는 않거든요. 나 요즘 뭐 한다고 말했을 때 반응을 살피면 돼요. 높은 목소리로 “아! 그거!”라고 바로 말하면 그 방송은 성공한 거죠. 낮은 어조로 “어, 그래?” 하면 당연히 상처받고요. 나 혼자 자존심이 상하는 거죠. 그럼 회사에서 말하기 전에 방송을 내려요.(웃음)

2011년 종편 시대를 맞아 jtbc로 이동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현역 정치인이 등장해 웃음을 선사한 <적과의 동침>(2013년)이나 유시민·김구라의 입담이 빛난 <썰전>(2014년) 등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호평받았고요. 그대로 임원이 될 수 있었을 듯한데, 2017년 미스틱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옮겼죠. 당시 방송계에선 큰 이슈였습니다. 원래 자리에 계속 남아 있는 것, 인생의 선택지 중 하나겠죠. 제가 겉보기엔 둥글둥글한데, 속은 모난 데가 좀 많아요. 사람은 어차피 죽잖아요. 죽는데 언제까지 건강하고 활발하게 일도 하고 놀러도 다닐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할 때 인생에서 이것저것 다 해보는 게 남는 장사 같았어요. 그래서 옮겼죠. ‘할 수 있고 기회가 되면 다 해보자’가 제 목표니까. 그럼 몸이 좀 힘들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래야 명성이나 돈, 지위를 빼놓고 인생을 더 풍요롭게 산다고 생각해요.

그간 어떠셨나요? 언뜻 보아도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과 음악계 사람들과 음악 얘기에 집중하는 Mnet <스튜디오 음악당>, 배송 앱 ‘배달의민족’과 난지공원에서 늘어지게 놀고 먹자를 모토로 연 <ㅋㅋ 페스티벌>, 배우 이병헌이나 SM 이수만 대표에게 노하우를 배우는 교육 영상 <바이블> 등 분야가 다양합니다. 특히 최신작은 모바일 콘텐츠로서 인기가 높아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제일 아프다고 하죠. 우선 큰 방송국에서 넘어왔으니 하드웨어 면에선 부족할 수 있어요. 원래 아이폰만 쓰는데, 안드로이드 체제를 알아야 할 것 같아 스마트폰을 하나 더 샀어요. 전에는 매뉴얼 없이 직관적으로 기기를 다뤘는데, 나이가 드니 잘 안 되더라고요. 원래 20대의 여운혁은 광고 회사에 더 맞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긴 호흡보다는 짧은 것을 더 잘했을 거고요. 쉽게 질리고 몰아칠 때 빠르게 하는 사람이에요. 평생 하던 일이니까 몇 년 치 플랜이 있다기보다는 새로운 기획이 매일 생각나요. 어차피 오늘 못한 건 내일이면 재미없어져요. 하지만 하고 싶은 건 언젠가는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짚어주신 방송들이 그래요. 그렇게 끌고 가고 있어요. 지금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애초에 기획을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짤방’처럼 만들고 싶었는데, 실제로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더 눈에 띄는 방송이 됐죠. 페스티벌도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가 사석에서 좋은 기획을 해보자길래 “돈을 주면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정말 먼저 입금을 했어요.(웃음) 회사에 그랬어요. “돈 들어왔는데, 어떡하지? 해야지 뭐.”

30년 가까이 연출자로 활동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변한 게 있나요? 나이를 먹으니 좋지 않은 게 있어요. 젊을 때는 성공하고 싶으니까, ‘하고 싶은 거는 해야지’ 하고 밀어붙이는 게 가능했는데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제 의도와 상관없이 주변에 마음을 다치는 사람이 생겨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잘됐으면 좋겠다’ 하면서 점점 우유부단해지죠. 결정이 느리면 결과도 좋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실패했다고 다음 날까지 안타까워하지는 않아요. ‘다음에는 뭘 할까’ 생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일상이 다 스트레스가 돼요. 뒤끝 없이 살려고 노력하죠. 그건 제가 정말 노력해야 해요.




첨예한 사회문제를 직설 문답 방식으로 명쾌하게 풀어간 <썰전>은 이후 타 방송 시사 기획에도 영향을 주었고, <무한도전>은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총 536부작을 방영한, 한국 대표 예능 방송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런 결론을 내리게 한 아픈 경험이 있나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무한도전>을 처음 시작할 때는 출연자가 13명이었어요. 이후 6명으로 마무리됐죠. 그사이 제가 대부분 악역을 맡고 출연자 조정을 해야 했으니 곡절이 있었겠죠? 당시에는 제 마음 자체가 순수했기에, 그만두게 하면서도 일로 만난 사이니 내일이 또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출연자 개개인의 인생이 달라지는 걸 보니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물론 50대가 되면서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터라 그런 경험을 트라우마라고 쉽게 말하진 않습니다.

늘 성공할 수는 없죠. 미련이 남는 일이 또 있다면요? 미련이라··· 망한 프로그램이 많죠. MBC <명랑 히어로>(2008~2009년)가 가장 아쉬워요. 뭐랄까, 그땐 방송계에서 최고로 잘나갈 때거든요.(웃음) 용을 쓰지 않았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후배 연출자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 간섭을 안 할 수도 없어서 100% 맡기지도 못했죠. 신이 주신 선물 중 망각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을 거예요. 망각이라는 선물을 잘 받았죠. 그것이 인생이에요. 그냥 흘러가게 둡니다.

PD나 기획자로 산다는 건 계속 설득하는 작업일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사장, 관리자이기도 하네요. 그렇죠. 현업 연출자와 사장의 입장 차이라면 이런 거죠. 누구든 ‘~할 것 같아요’라는 말부터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저도 어릴 때 그런 화법을 고치려고 노력했거든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를 들면 후배 PD 중 생각과 재능이 많은 친구가 있었어요. 하지만 마음이 약한 친구였죠. 그런 사람들은 윗사람한테 항상 “어떻게 하죠?”라고 먼저 물어요. 분명히 저는 에너지가 보여서 일을 맡긴 건데, 그 친구는 성격상 표현이 그랬던 거죠. 제가 완전히 믿고 밀어줘야 했는데. 결국 관리자는 선언한 사람 편을 들어주게 되어 있어요.

그 선언이 뭔가요? 이건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일을 맡을 때 80% 확신이 들면 조직 내부에 이걸 내가 하겠다고 선언해야 해요. 김태호 PD가 <무한도전> 초기에 그랬어요. “선배, 그거 제가 할게요”. 그럼 “어, 그래” 하고 맡기는 거죠. 저는 시킨 일이 잘되면 관여하지 않아요. 그 시간에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데, 왜 간섭을 하겠어요. 어차피 일이란 도처에 안 될 가능성이 널려 있어요.

그럼에도 여러 자리에서 여전히 PD라는 호칭이 더 좋다고 하셨죠. PD가 만드는 영상뿐 아니라 요즘 마케팅, 광고, 음악 분야를 막론하고 콘텐츠라는 말에 천착합니다. 어떻게 보세요? 제가 어릴 때는 콘텐츠란 책의 목차였죠. 요즘은 방송인도 스스로 콘텐츠라 부르더군요. 콘텐츠라는 말은 유행어일 뿐이에요. 단어의 용법을 바꾸면 그 대상에 인식이 바뀌는 건가요? 언어의 장난에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화기를 만들든 취재를 하든 모든 게 기획이고 콘텐츠죠.

여운혁이 생각하는 기획과 스토리의 정의는 뭔가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요? 어떤 경향이나 유행어를 예상하는 건 기자나 광고인이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요?(웃음) 변화는 잘 모르겠어요. 음, 일단 생각해보라니 하는 거예요. 사전적으로 다른 정의죠. 스토리란, 기획의 윤기예요. 모든 기획엔 스토리가 있어야 하며, 같은 기획이라도 그럴듯한 윤기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A가 B를 사랑했대’가 기획이라면 ‘가난한 A가 잘사는 B를 사랑하는데 C가 나타나 삼각관계를 이루고 갈등을 겪는다’ 하면 스토리예요. 대부분의 스토리나 드라마 플롯은 거의 30가지 안에서 정리되거든요. 지금은 새로운 기획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드론으로 촬영하는 스토리를 짜는 건 기술적 발전으로 상상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일 뿐 기본 이야기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봐요.

냉철하시네요. 앞으로 뭘 하고 싶으세요? 어릴 때는 먼지같이 없어지고 싶었어요. 불면 날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자식이 다 커서인지 지금은 바뀌었어요. 죽은 뒤 욕만 안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사욕이 많거든요.(웃음)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욕먹지 않으면서 욕심 차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사욕이 뭔가요? 당장은 사고 싶은 오디오가 있긴 한데, 나머진 굳이 지금 드러낼 필요 없잖아요? 그게 제 힘든 점이죠.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촬영 협조 미스틱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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