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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20

무대 위 승부사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이끌어갈 새로운 수장에 박인건 대표가 임명됐다. 예술 경영에서 30여 년의 경력을 지닌 그에게 2020년 새해 비전을 들어보았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경기도문화의전당, 한국방송공사 교향악단, 부산문화회관 등 여러 문화 예술 기관을 거쳤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며 박인건 대표만의 강점이 생겼을 것 같은데, 어떤가? 1987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문화 예술 기관에서 일하며 A에서 Z까지 업무를 경험했다. 특히 1986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 예술 재단법인인 예술의전당을 설립할 때 시작해 세종문화회관, 충무아트홀, 경기도문화의전당, 부산문화회관 등 초대 재단 설립에 관여했다. 문화 예술이 라이프스타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던 과거에는 공무원이 예술 기관에서 일해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는 공무원의 특성상 전문성을 갖추기도 어렵다. 그래서 예술 행정보다는 예술 경영이란 표현이 더 맞다고 본다. 공연장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술 경영 측면에서 나름 노하우를 쌓아온 나의 시간과 역량이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이끄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예술 경영인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지휘자를 예로 들면, 리카르도 무티 같은 이는 굉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단원을 이끈다. 사실 요즘 스타일은 아니다. 반면, 카라얀 같은 이는 아주 자유롭다. 춤을 추듯 지휘하는데, 언뜻 이렇다 할 포인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농담처럼 전해지는 말로, 카라얀이 단원에게 “베를린 필하모니에 들어올 수준인데 내 지휘가 무슨 소용인가? 알아서 잘하면 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단원을 신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대를 칭찬하고 배려하며 믿음을 갖다 보면 더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런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다.
대구라는 지역은 처음이다. 지역에서의 예술 경영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한 것이 있는지? 대구가 기반이 아니기에 지역민이 우려하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흔한 말이 되겠지만, 균형이 중요하다. 너무 지역 안에서만 예술을 얘기하면 지역주의에 빠져 발전할 수 없고, 외부인은 지역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구 지역 예술인 단체와 오피니언 리더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이들과 함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


1 1월 공연 예정인 오페라 <리골레토>.
2 2월 공연 예정인 발레 <백조의 호수>.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우선 조직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당면 과제를 생각해봤다. 공연장은 서비스업에 속한다.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 무대를 빌리는 공연 기획자가 공연장의 서비스 대상이다. 그래서 부임하자마자 직원들에게 숙제를 내줬다. 팀별로 서비스 개선과 조직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라고. 소소하지만 몇 가지를 바꿨다. 우선 오페라극장을 알리고 문턱을 낮추기 위해 로비를 개방했다. 그 전에는 공연이 있을 때만 개방했다고 한다. 로비에 공연할 때 쓴 소품과 의상, 무대 세트 모형을 놓아 볼거리를 만들었다. 조만간 홍보관도 로비로 이전할 것이다. 또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은 건물 왼쪽에 현수막이나 간판을 두어 멀리서도 오페라극장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려 한다. 이제껏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송년 제야 음악회도 열 계획이다. 오페라 저변 확대를 위해 기존 렉처 콘서트 외 다양한 콘서트를 기획할 것이다. 주부나 은퇴한 실버 세대가 오전 11시나 낮 2시, 4시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런치 콘서트를 만들고, 오페라를 더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클래식 전문가의 갈라 콘서트도 기획 중이다. 매월 둘째 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금난새와 함께하는 갈라 콘서트를 진행한다.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운영하는 데 어떤 목표로 임하는지? 극장 가동률, 객석 점유율, 재정 자립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다. 처음 부임해 고민한 부분은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생각보다 극장 가동률이 낮다는 거였다. 극장 가동률이 높아야 살아 있는 공연장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극장은 오페라라는 특정 장르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상당히 보수적이고 방어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런데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복합 공연장이다. 오페라뿐 아니라 발레,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공연 일수가 적었다. 그렇다고 이를 상쇄할 만큼 객석 점유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전 세계 오페라극장 사례를 봐도 극장 가동률을 위해 오케스트라단과 발레단을 상주시켜 공연장을 활성화하고, 조직 전체가 적극적으로 홍보와 마케팅에 나선다. 대구오페라하우스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오페라단이 있는 극장이다. 자체 제작 오페라를 만들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런 특장점을 살려 내부적으로 역량과 자질을 강화하고, 마케팅과 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다. 공공 기관이기에 너무 수익에만 치중하면 안 되므로 지역사회 후원과 기부금, 기업 협찬과 광고도 중요하다. 그런 것을 통해 재정 자립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럼에도 대구오페라하우스는 후원회가 없다. 오는 3월에는 후원회를 발족시키려 한다.
임기 내 꼭 무대에 올리고 싶은 오페라가 있다면? 예술감독과도 얘기한 것이 있는데, 제대로 된 야외 오페라를 기획하고 싶다. 1988년 국내 최초의 야외 오페라로 <투란도트>가 있었다. 벌써 20년 전 얘기다. 대구가 오페라, 뮤지컬 등 음악으로 도시 브랜드를 강화한 만큼 제대로 된 야외 오페라가 대구에서 나오면 좋겠다.
2020년 새해다. 다짐과 포부를 듣고 싶다. 직원들에게 물과 같이 되자고 말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겸손함이 있고, 물줄기로 바위를 뚫는 끈기가 있다.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가는 현실성도 있다. 작은 곳에서 흘러 큰 데로 나아가고, 때론 흙탕물과도 섞인다. 어떤 일을 하든 물과 같기만 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본다.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나의 일도 물과 같길 바란다. 현실적인 새해 다짐은 당면 과제를 풀면서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보다 많은 이가 이곳을 찾길 원한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고 그림에도 여백이 있듯, 대구 시민의 삶에 대구오페라하우스가 휴식처이기를 바란다. 내가 있는 동안 대구오페라하우스가 ‘나아졌다’, ‘좋아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에디터 손지혜 사진 여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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