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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3

예술로 그린 예술가

다양한 뮤지컬로 재탄생한 예술가의 삶.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사진 에스앤코

전설로 기록된 예술가의 삶은 동시대 예술에도 무척 흥미로운 소재다. 일그러진 외모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천재 음악가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20세기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의 유령],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고 창작 의지를 불태운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생애 말기를 그린 [프리다], 인종차별과 갈등이 만연한 1950년대 미국 남부 도시의 DJ로 흑인음악을 처음 알린 듀이 필립스(Dewey Phillips)의 실화를 다룬 [멤피스]까지. 관록 있는 명작 뮤지컬부터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 브로드 웨이에서 막 건너온 국내 초연작까지 올가을에 모두 만날 수 있다.
뮤지컬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제목만큼은 익숙한 대작 [오페라의 유령]이 오랜만에 한국어 버전으로 무대에 오른다.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하고 1988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뮤지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기를 자랑한다. 불과 3년 전 부산, 서울, 대구 등에서 9개월에 걸친 월드 투어 공연을 펼쳤는데 올해 티켓도 매진 행렬을 이어갈 정도. 부산에서 시작해 7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이번 공연은 한국 배우로 구성한 한국어 프로덕션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작품 자체가 쉽게 공연하기 어려운 초대형 프로덕션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어 공연은 2001년 초연 이후 2009년에 이어 13년 만에 성사된 무대이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그 명성만큼 우리나라 공연 시장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공연 시장’이라는 용어조차 뚜렷하게 성립하지 않은 2000년대 초반, 100억 원이 훌쩍 넘는 제작비를 들여 약 7개월에 걸친 장기 공연을 이뤄낸 것. 상당한 티켓 가격과 반년이 넘는 공연 기간에도 불구하고 24만 명을 모객하며 한국 뮤지컬계에 전무후무한 성과를 남겼다. 오늘날 어떤 예술 장르보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국내 뮤지컬의 인기에는 [오페라의 유령]이 쌓은 초석도 한몫했을 것이다.드문 공연도 아닌데 이토록 인기를 끄는 까닭은 무엇일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사진 에스앤코

이 공연은 기술 발전으로 점점 더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는 여타 작품과 달리 1980년대 초연 프로덕션을 고수한다는 점을 주요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객석 바로 위로 아찔하게 떨어지는 장면은 여전히 명장면으로 회자되며, 물 위를 미끄러지듯 유령이 노 젓는 배를 타고 함께 노래하는 지하 호수 장면은 그 비밀을 알고 봐도 여전히 흥미롭다. 시각 매체가 대부분 생생한 영상 기술로 대체되고 있음에도 무대예술의 오리지널리티를 일깨우는 무대 메커니즘에 감동이 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무대에 꼭 맞게 재탄생한 파리 오페라극장과 지하 미궁 풍경, 벨에포크 시대의 영광을 재현한 듯 장면마다 바뀌며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의상, 전통적 방식으로 작동하는 장면 전환까지 놀라움의 연속이다.뮤지컬을 상업 예술에 가깝게 여기던 편견을 거둬낸 것도 [오페라의 유령]이다.
오페라의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으로 발레를 삽입하듯, 클래식 음악과 발레 장르의 뛰어난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2001년 한국 초연 당시 주인공 크리스틴 역에 뽑힌 김소현이 이를 계기 삼아 뮤지컬 스타로 발돋움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손지수와 팝페라 가수로 사랑받는 송은혜가 크리스틴 역을 맡아 고난도 넘버를 자랑하는 소프라노의 화려한 기교를 선보인다.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조승우가 자신의 본진인 뮤지컬 무대에서 오랜만에 선택한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자유자재로 캐릭터 변신을 선보이는 최재림, [팬텀싱어]로 이름을 알린 오페라 스타 김주택, 대작 주연을 줄줄이 꿰찬 전동석이 유령 역을 맡았다.





뮤지컬 [프리다] 2022년 초연 무대.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프리다] 2022년 초연 무대.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그런가 하면 8월 1일부터 10월 12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막을 올리는 [프리다]는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낸 창작 뮤지컬이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인 뒤 그동안 대작을 주로 선보인 EMK뮤지컬컴퍼니가 지난해에 초연한 소극장 뮤지컬로, 화려한 무대 세트는 걷어내고 배우의 합과 폭발적 가창력을 자랑하는 넘버를 강조했다. 제목에서 연상하듯 뮤지컬 [프리다]는 비극적 사고로 아픔을 안고 살아간 작가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그려 고통 속에서 발견한 삶의 환희와 예술적 치유를 노래한다. 작가의 실제 삶처럼 공연은 내내 생명력이 넘쳐흐르며 그림 속 강렬한 색채도 무대 위로 옮겨온다.
화가 이전에 혁명가였고,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인한 활동의 제약을 넘어선 프리다 칼로의 열정과 의지를 뮤지컬 넘버로 치환한 것이 특징으로 그간 신영숙, 김소향, 최정원 등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가 프리다를 연기했다. 올해는 깊이 있는 연기와 폭발적 가창력을 모두 갖춘 김소향, 독특한 음색을 자랑하는 알리,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히어라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프리다, 그의 연인이자 분신인 디에고 리베라, 죽음의 그림자 데스티노, 어린 시절 꿈꾼 이상적 인물 메모리아 등 네 사람이 노래로 피워 올리는 예술의 환희를 만끽할 수 있다.
새로운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한국 초연을 앞두고 있다. 2009년 초연, 이듬해에 최고작품상을 비롯해 토니상 4개 부문을 석권한 [멤피스]다. 흑인과 백인의 갈등이격화하던 1950년대 미국 남부 도시 멤피스를 배경으로,록 음악으로 발전하기 직전의 로큰롤을 세상에 전파하려는 꿈을 가진 라디오 DJ가 등장한다. 사회를 변화시키는음악의 힘을 믿는 주인공 휴이와 클럽에서 노래하는뛰어난 흑인 가수 펠리샤의 꿈과 사랑 이야기는 어찌 보면 뻔하지만, 동시대 상황과 겹치며 미묘한 울림을 선사한다. 인종격리정책에 의해 흑백으로 양분된 당대의 이야기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인종 혐오 범죄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에도 유효하지 않은가. 그시절우연한기회에마이크를잡아라디오쇼진행자로 흑인음악을 널리 알린 백인 DJ 듀이 필립스의 실화를 그린것도작품을기대하게하는이유중하나다. 리듬앤블루스, 가스펠, 로큰롤 등 그 시절 미국 사회를 풍미한 음악의 향연이 펼쳐지며 1980년대를 대표하는 록 밴드 본 조비(Bon Jovi)의 키보디스트 데이비드 브라이언(David Bryan)이 작사&작곡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섬세하고 독창적인 연출로 해외 작품을 두루 다룬 김태형이 국내 무대에 어울리게 재탄생시킨 이 작품은 10월 2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에디터 백아영 글
사진 제공 김태희(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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