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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0 FEATURE

지금 80년대생에 주목

  • 2019-12-01

기존 문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판을 짜는 1980년대생 크리에이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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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SENS
Born in 1987 래퍼, 뮤지션

이센스의 첫 솔로 앨범 <에넥도트(The Anecdote)>는 한국 힙합 신이 도달한 어떤 경지를 의미한다. 딥플로우가 <에넥도트> 를 듣고 나스(Nas)의 데뷔 앨범 <일매틱(Illmatic)> 을 언급한 것처럼, 이센스는 강민호의 개인적 삶을 읊어 한국의 한 시대를 정리했다. 거기엔 놀라울 정도의 솔직함과 어떤 강박, 그리고 래퍼의 결기가 있었다. <에넥도트>는 그 흔한 방송 출연 없이 2016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최우수 랩 & 힙합 음반을 수상했다. 순수한 음악의 힘이다. 그리고 4년 뒤 이센스의 두 번째 앨범 <이방인>이 세상에 나왔다. “작업 당시엔 ‘뭔가 해내야 한다’, ‘보여줘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다. <이방인>은 <에넥도트>와 다른 이야기가 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론 같은 코드가 많다. 내면의 이야기, 마주친 나의 민낯, 그리고 괜찮은 삶으로 걸어가는 과정 같은 거다.” 닮았다지만 <이방인>은 전보다는 성숙하고 진취적 태도를 취한다.




1 <이방인>, 2019.
2 , 2015.

세상은 여전히 차갑지만(Cold World)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서로 먼 데 앉아 쳐다보기만 한 세상과 나, Clock) 강박에서 벗어나 좋은 것을 떠올린다(사는 데 사랑이 전부라고 말해. 진심으로 그게 진심이기를 바래, All Good Thing). 그리고 현재보다 더 나은 걸 상상한다(서울보다 하늘이 파란 곳이면 다 좋아. 예약은 어디든 가까운 호텔. 괜히 가격이나 봤던 퍼스트 클래스, MTLA). “결국엔 세상과 나의 독대다. 내 삶과 현재에 대한 내 의견, 그리고 반성과 다짐 같은 것. 이제 같은 실수는 하지 말자. 날 챙기면서 살자. 보다 좋은 삶을 꾸려보고 싶다는 이야기로 들렸으면 한다.” <이방인> 발매 이후 이센스는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방송에 출연하고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SNS를 통해 팬과 소통한다. 그 모습이 낯설지만 반갑다. “내겐 외골수 아티스트 같은 기질이 없다. 난 오히려 그런 사람이 스테레오 타입이라 생각한다. 다만 어릴 때부터 활동해서인지 좋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걸 경계하는 것일 뿐 은둔하고 싶지는 않다. 음악이 부각되고 진지한 형태라면 어디든 열려 있다.” 여러 의미에서 이센스는 다시 세상에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상황이 ‘이방인’이란 앨범명을 부각시킨다. 낯선 환경에 처한 곤경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세상과 화해하려는 자의 어색한 제스처, 아마 이센스가 말하는 ‘이방인’이란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연말에 갖는 두 번째 단독 콘서트의 이름도 ‘Strange No More’다. 이센스는 엄청난 작업량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자기 검열이 강한 아티스트는 쉽게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이방인>을 발표하곤 한동안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아마 지쳤던 것 같다. 요새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다. 아직 어떤 거라고 밝히긴 어렵지만, <에넥도트>나 <이방인>처럼 내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다. 그 챕터는 이제 끝났다.” 래퍼는 숙명적으로 뮤지션이자 작가다. 이센스는 두 장의 앨범을 선보이며 성장했다. 그의 다음 이야기가 어떨지 모르지만, 그 역시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강렬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번 시선을 빼앗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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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BO RA
Born in 1981 영화 <리코더 시험> <벌새> 감독

2019년 한국 영화는 ‘100’이란 숫자로 기억될 것이다. 혹은 봉준호의 <기생충>으로, 아니면 1000만 영화가 다섯 편이나 나온 영화 산업의 르네상스로 남을 거다. 여러모로 기념비적 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균열이 많다. 흥행작 중 60% 이상이 외화고, 1000만 타이틀 뒤엔 독과점이란 자본의 이기심이 있었다. 그리고 분별하기 어려운 무색무취의 한국 영화가 자국도 없이 사라졌다. 명암이 또렷한 한 해였다. 그 역동적 틈바구니에서 <벌새>는 한국 영화가 거둔 가장 놀랍고 소중한 성취다. <벌새>는 제작비 3억 원이 든 저예산 영화다. 영화는 1994년을 배경으로 학교와 가정, 사회의 일상적 폭력을 열네 살 은희의 시선을 따라 덤덤히 좇는다. 김보라 감독은 그 속에 우리가 있다고 말한다. “1980년대까진 순수함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올림픽을 전후로 한국 사회는 성장만을 위해 달려왔다. 노골적인 자본주의화를 마주한 우리의 당황, 그리고 그 시대의 환절기 같은 걸 담고 싶었다. 가정을 좀먹는 가부장제나 무신경한 학교 폭력, 성수대교라는 시대의 트라우마. 이런 것들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영화로 표현하려 했다.” 김보라는 시나리오는 물론 총괄 제작까지 맡았다. 초고가 2013년에 나왔지만 투자자를 찾지 못해 제작이 늦어졌다.




3 <벌새>, 2019
4 <리코더 시험>, 2011

살인이나 재난 같은 자극적 소재 일색인 한국 영화계에서, <벌새>는 차분하고 담백한 언어로 극을 끌어나간다. 그 울림과 진폭은 수백 억을 투자한 영화보다 세다. “영화가 지금처럼 주목받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래도 공감하는 관객이 많을 거라는 기대는 있었다. 시나리오에 대한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배우나 스태프는 물론 투자자도 시나리오를 읽은 뒤 자기 이야기를 하더라.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벌새>는 이야기의 힘과 섬세한 연출로 베를린 등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40관왕을 달성했다. 다분히 한국적 소재지만, 해외 관객은 보편적 코드에 공감하고 찬사를 보냈다. 성장과 상처 그리고 치유와 소통이라는 키워드다. “해외 관객도 어느 정도 공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반응이 커서 조금 놀랐다.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모두 비슷한 상처와 기억을 갖고 있더라.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를 한 번이라도 싫어해본 사람은 꼭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 해당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보라는 성장기에 20세기를 건너온 관찰자로서, 한국 여성이라는 당사자로서, 그리고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가장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벌새>에 녹여냈다. 놀랄 만큼 담백하고 진솔한 이 이야기야말로 그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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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EUNG GYU
Born in 1981 뮤지컬 감독

한국 뮤지컬 산업은 미국과 유럽, 일본을 잇는 대형 시장이다. 2018년 티켓 판매 수익인 2296억여 원(문화체육관광부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을 토대로 전체 규모를 추산하면 대략 4000억 원이 나온다. 불경기라는 요 몇 년 사이에도 매년 30% 가까이 성장했다. 인구 대비 규모로 환산하면 비할 곳이 없다. 몸집은 커졌지만 위태로운 요소도 많다. 여전히 라이선스 뮤지컬이 대부분이고, 스타의 티켓 파워 의존도가 높다. 그리고 거의 모든 메이저 공연이 수도권에서 이뤄진다. “한국 뮤지컬은 규모 면에서 이미 선진국이다. 좋은 공연장도 도시마다 갖췄다. 하드웨어는 이만하면 됐는데,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 이젠 질적인 부분을 메워야 한다.” EG컴퍼니의 이응규 예술 감독은 <기적소리>, <기억을 걷다>, , <77인의 영웅> 등 총 8편의 뮤지컬을 창작 및 제작했다. 극의 스토리와 오리지널 스코어 작곡은 물론 연출까지 병행하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반경을 넓히고 있다. “창작극을 주로 하는 건 창작자의 자존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것이 충분히 세계에서 통한다는 자신감도 있다.” 김수경 추기경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 뮤지컬 <밥처럼 옹기처럼>을 기획한 것도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미국 10달러 지폐에 새겨진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소재로 한 전기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는 물론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오랜 기간 러닝하고 있다.




5, 6 , 2019

김 추기경의 일대기도 그 못지않게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연출한 작품엔 그 흔한 아이돌 스타 하나 없다. 그리고 화려하거나 웅장한 세트 대신 정확한 가사 전달, 자연스러운 감정 같은 부분을 매만져 집중과 높은 완성도로 무대를 채운다. “스타가 무대에 서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더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한국에 좋은 신인 배우가 많다. 재능 있는 배우를 발굴해 기회를 주는 것도 창작자의 의무다. 외국의 경우 스타 마케팅보다는 프로덕션에 관심이 쏠린다. 어디에서 제작하는지 대중이 관심을 갖는다. 그런 프로덕션을 만드는 것도 목표다.” 이응규 감독의 행보는 흥미롭다. 뉴욕 대학교 티시 예술학교를 졸업한 젊은 창작자에게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그가 이끄는 EG컴퍼니는 대구를 근거지로 활동 중이다.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여건이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지방에서 활동하는 것도 재미 있다. 경북 사람들에게 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건 물론 오프 브로드웨이처럼 소규모 공연 문화를 키워나가고 싶다.” 디지털 일색인 콘텐츠 시장에서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 젊은 창작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아티스트의 이유 있는 고집, 그리고 단단한 자신감의 이유, 거기서 어떤 흐름이 만들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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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 JUN WOO
Born in 1982 SBS 교양 PD

더 이상 방송은 미디어를 대표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등장은 미디어의 생태계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굳이 SNS나 유튜브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방송의 위기는 피부로 인지할 수 있다. 크리에이터, 블로거, BJ, 유튜버. 수많은 개인이 방송의 역할을 해낸다. 그리고 체계화된 CPND(Contents, Platform, Network, Device)업체는 파격적 콘텐츠를 만들고 신선한 방식으로 대중과 만난다. 그래서 방송이 변하고 있다. 파격적이고 영리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SBS 도준우 PD는 그 키가 공감과 시도에 있다고 말한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대를 면밀히 관찰하고 다양한 걸 해봐야 한다. 보수적 태도를 버려야 어떤 길이 보일 거다.” 도준우의 이력은 독특하다. SBS에 입사하기 전 그는 래퍼였다. A.K.A 돈춘호(유튜브엔 그가 ‘읊고, 찍고, 자르고 붙인’ 랩 영상이 여러 편 있다). 힙합에 심취한 20대 PD는 예능국을 거쳐 교양국에서 10년 이상 프로그램을 연출했다(방송국에서 두 부서의 호환은 드문 케이스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조상 격인 <짝>, 시사부터 소소한 이야기까지 밀도 있게 담아내는 <궁금한 이야기 Y>, 탐사 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지금 우리의 고민을 넌지시 던지는 까지 SBS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을 여럿 거쳤다.




7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채널>, 2019
8 <백 투 마이 페이스>, 2014

힙합이라는 문화와 예능 PD의 대중적 감각 그리고 교양 프로그램의 공익성과 탐사 취재라는 이질적 혼합이 도준우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관습이나 문법에 매어 있지 않다. 그가 기획・제작한 파일럿 프로그램 <방과후 힙합>이나 <백 투 마이 페이스>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담았지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요샌 교양에도 예능 코드를 가미한다. 우리끼린 그걸 ‘쑈양’이라 하는데, 그런 것에 관심이 많다.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사회에 유익한 요소가 있는 프로그램. 과거 <양심 냉장고>를 보곤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부재했던 게 양심이라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혐오에 대한 해소다. 사회 곳곳에 혐오가 만연해 있다. 그걸 중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도준우는 현재 뉴미디어 부서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채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방송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나 후속 보도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만들고 있다. “방송과 호흡이나 속도, 접근 방식이 모두 다르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레거시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위기라지만 방송의 힘은 여전히 세다. 그 지점 때문에 변화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도준우의 하이브리드적(?) 커리어와 성향에 눈이 간다. 진보는 기존 문법을 거부하는 파격에서 온다. 그가 그 역할을 해줄 가능성이 높다.

 

에디터 조재국 사진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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