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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5

새로운 공간, 새로운 모더니즘

재정비를 마친 뉴욕 현대미술관의 달라진 면면을 살펴봤다.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와 젠슬러의 협업으로 재탄생한 뉴욕 현대미술관 외관.

여름내 문을 닫았던 모더니즘 미술의 성지 뉴욕 현대미술관(이하 모마)이 지난 10월 21일에 베일을 벗었다. 2016년 2월에 시작한 확장 공사가 서쪽 윙 완성을 끝으로 마침내 마무리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모마는 여러 번 확장했었다. 특히 2004년 요시오 다니구치(Taniguchi Yoshio)가 맡았던 재건축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 모마의 건축적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고 평가받는데, 이번 확장은 이전과 달리 공간뿐 아니라 모마의 비전과 큐레이션십도 넓히려는 것이 뚜렷한 차이점이다. 모마의 관장 글렌 D. 로리(Glenn D. Lowry)는 “뉴욕의 실험적 미술관이길 바란 모마 초대 관장 앨프리드 해밀턴 바(Alfred Hamilton Barr Jr.)의 비전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이번 확장의 진정한 가치는 단지 더 넓은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이 제공하는 예술 경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라고 일찌감치 밝히기도 했다.






재개관 후 한층 넓어진 뉴욕 현대미술관 내부. 사진 속 전시는 2020년 1월 20일까지 열리는 < Projects 110: Michael Armitage >다.

총 4억5000만 달러(약 525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뉴욕의 건축 사무소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건축 사무소 젠슬러(Gensler)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우선 면적을 보면, 확장 결과 3716m2가 넘는 공간이 추가되어 전시 공간만 약 30% 늘어났다. 물론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맨해튼 한복판에서 레노베이션만으로 이러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모마 서쪽과 맞닿아 있던 아메리카 포크 아트 미술관(American Folk Art Museum)을 철거했기에 가능했다. 두 건축 거장 토드 윌리엄스(Tod Williams)와 빌리 치엔(Billie Tsien)이 설계한 역사적 건물을 철거하는 데 반대하는 여론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부지에 모마의 서쪽 공간인 데이비드 게펜 윙(David Geffen Wing)이 들어섰다. 이곳의 이름은 이번 확장 공사를 위해 총 1억 달러(약 1160억 원)를 모마에 기부해 화제를 모은 엔터테인먼트업계 출신의 부호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에게서 따왔다.






1층 로비와 뮤지엄 스토어 전경.

재개관에 맞춰 방문한 모마. 새로이 단장한 건물 내부는 미술관 특유의 권위보다는 애플 스토어나 백화점이 연상되는 쾌적함이 두드러졌다. 1층 로비에는 휴식 공간과 티켓 부스,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전시장이 자리 잡았고, 뮤지엄 스토어는 지하로 이전해 거대한 규모를 한껏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로비는 잠깐이나마 부담 없이 드나들며 쉬고 쇼핑하고 전시를 즐기다 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전시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2층에 올라가려면 입장권을 제시해야 하는데 2·4·5층에서는 소장품 전시가, 3층과 6층에서는 기획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모마의 변화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는 4층의 새로운 공간 마리-조제 & 헨리 크래비스 스튜디오(The Marie-Josee and Henry Kravis Studio)에서는 퍼포먼스, 음악, 사운드 아트 등 실험적인 라이브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한편, 관람객이 전시 관람 후 대화를 나누고 직접 작품을 제작해볼 수 있는 크리에이티비티 랩(Creativity Lab)은 2층에 자리 잡았다.






마리-조제 & 헨리 크래비스 스튜디오에 설치된 데이비드 튜더 (David Tudor)의 ‘레인포레스트 V (Rainforest V)’.

모마 재개관과 함께 단연 관심을 모으는 것은 큐레이팅에서 느껴지는 변화다. 모마 측은 단 하나의 완성된 근현대 미술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소장품 전시 작품을 6개월마다 교체할 것이고, 다양한 매체의 작품과 다양한 지역, 출신의 작가를 망라하는 작품을 소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개관 기념 소장품전은 연대기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뉜다. 2층은 1970년부터 현재까지, 4층은 1940~1970년대, 그리고 5층은 1880~1940년대의 작품을 걸었다. 층마다 시대 별로 구분하긴 했지만 각 전시 구성은 연대기별로 각종 미술 사조(ism)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 매체나 작가, 작품, 혹은 연도, 아이디어, 장소, 심지어 저서나 큐레이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주제로 갤러리를 구성했다. 가령 2층에는 ‘공공 이미지’, ‘다운타운 뉴욕’,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천안문 전후’, ‘내부와 외부 공간’, ‘조디의 나의 % 데스크톱’, ‘도래할 세계’라는 제목을 단 갤러리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구성은 완성된 미술사를 제시하기보다는 소주제들을 별자리처럼 흩뜨려놓아 관람객이 직접 그 의미를 읽어내고 현재까지의 미술사를 고찰해보도록 유도한다.






2층 아트리움에 설치된 양혜규의 ‘핸들’.

남성, 백인, 유럽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던 주류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그동안 간과해온 작가들과 지역을 조명하겠다는 의도 또한 분명해 보였다. 추상회화 선구자로 불리는 스웨덴 출신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나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이탈리아 작가 카롤 라마(Carol Rama)가 당당히 모마에 입성했고, 2020년 1월 4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베티에 사: 흑인 소녀의 창에 대한 전설(Betye Saar: The Legends of Black Girl’s Window)>은 아상블라주라는 매체로 개인사와 함께 인종차별 문제를 꾸준히 거론한 베티에 사(Betye Saar)를 뒤늦게나마 조명하고 있다. 급진적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가 포프 엘(Pope. L)의 전시도 눈여겨볼 만하며, 2층 아트리움에서는 양혜규의 설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모마는 새로운 모더니즘, 대안적 미술사에 대한 요구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새로운 모마를 찾는 관람객은 쾌적한 환경에서 열린 태도로 미술 작품을 접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황진영(Jin Coleman Art Advisor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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