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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9 LIFESTYLE

한옥은 미래다

  • 2019-11-01

요즘 한옥은 전통 건축을 넘어 다양한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한옥에 사는 세 남자의 삶에서 동시대 한옥의 모습을 엿보았다.

1 공들여 조성한 마당에서 기개가 느껴진다.
2 건축주인 배윤목.




3 최소한의 요소만 남겨둔 침실.
4 모르소 벽난로의 온기로 가득 찬 거실.
5 서재와 홈 시어터를 둔 지하 공간.

새로 지은 모던 한옥 배윤목이 사는 목경헌
은평한옥마을에 자리한 목경헌에 들어섰을 때, 장인이 잘 재단한 거대한 슈트 안팎을 미로처럼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옥에 정통한 건축가와 취향이 확고한 건축주의 합이 맞으면 과연 다르구나 싶었다. 목경헌은 건축가 황두진이 설계한 작품으로, 2016년 대한민국 한옥공모전 준공 부문 올해의 한옥 대상 수상작이다. 4년 전, 이 지역에 한옥 붐이 일던 초창기에 집을 짓고 입주한 건축주 배윤목은 평생을 광고업계에 몸담았다. 제일기획을 거쳐 SK 마케팅 앤 컴퍼니에서 최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낸 그는 주로 기업 광고를 맡았는데, 감성 터치에 재능을 보인 그의 광고에는 이따금 한옥이 따뜻함의 메타포로 등장했다. 한데 배윤목이 오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한옥을 짓기로 결심한 계기는 다소 의외다.
“디자인 때문이었어요. 한옥은 여성적이고 아름다운 몸체를 지녔죠. 그리고 구석구석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따뜻한 건축이에요. 마치 여러 장인이 힘을 합쳐 만든 덩치 큰 공예품 같달까.” 비슷하게 재단한 공간에 억압받는 도시인의 몰개성적 삶에서 그는 도심 속 한옥을 탈출구로 택한 셈이다. 네모반듯한 땅의 무수한 선택지를 두고 굳이 마름모꼴 터를 택한 뒤, 자신이 꿈꾸던 한옥의 모습을 PPT 형태로 완성했다. 광고에서 아이디어 스케치와 섬네일이 그렇듯이, 건축에는 설계라는 첫 단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한 그는 자신의 청사진을 건축가와 공유하며 설계하는 데에만 꼬박 1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옥을 지으려는 건축주 대부분이 시공업체를 먼저 찾는 것과는 다른 노선을 택한 것. 목경헌을 두루 살피며 상상 속에서 그가 들뜬 맘으로 그렸을 청사진이 떠올라 풍경과 겹쳐 보였다. 결국 집은 건축주의 안목을 담는 그릇이다.
목경헌에서는 나무의 섬세한 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서까래가 유독 눈에 띈다. 서까래 노출은 냉난방 효율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그가 애초부터 고집한 부분이다. 거실에는 덴마크산 모르소 벽난로를 두고, 주방에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 식기와 가리모쿠 가구를 믹스 매치해 이국적 장면을 연출했다. 쪽마루를 통해 자연광을 들인 지하 1층은 벽면 가득 스크린을 설치해 근사한 홈 시어터로 완성했다. 그럼에도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공들여 조성한 마당이다. 향나무, 라일락, 공작 단풍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궁극의 명상 공간을 바라보며 종종 맥주로 목을 축인다. 전에는 쉬는 날마다 근처 쇼핑몰로 도망치던 그지만, 이제 쉬는 날의 안식처는 목경헌이다. 목경헌에서 사계절을 네 바퀴 돌아온 지금, 수축과 팽창을 거쳐 안정을 찾은 나무처럼 그 역시 단단해 보인다.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집이 사람을 길들여서일까.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 목경헌이 가장 고요하고 멋스러워지는 계절이 다가온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만나는 소담한 ㄷ자 한옥.

고쳐 쓴 한옥 여병희의 집, 하연재
여름 제비집’을 의미하는 삼청동 한옥 하연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소담한 ㄷ자 한옥이 손님을 맞는다. 여병희가 평생 살아온 곳으로, 결혼 이후 수선을 거쳐 신혼집으로 활용하고 있다. 태어나보니 집이 한옥이던 남자와 일생을 아파트에서 살아온 여자가 만나 일군 새로운 삶은 ‘삼청부부’라는 해시태그로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소상히 기록되고 있다. 구독자 타깃에 맞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방식의 글이 유용한 정보가 된다. 때론 한옥을 향한 사람들의 로망에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게 하며 일침을 놓지만, 대개는 몰랐던 한옥의 매력을 깨우쳐주어 한옥 전도사라는 별명도 붙었다. 신혼집을 준비하던 두 사람은 근처 한옥을 함께 돌아보며 마음에 드는 곳을 하나둘 점찍다 마크 테토의 집 평행재, 한국가구박물관 등 다수의 한옥을 작업한 건축가 이문호를 찾았다. 하연재는 그렇게 한옥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건축가와 건축주가 만난 탄생한 결과물이다.
인왕산의 차경이 액자처럼 걸리는 자꾸 바라보고 싶은 공간. 설거지를 할 때도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쪽창을 내어 한옥 특유의 다공성을 살렸다. 집 안 곳곳에는 두 부부의 상이한 취향이 자유롭게 공존한다. 이를테면 거실에는 USM 모듈 가구와 프리츠 한센의 세븐 체어가 놓여 있고 라이마스의 금속 조명이 달려 있는가 하면, 화장실 옆에는 이우환의 단색화 프린트가 붙어 있고, 서재에는 백당 윤명호 선생이 35년 전 그린 작품이 걸려 있다. 현대와 전통의 어우러짐이 하연재 안에서 이질적이지 않은 건, 두 부부의 취향을 사이좋게 반영해 현대적으로 대수선한 덕분이다. 롯데백화점에서 바이어로 일하며 그야말로 소비의 최전선에 있는 부부의 공간이라기엔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데, 덕분에 점점 비우며 사는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권 이상은 책을 완독하던 여병희의 책도 줄이고 줄인 끝에 50권 정도만 들여놓았다. 거실에 놓인 몇 점 안 되는 가구도 조금씩 덜어가는 과정에서 ‘더 적고 더 좋은 것’을 취하는 중이다. 하연재는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천천히 부부의 몸에 맞는 집이 ‘되어가고’ 있다.




6 건축주인 여병희.
7 인왕산의 풍경이 시원스럽게 담기는 테라스 공간.
8 좋아하는 책을 전시해둔 서재.
9 프리츠 한센, USM 모듈 가구가 한옥과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

한옥 매매 전문가 한양부동산 김광철 상무가 조언하는 매매 시 주의 사항
오래된 한옥은 대지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건물을 임의로 늘려서 쓴 경우가 많으므로 사전 측량은 필수다.
한 길에 여러 한옥이 들어선 경우 길 주인이 따로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합의되지 않을 경우 통행이 어려울 수 있다.
한옥은 절대적으로 수납공간이 부족하다. 비우며 살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재목이 잘 관리되어 있는지 살핀다. 관리 상태가 좋다면 매입 후 수리비가 확연히 줄어든다.
매입 후 용도 변경을 고려한다면 용도 변경 허가 가능한 구역인지 확인한다. 북촌한옥마을의 경우 보존 구역에 따라 제약 사항이 조금씩 다르다.




10 창호, 서까래 등 한옥의 요소를 재해석한 공간.
11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기다란 복도.
12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재미난 풍경이 연출된다.

하연재를 비롯해 한국가구박물관, 방송인 마크 테토의 집으로 알려진 평행재 등 다수의 한옥을 작업한 건축가 이문호와의 일문일답.
한옥 생활을 꿈꾸는 건축주가 최근 가장 궁금해하는 것과 어려워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설계비와 시공비, 목재 확보에 관한 것을 가장 궁금해한다. 대부분의 건축주가 국내산 소나무 수급이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건축설계와 시공 일정을 미리 계획하면 수급에 큰 어려움은 없다. 건축가로서 곤란한 부분은 건축주가 설계나 입지 정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소요 공사비를 대뜸 묻는 경우다. 한옥 공사비는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TV나 언론을 통해 소개된 한옥을 보고 막연히 한옥 생활을 꿈꾸는 건축주에게 한옥에 대해 알리는 것이 급선무다.

신축 한옥과 구옥의 증개축, 완공된 한옥을 구입하는 경우의 장단점은? 신축의 경우 건축설계 과정부터 건축주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므로 건축 후 모든 면에서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그만큼 건축 비용의 부담이 크고, 설계와 인허가 기간, 공사 기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구옥을 구입해 증개축할 경우 목재, 기와, 석재 등 기존 한옥의 좋은 자재를 재활용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유지・관리 상태가 양호하지 못해 신축에 버금가는 건축 공정이 수반되기도 한다. 신축보다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상황도 생긴다. 완공된 한옥을 구입하는 경우 설계, 시공, 인허가 과정이 생략되므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한옥을 구하기는 어렵다.

구옥을 대수선할 때 겪은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대수선의 경우 철거나 해체 과정에서 육안으로 직접 확인해야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데, 천장 속이나 지붕 속 상태를 짐작만으로 판단한 뒤 공사를 시작했다가 막상 철거・해체해보니 H빔과 철재 파이프 등 철 구조물로 교체되어 있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당연히 건축 비용이 예상보다 크게 증가했다. 한번은 한옥 벽체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인접한 한옥의 실내가 드러나기도 했다. 대지 경계를 공유해 오래전 확장 공사를 하고 벽체를 두 집이 함께 사용하는 까닭.

한옥을 관리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목재・기와 관리,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한옥의 골격을 이루는 목재는 습기에 약하므로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보호칠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외부 창호도 같이 관리해야 한다. 기와는 한두 장만 동파되거나 흘러내려도 누수될 수 있어 주기적으로 살피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옥 생활을 꿈꾸는 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주거 트렌드에 편승해 감성적 한옥 생활을 꿈꾸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장기 체류하는 등 미리 한옥을 체험하고 공부하는 것도 좋다.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재미난 풍경이 연출된다.

2019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인 건축공방의 심희준, 박수정 소장에게 동시대 한옥의 가치에 대해 물었다.
우리의 전통 건축물인 한옥은 첫 번째로 그 시대의 생각, 두 번째로 그 시대의 기술을 담고 있다. 자연 지형을 따라 배치된 한옥의 채는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고 땅에 대한 존중을 나타낸다. 건축물에 드러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대청마루와 구들방은 뚜렷한 사계절을 고려해 만들었는데, 기후에 맞게 지어 지역마다 조금씩 특성이 다르다. 한옥의 처마는 가장 일차적이며, 단순한 친환경 기법이다. 한국의 기후에 적합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건축양식이다. 여름에는 처마가 그늘을 만들어 실내로 들어오는 공기를 식히고, 겨울에는 해가 차단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해의 고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실내로 빛이 들어오는 시간이 길어진다. 자연적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 해를 받아들이는 것을 계절별로 조절하고 나무 기둥, 흙벽・창호지를 보호한다. 이는 기능적 기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한옥은 우리의 역사이자 유산이다. 이 유산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복원이나 예전의 전통 시공 방식으로 짓는 일은 더욱 가치 있다. 그러나 한옥의 기능을 적용하는 것은 형태를 지키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오늘날 건축에서 스케일과 상관없이, 우리는 처마와 온돌을 우리 시대의 기술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돌아봐야 할 한옥의 가치는 자연을 존중하는 방식의 건축을 만들어가는 생각이다. 그 생각에서 시작한 건축은 한옥 형태는 아니지만 새롭고 한국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 이 순간에 짓고 있는 건축이 우리의 역사이자 유산으로 남을 것이며, 그것이 아름다운 생각을 남기길 기대한다.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김잔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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