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NOVEMBER. 2019 LIFESTYLE

자동차에 이런 소리가 난다고?

  • 2019-11-01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소리조차 소중한 브랜드 경험의 요소가 된다. 차 안의 수많은 소리를 디자인해 자동차와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운드 디자인에 관하여.

1 BMW 비전 M 넥스트.
2 BMW 사운드 설계에 참여한 한스 치머.

자동차는 사람의 수십 배에 달하는 무게로 사람이 걷거나 뛰는 것보다 수백 배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다. 경우에 따라서는 흉기로 돌변할 수도 있기에 자동차에서 소리는 소음조차 소중한 정보가 된다. 물론 신경을 긁는 소음을 반길 사람은 없다.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없어선 안 될 정보인 소음조차 불쾌하지 않은 소리로 매만지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자동차 사운드 디자인(소리 혹은 음향 설계)의 출발점이다.
자동차 문이나 창문을 여닫을 때, 깜박이나 변속기 레버, 공조 장치 또는 카스테레오 등을 조작할 때 나는 미세한 소리를 연구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 듣기에 편안한 소리로 디자인하면 정보 전달이라는 목적에 충실한 것이고, 한발 더 나아가 소리의 고저장단이나 템포 조정으로 개성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면 제품 속성이나 브랜드 고유의 감성까지 표현할 수 있다. 예컨대 문을 닫을 때 나는 묵직한 소리는 ‘견고한 차에 탑승했다’는 안도감을 주고, 창문이 창틀에 차분하게 끼어 들어가면서 생기는 부드러운 마찰음은 차량 내부에 기품을 더한다. 이 같은 사운드 디자인을 차량 전반에 적용하면 운전자와 탑승객은 이를 브랜드의 특성으로 이해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MINI가 대표적으로, 깜박이와 후진 경고음, 도어 열림 알림 등 익살맞고 경쾌한 각종 조작·경고음은 그 자체로 ‘미니’스럽다.
사용자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는 고유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한다. 마세라티는 그 분야에 일가를 이룬 곳 중 하나다. 2000년대 말, 영국 고급차 전문 보험회사 히스콕스(Hiscox)는 여러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피실험자(여성)에게 들려주었고, 그중 마세라티 엔진음이 유독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를 별도로 두고 피아니스트, 작곡가 등이 함께 참여해 정교한 엔진음 튜닝 작업을 진행한 결과다. 사람의 본능이나 감성을 건드리는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것은 유럽 스포츠카 브랜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자동차 역시 벨로스터 N을 내놓으며 자사 첫 고성능 전용 모델에 걸맞은 소리를 디자인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엔지니어는 이 자동차의 엔진과 배기 사운드를 개발하기 앞서 호랑이 울음소리의 특색을 설명하는 주파수를 분석했다. 이후 배기 장치의 구조를 조절했고, 엔진의 후연소 소리와 전자식 사운드 제너레이터 같은 양념을 쳐서 특유의 박력 넘치는 사운드를 완성했다.




3 버메스터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탑재한 메르세데스-AMG GT.
4 후진 기어를 넣으면 차 안의 모든 소리를 낮추는 기능을 제공했던 볼보.

최근 자동차 시장에서는 사용자 경험이 브랜드 인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사용자 경험의 일부다. 소리로 브랜드의 독자성을 체화(體化)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강력한 요소일 수 있다. 예컨대 2010년대 초까지 볼보의 모든 차량은 후진 기어를 넣으면 오디오를 비롯한 차 안의 모든 소리를 한껏 낮추는 기능을 제공했다. 운전자가 차량 주변 소리와 주차 경고음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아주 소소한 기능이지만, 볼보가 뚝심 있게 지켜온 ‘안전’에 대한 철학을 사용자와 공유하기에는 충분히 훌륭한 소리 설계였다. 앞서 언급한 MINI는 사용자가 자동차에서 나는 각종 이채로운 경고음조차 사랑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엔진음과 배기음, 깜박이, 도어록, 후방 경고음 등을 휴대폰 벨소리로 편곡해 내놓는 재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브랜드를 향한 믿음은 오랜세월 켜켜이 쌓아온 한결 같은 모습에서도 빚어진다. 흔히 유산(heritage)이라 불리는 속성이다. 세심하게 설계한 사운드가 브랜드 유산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회사 중 하나는 포르쉐다. ‘스포츠카 70주년’을 맞은 2018년에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미국과 중국, 한국 등 포르쉐가 진출한 세계 각국에서 팝업 스토어처럼 포르쉐 스포츠카 70주년 자축 행사를 열었다. 방점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포르쉐 아레나에서 열린 ‘70주년 포르쉐 스포츠카-사운드 나이트’였다. 1948년형 356 로드스터부터 2017년의 919 하이브리드 경주차까지 포르쉐 스포츠카 70년 역사를 관통하는 13대의 아이콘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박력 넘치는 엔진음을 토해낸, 말 그대로 굉음(그리고 매연)으로 가득한 밤이었다. 초창기 도로용 스포츠카가 내는 소리에서는 애틋한 감수성이 묻어났고, 경주용 스포츠카는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조밀하고 정교한 사운드를 뽐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포르쉐 스포츠카의 사운드는 포르쉐 노트(수평 대향 엔진이 빚어내는 특유의 고동 소리)라는 한 단어로 설명 가능한 것이었다.




5 마세라티 V8 엔진은 정교한 엔진음 튜닝 과정을 거쳤다.
6 70주년 포르쉐 스포츠카-사운드 나이트.

자동차가 사용자의 생활양식을 대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운드 디자인의 차원이 차량의 수준을 따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자동차 브랜드와 명망 있는 하이엔드 홈 오디오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이 잦아진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AMG 역시 하이엔드 서라운드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다. 차에서 나는 온갖 소리가 정보인,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스포츠카 실내에서 콘서트홀 못지않은 정교하고 생생한 음악을 재생하기 위해 메르세데스-AMG GT는 11개의 라우드스피커로 1000W가량의 강력한 소리를 연주하는 버메스터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탑재했다. 고성능 스포츠카에 ‘선명한 사운드’는 낭비라 여기기 십상이지만, 고성능 역시 럭셔리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인 까닭에 하이엔드 사운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속성이다.
정교하게 디자인한 사운드의 중요성이 내연기관 차에만 머무르진 않을 것이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담는 사운드 설계는 ‘엔진 소리 없는’ 자동차인 EV 시대에도 변함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BMW는 얼마 전 #넥스트젠(#NEXTGEN) 이벤트를 열고 차세대 BMW의 방향성을 보여줬다. 이때 EV 시대의 BMW M을 예상한 쇼카 비전 M 넥스트의 사운드 디자인을 영화음악 거장인 한스 치머와 함께하고 있다고 밝혀 애호가들의 흥분을 자아냈다. 맹렬히 달리는 비전 M 넥스트가 과연 어떤 소리를 내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스치머는 “어릴 때 멀리서 BMW 사운드가 들리면 어머니가 오신다는 것을 알아채곤 했다”며 “미래 전기 BMW의 사운드를 설계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 정말 흥분된다”는 말을 남겼다. 아리송하지만, 적어도 그가 설계한 가상 사운드는 어린아이도 BMW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색 있는 소리일 것이다. 차원이 다른 카 라이프를 선사할 미래에도 분명 감성을 자극하는 사운드는 필요충분조건이지 않을까. 첨단 기술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해 청각뿐 아니라 오감을 자극하는 소리를 경험하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에디터 문지영(프리랜서)
김형준(자동차 칼럼니스트)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