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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9 FEATURE

부산에 부는 영화 바람

  • 2019-09-27

한국 영화가 100주년을 맞은 올해,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다. 마치 20대 청년처럼 활기와 혼란이 공존하는 영화제의 변화를 꼽아봤다.

지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는 영화 <버닝>의 주인공 전종서와 유아인이 함께했다.

좋은 작품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명작인 것이다. 나른한 오후에 필요한 책이나 주말 밤을 채워줄 영화, 만지고 싶은 조각.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관심을 굳이 시상의 형식을 갖춰 보는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또 그 자체로 장르의 부흥을 이끌기 위함일 것이다. 올해로 제24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중심이 되겠다는 목표에 꽤 꾸준히 접근해온 영화제다. 부산시가 공동 진행하며, 주류의 조건에서 벗어나 글로벌 무대에 오르지 못한 원석 같은 배우와 작품을 찾는 여러 길을 넘나들고 있다. 세계적으로 영화 산업이 축소되는 지금, 올해는 여성과 소수자 등 다양성에 힘을 더 싣기로 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85개국 303편의 영화를 영화의전당 등 부산지역 6개 극장 37개 상영관에 올린다. 상영작 중 150편이 이번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데, 이 중 월드 프리미어가 120편이고 자국 외에 최초 상영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가 30편에 이른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영화 중 40%가 신인 감독 작품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개막작은 카자흐스탄의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일본의 리사 다케바 감독이 공동 연출한 <말도둑들. 시간의 길>이, 폐막작은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가 선정됐다. 이 두 작품이 궁금한 이유는 명확하다. 두 영화 모두 영화제가 올해 전하고픈 뉘앙스를 담은, 책으로 치면 표지와도 같기 때문이다.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임대형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해야 할 아시아 감독에게 수여하는 뉴커런츠 부문을 수상했다. 그만큼 이 영화제가 성장했으며, 조금씩 열매를 거두고 있다는 상징이나 다름없다. 아버지를 따라가려는 아이를 두고 혼자 떠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흡사 서부극을 보는 듯하다. 영화의 배경은 자막 없이 봐도 좋을 만큼 탁 트인 초원이 펼쳐진다. 서구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의 새로운 전개가 무엇인지 주목할 수 있을 것. 윤희(배우 김희애)가 고교생 딸과 함께 첫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윤희에게>는 한때 일본 영화에 심취한 30~ 40대의 감성이 지금 어떤 감각으로 반사되어 보일지 가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시아 영화 경쟁 부문, 뉴커런츠상 후보작은 총 14편이다. (왼쪽부터) 라우 켁 후앗과 베라 첸 감독(대만)의 <잭푸르트>, 스즈키 사에 감독(일본)의 <나의 정체성>, 모하마드 레자 키반파르 감독(이란)의 <노마드 선생>, 짠 탱 휘 감독(베트남)의 <롬>, 밀란 압디칼리코프 감독(키르기스스탄)의 <달려라 소년>.

영화제가 뉴커런츠 부문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와 상영작 선정 등 집행 전반에 관한 갈등으로 지난 3~4년간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또 사실상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고(故)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의 막강한 네트워크로 일궈왔기에 2017년 칸 영화제에서 맞이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영화인을 슬프게 했다. 그래서 영화제는 스스로 이제야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부문별로 프로그래머를 조밀하게 기용했고,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고 있다. 기획자가 아예 특정 국가에서 몇 달간 살면서 좋은 작품을 찾거나 제작사를 만나기도 한다. 지난해 10편을 채우기 힘들었던 뉴커런츠 부문 초청작이 14편으로 늘어난 것도 그 과정의 결과다. 위기 속에 드러난 세대 변화의 순기능.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권 영화에만 집중돼온 스포트라이트가 확장되면서 다양한 시도가 돋보이는 인도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온 카자흐스탄, 태국을 비롯해 나라별 제작 수준 차이도 크게 줄어 작품 자체로 평가받는 건도 늘었다. 또 당대의 트렌드와 부산을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가는 시도가 눈에 띈다. 올해 처음 보이는 ‘아이콘’ 섹션은 지역을 불문하고 동시대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자리다. 한국 영화 <기생충>을 비롯해 켄 로치(영국) 감독의 <쏘리 위 미스드 유>, 자비에 돌란(캐나다) 감독의 <마이타스와 막심>, 모센 마흐말바프(이란) 감독의 <마르게와 엄마> 등이 영화계의 현재를 한눈에 보여준다. 또 지난해에 이어 부산영화제 속 영화제 ‘커뮤니티 비프(Community BIFF)’를 진행하기로 했다. 영화제 중 7일간 관객이 직접 영화를 선정(프로그래밍)하고 크라우드 티케팅을 거쳐 관객 수를 먼저 확보하는 순서대로 상영 일정을 잡는 등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영화 행사로 꾸리고 있다. 특히 크고 작은 이벤트 중 ‘정듀홍영화제’는 개막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관객이 행사 당일까지 어떤 영화인지 모른 채 오롯이 영화를 선정할 영화평론가 정성일, 듀나, 김홍준만을 믿고 참석하는 자리. 영화인과 영화 애호가가 공유할 수 있는 감수성과 코드를 살핀다. 또 ‘갈라 프레젠테이션’에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상영을 시작으로 웨인 왕 감독의 <커밍 홈 어게인>,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 <더 킹: 헨리 5세> 등을 소개한다.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으로 가득 찰 듯하다. 기자간담회에서 각 부문별 기획자의 설명을 들으며 뜨거운 떨림을 느꼈기 때문. 영화평론가 출신 이용관 위원장과 <8월의 크리스마스>, <말죽거리 잔혹사> 등 제작자로 유명한 차승재 PD가 유력한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아시아필름마켓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차 위원장은 이 자리가 곧 영화를 벗어나 드라마를 포함한 영상 콘텐츠 마켓으로 변화할 것이라 내다봤다. 기자간담회에서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여성 감독이 만들거나 공동 연출한 작품이 현재 27%에서 더 높아지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소수자 문제에 공감하는 영화를 심도 있게 다룰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소위 ‘메이저’ 영화제의 필요한 기능이자 역할이라는 점은 영화제 안팎에서 어쩌면 당연한, 무언의 공감을 얻는 부분이다.




1 올해 폐막작으로 선정된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 임 감독은 2016년 뉴커런츠 부문에서 넷팩상을 수상한 바 있다.
2 올해 아시아영화인상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수여됐다. ‘가족’을 소재로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선보이며 평단과 관객의 고른 사랑을 받아왔다.

비록 현장에 가지 못하고, 또 영화제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올해 초청작을 살피는 자체가 이미 영화제에 참여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영화 회고전의 주인공 정성일 촬영 감독의 작품 목록과 제작자 겸 배우로서 김지미를 다시 보는 ‘김지미를 아시나요’ 행사에 공감한다면 한국 영화 100주년인 올해를 기념하는 1인이 될 터다. 다만, 부산국제영화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안타까워할 만한 변화가 있다. 그동안 해운대를 배경으로 세운, 관객과 영화인 만남의 야외 무대 비프빌리지가 올해는 없기 때문이다. 주최 측은 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혹여 태풍이 찾아올까 매번 조마조마했다고. 지난해 완전히 파손된 무대를 직접 본 터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비바람만 아니면 바닷가 영화제의 낭만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이기에 팬들은 조금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떠랴. 관객에게는 영화와 함께하는 축제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을 여행의 핑계가 될 테니 말이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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