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현실적인 환상의 세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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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3

지극히 현실적인 환상의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어른이 늘었다. 한 편의 영화에서 깨닫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 논한다.

1 DDP에서 열리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별전> 모습. 올여름, 디즈니는 과거 애니메이션 명작인 <덤보>, <알라딘>, <라이온 킹>을 실사 영화로 바꿔 개봉한다.
2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능란하게 움직이는 감각적 화면만으로도 관객의 반응이 좋았다.
3 실제로 <겨울 왕국>은 개봉 당시 수입사조차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 1000만 관객이라는 흥행을 예상치 못했다.

‘어른 만화’ 마블의 인기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개봉을 앞두고 넷플릭스 추천 목록의 애니메이션 코너에서 더 크게 느껴졌다. IP TV의 홍보 편성도 그랬다. 모니터 앞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이라면 최근 5년 사이 체감하는 변화가 클 것이고, 지난해부터 양상이 조금 다르다는 점도 느꼈을 것이다. 최근에는 실사 영화를 다시 애니메이션 영화로 바꾸는 작품도 늘었다. 오리지널 스토리와 인물의 과거를 주로 소개하는 프리퀄(prequel)이나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스핀오프(spin-off)로 바꿔 앞뒤 이야기를 모르고 봐도 무방하다. 얼마 전 미국 워너 미디어의 애니메이션 채널, 어덜트 스윔이 애니메이션화하기로 공표한 <블레이드 러너>도 언제 본편을 공개할지 모르지만, 비슷할 것이란 예상을 한다. 짧은 티저 영상 공개만으로도 해외 영화 매체 게시판이 들썩였다. 1982년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오리지널 영화를 실사인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로 리메이크했을 때도 좋았다. 기술적 묘사에 한계가 없는 애니메이션이라면 그 차이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니까.
넷플릭스 애독자로서 최근 변화의 이유를 생각해보면, 현실보다 더한 사실적 묘사와 줄거리에 있지 않나 싶다. 어른끼리 공감대 형성도 늘었다. 겉보기에 애니메이션일 뿐 강한 디테일로 가슴 쓰리게 할 수도 있다. 지난해 연말에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처럼 존재 가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경우다. SF 영화에서 종종 듣던 평행 세계를 그렸는데,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 어느 쪽에 우리가 아는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뿜으며 날아갈 수 있는 다른 6명이 있고, 이들이 모여 세계 최강의 빌런(악당)과 맞선다는 얘기다. 세상에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것도 당혹스러운데, 또 다른 영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겪는 감정은 어쩌면 지독히 현실적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매일 출근하고 실적을 내는, 조금은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던 내가 사실은 큰 조직 안에서 누군가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한 사람일 뿐 임을 깨닫는 허망함처럼 말이다. 결국 이 영화는 제76회 골든글로브 베스트 애니메이션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시대 현실의 반영과 공감, 그리고 해소라는 영화의 속성에 충실한 결과다. 영화는 총 51개 수상, 33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비록 한국에서는 개봉 일정의 타이밍 차이로 여세를 잇지 못해 미국만큼 흥행하진 못했지만, 넷플릭스를 필두로 온라인 플랫폼과 IP TV 등 글로벌에서 감지되는 ‘이쪽’ 계열의 분위기는 더욱 진지하다. 에드워드 노턴, 틸다 스윈턴 등 호화로운 더빙 라인업과 웨스 앤더슨 감독의 한계 없는 연출 미학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개들의 섬>(2018)과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2018) 등 아이들 마음까지 사로잡은 후보를 모두 제쳤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제작사 소니는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함량 높이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토피아>(2016), <주먹왕 랄프 1, 2>를 연출한 리치 무어 감독을 영입한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연출 기회와 한계를 넘어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겠다는 소니의 비전에 끌렸다며, 이적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이건 대놓고 성인용 이야기를 자처하는 애니메이션에 한한 것일까? 아니, 영화 인사이더의 숨은 생각은 다르다. <겨울 왕국>(2014) 후속작이 올겨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앞서 티저 영상을 공개했는데, 어른들의 SNS가 술렁였다. 개봉 후 5년이 지나도 매해 겨울‘렛 잇 고’ 주제가와 눈사람 울라프 아이템 판매가 꾸준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많은 작품이 명목상 전체 관람가를 내건 애니메이션 영화지만 어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기획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실질적 상품은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잡고 각 캐릭터를 살려 성인 대상의 라이프스타일 제품군으로 기획하고 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연구가 나호원은 핵심을 짚는다. 1895년 12월 29일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e)를 상영한 지 정확히 100년하고도 하루 뒤, 컴퓨터로만 작업한 영화 <토이 스토리>(1995)가 등장한 이래 이어지는 장편 애니메이션의 꾸준한 활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때부터 성인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개념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육체적 성인을 의미했다면 지금은 경제적 성인을 의미합니다.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라면 싸구려 도색 잡지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린 적이 있었죠. 지금은 온전한 영화 콘텐츠로 받아들입니다. 이야기를 둘러싸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죠. 한 편의 광고처럼 소비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스포츠 관람이나 음주를 제외하면 성인 문화랄 게 없었다. “외국도 마찬가지였어요. 뮤지컬이나 오페라 외에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애니메이션 영화가 제공했어요.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즐길 수 있잖아요.” 이젠 VR까지 더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게다가 영화사를 짚어보면 애니메이션 영화는 원래 어른의 것이었다. 지난 4월부터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별전>(~8월 18일)에서 확인했다. 이곳은 평일 낮에도 성인 관람객이 줄을 잇는다. 중년 관람객에게도 영화 속 기술진화로 흥미를 끌고 노스탤지어를 부르기 때문이다. 1927년생 미키 마우스 캐릭터가 장편영화로 진출한 것은 1937년인데, 그 전에는 관객층에 어린이를 딱히 구분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영화 역시 초기는 어른의 것이었으며 어린이 관객이 늘면서 여느 마케팅 전략처럼 특화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 침을 뱉거나 잘못을 하고 경찰에 쫓기는 미키 마우스는 바람직한 어린이상을 보여주는 장면 속으로 옮겨갔다. 자동차와 의류 등 많은 공산품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더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은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뒤이어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로 대변되는 서정적 일본 애니메이션이 서브컬처로 다가왔다. 디즈니 영화에 빠졌던 이들이 어느덧 30~40대로 성장했다. 이들은 어떤 문화든 쉽게 지갑을 여는 소비자이며, 현실의 조소를 최전선에서 체감하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이들을 통해 새로운 시도와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바람이 구체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그래도 ‘왜 하필 애니메이션 영화인가?’ 다시 묻고 싶다. ‘어벤저스’ 군단처럼 이토록 화려한 실사 영웅이 활약 중인데도 말이다.
이 질문에 심리학자 길영란은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말한다. “실제 잔혹한 인물이나 본능에 관한 주제라면 애니메이션이란 장치가 심적 완충제가 되어줍니다.” 실제가 아니므로 같은 일도 덜 무섭고 관조적으로 보도록 하는 순기능. 하나 더 있다. “보통 내가 끌리는 색의 의미가 곧 지금 내게 결핍한 것을 의미해요. 예를 들면, 초록색이 유난히 끌리면 그건 휴식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사람은 다채로운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즐거워져요.” 지금의 어른들은 모니터 속밖에 갈 곳이 없는 걸까? 보다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문장과 서비스를 즐기고 싶은 건 분야를 막론하지만, 다시 아이가 되기에 이만큼 빠르고 저렴한 것이 없다. 오늘 저녁엔 뭘 봐야 할까? 기왕이면 혼자서 보고 싶다. 내 어린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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