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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9 SPECIAL FEATURE

황혼부터 새벽까지 춤추는 웨딩 마치를

  • 2019-03-13

황혼 무렵부터 새벽까지 연습을 했던 발레리나는 자신을 늘 바닥까지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렸다. 최근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은 순간에도 ‘마흔의 발레’를 생각하고 있던 그녀가 곧 결혼을 한다. 그녀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 깊이 있는 발레를 느끼기 위한 과정이 아닐지.

플리츠 드레스는 Peter Langner by Maison Reve, 헤어 장식과 크리스털 이어링은 Maison Reve.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발레리나 박세은. 그녀가 최근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한국 발레계에서 주목받았던 화려한 생활을 뒤로하고, 2011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한 박세은은 늘 자신을 바닥으로 끌고 내려갔다고 했다. 그녀는 얼마 전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브누아 드 라 당스 시상식에서 수상 후에도 볼쇼이 발레단에서 최고 명성을 누리고 있는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나는 어떤 춤을 추고 있을까.’
전 세계 발레인이 주목하고 있는 그녀의 발레를 한층 더 깊어지게 할 일이 있다. 오는 7월에 웨딩 마치를 울리는 것. 내면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해야 할 작품을 만날 때 ‘결혼’은 그녀에게 또 다른 어떤 지점을 보게 해주지 않을까. 그녀는 발레 때문에 출산을 걱정하는 것은 이제 과거 얘기라며 밝게 웃었다.




1 아코야 진주가 달린 화이트 골드 이어링은 Tasaki, 각진 어깨가 특징인 롱 슬리브 드레스는 Bridal Kong.
2 플리츠 드레스는 Peter Langner by Maison Reve, 헤어 장식과 크리스털 이어링은 Maison Reve.

7월에 결혼한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을까? 몸을 혹독하게 다루는 발레리나에겐 더 특별할 것 같기도 하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만 42세가 정년이다. 결혼과 출산을 한 에투알들도 다시 발레단으로 돌아와 춤을 추다가 42세면 조직 생활에서 벗어나 은퇴하거나 개인 작업을 이어간다.
결혼은 발레에 도움을 주는 계기가 아니라 인간이 성숙해지는 또 다른 갈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이 발레에 대한 특별한 이해를 도모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면을 숨김 없이 드러내야 하는 작품을 만났을 때 이전과는 다른 깊이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있다. 예전엔 클래식 발레에서 출산을 한 후 최고 위치를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이젠 아니다. 율리아나 로파트키나가 그랬고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도 그랬듯이 발레 때문에 출산을 고민하는 일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됐다.

결혼할 분에 대해 소개해달라. 어떤 로맨스가 있나? 파리에서 6년을 만난 사람이다. 옆에서 외조를 너무 잘해준다. 늘 내 걱정만 하는 사람.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는데, 당신의 발레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볼쇼이 극장에 열린 브누아 드 라 당스 시상식에 참석하기 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대표해서 볼쇼이의 갈라 무대에 올랐다. 박세은의 춤이 세계에서 통한다는 걸 느낀 순간이다. 프랑스 발레, 러시아 발레로 구분해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결국 통한다고 생각하고 파리에서 발레단 활동을 이어왔다.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의 부인이기도 한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는 여전히 볼쇼이 발레단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자하로바는 브누아 드 라당스를 여러 번 받았지만 이번에 또 받았어도 전혀 놀랍지 않을 오라가 있었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마흔이 되면 어떤 춤을 추게 될까’라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즐겁게 춤추면서 자신이 만든 선입견에서 벗어나고 있던 찰나에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았다고 했는데, 스스로 만든 선입견은 무엇이고, 어떻게 벗어나게 되었나? 또래보다 발레를 늦게 시작했고, 선행 학습이 늦었다는 생각에 주니어 때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주위를 살피지 못했던 것 같다. 로잔 콩쿠르를 비롯해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입상했지만, 콩쿠르 우승만으로 발레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건 무용수들이 가장 잘 안다. 어느 안무가의 눈에 들고, 감독이 좋아하는 성향과 내 장기가 다르면 어떡하나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이 만든 기준에 나를 맞춰야 성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일종의 편견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파리에 와서 프리미에르에 오르기까진 늘 나와의 싸움이었고, 에투알(수석무용수)이 되더라도 늘 불안할 것이다. 정말 발레는 끝이 없구나 싶다가, 그게 또 매력이구나 싶을 때 이 상을 받게 됐다. 좋은 춤을 추다 보면 언젠가 세상이 내 춤과 나를 알아보는구나 싶어 막막한 마음이 한 꺼풀 벗겨졌다고나 할까.




핑크빛 롱 드레스는 Rivini by Kayla Bennet.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당신만의 방법이 궁금하다. 매일 꾸준히 연습하는 것 외에 어떤 규칙이 있는가? 유기농 음식을 먹는다든지, 오거닉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발레단의 오전 클래스에 꼭 참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나가서 내 몸을 확인하고 상태에 맞게 조절하면서 작품을 연구하는 게 버릇이 됐다. 여기에선 두 작품에 동시에 출연하면서 또 다른 작품을 연습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에너지를 잘 유지하는 것이 퍼포먼스의 퀄리티와 직결된다. 그래서 소화가 잘되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되도록 오거닉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테니스 선수처럼 발레 무용수들도 공연을 전후에 바나나와 초콜릿으로 에너지와 당분을 보충한다. 그래도 탄산음료는 삼가는 편이다. 가볍게 식사해서 몸을 가뿐히 유지했다가 전력을 다하고, 공연 이후에 가끔 늦게까지 문을 여는 레스토랑에 가기도 한다.

당신은 ‘발레를 연구하는 사람’ 같다. 어떤 작품은 어떤 무용수를 참고하거나, 기존의 명작을 그대로 카피하려는 유혹이나 편견에 빠지지 않는다. 어려서 콩쿠르를 준비할 때부터 내가 생각하는 춤과 발레 본고장의 오리지낼리티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작품을 연구할 줄 아는 자세와 두뇌, 습득의 속도와 동료 간의 우정 역시 내 춤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아름다운 만큼 고통스러운 건 발레만이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인생 철학이 궁금하다. 혹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고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알고 싶다. 발레를 택한 건 나의 의지였지만, 발레 무용수는 정년이 있고 은퇴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이 어떨 것인지 지금 고민하는 게 큰 의미는 없지만, 아마도 춤과 무용, 예술과 함께하는 삶이 보다 가치 있는 인생일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추고 있는 많은 명작 중 안무가가 범한 시대착오적인 시각을 담은 작품을 보면서 인류가 이래선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될 때 갈등한다. 여성의 인권이 유린되고, 의지는 약하고, 끌려다니고, 구원자가 나타나야 살아나는 캐릭터를 오늘날의 여성이 어떻게 제대로 이해하겠나. 하지만 요즘 현명하고 의식 있는 안무가가 많이 나오고 있고, 춤도 세련된 작품이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들어온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더욱 충실한 작품들을 만나면 이런 괴리감은 줄어들 것이다.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이 있는가?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달라. 파리 오페라 발레단 생활이 곧 10년을 바라보면서 웬만한 작품은 지켜봤고,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클래식 발레의 핵심인 <백조의 호수>는 꼭 주역을 해보고 싶다. <지젤> 같은 발레 블랑뿐 아니라 로열 발레로 치면 <마농>, 슈투트가르트 발레로 치면 <카멜리아 레이디> 같은 드라마 발레도 기회가 되면 주역을 맡고 싶다.




니트 짜임 미니드레스는 Dior, 튈 스커트는 본인 소장품.

 

 

에디터 김수진(suze@noblesse.com)
사진 김보성   패션 스타일링 배보영   헤어 한지선    메이크업 김지현   소품 스타일링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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