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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9 LIFESTYLE

‘같이’의 가치

  • 2018-12-27

소수의 재능이 집단을 이끄는 시대가 저문다. 수많은 개체의 협력과 경쟁, 마찰과 토론으로 탄생한 집단 지성이 미래를 만든다. 새로운 세기의 문을 연다. 함께여서 더욱 빛을 발하는 팀들의 시너지와 유의미한 결과물을 모았다.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낫다.

왼쪽부터 김완진, 이규태, 한지혜, 최재훈, 최영훈, 조민준, 어지혜, 장준오, 김미래.

스펙트럼의 확장, 스펙트럼 오브젝트
영감은 외부에서 온다. 타인의 취향을 목격했을 때, 혹은 대화 같은 상호작용 속에서 예술은 탄생한다. ‘스펙트럼 오브젝트’는 교감과 토론이 서로에게 얼마만큼 자극을 주고 성장하게 하는지 아는 예술 창작 집단이다. 아트 디렉터와 디자이너, 회화 작가, 광고 디자이너, 매체 편집장 등 총 10명의 아티스트는 2주에 한 번 모여 서로의 작품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영감을 얻으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성북동에 위치한 ‘스팍스에디션(장준오, 어지혜가 운영 중인 디자인 스튜디오)’ 작업실을 찾은 날엔 마침 정기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주제는 미국의 재즈 싱어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 ‘미스티’. 아티스트들은 곡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작업한 각자의 작품을 설명하고 토론했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동조하며,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칭찬한다. 아쉬웠던 부분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수용한다. 스펙트럼 오브젝트가 모임을 시작한 지도 벌써 3년, 그간 유의미한 결과를 남겼다. 지난해엔 500점에 달하는 결과물을 이태원의 ERD 갤러리에서 ‘스펙트럼 오브젝트’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고 ‘루이치 사카모토’를 주제로 작업한 작품이 담긴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아트 디렉터 장준오는 “모임이 거듭될수록 각자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이건 우리에게 공부이자 휴식이며, 창작 그 자체죠. 그래서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1 왼쪽부터 오현진, 김미수, 남궁교, 이광호.
2 이질적 소재인 스테인리스스틸과 벨벳을 매끈하게 조합한 아르의 ‘SV Series’.
3 이광호 작가가 선보인 그간의 금속 작업과 연결 선상에 있는 ‘Aluminium Chair’.

디자이너와 공간 스튜디오의 만남, 서플라이 서울
2016년, 디자이너 이광호는 수상한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서울을 베이스로 한 전시, 행사 등 다양한 작업과 아이디어를 ‘공급’하는 형태의 컬처 프로젝트 ‘서플라이 서울’. 성수동의 한 작은 공간을 베이스로 찬찬히 성장해온 서플라이 서울은 최근 규모를 확장해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니트 메이커 김미수, 공간 스튜디오 아르(ARR)가 합세했다. “서플라이 서울을 운영하는 데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다수가 생각하고 의사 결정하는 편이 보다 전문적이지 않을까 싶었죠. 밴드처럼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역할을 배정해나갈 예정이에요.” 이광호, 김미수, 그리고 남궁교와 오현진의 팀 아르. 이 세 팀의 합은 수많은 프로젝트 크루의 합집합이거나 부분 집합 또는 교집합이다. 이광호와 김미수는 ‘케이엘엠에이비(KLMAB)’란 워크웨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남궁교와 오현진, 이광호는 재료와 공간을 탐구하는 ‘엔오엘(NOL)’이란 프로젝트 그룹 멤버다. 2018년 11월, 서플라이 서울의 새 출발을 기념한 전시 을 기획하면서 운영자 세 팀은 기획자이자 동시에 작가로 임했다. 여기에 평소 좋아하던 작가를 섭외해 총 10팀이 각자 개성을 담은 ‘앉을 것’을 만들어 전시했다. “공동 목표요? 아마 전부 다를 걸요? 아, 그거 하나는 같겠네요. 다양한 일을 재미있게 해나가는 거.” 주로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받아 작업하는 디자이너와 공간 스튜디오에, 주어진 미션 없이 새하얀 캔버스가 툭 던져졌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플라이 서울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다.






4 왼쪽부터 블랭타임, 재달, 제이호, 뱃사공.

즐거운 힙합 모임, 리짓군즈
힙합은 문화다.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며 젊음이 부유하는 공간이다. 힙합은 이제 ‘돈이 되는 문화’가 됐다. TV나 인터넷에 화려함과 패션, 음악같은 부분이 도드라졌지만 힙합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긴 어렵다. ‘리짓군즈(LegitGoons)’는 이러한 힙합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크루다. 리짓군즈의 멤버인 래퍼 뱃사공, 블랭타임, 제이호, 재달과 프로듀서 어센틱, 코드쿤스트, 요시, 빅라이트, 아이딜 등이 음악을 만들고 윤카키와 권오준은 뮤직비디오와 영상을 담당한다. 여기에 사진을 책임지는 이동건과 잡일을 담당하는 부루, 객원 멤버인 오락부장 던밀스와 임원인 넉살까지 기상천외한 직책과 파트가 있다. 힙합 레이블이 늘어나고 회사 사람들끼리 뭉치는 시대에 7년 동안 크루의 유지가 가능했던 건 서로에게 자극을 받는 것과 즐거움 때문이다. 블랭타임은 “이건 우리의 놀이이자 좋아하는 걸 하는 방식이에요.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가도 음악 이야기가 나오면 진지해져요. 혼자라면 상상도 못할 텐데, 함께하니 가능한 것이 많아요”라고 말한다. 리짓군즈는 여타 힙합 뮤지션과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Mnet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로 얼굴을 알린 후 음원 차트와 오프라인 공연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대신, 유행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자신만의 컬러가 담긴 작업을 하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팬들과 만난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힙합플레이야의 ‘내일의 숙취’나 리짓군즈 자체 채널의 동영상 콘텐츠는 이미 수십 만의 조회 수를 자랑한다. 뱃사공은 “요새 힙합하는 뮤지션과 조금 다른 길을 가고 있어요. 그게 저희한테는 중요한 일이에요. 괜한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걸 팬들과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5, 6 <리짓군즈>는 음악의 기획과 사운드 메이킹, 녹음과 뮤직비디오까지 크루 내부에서 완성한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서로에게 자극제이제 촉매제가 된다.






왼쪽부터 정성일, 김한솔, 송용우, 장진주, 류일진, 김용현.

무엇이든 만듭니다, 팹브로스 제작소
놀면서 일하는 건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건 철없는 아이나 하는 망상이라고,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적어도 팹브로스 제작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까지는. 기획자이자 엔지니어 김용현, 정성일이 공동 창업한 팹브로스는 제작과 문화 행사 기획, 메이커 교육을 진행하는 메이커 그룹이다. 대학 동기인 두 대표는 오픈소스 제조업 운동 ‘메이커 운동’(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들인 ‘메이커’가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흐름을 통칭하는 말. 미국 최대 IT 출판사 오라일리 공동 창업자였던 데일 도허티가 만든 말이다)을 즐기다 국내에서도 메이커 문화가 부흥하길 꿈꾸며 제작소까지 차리게 됐다. “처음엔 이런 걸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싶었죠.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잘 굴러가는 거예요. 주변에 도와주는 친구가 많아서 가능한 일이에요.” 팹브로스란 이름으로 문을 연 지 4년째. 이후 합류한 소속 디자이너 김한솔, 막내 엔지니어 류일진을 제외하고도 크루는 숱하게 많다. 제작소에 상주하는 Iss 스튜디오 이성식 작가, 고양이 가구 제작자 ‘제니앤드시토’의 장진주, 서울이노베이션팹랩 강사 송용우, VR 아티스트 및 작곡가인 진자앤요셉까지. 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 ‘재미’다. “재미있으니까 더 잘하고 싶고,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능력치가 늘어나는데 그걸 실감하는 것 또한 재밌어요.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함께하는 사람이 달라진다는 점도 재미죠.” 무엇이든 만들어준다는 소문에 제작 의뢰가 많지만, 재미없을 것 같은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다. 이왕이면 새로운 것, 어려워 보이는 일에 도전한다. “메이커 문화 안에서 하나하나 제작하다 보면 못 만들 것이 없어요. 어려워 보이는 일이 손쉬워지면 우리의 상상은 점점 더 커지겠죠. 지금은 그 상상을 쉽게 구현하는 팀이 되는 연습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8 왼쪽부터 신아녜스, 정평화.

위안의 합주, 꽃파도
음악은 하나의 의견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며 논조와 지향점이 있다. 프로듀서와 연주자, 보컬은 각자의 소리로 하나의 사운드를 만든다. 그것은 누구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래서 밴드 결성이 어렵다. ‘꽃파도’는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정평화의 프로젝트 그룹이다. 그가 작사와 작곡, 편곡, 드럼, 베이스, 기타 등을 맡아 전체적 밑그림을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신아녜스는 따듯한 목소리로 색을 입힌다. 정평화는 “아녜스의 맑고 단단한 보컬이 꽃파도의 또렷한 색을 만들어줬어요. 막연히 하고 싶던 음악을 이젠 더 디테일하게 구상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개성이 또렷하지만, 서로에게 잘 묻고 포개진다. 지난 2장의 싱글에 이은 이들의 첫 번째 EP 앨범 는 가로등이 꺼진 골목과 볕이 들지 않는 음지를 노래한다. 동물 유기, 노인 유기, 아동 유기 등 사회문제와 종교에 맹신하던 부모님에 대한 연민, 꽃 같은 나이에 바다로 사라져버린 아이들을 향한 위로이자 그리움을 부른다.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세상을 온전히 느끼며 덤덤히 읊조리는 따듯한 멜로디다. 신아녜스는 “평화 오빠와는 대학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간 종종 만나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만 나눴는데, 어느 순간 세상과 보는 관점이 비슷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걸 노래로 해보자는 의견이 나와 시작했는데, 이렇게 잘 맞을 줄 몰랐죠.” 꽃파도는 앞으로도 세상을, 우리 앞에 놓인 현실에 대해 노래할 예정이다.




9, 10 <꽃파도>의 음악은 교감이다. 각자가 세상과 나누는 교감을 다시 정평화와 신아녜스가 나눈다. 도란도란한 과정에서 멜로디와 목소리가 탄생한다.






시민행성 함돈균.

실천적 인문학 공동체, 시민행성
경복궁 돌담 사잇길 골목엔 작은 행성이 있다. ‘실천적 인문학 공동체’라는 수식어처럼 ‘시민행성’은 인문학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곳이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은 시인 이원, 고려대학교 조성택 교수, 철학자 진태원 등과 함께 2012년 겨울 ‘시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는 어떻게 형성될까?’, ‘품격 있는 사회란?’, ‘통합을 촉진하는 방안은?’ 같은 것들을 토론하다 행성을 꾸렸다. 더 많은 행성 시민들과 사회적 공공성과 공존을 논의하고 싶어서다. 이곳에선 독서와 시 낭송 같은 문학부터 종교의 화쟁(和諍), 도시와 건축 이야기, 예술과 역사 등에 관한 정기 강좌와 인문 캠프가 열린다. 사회, 종교, 문화, 예술 등 우리 삶과 밀접한 것에 대한 새로운 목소리인 셈이다. 소설가 한강, 시인 김행숙, 건축가 조성룡, 아트센터 나비 관장 노소영 등 각 분야의 인사들은 이와 뜻을 같이해 비정기적 프로젝트로 시민행성과 함께했다. 시민행성의 탄생을 기획한 함돈균은 “초기엔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한국에 인문학은 많지만 정보성이 대부분이지 가치 지향적 교육은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무얼 배우기보다는 지식을 공유하고 함께 토론하는 ‘시민적 삶에 뿌리내린 공공적, 창의적, 실천적 생각학교’인 셈이죠”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시민행성은 인문 정신에 기반한 NGO일 수도 있고, 논쟁과 화합을 위해 개방된 광장일 수 있으며, 사회적 근육과 철학적 사유를 돕는 인생 학교일 수도 있다. 참여자가 느끼는 대로, 배우는 대로 그 모습은 시시각각 변한다. 현재 시민행성은 숨 고르며 2기를 준비 중이다. 현재까지 진행했던 여러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좀 더 많은 인원과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은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다.

 




11 시민행성이 말하는 인문학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것들이다. 도시와 건축도 거기 포함된다.
12 청년과 다양한 문화를 주제로하는 세미나도 주최한다.
13 시민행성은 인문학의 공부방이자 토론의 장이다.






왼쪽부터 김은정, 배건웅, 김태윤, 성래현, 허혜연, 양수임, 정명진.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위해, 이타카
우리는 매일 먹고 마신다. 그러나 하나의 요리 너머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관심이 없다고 해야 맞다. 그러는 동안 지구는 꾸준히 병들어왔다. 대부분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동안, 지속 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해온 이들이 있다. 서촌 주반의 셰프 김태윤을 필두로 조리복 브랜드 븟의 대표 배건웅, 갓포치유와 레스토랑 퍼멘트 비의 공동대표 성래현과 양수임, 녹색소비자 연대 허혜연 국장이 그 주인공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요리사가 이루는 순환적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은 몇 달 전 압구정동에 ‘이타카’라는 레스토랑을 통해 고민의 결과를 드러냈다. 비욘드 디시(Beyond Dishes). 이타카에서 마주하는 요리는 접시 이면의 이야기를 한다. 전달자인 요리사는 환경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철학과 양심을 지닌 생산자로부터 온 식자재로 만든 요리를 통해 소비자에게 화두를 던진다. 과연 옳은 소비란 무엇인가?
“지속 가능성이란 진지하고 다소 무거운 담론이기에 좀 더 펑키하고 위트 있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해요.” 그래선지 감각적 색과 디자인으로 치장한 공간은 그저 힙한 레스토랑 같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당신과 나의 가을’ 같은 감성적 제목을 지닌 코스 요리는 한술 더 뜬다. 그럼에도 푸드 마일리지(먹거리가 생산자의 손을 떠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동 거리. 생산, 운송, 소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의 정도를 의미한다)를 각 생산지별로 적어놓아 경각심을 일깨운다. 그 뒤편에는 매니저 정명진, 요리사 김은정을 포함한 이타카 소속 스태프의 실명이 적혀 있다. 내부의 결속 또한 지속 가능성의 중요한 일부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이타카는 교육, 캠페인성 행사도 자주 연다. 공동 목표를 지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룬 작은 날갯짓이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온 식탁에 전해지기까지, 이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최민석(스펙트럼 오브젝트, 리짓군즈, 꽃파도, 시민행성), 이재안(서플라이 서울, 팹브로스 제작소, 이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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