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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4

내가 선택한 길

“오직 작가의 길밖에 없었다.” 세라 모리스에게 20년간 현역 작가로 활동한 소감을 물으니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이어 말한다. 모든 건 세라 모리스 자신이 선택한 결과라고.

2018년 베이징 UCCA에서 개최한 개인전 < Odysseus Factor >에서 만난 세라 모리스.

세라 모리스
1967년 영국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브라운 대학교 기호학과, 케임브리지 대학교 정치철학과를 졸업한 후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인디펜던트 스터디 프로그램(The Independent Study Program)을 통해 미술을 공부했다. 바이엘러 재단, 화이트 큐브, 에르 드 파리 등 전 세계를 오가며 개인전을 열었고 조앤 미첼 재단 회화상, 아메리칸 아카데미 베를린 프라이즈 펠로십 등 수상 경력도 쌓았다. 깔끔한 그래픽 이미지로 대도시를 재현해온, 명실상부한 성공한 작가다.

도시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가 있다. ‘뉴욕 시티’를 그린 몬드리안이 그랬고, 가학적 작업을 한 크리스 버든도 도시에 매혹돼 ‘메트로폴리스 II’를 선보였다. 세라 모리스도 마찬가지. 그녀는 대도시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부터 뉴욕, 라스베이거스, 로스앤젤레스, 리우데자네이루, 베이징 등 여러 대도시를 꾸준히 작품화했다. 그녀의 문법을 통해 빌딩은 정갈한 격자무늬로, 화려한 네온사인은 오색찬란한 색으로 재해석된다. 도시를 포착하는 작가는 여럿이지만 세라 모리스만큼 많은 곳을 깔끔하게 다룬 이는 드물다. 20년 동안 한 우물을 판 덕에 그녀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작가가 됐다.






마이애미 키비스케인(Key Biscayne)에 설치한 공공 미술 ‘Monaco’.

동시대 예술가 트레이시 에민, 제러미 스콧에 이은 롱샴(Longchamp) 컬래버레이션부터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잭슨 폴록 등 유명 예술가가 거쳐간 유니클로(Uniqlo) SPRZ NY 협업까지. 여기에 올해 샌프란시스코, 뉴올리언스, 베이징, 홍콩, 비엔나에서 열리는 개인전만 총 5개다. 단체전과 아트 페어까지 헤아리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지금 전 세계 아트 신이 가장 원하는 스타 작가, 세라 모리스. 식지 않는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아트나우>를 통해 그 이유를 알아보자.











Rakia, Household Gloss on Canvas, 2018

얼마 전까지 작업을 위해 일본에 머물렀다고 들었어요. 그 전에는 전시를 위해 중국에 있었죠. 바쁜 나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멀티플레이어처럼 살고 있어요. 다음 전시, 새로운 아이디어, 필름 제작 방향 등 생각할 게 많아요. 전부 작업과 연관돼 있죠. 예술을 사랑하기에 끊임없이 하고 싶은 일이 생깁니다. 쉴 틈이 없죠. 그래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 해요.

2018년 상반기에만 개인전을 세 차례 열었습니다. 특히 베이징 UCCA와 미국 뉴올리언스 컨템퍼러리 아트 센터(Contemporary Arts Center, New Orleans) 전시는 거의 동시에 오픈했어요. 당신에게 전시 소개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UCCA의< Odysseus Factor >전과 뉴올리언스 컨템퍼러리 아트 센터의 < Sawdust and Tinsel >전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우선 둘 모두 6월 17일까지 열려요. < Odysseus Factor >는 14개의 필름, 드로잉, 페인팅, 영화 포스터 등 제 작품을 총망라한 회고전입니다. 이 전시를 위해 그레이트 홀(Great Hall)에 벽화도 그렸고요.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건 순전히 제 의도예요. 아이디어로 가득 찬 공간에서 관람객 스스로 사고하고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예술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 Sawdust and Tinsel >은 앞선 전시의 간소화 버전이에요. 작은 공간에 알맞게 핵심만 걸었어요. 반면 7월 7일까지 진행하는 화이트 큐브 홍콩(White Cube Hong Kong)의 전시는 다른 성격을 띱니다.






쿤스트할레 브레멘(Kunsthalle Bremen)에서 열린 개인전 < Jardim Botanico > 전경.

어떤 면에서요? 하나의 확실한 주제가 있죠. 오직 새 작품만 공개합니다. 이곳에선 구겐하임 아부다비(Guggenheim Abu Dhabi) 커미션 필름인 ‘아부다비(Abu Dhabi)’와 새로운 회화 시리즈 ‘사운드 그래프(Sound Graphs)’를 선보입니다. ‘아부다비’는 미국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이론에서 시작된 작품입니다. 미국이 세계를 주도한다는 이 환상적 이론은 중국과 아부다비의 급성장으로 깨졌죠. 도시는 각각 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문화적·지역적·역사적으로 교류하며 얽히죠. 그 관계를 작업에 반영해요. ‘아부다비’처럼요. 또 지난 시리즈를 참고해 다음 작품의 지역을 선정하기도 해요. ‘아부다비’도 전 작품인 ‘미드타운(Midtown)’과 ‘베이징(Beijing)’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죠. 이렇게 도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그 외에 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요? 도시의 변화하는 모습을 들 수 있죠. 도시는 살아 있어요. 스스로 무너지고 재건되고 때로는 이주합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 권력도 고정적이지 않아요. 즉 도시의 상호작용과 유동성이 제 작업의 핵심이에요.






1 UCCA에서 열린 개인전 < Odysseus Factor > 전경.
2 뉴욕 퀸스 게이트웨이 스쿨 오브 사이언스(Gateway School of Science)에서 볼 수 있는 작가의 공공 미술.

작품의 두 축을 이루는 회화와 필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베이징’, ‘리우(Lio)’ 그리고 최신작 ‘아부다비’까지 도시를 필름과 회화로 각각 표현하죠. 하지만 회화는 추상적인 반면, 필름은 현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았습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예요. 회화와 필름은 ‘동전의 양면’ 같아요. 세라 모리스라는 한 명의 작가가 제작했기에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영상을 찍는 도중 캔버스 작업을 하고, 그림을 그리다 다시 촬영으로 돌아가죠. 동시에 두 매체를 다뤄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공통점이 생깁니다. 겉모습만 다를 뿐 같은 타이틀과 도시, 제작 방법, 색감을 공유하죠.

사람들은 당신의 필름이 사실적이라는 이유로 다큐멘터리라 말하곤 하죠. 이에 다큐멘터리라는 호칭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작품이 어떻게 보였으면 하나요? 제 영상이 판타지, SF, 시사 영화 등 여러 장르로 보이길 원해요.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말하지만 제 필름은 진실만을 담진 않거든요. 즉 하나의 주제를 파고들어 조사하지 않죠. 리얼리즘, 판타지, 컨슈머리즘(consumerism) 등 최대한 다양한 관점을 영상에 담고자 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라고 불리는 건 피하고 싶습니다. 명칭을 부여한다는 건 결국 하나의 매체로 규정짓는 거니까요. 굳이 칭한다면 준다큐멘터리(quasi-documentaries)라고 할까요.






2017년 스위스 크슈타트(Gstaad) 기차에 그린 ‘Monarch’.

당신을 이야기할 때 공공 미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위스의 기차, 맨해튼 빌딩 그리고 런던 지하철 노선표까지 여러 곳에 당신의 손길이 닿았죠. 그런 거대한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는지 알려주세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에요. 개인적으로 예술의 실용성에 관심이 많아요. ‘현대미술이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예술가의 아이디어로 공간을 작품화할 수 있을까?’ 여러 지점을 고민하죠. 이를 위해 해당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며 구상해요. 많은 생각을 하고 탈락시키고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죠. 장소에 어울리면서 미적 가치를 지닌 것을 찾기 위해서요.

뉴욕에 처음 간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자동적(automatic)’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에 대한 특별한 끌림이 있었나요? “나를 내던졌다(I catapulted myself).” 이 질문에 자주 쓰는 답변이에요. 책, 음악, 영화, 심지어 TV 프로그램 까지 제가 즐겨 본 모든 게 뉴욕 문화 콘텐츠였죠.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곳으로 자연스레 이끌렸어요. 뉴욕은 제가 작가가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문화, 도시, 예술의 멜팅포트인 뉴욕은 여전히 아이디어의 보고예요. 그래서 이곳을 떠날 수 없죠.






3 Your Words Become Mine, Household Gloss on Canvas, 2018
4 Another World, Household Gloss on Canvas, 2018

휘트니 미술관 인디펜던트 스터디 프로그램(The Independent Study Program)을 통해 미술을 처음 접했습니다. 예술대학이 아닌 곳에서 작가의 삶을 결심한 점이 눈에 띄어요. 당신에게 프로그램이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핼 포스터(Hal Foster) 덕분이죠. 그의 저서 <반미학(The Anti-aesthetic: Essays on Postmodern Culture)>을 읽고 미술에 호기심을 느꼈어요. 곧장 핼 포스터가 큐레이터로 있는 휘트니 미술관 프로그램에 합류했죠.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곳에서 처음 미술을 시작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예술대학은 작업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자유로운 토론과 연구로 참여 아티스트 간의 교류를 독려했죠.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은 작품 활동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율적인 분위기 덕분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걸 깨달았죠.

젊은 예술가들에게 추천할 만큼 만족스러웠나요? 물론이죠. 인디펜던트 스터디 프로그램은 작가가 되길 진심으로 원하는지 스스로 판단하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작가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죠.

제프 쿤스(Jeff Koons)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활동했고, 비평가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당신의 작품을 대표적 ‘포스트 프로덕션’이라고 극찬했죠. 동시대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서로 어떤 영향력을 주고받는지 궁금해요. 제프 쿤스는 제 멘토입니다. 학생 때 그를 처음 만났는데 그 순간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히 들었죠. 곧바로 어시스턴트 자리를 요청했고, 제프 쿤스 밑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뉴욕에서 작가로 데뷔하는 데 그가 많은 도움을 줬어요. 고마운 분이죠. 물론 제프 쿤스 외에도 여러 예술가와 소통하고 있어요. 그것이 항상 옳은 방향을 제시하진 않지만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는 건 중요한 활동이라고 확신해요.






뉴욕 스튜디오에서 만든, UCCA 개인전 < Odysseus Factor > 모형. 세라 모리스는 모형으로 디스플레이를 먼저 확인한다.

<아트나우> 지난 호 ‘SNS NOW’에 당신의 배트걸 분장이 소개됐어요. 인스타그램 피드에 작품은 물론 관람객, 셀피, 고양이까지 다양한 사진이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었죠. SNS를 어떻게 활용하나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살피는 창구이자 제 소식을 가장 빠르게 알릴 수 있는 확실한 매체입니다. 작품 활동과는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무대로 활용해요. 그래서 여러 콘텐츠를 올리죠.

이제 중견 작가를 넘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당신에게 동시대 예술가의 역할을 묻고 싶습니다. 오늘날 예술가는 더 나은 현실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다소 진부한 대답이죠? 하지만 작가는 반드시 모두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해요. 이를 위해서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에 저항해야 하죠. 시대의 혁명가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것처럼요.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항상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당신의 계획은 왠지 특별할 것 같아요. 최근 일본에서 촬영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마이애미와 토론토에서 선보일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세라믹 작품인데, 아트 바젤 마이애미비치(Art Basel Miami Beach)에 오신다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이애미비치 컨벤션센터(Miami Beach Convention Center) 노스이스트 파사드가 될 예정이죠. 그리고 온 신경을 쏟고 있는 개인적 일이 있어요. 아들과 함께 살 집을 짓고 있죠. 직접 설계에 관여한 만큼 심혈을 기울이는 프로젝트예요. 어디에 짓고 있는지는 비밀이지만요.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우선순위는 없습니다. 작업이든 사적인 일이든 전부 연관돼 있기에 순서를 매기는 건 무의미합니다. 마치 도시처럼요.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제공 세라 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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