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JUNE. 2018 SPECIAL

예술 공간은 예술만큼 중요할까? 그렇다

  • 2018-06-07

이탈리아 베니스의 푼타 델라 도가나, 미국 텍사스의 포트워스 근대미술관, 일본 나오시마에 있는 지추미술관을 비롯한 몇 개의 미술관, 내년 프랑스 파리에 완공하는 프랑수아 피노의 새 미술관까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곳곳에 미술관을 비롯해 다양한 예술 공간을 설계해온 안도 다다오가 전하는 예술만큼이나 중요한 공간 이야기.

일본 나오시마의 여러 미술관 프로젝트 중 한 곳인 베네세 하우스 오벌. 물웅덩이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방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안도 다다오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게 빠져 건축을 시작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실제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을 경험하기 위해 24세에 프랑스에 가 롱샹 성당(Ronchamp Chapel)을 본 감동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성당에 도착한 그는 당시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 빛, 그 빛을 견디지 못하고 금세 밖으로 빠져나왔다. 건축이란 형태가 아니라 빛, 주변 지형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의 문제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이후 다시 롱샹 성당에 갔을 때, 그는 갖가지 색의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는 장면을 보고 감동했다. ‘언젠가 나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공간을 건축해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바로 그때.
지난 10여 년간 안도 다다오는 암으로 두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 들어설 미술관과 아트 센터를 비롯한 여러 건축물을 설계하느라 쉴 틈이 없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건축가로서 예술 공간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얘기한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대가로서가 아니라, 예술 작품을 품은 공간을 건축가로서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그 공간을 이해해주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에 대해 말한다. 예술이 있는 공간은 예술만큼이나 중요할까? 그는 ‘그렇다’고 답한다.




1 안도 다다오가 미술관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빛과 그림자’의 균형이다. 이는 그가 설계한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오사카의 빛의 교회에도 적용되었다.
2 안도 다다오에 의해 내년 프랑수아 피노의 새 미술관으로 탈바꿈할 옛 상업거래소 건물(사진 하단 원형 건물)과 파리 시내. 현재 이 건물은 기존 건축을 거스르지 않는 ‘완벽한 원형 미술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당신의 건축을 접했습니다.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Museum SAN), 제주도에 있는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와 본태박물관(Bonte Museum),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Chichu Art Museum)과 이우환미술관(Lee Ufan Museum) 등이었죠. 그러다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전부 자연과의 조화가 건축의 큰 부분을 이룬다는 거죠. 여전히 그 부분이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건축물과 그것이 들어설 부지,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고민하는 건 이제까지, 또 앞으로도 제가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프랑스 아를에 있는 17세기 호텔을 ‘이우환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 파리 레알 지구의 문화유산인 옛 상업거래소(Bourse de Commerce) 건물을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랑수아 피노의 새 미술관 프로젝트에서 현재 총책을 맡고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 건축물을 ‘재탄생’시키는 일을 맡을 땐 어떤 자세로 임하시나요?
문화는 인간의 기억뿐 아니라 역사의 축적을 통해 발전한다고 봅니다. 이전부터 역사적 건축물을 설계하고 개조하는 작업을 맡으면서 줄곧 생각해온 거죠. 이를 통해 건축에 새 생명이 싹튼다고 여깁니다. 다시 말해 ‘재탄생’이란 옛것과 새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과 공존이 안정을 이룰 때 비로소 붙일 수 있는 말이죠. 또 옛것과 새것 사이의 대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함으로써 건축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고요. 저는 기존 건물을 존중하는 동시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걸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모델링은 한편으로 원점에서 설계를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제약이 따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례로 옛 상업거래소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파리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미래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러려면 그 건물이 앞으로 힘과 생명력의 상징이 되어야겠죠. 어려운 숙제입니다.

많은 건축가가 건축의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제약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이따금 부지의 용도 규제나 기존에 있던 건물에 의해 해당 부지의 독특한 특징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요소가 설계의 방향을 잡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 경우 제약이 있는 것도 그리 괴롭진 않습니다.

여러 인터뷰에서 오사카에 있는 ‘스미요시 연립주택(Row House in Sumiyoshi)’을 안도 다다오의 가장 상징적 건축으로 꼽았습니다. 이 연립주택은 1975년에 설계한 걸 감안하더라도 사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냉·난방시설도 없고, 오직 태양과 바람으로만 생활하도록 설계했죠. 빛과 바람 같은 자연 요소를 집 중앙으로 들여 비좁은 공간 속에,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커다란 우주’가 들어오게 했어요. 한데 최근 이런 자연적 건축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무려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요.

스미요시 연립주택을 지을 때 서로 연결된 ‘나가야(일본식 연립주택)’ 세 채의 중앙 부분을 허물고 그 빈 공간에 콘크리트 박스 형태의 단순한 구조물을 넣었습니다. 그 부분이 정원 역할을 하는 거죠. 또 건물 외관은 창문이 거의 없지만, 빛과 바람이 자연스레 좁은 공간으로 들어와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우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 건물은 사용이 불편하고 같은 시기에 지은 근대적 주택과 전혀 다르다는 이유로 혹독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 건물의 핵심은 ‘정원’이에요. 이곳을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확신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을 추구해 건물뿐 아니라 부지 전체를 미술관으로 설계했다.

질문 유형을 좀 바꿔보죠. 한국에 있는 공공 건축물은 대부분 아주 큽니다. 국립미술관이라고 하면 ‘수천 점의 작품을 걸어야 한다’는 듯 크기가 엄청나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수천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하나의 미술관보다 수십, 수백 점의 작품을 여러 곳에 분산해 선보이는 미술관이 대중에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미술관이나 예술 공간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야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성 있는 작품을 여러 점 가진 미술관이라면 그걸 한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미술관일수록 ‘새하얀 상자’ 같은 고유한 공간적 특성 없이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전시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히 ‘크기의 문제’가 아니죠. 반면 특정 작품을 위해 만든 작은 미술관은 좀 더 특화되고 흥미로운 형태의 전시 공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둘 중 보통은 후자와 같은 환경에서 관람객과 작품의 소통이 더 잘되는 듯하고요. 저도 후자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각각 장단이 있습니다.

당신도 종종 미술관에 가나요? 특별히 좋아하는 미술관은 어디인가요?
하나를 꼽긴 어렵지만 지금 당장은 덴마크에 있는 루이지애나 미술관(Louisiana Museum)이 떠오르네요. 전시 공간과 경치가 잘 어우러져서 좋아하는 곳이죠.

미술관 외에 좋아하는 예술 공간은요? 또 해외 출장 중엔 어떤 방식으로 현지 문화를 이해하는지 궁금합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언젠가 베니스에서 작업할 땐 16세기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나 20세기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가 설계한 건축물을 둘러봤습니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거대 미술관이 개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공간 그 자체보다는 건축가의 예술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듯해요. 21세기 미술관과 전시 공간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미술관 그 자체로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 아니면 오직 작품을 담는 그릇으로서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않는 것?
현대의 미술관 건축엔 앞서 말한 ‘새하얀 상자’ 같은 전시 공간을 만드는 사례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공간에서라면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죠. 일본 나오시마의 미술관 프로젝트에선 작가와 수준 높은 협업을 유지하고 특정 작품을 위한 독특한 전시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어요. 저는 예술과 건축의 흥미로운 충돌을 통해 ‘그것을 지은 장소에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려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곳을 넘어 아름다움, 예술의 매력 그 자체를 높이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1세기의 미술관은 작품을 담는 그릇에 그치지 않고, 주변을 둘러싼 자연의 정신을 포착하고 방문객에겐 오로지 그곳에서만 가능한 체험을 선사할 수 있어야겠죠.




일본 나오시마 지추미술관에 있는 모네 갤러리와 월터 드 마리아 갤러리에 전시한 ‘Time/Timeless/No Time’.

미술관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뭔가요?
‘빛과 그림자의 균형’입니다. 빛의 아름다움이나 그것이 비추는 공간을 잘 느끼려면 어둠이 필요하죠. 프로방스 수도원의 그것처럼 빛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위해선 건축물 내의 인공조명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추미술관의 모네 갤러리에도 이런 아이디어를 적용했죠. 거기에 걸린 페인팅 3점을 비추는 건 산란된 자연광이 전부죠. 모네가 그 작품들을 완성했을 당시의 빛을 관람객이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말씀하시는 걸 듣다 보니, 요 근래엔 미술관 건축에 이런 노력을 들이는 이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현대미술관이 자연조명의 아름다움이나 잠재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밖이 어두워지면 전시 공간도 어두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유로 사람들이 건축물을 경험할 땐 빛과 시간의 유한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하죠.

그간 수차례 “건축에서 늘 재미를 찾는다”고 말해왔습니다. 근래에 건축에서 찾은 재미는 무엇인가요?
20대에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 성당 사진을 처음 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많은 사람이 성당을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건축물이 영감을 공유하고 소통을 촉진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나도 그런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꼈고요. 제가 건축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인간이 만든 물체가 빛과 그림자, 바람과 비 같은 자연을 담을 수 있다는 거죠. 건축물을 통해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인상을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방문객에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서입니다.

암 투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왕성히 활동하고 계세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이제껏 두 차례 큰 고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2009년에 암으로 쓸개관과 쓸개, 샘창자를 절제해야 했을 때, 두 번째는 2014년에 췌장과 비장을 제거해야 했을 때죠. 한데 그 당시에도 이상하리만큼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잃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삶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그간 주치의의 조언을 듣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요. 포기하지 않았기에 건강을 되찾았죠. 지금은 다시 전력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축가로서 사람들이 ‘공간’을 이해했을 때 얻는 기쁨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앞서 말했듯 1970년대 중반에 스미요시 연립주택을 설계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마쓰무라 주택(Matsumura House)’으로 알려진 고베에 있는 또 다른 건축 프로젝트도 진행했죠. 그 부지엔 화강암 벽과 세 그루의 녹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 기존 요소를 보존하며 건물이 들어설 위치를 정했죠. 나무로 만든 경사 지붕과 벽돌을 통해 주변 경관과의 연속성을 구현하고자 했어요. 그 집이 완성되고 35년이 지난 어느 날 또 다른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당시의 건축주 딸이 새 프로젝트를 맡긴 거였죠. 그녀는 도쿄로 이사 갈 예정인데, 그곳에 고베에서 어린 시절 살던 집을 재현해달라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이 요청을 받고 놀란 한편 허를 찔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건축주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고베의 집에서 살던 기억을 맘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거죠. 이런 과정을 겪으며 저는 제가 건축가인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녀에겐 제가 설계한 고베의 옛 집이 단순한 물리적 건물을 넘어 기억 속 상징적 안식처가 된 것이니까요. 마찬가지로 많은 건축주가 제가 만든 건축물을 이상적인 집으로, 자신의 마음과 영혼이 쉴 수 있는 풍경으로 소중히 다루고 있어요. 저는 건축가로서 그것이 있는 환경에서만 존재하는 건축물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성적이고, 편안함을 추구하며, 획일적인 거주 환경을 벗어나 주변 환경과 터가 가진 힘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건축을 설계하려 합니다.




3 나오시마에 위치한 이우환미술관. 이곳을 설계한 인연으로 안도 다다오는 프랑스 아를에 개관하는 새 이우환미술관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4 이탈리아 베니스에 있는 미술관 푼타 델라 도가나. 1677년에 건립한 이 건물은 안도 다다오의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데이미언 허스트를 비롯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채광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게 한 것이 특징이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공간을 설계하는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에 흥미를 느껴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콘크리트를 이용해 빛과 그림자, 자연을 소재로 정적 공간감을 주는 건축을 설계했으며, 1995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건축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일본과 한국,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에 그가 만든 미술관과 건축물이 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안도 다다오 건축사무소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