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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8 FEATURE

정말 떠나면 행복해질까?

  • 2018-05-01

아직 떠나지 못한 자들을 위한 변명.

아르헨티나에서 편지가 왔다. 때늦은 새해 인사였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후배는 “형,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냈어”라는 문장으로 안부를 전했다. 사진 속 그는 소금 사막 한가운데에 양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표정을 살필 순 없었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 같은 자유가 느껴졌다. 후배는 지난해에 6년간 몸담은 은행원 생활을 접고 독일로 떠났다. 뒤셀도르프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던 그의 꿈은 갑자기 이뤄졌다. 후배는 어학원 수료 후 칠레로 이동해 안데스산맥과 태평양 연안을 잇는 아타카마사막 280km 구간을 달렸다. 대학 때부터 입버릇처럼 말한 꿈이었다. 그의 두 번째 꿈은 그렇게 이뤄졌다. 1년 새 두 가지 꿈을 이룬 남자는 새해를 이구아수폭포 앞에서 맞았다. 헐벗은 그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의 꿈과 자유를 치기로 여겨 던진 어줍잖은 충고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답잖은 격려 몇 마디로 답장을 채웠다.
선배 A도 삶의 방향을 급격히 틀었다. 그는 지금 바르셀로나에서 여행사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몇 번이고 스페인으로 떠날 거라 말했지만 난 그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해봄 직한 호기로운 주정 정도로 생각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은 남자가(가장이) 연고 없는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건 낭만적이지만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내 상상력은 그 정도였다. 이들의 일탈(?)은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연봉이나 대출, 결혼과 출산, 이직 같은 급급한 삶의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는 동지라 여겼는데 이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SNS에서 좇는 그들의 행적과 이따금 우리가 메신저로 나누는 이른 새벽의 대화는 내 삶을 시시하게 만들었다. 성냥갑 모양의 집과 17세기에 지은 성당, 유명 축구팀의 구장 같은 풍경부터 낯선 사람, 새로운 이야기까지 거기에 속해 있는 그들이 ‘진짜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낭만적 삶과 현실의 저울질
떠나는 것에 대한 동경은 몇 년 전에 시작됐다. 우연찮게 읽은 모 사이트의 게시물이 마음을 달뜨게 했다. 그 글을 쓴 내 또래 남자는 공공기업 직장인 생활을 접고 중국 카슈가르(Kashgar)로 떠났다. 실크로드의 심장이던 오아시스 도시에서 시작된 여정은 약 2년에 걸쳐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 키르기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로 이어진다. 그는 그 길에서 마주친 황량한 풍경과 몇 세기 전의 흔적, 선량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몇십 차례에 걸쳐 게시물에 정갈하게 담았다. 이국적인 풍경과 음식, 뜻밖의 사고와 소소한 기쁨, 잔잔한 일상의 기록은 내게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그 기록 중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Abbottabad)에서 카슈가르까지 뻗어나간 1200km의 카라코람 하이웨이 ‘훈자(Hunza)’에 마음을 뺏겼다. 가니시(Ganish) 마을과 나기르(Nagyr), 알리아바드(Aliabad)를 거치는 트레킹 코스와 이글네스트(Eagle Nest)의 웅장한 광경은 사무실을 뛰쳐나가고픈 강렬한 충동을 일으켰다. 바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행동에 옮겼다. 항공권 예매와 5개월간의 스케줄 조율, 가이드 고용과 트레킹 장비 구매 같은 세부 사항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떠나지 못했다. 출국을 2주 앞두고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자질구레한 이유는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만한 열망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두려워서이기도 했다. 반년 가까운 경력 단절은 생각보다 큰 위험이었다. 그건 쉼표를 찍는 게 아니라 아예 챕터를 바꾸는 거니까. 나의 저울질에선 현실이 더 무거웠다. 그 이후 훈자와 히말라야 트레킹은 내 버킷 리스트에 들어 있다. 삶이 고단해지거나 세상만사에 넌더리가 날 때 꺼내 보고 힘을 얻는 용도로 쓰인다.
세상이 변했다. 모험가는 여럿이다. 서점에 가면 지구 곳곳을 누비는 그들의 영웅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고비사막부터 그린란드의 누크(Nuuk), 에콰도르의 쿠엔카(Cuenca),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 Aviv)까지 한국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형태도 다양하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과 여가를 즐기는 디지털 노매드, RV카로 대륙을 횡단하는 밴 라이프, 현지에서 경비 조달과 여행을 병행하는 자급자족 여행자까지 여행 서적과 자기 계발, 동기부여 코너까지 책이 수두룩하다. TED나 유튜브의 강연, <어쩌다 어른> 같은 TV 프로그램의 인생 강연도 비슷하다. 이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말한다. ‘지금 당신을 옥죄고 있는 현실을 박차고 지구촌으로 전진하라.’ 클릭이 쌓이는 주제지만 종종 이런 과잉과 치중된 사고는 불편하다. 묵묵히 잘 살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의 삶은 지루하고 답답하니 벗어나라고 강요하는 논조 천지인 것이다. 어떤 이에겐 폭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SNS도 한몫 거든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 창구라지만 SNS는 타인의 삶을 엿보는 절묘한 망원경이다. 다만 그 삶은 연출되고 포장된 디렉터스 컷이다. 낭만적 서사로 가득한 동화로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행복은 장소로 결정되진 않는다. 떠나는 목적이 현실 회피이거나 특정 지역에서의 삶이라면 진지하게 재고해야 한다. 캐나다 이민 17년 차인 전직 기자 주호석 씨가 중앙일보에 연재 중인 ‘이민 스토리’엔 이방인이 타지에 정착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담겨 있다. 언어의 장벽과 인종차별, 경제적 문제와 자녀 교육 등 낭만을 싹 걷어낸 진짜 현실은 생각보다 고되고 까다롭다. 앞서 언급한 3명에겐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다. 그들의 도전과 용기,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존경한다. 그러나 그들의 어려움이나 불편, 고독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 표면적 화려함만을 부러워했을 뿐이다. 삶은 어떤 자리에 있건 고단하니까, 쉬운 동경은 그들의 삶에 대한 기만일 수 있다. 인생은 절대적이지도, 상대적이지도 않다. 어떤 생이 지루하고 어떤 일상이 모험적이라 단정할 수도 없다. 애초에 우린 같은 트랙에 서 있지도 않았으니까. 떠나든 남든 모두 각자의 선택일 뿐, 거기엔 옳고 그름이 없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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