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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8 FEATURE

끝나지 않는 그림

  • 2018-04-24

피카소는 말했다. “그림을 끝낸다고? 그건 난센스다! 끝낸다는 건 영혼을 없애고 죽인다는 의미다.”

1 앤디 워홀의 작품 ‘Do It Yourself(Violin)’(1962년).
2 리바니 노이언슈원더의 ‘I Wish Your Wish’, 뉴욕 뉴 뮤지엄 설치 전경.

흔히 미완성 작품이라고 하면 끝내지 못했거나 완성되지 않은, 어쩐지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아트 신에서 ‘미완성’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르네상스 시대엔 미켈란젤로처럼 의도적으로 그림을 미완성으로 남기는 ‘논 피니토(non finito)’ 기법이 유행했고, 현대미술에 이르면 미완성 개념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된다. 미술의 미완성이나 완성의 정도는 개인이나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간다.
2016년 봄, 뉴욕 어퍼이스트 거리마다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폭넓은 컬렉션을 보유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새 분관, 메트 브로이어의 오픈을 알리는 사인이었다. 당시 메트가 야심차게 준비한 개관전의 제목은 ‘Unfinished’, 즉 ‘미완성’이었다. 도무지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빅 네임이 넘친 블록버스터급 전시에서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1962년 작품 ‘Do It Yourself(Violin)’가 유독 발길을 붙잡았다. 컬러 대신 숫자를 늘어놓아 ‘숫자 정물화’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작품은 극히 일부만 컬러링한 채 색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비워두고, 색상 번호를 날것 그대로 노출해 미완성작임을 스스로 밝혔다. 전시 제목에 따라 이 작품도 당연히 미완성이어야 했다. 하지만 창작자가 앤디 워홀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의도적으로 비워뒀을 것 같았다. 관람객에게 선사하는 그의 트릭일까? 작품 제목도 직접 만들라는 뜻의 ‘Do It Yourself’ 아닌가. 심지어 부제가 ‘바이올린’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작품은 의도적 미완성작이었다.




3 재닌 앤터니(Janine Antoni)의 ‘Lick and Lather’(1993년)는 각각 초콜릿과 비누로 만든 조각을 혀로 핥고 물을 부어 형태를 일그러뜨린 작품이다. 완성작을 미완의 형태로 바꿔 미완성의 개념을 비틀었다.
4 흰 바탕이 그대로 드러나는 폴 세잔의 미완성 작품 ‘Gardanne’(1885~1886년).

미완성을 말하는 전시에 쿠바 출신 예술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가 빠질 수 없다. 전시장에 사탕을 가득 쌓아놓고 관람객이 집어가도록 한 ‘Untitled’ 시리즈는 현대미술에서 미완성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 ‘Untitled(Portrait of Ross in LA)’(1991년)에서 캔디의 양은 죽은 애인 로스의 이상적 몸무게인 175파운드(약 79kg)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완성일까, 미완성일까? 완성이라면 끝은 언제일까? 작가가 사탕을 늘어놓았을 때? 관람객이 사탕을 집어 들었을 때? 여기에 미완성의 매력이 있다. 이 작품은 끝나지 않는다. 아니, 끝날 수 없다. 그는 작가가 죽더라도 작품은 여전히 진행된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실제로 그는 1996년에 사망했지만, ‘무한 공급(endless supply)’이라는 캡션이 설명하듯 전시장의 사탕이 바닥나면 금세 같은 양을 채우기로 약속돼 있다. 에디터가 당시 집어온 캔디 두 알을 오래도록 간직한 것처럼 사탕은 수천 명의 사람을 통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양현미술상을 수상해 한국 관람객에게도 익숙한 리바니 노이언슈원더를 국제적 레벨에 올려놓은 설치 작품 ‘I Wish Your Wish’(2003년)도 적절한 예다. 그리스도의 팔과 같은 길이의 리본에 소원을 적은 다음 손목에 묶으면 리본이 끊어질 때쯤 소원이 이뤄진다는 브라질 북부 어느 교회의 의식에서 따온 작품이다. 작가가 전시장에 사랑, 직업, 건강 등에 관한 일상적 소원을 적은 형형색색의 리본을 매달면, 관람자는 누구나 그 리본을 가져갈 수 있다. 작가가 리본을 늘어뜨리고, 사람들이 각기 다른 소원을 고르고, 빈자리에 다시 새로운 리본을 채우는 매 시점에도 섣불리 작품의 완성을 논할 순 없다. 작품은 누군가 염원한 소원이 이뤄지거나 반대로 깨지는 순간 등 다양한 결과를 낳으며 끝없이 이어진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결과의 미술’이 아닌 ‘과정의 미술’을 선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밀도 높은 작품으로 알려진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수많은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겼다.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아 의도적으로 마무리하지 않은 프로젝트도 있고, 후원자나 고용인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만두기도 했다. 고의로 미완성한 작품은 앞서 언급한 논 피니토 개념으로 분류된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붙인 용어다. 당시 많은 예술가가 미완성을 기법으로 차용, 독특한 시각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르네상스는 탁월한 표현력과 풍부한 스킬을 요구한 시대다. 화면 일부를 완전히 빈 상태로 남겨두는 건 당시 상당한 도전이었지만, 반향은 상당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현대미술 담당 큐레이터 켈리 바움이 “미완성 작품은 마치 엑스레이 같다. 페인팅 너머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하니까”라고 밝혔듯, 때로는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이 완성보다 미완성으로 남을 때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을 끌어내기도 한다. 대가의 실제 생각, 작업의 기초 단계 등을 알 수 있어서 마치 작품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은 매력이 있다. 널리 이름이 알려진 피카소, 세잔, 반 고흐 등도 미완성 작품을 남겼다. 이들이 남긴 작품의 거친 붓질, 명암이 없는 이파리, 비어 있는 하늘, 살아 있는 연필 선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완성작보다 더 회화적으로 보인다.
그리는 대상이 사망해도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엘리자베스 사우마토프(Elizabeth Shoumatoff)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초상화를 그리던 중, 그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작품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았다. 반대로 작가의 죽음은 미완성의 가장 일반적인 예다. 1917년, 구스타프 클림트가 갑자기 사망했을 때, 스튜디오엔 많은 미완성 작품이 남아 있었다. 특히 작품 일부가 텅 비어 있는 ‘리아 뭉크의 초상 III’ (1917~1918년)는 거친 목탄 선을 그대로 내보이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클림트가 추구한 화려하고 장식적인 컬러 아래 숨어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클림트도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사실이 작품의 주인공인 리아 뭉크는 작품이 시작되기 전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클림트의 후원자인 아랑카 뭉크는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 작품을 의뢰했다. 특히 이 작품은 2009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1675만 파운드(약 253억4300만 원)에 낙찰되며 미완성 작품의 시장 가능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예술에서 미완성을 정의하려는 노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졌지만, 누가 ‘완성’을 판단하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현대미술은 점점 완성된 모습보다 개념이나 과정을 중요시한다. 지난 3월 홍콩 소더비 옥션을 통해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한 조지 콘도는 과거 “만일 당신이 충분히 뛰어나다면 단지 ‘제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완성보다는 개념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말이다. 작가가 미끼만 던진 다음 나머지는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면서, ‘행위’와 ‘참여’를 수반해야 비로소 완성에 이른다. 켈리 바움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미완성 작품은 보는이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빈칸을 채우는 건 당신 몫이다”라고. 작품 완결의 열쇠는 당신에게 있다. 개방적 예술은 우리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여운을 준다. 이제 글의 도입부로 돌아가 앤디 워홀의 그림을 보며 외치자. Do it yourself! 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제공 메트 브로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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