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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7 FEATURES

산 자여, 말하고 또 말하라

  • 2017-09-22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의문을 제기하는 디자이너다. 그가 만든 ‘노숙자 수레’, ‘외국인 지팡이’, ‘대변인’ 등은 실용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환기시킨다. 기념비를 매개체 삼아 프로젝션으로 사회적 소수의 목소리를 공적으로 발화하는 활동에 집중한 미디어 아티스트로 오랫동안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 수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에게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 보디츠코의 예술 인생 50여 년을 집약한 대규모 회고전이 10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한국에서의 신작 ‘나의 소원(MY WISH)’을 비롯해 8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 오프닝에서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자율 방범차’ 앞에 선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서울에서 열리는 당신의 회고전이 무척 반갑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이라고 들었는데 기분이 어떤가? 아시아에서의 전시는 30년 전 일본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이 대부분 존재하지도 않았을 정도로 오래됐었지.(웃음) 한국은 장소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 방문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내 작품을 선보이기 좋은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공공장소를 이용하는 행위에 정치적 변화뿐 아니라 좀 더 심도 있는 의미를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문화적 목적으로 공공장소를 사용하고 문화적 변화를 불러오는 것까지 말이다. 정치적 이용과 문화적 이용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연관성의 평행 관계를 형성한다. 정권이 바뀌는 장면에 문화적 영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종이 위에서 이루어진 서류상의 변화일 뿐이다.






한 노숙인이 뉴욕 트럼프 타워 앞에서 ‘노숙자 수레’를 시연 중이다(1988년).

“나는 사진가, 산업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비평가, 역사가, 철학자, 정치가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중 하나는 아니다”라는 자기소개가 인상적이다. 예술을 행동으로 보이고 실천하는 데 수반되는 예술적 사고방식은 기존의 전통적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서술하기에는 굉장히 범주가 넓다. 그저 하나의 결이나 관점으로 해석하기엔 말이다. 특히 이론적인 면은 더더욱. 솔직히 남들이 나를 특정한 결로 바라보는 걸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현대미술의 무대에 나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가부터 학술적 영역에서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실용성에 집중하기보다 사회에 의문을 던지는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 있다. 예술은 명료화라는 형태로 짚어야 할 사실, 실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디자인은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홀로 일으킬 수 있는 스케일은 아니다. 그 자체로 해답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나는 이러한 관점을 ‘의문을 던지는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많은 프로젝트는 긴급한 이슈와 디자인이 던져야 할 도움을 짚어낸다. 이들은 디자인에서 나아가 사회 혹은 보다 큰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다.






1 멕시코 티후아나 문화관에서 열린 공공 프로젝트 ‘티후아나 프로젝션’(2001년).   2 ‘개선문 전쟁 폐지를 위한 세계 기구를 위한 기획안’(2010년).

회고전 제목이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이다. 이번 전시는 내가 디자이너이자 예술가로서 이어온 노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어떤 이가 처한 삶의 조건을 말할 수 있고,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를 키워 ‘발화(發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과정은 디자인 작업을 거친 ‘문화적 보철 기구’를 통하기도 하고, 공공장소에 놓인 기념비에 의해 촉발되기도 한다. 기념비를 통해 자신의 사연을 대중에게 투사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 단계란 무엇을 말할지 생각하고, 자신의 사적인 문제를 공공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아주 정교한 과정인데, 연설을 보다 발전시키는 동시에 심리 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참고로 기념비는 공공 건축물과 추모비, 그리고 심지어 사람들까지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보면 쉽다. 무언가 감내하기 어려운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때때로 그 경험을 말로 전달하는데, 이럴 때 사람들은 스스로 기념비로서 기능한다. 이들이 침묵하기보다 말을 내뱉는 기념비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 자신의 드라마로 말이다.

발화는 당신의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 개념이다. 왜 발화를 강조하는가? 발화는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것보다 고통스러운 행위는 없기 때문이다. 비극이나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경험한 것을 공유하지 못하는 건 삶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느끼는 고통과 진배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뱃속에서 꿈틀대는,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끄집어내야 한다. 이런 욕구가 발화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프로젝트가 필수다. 문화적 프로젝트는 말하는 법과 이를 공유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와 발화하는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제반 조건을 마련한다. 한 사람이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청자가 두려움을 떨쳐내고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문화적 프로젝트는 그런 장치를 고안해내고 청자와 화자 사이에서 그들을 모두 북돋아주는 역할을 한다. 감정적인 면에서 더욱 정교하게 표현하도록 돕고, 세밀하게 정제된 그 감정을 제대로 들을 수 있게 한다. 민주주의에서 발화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로이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건 아주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진 특혜이자 핵심적 권리였다. 이제 헌법으로 모든 이가 이런 권리를 보장받게 되었다 . 물론 이토록 중요한데도 실제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경험에 짓눌려 트라우마가 만든 침묵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문화적 프로젝트는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이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을 준다.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실현에 기여한다.






3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원폭돔에서 열린 공공 프로젝트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년).   4 ‘나의 소원’(2017년).

요즘 작업 영역이 건축으로 확장되는 느낌이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과 관련한 제안서가 대표적인 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작업이다. 전 세계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건축을 매개물로 정했다. 개선문은 단순히 무언가 기억하고자 하는 기념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과거의 영광과 패왕적 지배를 찬송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런 구조물은 전쟁 종식이나 평화를 바라는 것과는 연관성이 전무하다. 개선문은 애국적인 의도와 기능을 추구한다. 한마디로 이상화하는 건데, 개선문 프로젝트는 건물의 기능을 보완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개선문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전쟁을 이상화하는 행위를 해체한다. 그리고 ‘비전쟁’의 개념을 구조화하는 작업이다. 지난 세월 동안 전쟁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먼 행위였다. 아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전쟁에 대한 패왕적 이미지를 해체하는 문화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이것이 프로젝트 이름을 ‘평화를 위한 기관’이 아닌 ‘비전쟁을 위한 기관’이라고 붙인 까닭이다.

신작 ‘나의 소원’에는 세월호 유족, 동성애자, 좌파, 우파, 탈북자, 이민자 등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출현해 김구 동상의 레플리카에 투사된다. 청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특별한 메시지가 있나? 이번 기회를 빌려 김구라는 사람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그를 추모하는 게 아니라 그가 추진하고자 한 과업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확인하고 바뀌어야 할 문제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그리고 바라야 한다. 아주 구체적인 이상향을 바라야 한다. 하나의 소원은 무언가가 더 이상 계속되지 않길 바라는 하나의 경험, 혹은 무언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는 이런 프로세스를 통하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다. 레퍼런스를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고, 우리의 실제 삶과 연관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만일 김구가 살아서 이 작업을 본다면 아마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까?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사진 장호(인물)  번역 이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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