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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7 SPECIAL

미래지향적 예술

  • 2017-09-28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넘어 창조성이 더해진 세계,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닐까.

디지털 기술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여주는 아람 바르톨의 ‘0, 16’.

“이 멋진 새로운 세계여!”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에서 주인공 미란다는 멋지고 새로운 문명 세계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12년 동안 갇혀 있던 섬을 떠나며 이와 같이 외친다. 우리가 디지털 기술을 처음 마한주 그 순간에도 미란다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한때 우리는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 기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강한 기대를 품었다. TV와 영화는 디지털 기술이 그리는 신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적 예견을 앞다투어 내놨고,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오브제의 신기능에 경탄했다. 우리 삶의 풍경이 0과 1의 이진법 코드로 이뤄진 디지털 세계로 변화할 만큼 깊숙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는 한 번쯤 자문해봐야 한다. 새로운 문명 세계를 경험한 이후에도 미란다는 처음 외친 ‘멋진 신세계’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을까?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미란다의 말을 인용해 1932년 소설 <멋진 신세계>를 발표했다. 우리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묘사한 이 소설은 기술, 미디어를 바탕으로 발전한 미래의 문명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소설 속 미래는 감정까지 정밀하게 계산되는 유토피아 세계지만, 완벽 통제되는 유토피아는 결국 디스토피아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것.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경험이 풍요로운 삶 자체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기에, 거기에 의존하는 것은 스스로를 쳇바퀴 속 다람쥐로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디지털은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 걸까? 디지털은 이진법 코드로 구성된 일련의 분절화된 세계다. 모든 정보를 0과 1로 변환해 체계화하기 때문에 이전의 형태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또 많은 정보를 짧은 시간 안에 해석하고 병렬적으로 재배치한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특성의 미디어라 할지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으며, 이는 디지털 아트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 김가람 작가가 텍스트 음성 변환 프로그램으로 탄생시킨 4인조 사이버 걸 그룹 4ROSE의 디지털 앨범 포스터.
2 게임 엔진 기술 유니티 3D를 이용해 제작한 안가영 작가의 ‘Virtual Serendipity’.
3 일본 아티스트 그룹 DNA의 증강·가상현실 건축 프로젝트 ‘Corpora in Si(gh)te’.

최근 예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이런 속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다른 장르와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듣는 미술과 보는 음악, 만지는 공연과 공감각적 건축 등 현재의 예술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셈. 작가 김가람은 텍스트 음성 변환 프로그램(TTS, Text to Speech)으로 만든 목소리로 4인조 사이버 걸 그룹 ‘4ROSE’를 탄생시켰는데, 매달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시도는 과거의 사이버 가수 ‘아담’이나 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가상 아이돌 캐릭터 ‘하쓰네 미쿠’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예술에서 현실과 가상이 연동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디지털 기술은 작가에게 새로운 가상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건축에 가상 요소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일본 아티스트 그룹 DNA(Double Negatives Architecture)는 자신의 증강·가상현실 건축 프로젝트 ‘Corpora in Si(gh)te’를 통해 고정된 건축 공간이 아닌, 현실 요소와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공간 개념을 선보였다. 하늘을 촬영한 영상을 컴퓨터로 전송한 후 화면상에 생성되는 선과 결절점을 이용해 기하학적 형태를 만들어가는 식이다. 이는 게임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결합하는 안가영 작가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가상 세계에서의 뜻밖의 발견’이란 의미의 ‘버추얼 세렌디피티(Virtual Serendipity)’(2014년)는 게임 엔진 기술 유니티 3D를 이용해 제작한 것으로, 십자형 회화 ‘5조각의 하늘, 하나의 땅’(2014년)을 배경으로 관람객이 생일과 별자리값을 넣은 캐릭터로 게임을 함으로써 독창적인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예술 영역에서 기술과 융합하려는 시도는 메이커 문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술과 산업이 각자 확고한 영역을 가진 과거에 반해 지금은 둘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산업적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만드는 메이커가 많아졌고, 이는 일견 예술가가 기술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메이커이자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그 둘을 병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디지털 아티스트이자 메이커 잭 포프(Zach Poff)나 뉴욕 아이빔 어워드 2017에서 수상한 재커리 리버먼(Zachary Lieberman)이 대표적 예. 코딩 예술가로도 불리는 재커리 리버먼은 프로그래밍을 배워 ‘말하는 신발’을 제작하고, 눈동자의 움직임을 읽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돕는 아이라이터(Eyewriter)와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미디어 아티스트 하이브(Hybe), 에브리웨어(Everyware) 등을 통해 그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사뭇 다르다. 메이커가 자신의 취미나 흥미에서 출발해 기술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든다면, 예술가는 현실을 반성적으로 사유하고자 기술을 매개로 작품을 창조한다. 독일 작가 아람 바르톨(Aram Barthol)은 디지털 미디어의 전면화에 저항하며 메이커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디지털 기술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여준다. 스크린의 해상도를 의미하는 ‘0, 16’(2009년)의 인터페이스는 픽셀라이징한 이미지로 구성되지만 작품 창작 과정은 아날로그적이다. 작품의 뒤를 보면 빛을 내뿜는 환등기와 관람객의 움직임만 존재하며, 그 속에서 탄생한 이미지가 디지털 화면을 구성한다. 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며, 기술에 매몰되기 쉬운 디지털 아트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 둘을 무조건 구분하기보다 각각의 특성을 발견하고 연동할 수 있는지 탐색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본래의 목적인 창의성을 추구한다면, 결국 2개의 개별적 행위는 하나의 지점에서 조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유원준(앨리스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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