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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7 CITY NOW

산업과 예술의 공존, 을지로

  • 2017-06-02

도시 슬럼화로 낙후됐던 을지로가 아티스트들의 새로운 예술 터전으로 변모 중이다. 기계 소리로 가득한 을지로에 불고 있는 예술의 바람을 따라가보자.

1 세운상가 건물 디자인의 백미인 중정.   2 전자 상가와 아티스트의 예술 공간이 함께하는 세운상가.

영화 <피에타> 속 공구 거리의 음울함과 노동의 활기가 공존하는 곳. 이곳에서 아티스트들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기 전까지 내가 바라보는 을지로는 그랬다. 조명, 공구, 철공소가 밀집한 을지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세운상가로, 1968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전자 상가, 헬스장과 수영장, 학교까지 있는 핫 플레이스였던 세운상가는 용산전자상가의 설립과 강남 개발 등의 요인으로 상인과 주민 대부분이 떠나고 1990년대부터 슬럼화가 계속됐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던 삭막한 을지로에 예술의 숨결이 깃든 건 2년 전 젊은 작가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취재를 위해 찾은 세운상가는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오디오, 노래방 기기, 오락기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 즐비했다. 미로처럼 얽힌 세운상가 안을 걷다 보면 기획 갤러리 스페이스_바421, 기술 프로젝트 공간 기수리예수리, 아티스트 빠키의 1인 갤러리 빠빠빠탐구소 등 다양한 예술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이스_바421에선 마침 이규원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유화를 통해 개념미술을 선보여온 이규원 작가는 이번에 텍스트를 전시하는 실험적 도전을 위한 장소로 스페이스_바421을 택했다. 그는 “공간이 아담해 많은 작품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오히려 적은 작품으로 확실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형화된 화이트 큐브가 아닌 전자상가에서 전시하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에요”라고 말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3 새작업실에서 도도새를 그리는 김선우 작가.   4 도자공예를 바탕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퍼블릭쇼.   5 페인트 창고를 스튜디오로 개조한 김선우 작가의 새작업실.

세운상가를 나와 금속을 연마해 상패 등을 제작하는 맞은편의 조각 골목길로 향했다. 중구청은 2015년부터 젊은 예술가에게 창작 스튜디오를 지원하는 을지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는데, 현재 아티스트 8팀이 참여 중이다. 전시장이자 개방형 스튜디오 슬로우슬로우퀵퀵과 도자공예를 바탕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퍼블릭쇼, 도도새를 그리는 김선우 작가의 새작업실, 예술 창작과 교육을 하는 작가 집단 R3028, 가구와 조명 디자인 작업을 하는 산림 조형 등이 그 주인공.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새를 그리는 김선우 작가의 새작업실로, 그는 2015년 페인트 창고를 스튜디오로 개조해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튜디오는 곧 날아오를 듯한 도도새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이유를 묻자 “하늘을 나는 것을 포기해 결국 멸종된 도도새를 통해 자유를 포기한 인간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어요”라고 답했다. 그가 2년 동안 도도새를 그리며 느낀 을지로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중구에서 월세의 90%를 지원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죠. 서울의 중심에 위치해 어디든 이동하기 편하고요”라고 김선우 작가는 답했다. 물론 냉난방 시설과 화장실을 갖추지 못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는 을지로의 생활에 꽤 만족하는 듯 보였다.






6, 7 조명과 가구 디자인을 하는 산림조형.

김선우 작가의 작업실을 뒤로하고 R3028에서 고대웅 작가를 만났다. R3028은 고대웅 작가를 포함해 8명의 작가가 창작과 예술 교육을 하는 공간으로 중구 초·중·고등학교의 예술 교육을 담당하고, 동네 주민을 초청해 콘서트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고대웅 작가는 “많은 이야기가 깃든 을지로는 참 매력적인 동네예요. 조선시대에는 관청이 있었고, 1930년대에는 모던 보이들이 활동하던 곳이죠. 여전히 1960년대의 감성이 살아 있는 동네라는 것도 흥미롭습니다”라고 말하며 을지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공구 거리에 있는 만큼 작업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전문 기술을 보유한 장인과 협업할 수 있다는 건 을지로의 또 다른 장점이다. 산림조형의 소동호 작가가 금속판을 회전시켜 모양을 만드는 시보리 가게의 장인과 조명을 완성한 것이 대표적인 예. “을지로에는 금형, 용접, 목공 등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분이 많아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장인과 지속적으로 협업을 이어갈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을지로엔 아티스트들이 만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비둘기네트워크는 빠키, 임도원 등 9명의 작가가 만든 티셔츠, 캔버스 백, 의자, 엽서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앞으로 아티스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확장해가는 것이 목표다.






을지로 아티스트의 작품을 판매하는 비둘기네트워크.

한편 중구는 200여 개의 조명 점포가 밀집한 을지로 거리를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길러리 夜-을지로 밤의 거리 미술관’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을지로4가역을 중심으로 대림상가에서 을지로5가 거리까지 560m 구간에 있는 12개 점포가 그 대상으로, 을지로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와 점포들이 팀을 이뤄 상점 외관을 설치 작품처럼 꾸미는 것이 목표. 작업물은 6월에 공개할 예정이며 이후 3차까지 점차 확대해나간다고 하니, 화려하게 탈바꿈한 을지로를 조만간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전통과 현대, 예술과 산업이 공존하는 을지로. 예술이 가져온 역동적인 기운에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하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하지만 낭만적인 을지로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걱정이 아닌 여유 있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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