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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6 FEATURE

예술인가, 아닌가

  • 2016-06-21

구제 옷 가게를 운영하던 무명의 비디오 필름 메이커가 10년 만에 저명인사들의 러브콜을 받는 세계적 스트리트 팝아티스트가 됐다. 종종 ‘예술인가, 아닌가’라는 논란에 휩싸이곤 하지만 세계적 미술관에 작품을 걸고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미스터 브레인워시가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6월 21일 열리는 개인전 준비로 한국을 찾은 미스터 브레인워시(Mr. Brainwash)를 만나기 위해 아라모던아트센터로 향했다. 인사동의 한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이곳은 아라아트센터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현대미술 전문 뮤지엄. 전체 규모 700평,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 공간을 채울 수많은 회화와 대형 설치 작품이 전시장에 속속 도착하자 수십 명의 스태프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때마침 모습을 드러낸 미스터 브레인워시는 전시실을 이곳저곳 누비며 특유의 커다란 목소리로 작업을 진두지휘하기에 바빴다.
2008년 LA에서 첫 개인전을 연 그는 2010년 이후 지금껏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의 주연, 뉴욕과 런던에서 개인전 개최,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 건물 벽화와 토론토 국제 필름 페스티벌 전시, 그리고 마돈나의 앨범 커버 디자인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주목받았다. 그의 캔버스는 마이클 잭슨, 비틀스, 데이비드 보위 등 세계적 팝 스타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등 유명인사가 흘러내리는 페인트와 컬러 스프레이 옷을 입고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그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어떠한 예술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모든 실수 자체가 창조다” 등의 발언으로 번번이 미술계에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여전히 이런 질문을 할지 모른다. “이게 낙서야, 예술이야?”
이 문제적 작가의 본명은 티에리 게타(Thierry Guetta). 1966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 LA에서 구제 옷 가게를 운영하다 돌연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닉네임으로 할리우드에서 개인전을 열고 일약 미술계 스타가 됐다. 그의 알쏭달쏭한 반전 인생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설명을 대신한다. 영국 스트리트 아티스트이자 동료인 뱅크시(Banksy)가 감독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미스터 브레인워시가 찍은 필름을 뱅크시가 편집해 만들었다.




전에서 선보이는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대표작




전에서 선보이는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대표작




<Life is Beautiful> 전에서 선보이는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대표작

사실 미스터 브레인워시에게는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병적이고 희한한 취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이후, 삶에서 중요한 사건을 놓쳐버릴지 모른다는 강박에 휩싸여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담기 시작했다. 그는 일생을 되짚어 가장 가슴 설렌 날들을 회상하며 말했다. “거리 예술가이자 사촌인 스페이스 인베이드를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어요. 세계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수많은 그라피티 아트 현장에서 예술가의 삶을 기록했죠.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없는 순간을 남긴다는 건 제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매일 밤 흥미진진한 모험과도 같은 그 일에 빠져들었고, 정체불명의 아티스트 뱅크시와 만나 그의 작업을 촬영하며 협력자가 됐죠.”
이후 그는 인생의 반전을 겪었다. ‘나도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그가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변신한 것. 그는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거리 예술가들을 촬영한 경험을 살려 전시회를 계획했다. 뱅크시를 비롯해 많은 거리 예술가가 추구한 것은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예술 행위 그 자체였다. 하지만 미스터 브레인워시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대형 전시장을 빌리고, 거금을 투자해 대규모 전시를 준비했다. “의 첫 페이지에 전시 소식이 실렸어요. 신진 작가의 첫 대규모 개인전이라는 소식에 오프닝에만 수천 명의 사람이 몰려들었죠.” 그의 전시는 원래 일정에서 3개월이나 연장하며 총 5만여 명의 관람객을 맞았고, 이후 작품이 고가에 팔리기 시작하면서 빚을 갚고도 남을 만큼 많은 돈을 벌었다. 비디오 촬영에 집착하던 평범한 남자가 현대미술계 아이콘이 된 이때, 그가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을 여는 이유는 뭘까?
이번 전시는 아라모던아트뮤지엄 최요한 총감독의 제안에서 비롯했다. <데이비드 라샤펠>전, <마이 클라우 아트토이>전 등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를 기획해온 최 감독은 이번 전시를 이렇게 설명한다.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미스터 브레인워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요.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키스 해링이나 장 미셸 바스키아가 뮤지엄으로 들어온 것처럼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면 무엇이든 아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대로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작품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LA카운티 미술관 등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뿐 아니라 미스터 브레인워시는 벤츠, 코카콜라, 나이키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예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 전체를 캔버스화하기 위해 많은 작품을 준비했어요. 이 자리를 통해 인생은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미스터 브레인워시는 200여 점의 캔버스 작품을 비롯해 높이 2.4m, 가로 10m의 대형 스트리트 아트워크 2점, 4m가 넘는 브러시 작품 5점과 3m 규모의 워커 로봇 같은 대형 설치 30여 점 등 300점이 넘는 작품과 소품을 컨테이너 8개에 가득 실어 왔다. 이순신, 세종대왕 등 한국의 위인을 비롯해 국내 유명 아티스트를 그린 평면 작품 등 한국 전시를 위한 특별한 작업도 기대되는 대목. “실제 사용하는 소품을 들여와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서 관람객이 앉아보고 만져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어요. 일반 관람 형태의 전시 외에 스텐실을 활용하는 그라피티 작업 존과 한쪽 벽에 액자를 걸어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퍼포먼스 존을 만들었죠. 이 액자는 다시 미국 작업실로 가져가서 작품으로 완성할 예정입니다.” 전시를 위한 준비 작업 기간을 10여 일로 잡고 내한한 그는 관람객이 보다 많은 것을 오감으로 체험하길 바란다며 빼곡한 스케줄을 신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일상을 기록한다. 손이 모자랄 땐 스태프가 그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이전보다 강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상한 것을 구현하고 그 결과가 관심을 얻은 것을 보니 어쩌면 그에겐 묘한 재주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이 예술인가, 아닌가는 6월 21일부터 9월 25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서 직접 판단해보자. 오늘도 예술과 대중, 상업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그는 외친다. “Life is Beautiful!”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사진 김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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