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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6 ARTIST&PEOPLE

아주 오래된 농담

  • 2016-12-09

N. S. 하르샤는 주변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농장과 동물, 사람, 대지의 질감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온 작가다. 회화와 설치미술, 조각 등을 통해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작업을 해온 그에게 삶과 종교, 미술의 모호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들었다.

섬세한 손길로 인도 사람들을 그려내는 N. S. 하르샤
Photo by Mallikarjun Katakol

N. S. 하르샤
인도 마이소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하르샤는 1995년 20대 중반의 나이에 미술계에 입문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간 세계 정상급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이어왔다. 인간과 삶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곧 그의 작품 세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오늘도 주변을 찬찬히 관찰한다.





저개발 지역 어린이를 돕는 인도 TVS 아카데미와 함께한 대규모 퍼포먼스 Ambition and Dreams: Project designed for TVS Academy, Tumkur, Karnataka, India, 2005 / Courtesy of TVS Academy, Tumkur, India




2013년 모스크바 비엔날레에 선보인 대형 페인팅 작업 Punarapi Jananam Punarapi Maranam (again birth-again death)(detail), Acrylic on canvas, tarpaulin, 365.8×2407.9cm, 2013

N. S. 하르샤 N. S. Harsha
상대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것, 독특한 것을 주목하는 것, 역동적인 것에 흥미를 보이는 것, 웃기고 이상한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것 등 인간의 평범한 삶을 거대한 캔버스에 표현해온 하르샤는 지금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인도의 대표적 미술가 중 한 명이다. 대담한 터치로 복잡하게 얽힌 사람 간의 관계를 그려내는 그의 작품 세계는 평범한 일상처럼 ‘아무것도 아니거나’, 아주 웃기는 어떤 것 중 하나였다. 국내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과 미국, 일본을 비롯한 나라에선 수준급 스토리텔러로 통하는 그의 오랜 예술론에 대해 들어본다.




개성 있는 사람들을 모아 그 안에서 일상의 현실을 보여주는 페인팅 작품. Come Give Us a Speech, Acrylic on canvas, 182.9×182.9cm(×6), 2008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인도의 전통 ‘세밀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세밀화에 변화를 주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게 작품의 특징이죠. 어떻게 세밀화를 만져볼 생각을 하게 됐나요?
인도의 전통 미술은 복잡한 여러 갈래로 이루어져 있어 간단히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현대성을 접목하려는 목적으로 인도의 회화 기법(세밀화, 민화, 삽화, 벽화 등)을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회화성과 형식 요소에 유독 맘이 끌렸죠. 예를 들어 세밀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 ‘자아’를 이해하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자아의 존재감을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미술가와 달리 당신은 20대 중반에 처음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왜 갑자기 미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어릴 때부터 워낙 낙서를 하거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의 다양한 경험으로 ‘일반적’ 교육 시스템엔 흥미를 잃고 말았죠. 자연스레 대학 입시에도 실패했고요. 미술은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떨어져 미술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사실 온전히 이해되진 않습니다.
부모님께선 다행히 저를 예술대학에 보낼 형편이 되셨습니다. 사실 그리 내색하진 않았지만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미술을 배운다는 것에 전 몹시 흥미를 느꼈죠. 말하자면 그때부터 ‘흥미로운 인생’이 시작된 겁니다.




Punarapi Jananam Punarapi Maranam(again birth-again death) Installation view: The Fifth Moscow Biennale of Contemporary Art, 2013

작품 얘기를 좀 해보죠. 2014년 작 ‘Mooing Here and Now’를 보면 뚜렷하지 않은 끝맺음과 일정치 않은 형태로 다양한 동물과 사람을 그렸습니다. 잠수부와 군인 같은 이들이 소에게 우유 짜는 장치를 연결하고, 코끼리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이 불규칙한 행렬을 이루죠. 인도 경제와 문화 상황을 나타낸다고 알려졌지만, 뭔지 모를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여러 해 전부터 각국의 젖소 농장을 다녔습니다. 제게 젖소 농장이란 사람과 기계, 동물이 함께 어우러져 흥미로운 일상을 만들어내는 ‘태피스트리’ 같은 곳이죠. 농업은 사실 고대부터 이어온 고유의 문화지만 최근엔 상당 부분이 과학으로 대체되었고요. 저는 이런 전환 내지는 변화가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젖소 농장을 둘러보았는데, 그림 속에 군인과 코끼리는 어떻게 등장한 것인지요?
몇 해 전, 야생 코끼리 두 마리가 마이소르(Msyore)시에 난입해 소동을 벌인 탓에 소 네 마리와 사람 한 명이 죽은 일이 있습니다. 결국 마취총을 쏴서 상황이 진정됐죠. 죽은 소 중 한 마리는 ‘주차 금지’ 표지봉에 묶여 있어 도망갈 수도 없었습니다. 제겐 당시의 영상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죠. 그 작품에선 서로 다른 종(種) 간의 모호한 관계, 그들을 둘러싼 복잡한 환경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작품을 “수많은 틈과 미진함으로 채운다”고 했습니다. 또 “관람객을 리드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호소하고 싶다”고도 했죠. ‘틈’과 ‘미진함’으로 채운다는 이 말의 뜻을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흐름(flux)과 모호함(ambiguity), 부조리(absurdity)는 예술의 내적 요소입니다. 더불어 제게 그림은 ‘명확한 언어’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에요. 저는 서로 부합하면서 동시에 대비될 수 있는 ‘나노-내러티브(nano-narrative)’를 모아 편집하는 걸 좋아합니다. 이를 통해 보는 사람의 인식에 ‘틈’과 ‘미진함’이 생겨나게 하죠. 또 하나의 내러티브 패턴만 존재한다는 관념도 부술 수 있다고 봅니다.




UN에 가입한 나라들의 국기를 만드는 재봉틀을 나열한 작품. Nations, Installation view: Sharjah Biennial 9, UAE, 2007

당신은 종교에 내재된 특성이 사람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 독점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근데 이런 종교적 작업을 하는 것에 주변인이나 다른 인도인들의 반감은 없었나요?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어땠나요?
인간은 ‘미지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그간 여러 ‘형태’를 만들어왔습니다. 저는 이런 형태의 형성 과정 그리고 이런 형태가 왜, 어떻게, 언제 인간의 의식 속에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죠. 사실 저는 종교를 비판하는 것 자체도 여전히 종교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제 작품 중 ‘Ceration of Gods’(2007년)나 ‘Poetics of Fear’(2006년)가 그런 문제를 다루고 있죠. 초기엔 주변에서 제가 종교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혹은 있었는지 말로 표현하거나 설명하는 건 어려웠죠. 그래서 전 그냥 다른 이들이 작품을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제 작업을 계속해왔습니다.
한편 당신은 개인과 집단에 얽힌 복잡한 감정과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UN에 가입한 여러 나라의 국기를 만드는 192개의 재봉틀을 나열한 작품 ‘Nations’(2007년)나 정치와 노동에 관한 작품 ‘A Macro Economic Dispute on Price Band of Rs. 30 to 60 per Day’(2004년) 등을 통해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죠.
저는 제 주변의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말하는 ‘주변’은 기억과 상상력, 우리가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삶을 포함하는 아주 큰 개념이죠. 지금 언급한 작품들은 사실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질문하신 것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인지하면 오늘날 인간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체감할 수 있죠. 저는 그것을 인간의 상상력과 기억, 현실의 매트릭스로 시각화합니다.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이런 사유를 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죠.
혹시 그런 작업을 하며 정치적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직접적인 정치 활동에 관여하는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단, ‘사물의 정치학(politics of things)’을 관찰하는 데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죠.
그럼 좀 더 깊이 있는 종교 활동에도 관심이 없나요?
종교는 따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걸 종교적으로 하고 있죠.




발전하는 인도 사회를 표현한 작품. Development, Bronze, wood, acrylic on canvas, 24×60×4cm(top), 25×60×3.5cm(bottom), 2004 Collection: Usha Mirchandani, Mumbai

당신의 작품 중 상당수는 평범한 인도인의 일상을 보여주며 그들의 삶 자체를 조명합니다. 멀리서 보면 모호함과 더불어 특별한 것 없이 밋밋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수백 가지 이야기와 미스터리를 말하고 있죠. 작품 소재를 주변의 흔한 대상인 인도인에게 맞춘 배경은 무엇인가요?
저는 ‘시각’의 과학을 가지고 장난치는 걸 좋아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건 오로지 일상생활을 통해서만 가능하죠. 그럴 때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우주’뿐일 겁니다. 그래서 전 일상을 우주와 현실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얇은 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면 크건 작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하나로 녹아 거대한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 즉 우주의 작은 부분이 됩니다. 전 모든 걸 풍경으로 취급하는데, 그걸 멀리서 바라볼 땐 밋밋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미스터리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오래전에 나노 기술 연구소에서 리서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몇 가지 현미경(원자현미경, 전자현미경 등)을 통해 나노 입자의 세계를 본 후 ‘현실’과 ‘규모’에 대한 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난 시간 굴곡진 역사, 다양한 언어가 어우러진 나라라는 특징은 인도 미술을 느리지만 확실히 변화시켰습니다. 당신이 처음 미술을 시작한 20대 시절과 현재, 당신의 삶과 생각 중에 가장 많이 변화한 건 무엇인가요?
세계지도에서 인도의 지리적 위치를 보면, 서로 다른 지역의 많은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주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는 무역을 통해 여타 문화와 식생활 및 종교 체계와 교류해왔고, 전 그것을 풍부한 삶의 어우러짐으로 보죠. 질문처럼 인도 미술은 안팎으로 다양한 영향을 흡수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예술 형태든 ‘대화’를 통해 그 기반이 형성되는데, 인도는 서로 다른 지역의 다양한 예술 형태와 깊은 대화를 나눠왔죠. 제 개인적 ‘변화’에 대해 답하자면, ‘정보’의 개념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전 ‘끊임없이 생성되는’ 정보의 적극적 소비자라는 걸 깨닫고 있죠.
내년 초에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시 소개 좀 해주세요.
2년쯤 전에 모리 미술관의 가타오카 마미(Mami Kataoka) 수석 큐레이터가 이제까지 제 예술 여정에 관한 전시회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 제안을 수락한 후 초기 작품들을 다시 보고 미술관 내에서 새 ‘여행’을 계획하는 건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었죠. 특정 지역의 사회적·문화적 체계의 면면,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더 큰 세상과 그 지역의 관계를 전시에 반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리 미술관의 전시는 내년 2월 4일부터 6월 11일까지 열립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새 프로젝트도 구상했는데, 그건 내년 4월쯤 선보일 계획입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N. S. Harsha Studio, Mori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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