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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6 FASHION

The Way to Find an Italian Story

  • 2016-10-26

<노블레스>가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브랜드 파비아나 필리피의 본사를 찾았다. 이곳에서 발견한 진정한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의미를 전한다.


아름다운 움브리아 주의 자연경관

밀라노 패션 위크를 코앞에 둔 가을날 이른 아침, 쇼를 취재하기에 앞서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파비아나 필리피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중부 지역의 움브리아(Umbria) 주로 향하기 위해서다. 움브리아는 다소 생경한 지명이지만 아시시(Assis), 스펠로(Spello) 같은 아름다운 중세 마을을 품고 있는 곳으로 동화에서 빠져나온 듯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완만한 산맥, 넓게 펼쳐진 평야,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싱그러운 사이프러스와 올리브나무가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움브리아는 전통적 직물 산업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우수한 니트웨어 브랜드 여럿이 이곳을 기반으로 시작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핸드메이드 니트를 만들던 여성들에 의해 관련 산업이 발달했다고.




1. CEO 마리오 필리피 2. 2017년 S/S 컬렉션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파비아나 필리피 본사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모던하고 심플한 외관을 갖췄지만 브랜드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아내 낯설지 않았다. 크림색 외벽, 입구를 장식한 탐스러운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자아내는 따뜻한 분위기는 주변 풍광과도 완벽히 어우러졌다. 이윽고 브랜드의 설립자이자 CEO인 마리오 필리피(Mario Filippi), 자코모 필리피(Giacomo Filippi) 형제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이들은 1985년 움브리아에서 브랜드를 시작한 뒤 ‘메이드 인 이탈리아’와 ‘심플리시티’라는 철학 아래 철저한 가족 경영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1994년, 지금의 자리에 본사 건물을 세우고 제품 생산과 관련한 모든 과정을 인하우스로 진행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했다. 마리오 필리피의 안내로 본격적인 본사 투어를 시작했다. 기획실에 들어서자 2017년 F/W 컬렉션에 대해 회의 중인 디자인팀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 시즌 컨셉은 물론 디자인 스케치, 소재 선정까지 컬렉션 전반에 관한 내용을 결정한다고. 2주마다 정기적으로 회의를 진행하지만 논의가 필요할 때마다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소재에 관한 것이다. 파비아나 필리피는 모든 니트 제품에 자사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원단을 사용하는데 다채로운 니팅 방법을 연구할 뿐 아니라 디자인 스케치에 적합한 소재 개발에도 노력을 들인다. 각기 다른 2~3개의 실을 섞어 신소재를 만드는 일은 철저히 브랜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다. 니트는 여느 원단과 달리 각각의 원사를 혼합했을 때의 결과물을 예측하기 힘든 데다 소재 자체가 아름답다고 해서 그것이 내구성과 착용감을 보장하진 않기 때문이다. 적절한 원재료를 선택하고 혼합 비율을 결정하는 실험적인 작업은 다년간의 경험과 노련함이 필수다. 다시 말해 이에 능한 브랜드가 곧 우수한 니트웨어 브랜드인 셈. 파비아나 필리피는 한번 개발한 패브릭에 대해 독점권을 갖지만 매 시즌 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디자인에 따라 더 나은 품질의 소재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기에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그에 대한 신념과 열정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새 컬렉션 준비를 위한 디자인 스케치

디자인과 소재를 결정한 뒤엔 이를 정확한 수치로 환산하는 작업, 즉 세부적인 테크니컬 시트 작성에 들어간다. 디자이너의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옷의 길이와 너비 등을 결정하는데, 생산 과정에서 워싱과 다림질 등을 거치며 직물이 수축하거나 늘어날 것까지 미리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야 해서 전문가의 직관적 판단력을 요한다. 시트가 완성되면 곧바로 샘플 생산에 착수한다. 제품은 크게 위빙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테일러링과 재봉이 필요한 것 두 가지로 나뉘며, 모두 전문 기술을 갖춘 장인이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파비아나 필리피의 제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봉제 라인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98%의 니트 제품을 재단 없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옷이 한 판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단순히 실을 엮는 작업을 통해 신체의 곡선과 실루엣, 피트까지 고려한 제품을 만드는 건 상상 이상의 고난도 작업이다. 그 때문인지 생산실 한편에는 작업 도중 실이 풀리거나 끊긴 니트웨어 샘플을 수습하는 장인의 테이블이 따로 있는데, 그녀의 능수능란한 바느질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생산실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 완제품이 아닌 샘플을 만드는 시설이기에 소규모로 갖춰 놓았지만 실제 제품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곳이다. 생산에 필요한 모든 기계와 핵심 인력이 모여 있는데, 장인은 뛰어난 손기술 뿐 아니라 디자인적으로 수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제품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들이다. 보다 나은 상품을 만들고자 본사 전체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매 시즌 방대한 컬렉션을 선보이기 때문에 제품 생산과 관련한 모든 단계를 회사 내부에서 진행합니다. 완벽한 수평적 구조를 갖춰 디자인부터 완성품을 만들기까지 부서 간 자유롭고 건설적인 의견 교환이 가능하죠. 그 덕분에 실시간으로 품질을 체크할 수 있고 더욱 창의적으로 작업할 수 있습니다.” 마리오 필리피가 말했다.



파비아나 필리피 본사 쇼룸

본사 투어를 마친 뒤에는 움브리아 주의 작은 마을 몬테팔코(Montefalco), 스펠로(Spello) 등을 찾아 브랜드가 뿌리내린 지역 경관을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파비아나 필리피 특유의 우아한 컬러, 자연스러운 실루엣, 자연 친화적인 소재 모두 이 지역에서 영감을 얻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마을 곳곳에 위치한 작은 가죽 공방, 패브릭 숍, 레스토랑 등을 둘러보던 차에 일정을 함께하던 마리오 필리피가 말을 꺼냈다. “움브리아 지역 주민은 와인, 올리브 오일 등 그 무엇을 만들든 자신의 일을 최대한 즐기며 최상의 것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합니다. 우리 브랜드 역시 옷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기에 그저 그것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성공의 요인이 다른 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순간 그 단순한 진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것을 만드는 데에 묵묵히 집중하는 시간, 지금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화려한 기교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파비아나 필리피의 옷이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에디터에게는 다양한 취재 기회가 주어진다. 셀레브러티를 능가하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세계적 디자이너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들의 창작물을 보다 먼저, 가까이에서 만지고 감상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번 취재 처럼 브랜드의 핵심인 매뉴팩처와 본사를 찾아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하기도 한다. 보도자료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내부 분위기나 기업 문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고, 장인정신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모자란 노력과 기술이 결합된 제품 생산 과정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일정을 마칠 즈음에는 대개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품게 된다. 이번 파비아나 필리피의 본사 방문 역시 에디터에게 오랜 여운을 남겼음은 물론이다.




1. 모던하고 안락한 분위기의 본사 내부 2. 움브리아 주에 위치한 파비아나 필리피 본사 3. 샘플 패턴 제작 과정








밀라노에서 열린 2017년 S/S 컬렉션 프레젠테이션 현장




FABIANA FILIPPI 2017 S/S COLLECTION
본사에 위치한 쇼룸과 밀라노 컬렉션 기간 중 열린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파비아나 필리피의 새 컬렉션을 만날 수 있었다. 과장되지 않은 심플한 실루엣과 우아한 디자인은 고스란히 유지하되, 계절감을 살린 상큼한 컬러 팔레트를 사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로맨틱한 해안가를 산책하는 풍경을 그린 룩은 레몬 옐로, 마린 블루, 스트로베리 레드, 오션 블루, 그린 등을 포인트 컬러로 사용했다. 코튼, 실크, 울, 크레이프 등 가벼운 텍스처의 패브릭에 스웨이드, 레더, 트위드 등 무게감 있는 소재를 믹스해 재미를 주었으며 플로럴 자수와 체크 패턴 등 기존에 자주 사용하지 않던 장식 요소를 과감하게 활용한 점도 눈에 띈다. 몸을 따라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여성스러운 실루엣의 이너와 직선적 라인을 강조한 오버사이즈 아우터 등 대조적인 의상을 레이어링하면 더욱 근사한 룩을 연출할 수 있을 듯. 한편 파비아나 필리피는 향후 계속해서 액세서리 라인을 확장해나갈 계획인데, 2017년 S/S 시즌에는 스트라이프 리본 장식의 레더 백, 가죽을 꼬아 만든 에스파드리유, 엠브로이더리 스니커즈 등을 선보인다.




2017년 S/S 컬렉션 의상


에디터 이혜미(hmlee@noblesse.com)
사진제공 파비아나 필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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