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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01

아트 마케팅의 예술

럭셔리 브랜드와 예술, 그 필연적 만남.

밀라노 폰다치오네 프라다 미술관에서 열린 《Synchro System》전에서 선보인 카르스텐 횔러(Carsten Höller)의〈The Upside Down Mushroom Room〉(2000).

예술 애호가, 컬렉터, 큐레이터, 비평가가 예술을 논하는 자리에는 숫자가 종종 등장한다. 현대미술 경매에서 마지막 입찰을 외친 자에게 축하를 건네는 자리든 아트 페어 프리뷰가 열리기 몇 분 전 동료와 속삭일 때든 가격은 입에서 입으로 꾸준히 오간다. 하지만 작품가가 공개적으로 화제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5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작품을 의뢰하고 제작해 상품으로 거래하던 메디치 시대나 실크로드 이전부터 결코 둘을 분리할 수 없는데도, 미술과 돈을 연관 짓는 자체를 금기시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문화 면에 등장하는 달러 기호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비즈니스의 교차점에서 주요한 럭셔리 기업의 사례를 논하고자 한다. 초창기엔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과 장 콕토(Jean Cocteau),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와 오드리 헵번처럼 하우스 창립자가 예술가와 우정을 나누는 순순한 만남이 주를 이뤘다면, 차차 예술은 기업의 정체성 확립, 장식, 마케팅, 홍보 등 니즈를 해결하고 가다듬는 데 활용됐다. 공간, 건축, 제품 디자인, 광고캠페인, 패션쇼 시노그래피를 아우르는 영역에 예술적 요소를 투영한 럭셔리 기업은 이 예견된 만남의 최대 수혜자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하이엔드 브랜드와 예술의 접점은 매장 건축과 작품 배치 같은 공간 디자인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서울만 봐도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에 참여한 루이 비통 메종, 크리스챤 드 포잠박(Christian de Portzamparc)의 하우스 오브 디올, 피터 마리노(Peter Marino)의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건축 거장의 손길을 거친 매장이 즐비하다.





파리에 있는 전시 공간 LV 드림(LV DREAM).

“예술은 브랜드의 명성과 자산 가치를 높인다”고 말한 피터 마리노는 샤넬 서울 플래그십 안팎을 설계하며 애그니스 마틴(Agnes Martin), 이우환을 비롯한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직접 골라 층마다 전시했다. 디올이 한국의 첫 단독 매장 오픈을 기념해 1층 입구에 설치한 이불의 작품 역시 눈에 띈다. 해외 사례로는 루이 비통 라스베이거스 메종에 들어선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 전시 공간이 단연 돋보인다.
럭셔리 하우스와 예술계의 유대감은 나날이 다양한 양상을 띠며 진화한다. 예술가를 초대해 쇼윈도 디스플레이나 공간 장식의 창조적 과정에 더 깊숙이 개입시키기도 한다. 쇼윈도 디자인을 그 나라 출신 동시대 미술가에게 의뢰하는 에르메스의 정책은 진정성과 지속성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역사회와 문화를 향한 이 같은 존중은 어느덧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 중 하나로 평가받는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에르메스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 무용 등 종합예술을 아우르는 창작가와 함께 폭넓은 협업을 보여주며 오래도록 지켜온 고유의 철학, 문화유산을 접목하는 시도를 특유의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럭셔리와 예술 사이 접점의 진가는 21세기 들어 새롭게 빛을 발한다. 비영리 미술 기관에서는 좀처럼 편성하기 힘든 수준의 자본을 앞세워 브랜드 전시를 기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도 해외 순회전이 하나둘 상륙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까르띠에 소장품전》(2008)에서는 근대 장식미술의 원류를 더듬으며 보석공예의 예술적 가치를 살폈고 미술, 패션, 영화를 다각도로 아우르며 경희궁 앞뜰에서 진행한 《프라다 트랜스포머》(2009)는 선뜻 찾아보기 힘든 선구적 크로스 컬처 프로젝트였다. “예술은 예술 그 자체일 때 의미가 있다”고 믿는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이끄는 하우스다운 문화 행사였다. 당시 일부 언론은 한국의 문화유산이 ‘사치를 조장’하는 외국계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많은 이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다. 14년 후인 지난봄 구찌가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성황리에 개최하기에 이르렀으니, 럭셔리 하우스의 문화 예술 기여도와 노력이 쌓이면서 여론과 정부 기관에도 많은 변화가 일었다. 럭셔리 하우스는 예술품 수집, 문화 후원에도 적극 나섰고 이어 직접 재단을 꾸리거나 미술관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를 후원한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의 현신이라 일컫기도 했다. 1984년 이래 현대미술재단을 운영하는 까르띠에는 현대미술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창의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3월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선보인 관객 없는 연주회 영상을 까르띠에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해 회자되기도 했다. 전주국제영화제부터 공식 파트너를 맡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이르기까지 후원을 아끼지 않으며 영상 창작물에 대한 헌신 또한 계속 이어가고 있다. 1988년부터 문화재단을 운영한 로에베는 하우스의 DNA와 밀접한 공예를 앞세워 2016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제정하며 명민한 차별화를 꾀했다. 광고와 일회성 프로모션, 연예인을 앞세운 마케팅 캠페인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공예의 정수에 헌정하는 진정성이 빛난 시도였다.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인 리모와는 5월에 브랜드 핵심 정신 ‘이동성’을 주제로 한 제1회 디자인 프라이즈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의 영예는 의수나 의족을 착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인공 신체 긍정주의(Artificial Body Positivity)’를 디자인한 노아 그르직(Noa Grgic)에게 돌아갔다. 그 외에 참가자 다수가 이동성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는 발상과 진화하는 모빌리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 그 끝없는 이야기》 전시 전경.

이러한 흐름에서 빠질 수 없는 브랜드가 디올이다. 디올 하우스는 매 시즌 다양한 아티스트를 초청해 디올 액세서리를 재창조하는 ‘DIOR LADY ART’ 프로젝트를 선보였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디올의 상징과도 같은 레이디 디올(LADY DIOR) 백이 이불 등 세계적 아티스트의 손을 거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올가을에는 하종현, 이건용, 제이디 차(Zadie Xa) 등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아티스트가 디올의 아이코닉 백을 재해석한 여덟 번째 에디션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2006년 LVMH가 파리 불로뉴 숲에 초대형 미술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는 문화 예술 진흥을 위한 기업과 공공 예술 기관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프랭크 게리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창의성을 북돋우고 현대미술을 가까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예술 후원 활동은 오늘의 예술이 내일의 유산이라 믿는 그룹에 하나의 전략적 선택이었으리라. 2015년 프라다는 밀라노 폰다치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를 개관, 소장품을 공개했다. 또한 케링 그룹의 피노 컬렉션이 베니스에 이어 파리 중심부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에 입성했고, 까르띠에 역시 파리 시내의 까르띠에 재단 미술관에 이어 루브르 근처에도 신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미술계의 환영을 받았다. 이처럼 다양한 그룹이 예술을 매개로 고유의 이미지와 철학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며 공익을 위해 힘썼다.
문화 예술 커뮤니케이션이 날로 까다로워지는 주요 고객과 잠재 고객의 감성에 동시에 어필할 가장 혁신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세계화와 신흥 시장의 성장은 다국적 럭셔리 기업의 시장 확장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해마다 새로운 에디션을 발표하는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와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ARTYCAPUCIN)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국적은 실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나아가 장인정신, 미식, 라이프스타일에 이르는 요소를 통합해 럭셔리 자체가 예술화를 꾀하고 있다는 흐름을 부정할 수 없다. 지역사회에 대한 럭셔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단발성이 아닌 장기적 공헌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황다나(미술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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