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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6

직접 맞닿아 완성해나가는 것

직접 체득한 경험과 직관적 자세로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내는 부부 아티스트 로사 로이와 네오 라우흐.

로사 로이 Rosa Loy
1958년 독일 작센주 츠비카우 출신의 로사 로이는 베를린에서 원예학을 전공, 라이프치히에서 예술가로서 기반을 다졌다.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일원으로, 특히 여성 인권에 관심을 두고 작품에 주로 여성을 등장시키며 꿈, 역사, 환상에 관한 다양한 내러티브를 담아낸다.

네오 라우흐 Neo Rauch
1960년 독일 라이프치히 출신으로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에서 수학했다. 신라이프치히 화파 멤버인 그는 현재 세계적 갤러리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 전속 작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계승한 독자적 화풍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지난해 1월 스페이스K에서 막을 내린 로사 로이(Rosa Loy)와 네오 라우흐(Neo Rauch)의 2인전 이후 1년여 만에 두 작가가 한국을 찾았다. 작년 12월까지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로사 로이의 개인전을 위해서다. 특유의 컬러와 독특한 화풍을 보면 누구든 두 작가의 작품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지만, 두 작가를 더욱 깊이 알고 싶다면 ‘신라이프치히 화파’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들은 독일의 유서 깊은 예술대학 라이프치히 미술대학(Hochschule fu..r Grafik und Buchkunst Leipzig) 출신으로, 1990년대 독일 통일 이후 새롭게 등장해 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 화풍을 선보이는 예술가 그룹이다. 로사 로이는 신라이프치히 화파 중에서도 보기 드문 여성 작가이며, 네오 라우흐는 이 화파의 중심이 되는 아티스트다.





위쪽 로사 로이, Im Freien, 캔버스에 카제인, 120×150cm, 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Baton
아래왼쪽 로사 로이, Nachbars Garten, 캔버스에 카제인, 150×120cm, 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Baton
아래오른쪽 로사 로이, Kontemplation, 캔버스에 카제인, 170×130cm, 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Baton

한국에서 다시 한번 로사 로이 작가님의 작품을 볼 수 있어 기쁩니다. 신작을 최초로 공개하신 거죠? 로사 로이(이하 로사) 이번 한국 개인전에 맞춰 특별히 제작했어요. 전시 공간에 어울리도록 크기나 내용을 달리했죠. 전시 제목 ‘러키 데이즈(Lucky Days)’는 한국의 관람객에게 하루하루가 곧 행운과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어 정한 거예요.
네오 라우흐 작가님도 네덜란드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죠. 직접 보러 가지 못하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네오 라우흐(이하 네오) 직접 보러 와주세요.(웃음) 두 가지 전시를 개최하는데, 네덜란드 아센(Assen)의 드렌츠 박물관(The Drents Museum)에서 종이 매체를 주목하는 개인전을 3월 26일까지 진행합니다. 1월 8일까지는 네덜란드 즈볼러(Zwolle)에 있는 훈다츠 박물관(Museum de Fundatie)에서 작품 50여 점을 선보였죠. 레트로 느낌이랄까, 거꾸로 돌아가서 생각하는 시선을 담았어요.
두 분은 디지털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에 회화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가인데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예술 표현 방식도 다양하지만, 모든 매체의 중심이자 기본은 회화라고 생각합니다. 회화를 선택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네오 회화 작업을 하려면 많은 힘을 불어넣어야 해요. 한정된 네 모서리에 뭔가를 담아내는 매력이 있죠. 정원을 가꾸고 꽃을 피우듯, 그림도 모서리 4개가 있는 캔버스에 꽃을 피우는 것과 같아요. 우리 집 정원은 그야말로 우리만의 천국이거든요. 아, ‘다스 파라다이스(das Paradies, 천국을 뜻하는 독일어)’를 한국어로 뭐라고 하죠?
‘천국’이요. 네오 천국, 천국, 천국. 잊지 않을게요. 아무튼 집이라는 테두리 안에 천국 같은 아늑한 정원을 꾸미듯이 회화도 한정된 공간에 많은 것을 담아내야 하죠. 우리 모두 기꺼이 천국에 있고 싶어 하잖아요. 천국처럼 아늑한 정원에 있고 싶듯이 캔버스에 우리의 상상력을 표현하고 싶어요. 조경 지식을 갖추면 정원을 더욱 잘 가꿀 수 있는 것처럼, 회화도 마찬가지예요. 회화도 단순히 쓱싹 그린다고 끝이 아니잖아요. 회화 작가로서 전문 지식을 갖추고 매체를 대하며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로사 회화는 손과 몸으로 하는 작업인 만큼 몸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요. 쉽게 말해 제가 캔버스에 몸을 직접 부딪혀가며 그리기에 손맛을 내는 매력이 있죠. 디지털 매체는 도구를 사용하니까 완성하기까지 한 단계를 더 거치잖아요. 회화는 손, 즉 몸으로 작품과 직접 대화할 수 있어 만족스러워요. 뭔가를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매체를 통해 본다면 한 꺼풀을 거쳐서 접하게 돼요. 그 단계가 필요 없다는 점이 회화의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작업합니다. 회화로 많은 것을 실현하고 싶거든요. 꼭 작업만이 아니라 저는 직접 만지고 느끼면서 일하고 싶어요. 책상 같은 가구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요. 무엇이든 중간에 끼어들면 절대로 제 몸으로 직접 느끼지 못하잖아요. 제가 작품에 직접 선을 하나 긋는다면 그 선은 곧 제 발자취이자 바로 저 자신이에요. 컴퓨터는 쉽게 말해 개발자가 끼어 있으니 직접 맞닿아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회화와 드로잉으로는 저와 작품이 깊이 닿을 수 있죠. 네오 맞아요. 가령 그리다 지문이 찍히거나 머리카락이 물감에 섞여 들어가도 그대로 둡니다. 오히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업이 되죠. 로사도 저도 자연스럽게 두는 편이에요. 로사 작품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그대로 둔다면 작품에 우리 DNA를 남기는 거네요? 그럼 나중에 내가 사랑하는 네오와 똑같은 사람을 만들 수 있겠네요.(웃음)
그런 자연스럽고 진지한 자세로 작업에 임하니 더욱 독창적인 작품이 탄생하나 봐요. 전에 네오 작가님이 “의식의 흐름대로 작업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항상 즉흥적인지 작품 구성과 소재를 다 계획하고 그리는지 궁금합니다. 예술가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정, 영감의 원천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죠. 네오 연금술에서 가장 처음에 물질을 넣고 섬세한 단계를 거쳐 점차 금으로 만들어가듯, 작업 과정도 비슷해요. 상상력의 재료를 조심스럽게 하나의 작업으로 완성하죠. 우리가 성장하면서, 심지어 아주 어린 시절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인지한 것을 몸에 다 저장해왔다고 생각해요. 저와 로사를 포함한 작가들은 땅에서 원재료나 광석을 캐내고 가꾸면서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로사 네오의 말에 덧붙이면, 우리는 살면서 경험하는 것을 오롯이 몸에 축적해요. 그만큼 굉장히 다양한 방면으로 상상하고 소재를 끌어내죠. 매일 뭔가를 접하면서 새로움을 느끼곤 해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많이 쌓아 올리고 끄집어내 결부시킬 방법을 생각하죠. 그냥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작업도 있고, 때로는 머릿속으로 작업을 미리 구상한 다음 세상에 내놓기도 합니다. 영감도 마찬가지예요. 축적된 시각 경험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백지의 캔버스와 저만 남았을 때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네오 라우흐, Anpassung, 캔버스에 유화물감, 40×60cm, 2020 Courtesy of the Artist
네오 라우흐, Abstieg, 캔버스에 유화물감, 60×50cm, 2009 Courtesy of the Artist


두 분의 작품에서는 특히 기묘하고 미스터리한 요소가 많이 드러나잖아요. 남다른 환경에서 자라며 체득한 시각적 경험 덕분인가요? 네오 작업을 할 때 어린 시절 집 안 벽지에서 본 색상을 넣기도 해요. 과거 기억과 경험이 갑자기 떠올라 캔버스에 그려 넣기도 하고요. 결국 제 작업은 꼭 현재가 아닌 제가 경험하고 지나온 과거 이야기이기도 하죠. 경험을 시각화하는 맥락으로 보면 돼요. 로사 맞아요. 특히 저는 모든 것을 시작적으로 기억해요. 회화 작가에게는 시각화가 곧 힘이에요.
작품에서 인물이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그럼 인물도 경험에서 온 존재예요? 주변인이나 특정 인물을 그리는지 알고 싶습니다. 로사 특정 인물을 따오거나 직접 표현하지는 않아요. 늘 캔버스에 캐릭터를 옮겨놓고 얼굴을 중요하게 그려요. 네오와 저 둘 다 그림에 얼굴이 잘 보이잖아요. 작업할 때 캐릭터(인물)가 작품 자체와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처음부터 정하고 시작하지는 않아요. 그리다 보니 안 맞으면 바꾸기도 하면서 제 작품 자체와 작품 속 인물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도록 펼쳐두죠.
직접 자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자화상을 담기도 하세요? 로사 모든 그림은 제 자아인 셈이죠. 어쨌든 저만의 방식으로 작업하고 제 모습이 당연히 들어가요. 살면서 여러 결정을 내리잖아요. 옷장을 열어 오늘 날씨에 이 옷이 잘 맞을까 고민하거나 사소하더라도 선택하고 결정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작업도 그런 과정과 같아요. 순간의 선택을 확장해 모든 걸 담아내요. 제가 그릴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텅 빔’을 작품으로 표현할까? 하며 또 그리거든요. 그만큼 그리면서 마주하는 모든 상황이 곧 제 자아와 연결돼요. 네오 우리 둘 다 해당돼요. 어쨌든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우리를 통해 탄생한 인물이잖아요. 오직 캔버스와 제가 직접 대면해서 나온 인물이죠. 그래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솔직하게 그려요. 작품을 보면 로사와 제가 우리 모습을 투영하는 방식이나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직접적 자화상을 자주 그리지는 않지만, 우리가 표현하는 모든 것이 자화상이나 다름없죠.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는요? 두 작가님 특유의 톤, 소재, 크기, 배치, 구성 등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흥미로운 작품을 탄생시킨 가장 중요한 열쇠를 꼽는다면요? 로사 우리는 직관을 믿어요. 인지하지 않고 결정하는 것, 즉 우리 몸, 정신, 지성, 직관의 하모니가 모여 작품을 완성하죠. 내가 뭘 느끼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요즘 사람들은 직관을 멀리하려는 것 같아요. 감각이나 직관을 억누르려고 하잖아요. 많은 사람이 뭔가 결정을 내릴 때 오래도록 생각해야 한다고 훈련을 받으니 어쩔 수 없죠. 당연히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그렇게 믿어야 해요. 자신의 직관을 의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해요. 네오 동의해요. 작가는 특히 직관적으로 느끼며 작업해야 하는 직업이죠. 마음으로 직접 작품을 마주하고 작품 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거예요. 물론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미묘한 움직임이나 감각을 느끼죠. 직접 느껴야만 잘 알 수 있거든요. 식물을 기르면서도 식물이 힘들어하는지, 기분이 좋은지 알잖아요. 각자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감각을 배제하고는 작업할 수 없어요.
두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치 한 사람과 얘기하는 듯해요.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이든 서로 동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네오 결혼 생활을 오래 해서 그래요. 어쩔 수 없어요.(웃음)
두 작가님처럼 부부이자 예술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잖아요. 그럼에도 작업할 때는 서로 공간을 분리해서 쓴다고요. 그래도 각각의 작업에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교류하고 영감을 주고받는 방식을 들려주세요. 로사 & 네오 작업할 때는 반드시 규칙을 정해놓고 커뮤니케이션해요. 조언이나 의견이 필요하다면 먼저 물어보죠. 상대방이 묻지 않을 때는 좋다는 말도 하지 않아요. 잘못된 순간 혹은 잘못된 칭찬일 수 있거든요. 아무리 좋은 의도여도 모르는 새 작업을 침범하고 방해할 수도 있으니까 서로 정중히 요청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요. 심지어 한 사람이 조언을 구할 때도, 당장 조언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면 나중에 하겠다고 거절하기도 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요즘 한국에 젊은 아트 컬렉터가 엄청 늘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여서 공부하거나 직접 발로 뛰며 신진 작가를 찾아다니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아트 컬렉팅에 몰두하죠. 두 작가님의 작품을 사고 싶어 하는 팬도 많아요. 작가로서 조언을 한다면요? 로사 & 네오 정말 자신의 심장을 울리고 마음이 끌리는 작품인지 잘 살펴보면 좋겠어요. 만약 자본금이 많지 않다면 그래픽이나 에디션 작품, 수채화 같은 작은 작품을 구매하면서 컬렉팅의 발걸음을 떼는 방법도 있죠. 되도록 진품을 걸어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요. 제 어린 동생이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타인의 말에 이끌려 사는 대신, 스스로 마음과 눈으로 직접 보고 원하는 작품을 구매하라고요. 심지어 아트 어드바이저라는 직업이 생길 정도잖아요. 누군가 특정 작품을 사라고 부추긴다거나 잠재력이 있다고 속삭여도 흔들리지 않길 바라요. 그러다 금방 다른 작가가 나타나고 사라질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예술은 유행이 빨리 바뀌는 패션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작은 작품이라도 집에 거는 순간 앞으로 그 작품과 시간을 보내야 해요. 작품과 함께 삶을 영위해야 하는 만큼 온 마음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사진 제공 작가·갤러리바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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