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독일예술의 주역 귄터 푀르크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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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21

전후 독일예술의 주역 귄터 푀르크

전후 독일 예술계를 이끈 주요 인물인 귄터 푀르크의 생애를 짚다.

작업 중인 귄터 푀르크의 모습.
Courtesy of the Estate Günther Förg, Suisse © Wilhelm Schürmann, Herzogenrath

“올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전시 중 가장 쿨한 전시다.” <패드 매거진(FAD Magazine)>은 하우저 앤 워스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난해 9월 개막해 올해 1월까지 열린 귄터 푀르크의 개인전을 이렇게 평했다. 1992년 샌프란시스코 하인 에디션 / 라임스톤 프레스(Hine Editions / Limestone Press)의 개인전 이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무려 30여 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포브스>를 비롯한 주요 매체가 앞다투어 소개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귄터 푀르크는 1970년대 초 뮌헨 미술원(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München)에서 수학하고,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앵포르멜화파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카를 프레트 다멘(Karl Fred Dahmen)에게 사사하며 재료를 강조한 추상화를 접했다. 흑과 백을 화면에 밀도 있게 쌓아나가며 물질성을 탐구한 작업을 선보이면서 앞으로 걸어갈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Installation View of <Günther Förg. Appearance> at Hauser & Wirth Los Angeles, 2021
Courtesy of the Estate Günther Förg, Suisse and Hauser & Wirth
Photo by Zak Kelley © 2021 Estate Günther Förg, Suisse /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회색은 아무것도 아니다. 흰색도, 검은색도 아니고 그 사이의 무언가다. 대상과는 연관이 없다. 무언가 자유로운 존재다(Grey is nothing: not white, not black. Something in between. Not concerned with the figure. Something free)”라는 말을 남길 만큼 회색에 매료된 그는 당시 3년 동안 매주 새로운 그림을 하나씩 그리기로 결심했다. 구하기 쉽고 저렴한 재료를 사용해 캔버스를 검은색으로 칠한 다음 스펀지로 아크릴물감 레이어를 만들어 회색 톤으로 유화 효과를 냈다. 마치 흰색 분필의 흔적을 닦아낸 칠판처럼 보이는 유백색의 반투명 베일을 남겨 색상, 구성, 움직임 같은 화면 속 요소를 축소, 삭제하며 매체로서 회화의 본성을 재통합하고 탐구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의 칠판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귄터 푀르크는 하나의 스타일로 자신의 영역을 한정 짓지 않았다. 회색 회화 이후에는 단색 시리즈에 색상을 첨가하며 색상 연구도 거듭했다. 캔버스나 종이에 대형 창과 격자를 그린 대표작 ‘그리드 페인팅(Gitterbilder)’ 시리즈를 시작했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작품과 삶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면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뭉크가 ‘절규(The Scream of Nature)’(1893)에서 선보인 독특한 인물의 스타일이나 감정 표현이 아니라, 비구상적 요소나 배경이나 색상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뭉크의 또 다른 작품 ‘마라의 죽음(Death of Marat)’(1907)의 배경에도 푀르크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십자형 녹색 격자무늬가 있다.
푀르크는 ‘그리드 페인팅’을 통해 추상회화를 연구하며 붓의 종류, 붓질의 다름, 색상, 선과 공간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질문을 던졌으며, 이후에는 제스처 마크 메이킹으로 관심을 옮기면서 격자의 고전적 형태를 변형하고 이를 반복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점점 그리드의 밀도를 높여가며 복잡한 색조, 구성 레이어링을 통해 물질적 다양성과 표면의 깊이를 끈질기게 탐구했다. 초기 ‘그리드 페인팅’ 중 일부는 특정 작품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제한을 두지 않은 크로스해칭(cross-hatching) 기법으로 제작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스폿 페인팅으로 변화를 거듭했으며 비슷하거나 같은 색조로 그린 밝은 바탕에 격자를 배치하기도 했다.





Untitled, Mixed Media on Paper, 46×112cm, 2005
Courtesy of the Estate Günther Förg, Suisse and Hauser & Wirth
Photo by Bernhard Strauss © 2021 Estate Günther Förg, Suisse /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Untitled, Acrylic on Canvas, 195×165cm, 2006
Courtesy of the Estate Günther Förg, Suisse and Hauser & Wirth
Photo by Bernhard Strauss © 2021 Estate Günther Förg, Suisse /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재료 면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꾀하며 나무, 구리, 청동, 납 같은 새로운 재료를 실험했다. 납 시트에 아크릴을 칠하고 나무 프레임으로 지지한 시리즈를 선보이며 회화와 조각 사이의 경계를 흐트러뜨렸다. 금속, 납, 나무 시트의 풍화되고 긁힌 표면으로 형식적이고 표현주의적이면서 자유로운 이미지를 나타냈으며, 시간이 멈춘 순간을 재현하고 회화의 붓질을 연상시키는 자국을 남긴 청동 조각을 제작하기도 했다.
작가는 재료와 형식뿐 아니라 매체의 변화도 꿈꾼 듯하다. 독일의 추상화가 블링키 팔레르모(Blinky Palermo)의 영향으로 건축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20세기 합리주의적 건축과 근대건축물을 대형 사진 작업으로 재현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바우하우스 건축물부터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건축물까지 문화적 혹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을 인쇄해 내놓았다. 이후 몇 년 동안은 회화보다 사진에 몰두했는데, 사진 작업을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말하며 사진에 대한 열정을 증명했다. 거친 초점과 독특한 원근법으로 회화적 터치를 암시한 그의 사진 시리즈에 당시 비평가들의 찬사가 뒤따른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작품을 넘어선 전시 공간을 실험하고자 갤러리 벽에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대조적으로 배치하는 구성 방식을 선보였고, 문이나 창문 같은 전시 공간의 구조마저 작품에 동화시켰다.
귄터 푀르크는 3000권이 넘는 책을 보유할 만큼 예술과 미술사에 대한 깊고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추상주의, 표현주의, 현대미술을 비유, 모방하며 전복하고 재구성, 상상하는 등 자유롭게 선대 혹은 동시대 예술가의 회화를 탐구했다. 그의 작품에는 앞서 언급한 뭉크 외에도 바넷 뉴먼(Barnett Newman), 클리퍼드 스틸(Clyfford Still), 마크 로스코(Mark Rothko) 같은 모더니스트 거장의 흔적이 담겨 있다. 모더니즘을 연구하고 갖가지 매체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사용해 예술의 본질적 특성인 색상, 형태, 구성, 공간을 끊임없이 변형하고 고찰했다.
작가가 말년에 이르러 2003~2007년에 그린 대규모 회화를 미니어처로 변형, 재현한 작품 시리즈를 제작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평생에 걸쳐 수많은 거장을 연구한 종합적 산물로서 결국 자기 자신을 모방하고 연구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실험하면서 회화의 서사를 확장한 그가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으며 예술 실험에 매진했듯, 그의 작품도 길이길이 남아 후대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백아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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