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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9

통제의 미학

오민의 작품은 음악, 디자인, 미술의 완벽한 조율로 탄생한 영상 미학을 제시한다. 한 편의 퍼포먼스 기록으로, 뮤직비디오로, 지독하게 편집한 일기로, 그 무엇으로 봐도 충분히 아름다운.

2015년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열린 오민의 개인전 <트리오>전경. 영상 작품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Youngwoo Lee, Shinae An, and Elodie Mollet)’를 선보였다.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 3채널 HD(1080p) 비디오, 6채널 오디오, 9분 28초, 2015_ 피아니스트, 보컬리스트, 무술인이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습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엮었다.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열린 개인전 <트리오(Trio)>의 영상 작품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에 관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는 음악적 제스처와 통제의 관계를 연구한 작업이다. 표현과 몸짓의 원리에 다가가기 위해 세 인물이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 Op.35 1악장 B flat minor의 제1주제’를 연습하는 장면을 엮어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했다. 이때 연습하는 장면을 집중 조명하기 위해 연습 방식을 음악적 연습과 물리적 연습으로 분리하고, 각 방식을 대표하는 새로운 두 가지 악기를 공연에 초대했다. 음악적 연습(악보 연구와 음악적 해석)에선 어떤 악기 연주보다도 몸의 움직임과 소리의 표현이 가장 긴밀히 연결된 노래 연주를, 그리고 물리적 연습(근육의 위치, 움직임, 세기를 조절하면서 반복 훈련)에선 정확한 동작을 위해 힘을 조절하고 자기를 수양해야 하는 한국 무술 수박도를 각 대응점으로 설정했다. 연습 과정의 정신적·신체적 측면을 함께 다루기 때문에, 최종 영상에서 관람객이 듣는 소리는 연주자가 연습 중 자신의 머릿속에서 듣는 가상의 소리인 셈이다.

그 작업은 영상과 퍼포먼스 중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이미 완성한 퍼포먼스를 비디오로 촬영한 작업이 아니다. 촬영한 장면을 조합해 하나의 퍼포먼스로 완성하는 과정이며, 어떤 의미에서 완성한 영상은 퍼포먼스의 스코어가 된다. 음악은 악보에서 기호로 완성되어 연주자에게 인스트럭션으로 제시된 후 연주로 실행되지만, 춤은 몸으로 먼저 실행해 완성하고 그 춤을 보존, 전달하기 위해 무보(舞譜)로 정리된다. 즉 악보와 무보는 원칙과 실제, 기록과 실행에서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인다. 이 작업을 퍼포먼스의 스코어로 볼 때, 음악을 기본 재료로 했음에도 이미 실행한 것을 바탕으로 최종 형태가 정해졌다는 점에서 악보보다는 무보에 가깝다. 몸의 움직임에 초점을 둔 작업인 만큼 무보와 같은 형태로 정리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같다. 이 공연을 다시 악보의 형태로 옮겼을 때 ‘원칙과 실제의 간극’ 때문에 발생하는 무보와 악보의 충돌 지점이 흥미롭다.

악보(스크립트), 세 인물과의 인터뷰, 프로젝터 영상도 함께 선보였다.
영상이 퍼포먼스를 위한 비디오 형태의 무보라면, 작은 방의 악보는 무보와 악보 사이에서 발생하는 원리와 실제의 충돌 지점을 가시화하는 증거다.
작은 방은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에서 출발한 악보/무보 연구에 대한 단서이자 선언이며, 또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장소다. 이번 전시는 내게 표현·통제, 훈련·즉흥, 과정·완성, 원칙·실제 등 여러 대응되는 개념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남겨줬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제시한 ‘통제(control)’라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통제’는 2012년 무렵에 추출한 개념으로, 2006년부터 진행한 내 작업을 포괄한다. 초기에는 내 고유의 통제 영역을 침범하는 외부의 힘에 대한 반감과 조소를, 그 이후에는 통제의 도구가 되는 것, 즉 규칙, 시스템, 의식(ritual), 위계, 게임, 경쟁, 보상, 아름다움, 나약함 등에 대해 고민했다. 최근에는 통제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집중한다. 현시점에서는 꽤 마음에 드는 개념이지만, 작품을 더 만들고 성숙해져 다른 개념을 들고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내 작업에서 ‘통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작품은 언뜻 매우 차갑고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대부분 개인적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주제를 더욱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 수 있다.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도 보편적 질문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때로는 더 사소하고 말초적인 질문일수록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떤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이다. 나는 개인적 이야기에서 모든 구체적 상황과 특정한 형태는 버리고 본질적 질문과 고민만 남겨놓는다. 거기에 내 언어로 새로운 이야기와 형태를 입힌다.

누군가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를 보고 “쇼팽의 음악을 뮤직비디오 형식의 영상으로 재변주한 리메이크다”라고 말한다면?
넓은 범주에서 변주곡으로 볼 수도 있다. 분명 쇼팽의 음악을 사용하고 또 변형했으니까. 관건은 변주를 어떻게, 잘했느냐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변주곡을 만드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게 쇼팽의 음악을 대했다. 변주곡을 만들 때는 일종의 의례가 있어서, 곡의 맨 처음과 끝에 (적어도 시작점에) 원곡을 명확히 드러낸다. 원곡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업에서 쇼팽의 소나타를 다루는 태도는 존 케이지(John Cage)가 18세기 합창곡을 필터링하고 무참히 변형해 원곡의 ‘향기’만 남은 ‘Thirteen Harmonies’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취했을 법한 태도와 유사하다. 그렇게 쇼팽의 곡을 난자해 분절하고 흐트러뜨려 불안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만들어놓은 내 작품을 누군가 변주곡이라고 한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편, 아주 넓은 의미에서 이 작품의 첫인상이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킬 수도 있다. 역시 ‘뮤직’과 ‘비디오’를 사용하니까. 뮤직비디오에서 장면의 구성은 음악의 흐름에 종속되지만, 내 작업에서 장면은 음악의 흐름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지언정 종속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연습과 공연, 소리와 몸의 움직임, 혼란과 질서 등의 생각할 지점을 제외하고, 누군가 ‘뮤직’과 ‘비디오’로만 작품을 본다면 작가 입장에선 아쉽긴 하겠다. 적어도 흥미로운 뮤직비디오였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감각적이다’라는 수사는 어떤가?
일반적 내러티브에 종속되지 않거나 불연속적 장면의 흐름을 볼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다. 어떤 큐레이터는 내 작업이 ‘감각 그 자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장면 속의 시각·청각·촉각·미각을 신중하게 계획하는데, 그것을 근사한 언어로 표현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마리나, 루카스, 그리고 나(Marina, Lukas and Myself)’에 출연한 작가의 모습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전의 ‘마리나, 루카스, 그리고 나’의 설치 전경 /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마리나, 루카스, 그리고 나, 3채널 HD(1080p) 비디오, 6채널 오디오, 24분 20초, 2014_ 마리나 콜로미나(Marina Colomina), 루카스 후이스만(Lukas Huisman)과 협업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해서 그런지, 영상에 음악의 구조를 접목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구체적인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달라.
‘Suite 1’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겠다. 모음곡(suite)은 느슨하게 연결된 짧은 악곡의 모임이다. 주로 춤곡으로 진짜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은 아니더라도 춤곡의 형식, 즉 몸을 움직이는 방식과 태도가 음악의 비트와 리듬으로 드러난다. 내 작품 ‘Suite 1’도 여러 다른 일련의 움직임을 조직하고 수집해 만들었다. 네 가지 다른 단계로 추상화한 네 가지 다른 물체에서 비롯한 네 가지 다른 움직임은 최소한의 기본 법칙만 공유한 채 각기 다른 양상으로 만들었지만, 모음곡을 탈피한 형태로 완성했다. ‘마리나, 루카스 그리고 나’가 조금 더 그럴듯한 모음곡 형태를 띠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의 독립적인 세 공연이 표면적으로 동등한 관계를 맺으며 차례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모음곡으로 손색없지만, 마지막 공연이 앞의 두 공연을 내용적으로 감싸 안는다는 면에서는 일반적 모음곡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Daughter’에서는 공간의 이동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론도 형식을 적용했다. 론도는 하나의 주제가 삽입부를 두고 반복되는 음악 형식으로, 예를 들면 ABABA, ABACABA 등과 같이 B 혹은 C 같은 삽입부를 두고 A가 계속 재등장한다.

기악과를 졸업하고 다시 산업디자인,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 와중에 느낀 영상 매체의 특별한 매력은 무엇인가?
영상 매체는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시간의 구조를 만든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그 구조를 예측하는데, 그것이 맞아 들어가거나 틀어질 때 각기 다른 종류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영상은 여러 번 반복해 보면 이전에 못 본 측면을 계속 발견할 수 있고, 이미 본 것도 새롭게 느껴진다. 나는 영상에 이러한 수평적·수직적 층위를 만드는 작업이 매우 좋다. 그리고 작가가 시간의 통제권을 갖지만, 그것을 원치 않는 관람객에게 쉽게 외면당할 수 있는 완고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지닌 이중성에도 매력을 느꼈다.

영상 매체의 이중적 매력은 ‘A Dialog’ 연작을 통해 잘 드러났다.
‘A Dialog’는 내가 만든 다른 관람객 참여형 프로젝트 ‘나는 너의 비극적인 대화를 과도하게 기대한다’의 대응점으로 기획했다. 일종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인데, 미리 만든 질문지 묶음과 책상 2개, 의자 2개, 펜 2개, 대화자 2명이 준비되면 내가 대화를 주도했다. 질문지 중 하나를 골라 대화자 1에게 전달하면 대화자 1은 질문지의 옵션에 표시하고 그것을 근거로 다시 내가 다음 질문지를 선택, 대화자 2에게 전달한다. 대화자 2가 질문지의 옵션에 표시하면 그것을 근거로 다시 대화자 1에게 건넬 질문지를 선택한다. 이런 방식으로 두 대화자를 최대한 수동적 방법으로 대화에 참여시키는 것이 이 작업의 아이디어다. ‘A Dialog’는 그 반대 지점에서 관람객이 작업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모든 수단(귀여운 이미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멜로디, ‘톰과 제리’식의 통쾌한 복수와 폭력, 게임적 요소 등)을 연구하고 동원한 작업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선택하는 결정권을 관람객에게 준 것이 특징이며, 최종 결정권이 어디에 있느냐를 두고 나와 관람객이 게임을 벌이는 형태로 구성했다. ‘A Dialog’는 다소 특수한 실험이었다. 나는 내 영상 작품에서 관람객이 어느 정도 불편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온전히 불편하기만 한 감정보다는 아름다운 것 같으면서도 불편하고, 질서정연한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이상한 불편함을 원한다. 그런 야릇한 순간에 질문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Suite(video 1), 싱글 채널 HD(1080p) 비디오, 스테레오 오디오, 11분 33초, 2012_ 퍼포먼스. 리사 페레이르트브뤼헌(Lisa Vereertbrugghen)




Banana, 싱글 채널 HD(1080p) 비디오, 모노 오디오, 1분 33초, 2011




Daughter, 싱글 채널 HD(1080p) 비디오, 6채널 오디오, 4분 6초, 2011_ 네덜란드 레이크스아카데미 설치 전경 / ?Photo by Willem Vermaase

영상의 퍼포먼스를 구성할 때 카메라 시점은 어느 정도 고려하는가?
프로젝트마다 다르다. ‘마리나, 루카스, 그리고 나’에서는 카메라에 담을 공연을 이미 완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공연의 구성을 기반으로 카메라의 시점과 스토리보드를 설정했다. 반면, ‘A Walk 2’와 ‘A Sit’은 카메라의 특정 앵글 자체가 작업의 주요한 출발점이었다. 그것을 기반으로 안무를 작업했다. ‘Suite 1’은 비디오와 라이브 퍼포먼스의 두 형태가 함께 혹은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두 가지 상황을 전제하고 작업했다. 따라서 비디오와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의 시점과 공간적 차이 등이 안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는 공연의 전체적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오직 장면의 부분만 가지고 촬영을 시작한 만큼 카메라의 시선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제약 조건을 장면 디자인의 요건으로 이용했다. 와이드, 미들, 클로즈업의 세 거리와 앞, 왼쪽, 오른쪽 세 방향을 기본 앵글 세트로 설정한 후 각각을 조합한 앵글에서 모든 공연의 부분을 촬영했고, 편집 과정에서 장면과 소리를 최종 선택해 재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퍼포머에게 디렉션은 어떻게 주나?
촬영 시 배우가 카메라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며, 배우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거나 특정 연기를 해야 하는 장면을 만들지 않는 편이다. 주로 배우가 행할 일련의 행동을 설정하고 그 행동을 수행하라고 요청한다. 배우가 행동에 집중하는 동안 비디오 속 가상 인물이 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그동안 내가 제시한 대부분의 행동이 난이도가 높아 배우가 자신의 행동에 집중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다. 난이도가 낮을 때는 카메라를 의식할 겨를을 없애려고 카메라에 (보이는 행동과) 보이지 않는 이중의 과제를 함께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각 동작의 세밀한 타이밍과 리듬감을 중요시하는 편이라,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배우와 대화하면서 움직임의 정도와 속도와 흐름을 세밀하게 조정하기도 한다.

한 강연에서 “내 프로젝트는 ‘내러티브’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초반부터 ‘어떤 종류의 내러티브 형식을 만들까’라는 질문이 중요했다. 나는 기승전결의 선적 진행이 아니라 사고의 흐름, 기억, ?시선처럼 장면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를 만들고 싶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나 질서도 없이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음악과 같은 다이어그램 구조로 된 내러티브를 원한다. 따라서 음악의 형식을 관찰하는 것이 불연속적 장면을 연결하는 논리와 질서를 만드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그럼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인가?
스티브 라이히, 모리스 라벨, 클로드 드비시, J. S. 바흐의 곡을 많이 듣는다. 한 음악가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의 공통점이 순간 지극히 아름다운 음색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음악의 구조에도 관심이 많지만, 결국 그 구조가 순간적으로 얼만큼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가도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는 단연코 스티브 라이히다. 1960~1970년대의 초기 작품에서 그가 매우 기계적이고 구조적인 것에서 최고로 인간적인 것을 뽑아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실제로 가장 많이 듣는 그의 음악은 1980년대에 작곡한 ‘Vermont Counterpoint’, ‘Sextet’, ‘Three Movement’, ‘Four Sections’ 등이다. 초기 작품보다 조금 더 구조적으로, 또 음악적으로 풍부해서 더욱 모험심을 자극한다. 라이히의 음악은 반복성 때문에 듣는 동안 나태해지기 십상이지만, 반복하는 가운데 변화를 멈추지 않기 때문에 나태한 태도로는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그런 측면이 잔인하면서도 매우 아름답다.

영화는 어떤가?
영화도 매우 좋아한다. 구조나 장면 구성, 이야기 등 영화마다 흥미로운 구석이 따로 있다. 장면 구성이나 그 연결 방식과 관련해서는 스웨덴 감독 로위 안데르손을 좋아한다. 그의 ‘영광의 세계(World of Glory)’처럼 짧고 유사한 형식의 장면을 느슨하게 연결한 구조를 좋아하는데, 일종의 긴 모음곡 같다.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는 장면을 연결하기 위해 내러티브를 얹어놓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 장면 한 장면이 독자적 리듬감과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홍상수 감독이 최근작에서 시도한 형식적 요소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유사한 시퀀스의 반복을 집요하게 고집하는데, 영화마다 포인트가 조금씩 다른 점이 재미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단편 ‘볼레로의 드러머(Le Batteur du Bolero)’도 무척 좋아한다. <트리오> 전시의 라운드 테이블 토크 중 임근준 평론가가 내 초기 작품에 대해 ‘심통 개그’라고 표현했는데, 그런 나의 ‘심통 개그’ 본능을 온전히 충족해주는 영화다.(웃음)




Mother, 싱글 채널 HD(1080p) 비디오, 모노 오디오, 1분 25초, 2011




A Dialog, 비디오 프로젝션, 라이브 퍼포먼스, 약 10분, 2009?2010




A Sit, 싱글 채널 HD(1080p) 비디오, 스테레오 오디오, 6분, 2015_권령은(안무), 홍초선(사운드)과 협업




Plants, 싱글 채널 HD(1080p) 비디오, 스테레오 오디오, 1분 19초, 2015_홍초선(사운드)과 협업

초기에는 스톱모션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스톱모션 기법은 ‘통제’의 결정체다. 그렇다고 만들기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후 제작 기법이 서서히 변했다. 비디오카메라를 사용하고, 세트의 크기가 커지고, 배우와 협업자가 늘어나고, 야외 촬영을 진행하면서 결과를 예측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두려움과 함께 새 기술을 이해하고 통제 범위를 넓혀가는 희열 또한 커졌다. 아직 카메라 수를 늘리고 싶은 욕심은 없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면 통제하기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촬영하는 여러 장면을 동시에 완벽하게 모니터링할 수 없기 때문에 서브 카메라 속 장면은 통제를 벗어날 확률이 높다. 결국엔 외장 하드의 공간과 확인해야 할 푸티지의 양만 늘어날 뿐이다.

영상 작업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은 잘 ‘디자인’된 사물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상황에 놓인 특정한 오브제라기보다 그 오브제의 ‘개념’에 대해 드러낸다. 어떤 특정한 의자가 아니라 ‘의자라는 개념’, 특정 셔츠와 치마가 아니라 ‘셔츠와 치마의 개념’, 어떤 특정한 화초가 아니라 ‘화초의 개념’ 말이다. 반면, 출연하는 인물은 특정한 상황 속 특정한 인물인 동시에 출연자 자신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사물들을 프레임에 배치할 때 어떤 부분에 신경 쓰는가?
어떤 사물이 프레임 안에 꼭 필요한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 그리고 그 사물을 바라보는 정면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정면에서 사물을 가장 잘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제한적인 시각으로 보게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의상 디자이너 A-Jo, 사운드 디자이너 홍초선, 그 밖의 안무가)와의 협업은 어떤가?
2010년까지 사진 촬영, 일러스트레이션, 비디오 촬영, 녹음, 연기, 목소리 연기, 작곡, 연주, 사운드 믹싱 등 모든 작업을 나 혼자 담당했다. 심지어 남자 목소리도 연기했다. 모든 부분에서 매우 정교한 ‘통제’가 가능했고, 각기 다른 요소가 한 몸처럼 끈끈하게 붙어 있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점차 한계가 느껴졌다. 아는 만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도 깨달았다. 모든 것을 잘 알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특정 분야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과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작품 제작의 전 과정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포기하는 대신, 새로운 영감을 받거나 기술적 폭을 넓혀가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다만 아직까지 카메라는 직접 잡고 있다. 아르나우트 믹(Aernout Mik)이 “비디오 편집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내 영역이지만 카메라를 직접 잡아본 적이 없다”고 말해서 놀란 적이 있는데, 내게도 그런 순간이 오게 될지 궁금하다.

작업의 전제 조건이나 제작 과정에서의 (비)가시적 원칙이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어느 정도 유지되나? 이때 그 자율성을 통제하는 ‘시선’의 주체는 작가인가, 관람객인가? 아니면 제3의 특정한 인물인가?
출발점이 정해져 있어도 그것을 고수하려고 애쓰는 편은 아니다. 더 좋은 방향이 있다면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완성하고 보면 최초의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고, 중간에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또 다른 작업으로 독립시킨다. 그것은 초반의 아이디어가 훌륭해서라기보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도, 나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그 자율성을 통제하는 주체는 작가도 아니고 관람객도 아니고 제3의 특정 인물도 아닌, 아이디어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




오민
1975년생. 서울대학교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동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레이크스아카데미, 금천예술공장, 삼성문화재단 파리 시테의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됐고, 2015년 제6회 두산연강예술상을 받았다.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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