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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28

옷깃에 스민 시간

계절이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시기, 영국과 프랑스에선 패션을 주제로 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왼쪽 모델 노에미 르누아르(Noemie Lenoir)가 착용한 이브 생로랑 2000년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이브닝드레스. © Yves Saint Laurent / Droits reserves
오른쪽 [Tartan: Unravelling the Exhibition]전 속 리커리스 블랙(Liquorice Black)이 디자인한 슈트를 입은 퍼포머 체더 고저스(Cheddar Gorgeous, 2017).

패션 하우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나의 가치를 올려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브랜드 출발점이 어디인지, 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면 옷깃에 켜켜이 쌓인 찬란한 시간의 흔적 덕분에 마스터피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 나아가 그때 그 시절 럭셔리 브랜드에 영감을 준 아이코닉한 인물이 된 것 같은 상상에 왕왕 빠지기도 한다.
예로, 구찌의 홀스빗 가방은 구찌 창업자 구찌오 구찌의 승마 사랑에서 비롯됐고, 루이 비통 트렁크는 산업혁명과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여행 인구가 늘어난 19세기 문화를 대변하며, 에르메스 버킨 백 모티브는 자신의 소지품이 가방에서 정리되지 않는다는 제인 버킷의 푸념이다. 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비와 추위를 막는 용도였던 트렌치코트는 전쟁이 끝난 뒤 일반 시민에게 노출되며 대중적 아이템으로 재탄생했다. 더불어 하이힐은 말을 탈 때 발걸이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신었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옷을 입는다는 건 브랜드 자체를 이해하는 일이자, 인류의 삶을 품에 안은 거라 해도 진배없다.





가브리엘 샤넬(1937). © Roger Schall / Conde Nast / Shutterstock
모델 마리나 스키아노(Marina Schiano)가 착용한 이브 생로랑 1970년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이브닝드레스. © Yves Saint Laurent / Estate Jeanloup Sieff


현재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패션 흐름을 알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 화제다. 새로운 시즌의 멋지고 트렌디한 룩으로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 이곳을 방문해 우리가 사랑하는 브랜드의 성장 과정을 알게 된다면 시대의 아이콘이 된 듯한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먼저,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이 개최한 [Gabrielle Chanel. Fashion Manifesto]전은 영국 최초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일대기를 다룬 전시다. 여성을 긴 치마와 코르셋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신여성의 등장을 가속화한 그녀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내년 2월 25일 막을 내리는 [Gabrielle Chanel. Fashion Manifesto]전은 샤넬의 시작인 1910년 파리의 모자 가게부터 1971년 마지막 컬렉션까지 디자인의 변천사를 살펴보도록 구성했다. 지금 봐도 세련되고 우아한 200여 가지 룩과 액세서리·주얼리·향수 중 시선을 빼앗는 건 1916년 마리니에르(Mariniere)와 파블로 피카소가 무대 커튼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1924년의 발레 공연 [르 트랭 블뢰(Le Train Bleu)] 의상, 그리고 1971년 마지막 컬렉션에서 공개된 드레스. 실용적으로만 치부되던 원단이 명품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을 보니, 현대 여성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코코 샤넬의 “럭셔리의 반대말은 빈곤함이 아닌 천박함이다. 편하지 않으면 럭셔리가 아니다”라는 말이 가슴에 크게 와닿는다.





왼쪽 만화가 셈(Sem)의 샤넬 N°5 작업(1927). 카르나발레 박물관 소장. © Paris Musees/Musee Carnavalet – Histoire de Paris
오른쪽 이브 생로랑의 1968년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 스케치. © Yves Saint Laurent

다음으로, 스코틀랜드 던디에 자리한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Tartan: Unravelling the Exhibition]의 주인공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알렉산더 맥퀸의 개성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전통 타탄(tartan, 굵기와 색깔이 다른 선을 서로 엇갈리게 해 만든 창살 무늬). 본디 씨족(clan, 특히 스코틀랜드 친족 집단)마다 계승되는 무늬인 타탄은 국가·민족·친족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사용됐으며, 지리적 위치와 관계없이 서로 다른 계급과 성별을 하나로 이어줬다. 타탄이 대중화된 건 시대상 지분이 크다.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을, 1850년대 널리 퍼진 합성 재료와 염료는 저렴하면서 색상이 다양한 패턴으로 변신을 가능하게 했다. 이와 함께 타탄에 관심을 보인 디자이너들이 옷에 적용하면서 패션의 한 부분이 됐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22년 코코 샤넬은 실크 케이프에, 1960년대 중반 디올은 블라우스와 스커트에 타탄을 활용했다. 2023년 F/W 시즌에는 디올·비비안 웨스트우드·스텔라 매카트니·이세이 미야케 등이 타탄의 무한 변주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Tartan: Unravelling the Exhibition]에선 패션 속 타탄의 타임라인뿐 아니라 가구·건축·그래픽 등에서 발견되는 타탄 오브제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을 보노라면 타탄이 글로벌 디자인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필연성을 깨닫게 된다. 전시는 2024년 1월 14일까지.





[Tartan: Unravelling the Exhibition]전 속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 있는 여왕의 침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칼레 ‘레이스 & 패션 박물관’에서 11월 12일까지 계속되는 [Yves Saint Laurent: Transparencies]전. 코코 샤넬·크리스찬 디올과 함께 20세기 패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히는 이브 생로랑의 독창적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1958년 디올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며 발표한 ‘트라페즈 라인’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이내 오트 쿠튀르에 싫증을 느끼고 1961년 자신의 이름을 건 하우스를 설립했다. 이후 선보인 여성을 위한 턱시도 ‘르 스모킹(Le Smoking)’, 피에트 몬드리안과 앤디 워홀의 작업과 접목한 드레스, 시스루 룩 등은 “여성을 해방하고, 패션을 예술로 격상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다만, 여성 해방 관점에서 이브 생로랑은 코코 샤넬과 궤를 달리하는데, 자신의 패션에 관해 그는 “나는 우아함(elegant)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매력(appeal)이라는 단어가 우아함이라는 단어를 대체했다”고 말한 바 있다. 강렬하면서 관능적인 드레스가 이를 대변할 터. [Yves Saint Laurent: Transparencies]를 수놓은 건 이브 생로랑의 여성관이 드러나는 60여 개 컬렉션으로, 유혹의 언어가 어떻게 패션으로 승화됐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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