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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4

내 꿈은 너야

누구나 하나씩 마음속에 품고 사는 드림카, 그 이야기를 모았다.

 Maserati Grecale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쉴 새 없이 원고를 쳐내는 와중에도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다. 8월호를 마무리하고 어디로 떠날지 고민하는 것. 몇 달 전 인수한 SUV 덕분이다. 지지난달엔 충주호에서 소소한 와인딩을 즐겼고, 지난달엔 동해안 해안 도로를 배부른 돌고래처럼 유영했다. 며칠 뒤엔 아마도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외진 곳에서 차박을 할 것 같다. 흔하디흔한 차여도 방방곡곡을 쏘다니기엔 모자람이 없다. 99% 만족한다.
하지만 1% 부족하다. 온갖 럭셔리카, 슈퍼카를 자주 경험하는 자동차 담당 에디터의 헛된 욕심이다. ‘이 정도 코너에서 휘청이다니, 포르쉐 카이엔 터보 쿠페는 안 그랬는데’, ‘패들시프트까지 썼는데 못 치고 나간다고? BMW XM이라면 달랐겠지’. 비할 바가 아님을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주행 상황마다 요구되는 역량이 다르니 어떤 차라도 100% 만족하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마세라티 그레칼레라면 99.9%까지 가능할 듯싶다. 그레칼레의 생김새는 기블리, 르반떼 등 기존 마세라티 주력 모델과 다르다.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적용하며 브랜드 리부트를 천명한 슈퍼 스포츠카 MC20을 빼다 박아서 그렇다. 헤드램프 위치를 끌어 올리고 전면부 그릴은 낮게 배치해 어딘가 낯설다. 한데,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측면부와 후면부는 우리가 아는 마세라티다. 앞 펜더에 위치한 특유의 3홀 장식, C필러의 삼지창 엠블럼, 부메랑 테일 라이트 등. 전반적으로 모난 부분 없이 매끈하다. 로마시대 조각상처럼 우아하고, 또 잘 달릴 것 같다.
실제로도 잘 달린다. SUV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마세라티답게. 승차감은 단단함과 고급스러움 사이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세라티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 ‘레이싱 DNA’ 그리고 ‘그란투리스모 정신’이 온전히 녹아 있다. 장거리 주행이 반가운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기본 드라이브 모드인 GT 모드에서 기어 변속이 일정하고 매끄럽다. 페달 감도도 적당하다. 본격적으로 운전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스티어링 휠 하단의 다이얼을 돌려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된다. 한층 기민하게 반응하며 언제 들어도 짜릿한 마세라티의 으르렁거림이 더욱 커진다. 차체까지 낮아지니 코너링 시 스포츠 쿠페 부럽지 않다. 미처 경험하지 못했지만, MC20과 같은 V6 네튜노 기반 엔진을 얹은 최상위 트림 트로페오(Trofeo), 그 전용 모드인 코르사(Corsa) 모드에선 트랙션 컨트롤이 훨씬 덜 활성화되고 런치 컨트롤 기능도 켜진다고 한다. 제로백은 불과 3.8초. 얼마나 재밌을까? 오프로드 모드에선 최저 지상고가 30mm 높아진다. 험한 길에서 더 이상 뒷걸음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마세라티는 유명한 바람 이름을 본떠 모델명을 지어왔다. 그레칼레는 ‘강력한 지중해의 북동풍’이란 뜻이다. 멀리서 불어온 바람이 마음을 제대로 간지럽혔다. 스포티함과 세련됨, 다목적성을 갖춘 그레칼레는 에디터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같은 존재다. 당장 손에 잡히진 않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질 그날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날을 위해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드림카의 순기능이 아닐는지.
_황제웅(<노블레스> 에디터)





 Ferrari F40 
나의 F40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페라리 F40. 그중에서도 그린 컬러(verde abetone) 외관에 브라운 컬러(tan) 실내는 내가 꿈꾸던 스펙의 F40(1987~1992)이다. 페라리 창업주 엔초 페라리의 마지막 역작인 이 차를 드림카로 꼽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곡선과 직선의 조화, 넓고 낮은 보디에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이쁘고, 뒤는 심지어 숨이 막힐 정도다. 이런 차를 두고 제로백이나 마력을 언급하는 건 의미 없다. 누가 봐도 멋진 차. 세계 공통적 미의 상징은 있다는 생각이다. 거기에 누구나 떠올리는 빨간 페라리가 아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록 페라리라니! 아내와 함께 F40을 타고 서울의 밤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흐뭇해진다.
2014년부터 철없이 차량을 바꾸는 데 투자한 금액을 종합적으로 보면 분명 F40을 노려볼 만한 시기는 있었던 것 같다. 2018년 피치스(Peaches)라는 자동차 관련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면서 ‘성공하면 꼭 사겠어!’라고 생각하며 확인했던 F40의 가치는 10억 원.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결혼하고 첫아이를 낳은 뒤 ‘나의 꿈에 얼마나 다가왔을까?’ 하며 체크한 F40의 가치는 40억 원을 향해가고 있었다. 어쩌면 더 이상 살 수 없겠다고 느낀 나는 2021년 왼쪽 팔뚝에 타투로 이 차를 간직하기로 했다.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니크는 피험자에게 퍼즐 조각을 맞추거나 구슬로 목걸이를 만드는 등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지시하는 실험을 했다. 갑작스럽게 실험을 종료하며 그녀는 그들에게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해보라고 물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이미 완성한 일보다 끝내지 못한 일을 두 배 정도 더 잘 떠올렸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이 끝내지 못한 일에 집착하곤 한다.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대학, 장렬하게 끝난 첫사랑, 끝내 손에 넣지 못한 물건 등. 되새김질하듯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떠올린다.
초록의 F40도 그렇게 미완성의 존재가 되었다. 닿을 듯하면서 오히려 더 닿기 힘들게 된. 담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그 시절을 추억하고 아쉬워하게 되는. 그런 미련의 존재가 나에게 완벽한 드림카라는 생각이 든다.
미팅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종종 팔뚝의 F40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그게 뭐예요?”, “옛날 페라리랍니다. 몇 년 전보다 네 배나 올라서 진짜 드림 카가 됐어요. 그래서 타투로 새겼죠. 꿈은 이룰 수 있을 때 기회를 잡는 것이라고 항상 반성하며 살려고요.”, “근데 대표님, 그거 보면서 열심히 해오신 것만큼 더 달려보면 언젠가 이루실 것 같은데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때를 추억하고 후회하는 것도 있지만, 그걸 원동력 삼아 꽤 열심히 달려오기도 했다. 어쩌면 나의 F40은 평생 미완성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_여인택(피치스 대표)





 Alfa Romeo 33 Stradale 
나의 유니콘, 알파로메오

자동차가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 된 오늘날, 우리 앞엔 적절한 비용만 지불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다. 과거 AMG나 M 엠블럼을 단 차를 보면 ‘시속 몇 킬로미터까지 달릴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국산 브랜드 차량이 제로백 5초를 쉽게 달성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에게 드림카는 좀처럼 소유할 수 없는, 상상 속에나 있는 유니콘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알파로메오 33 스트라달레처럼.
이 차를 처음 만난 건 대학 시절 본 이탈리아 토스카나 출신 감독 마우로 볼로니니의 영화 <아름다운 11월>에서다. 성당에서 우르르 나오는 아이들과 신도들이 이 차를 보자마자 “자리가 2개밖에 없는데 가족은 어떻게 태워요?”라고 물었고, 운전자는 이렇게 답했다. “난 그저 아름다운 것을 운전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만큼 아름다운 자동차다. 아반떼보다 작지만 작아 보이지 않는 절묘한 비율을 갖췄고, 슈퍼카에서 흔히 보이는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쐐기형 디자인이 아닌 미려한 곡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디자인적 클라이맥스는 맥라렌 F1이나 엔초 페라리에서 볼 수 있던 버터플라이 도어를 처음 적용한 것, 그리고 알파로메오의 역삼각형 방패 형상 프런트 그릴과 리어의 언밸런스한 조합이다.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한 DOHC V8 엔진 사운드도 이 차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요소다.
다만, 아름다운 건 역시 위험한 걸까? 무게 배분 문제로 연료 탱크가 앞 도어 아래에 자리해 사고가 나면 바로 화재로 이어지는 구조다. 알파로메오 33 스트라달레가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단 18대만 생산된 이유다. 이런 차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알파로메오가 과거 레이싱만을 위해 존재한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비토리오 야노 같은 걸출한 엔지니어와 함께 르망 24 등 각종 레이스를 석권했다. 자동차를 판매해 벌어들인 돈을 대부분 레이스에 투자하는 바람에 회사의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그게 알파로메오다. 필자는 매년 알파로메오 33 스트라달레에 관한 목마름을 달래고자 밀라노의 알파로메오 박물관을 방문하는데, 옛 공장이 있던 박물관 밖으로 나서면 아직도 알파로메오를 좋아하고 그 당시 이야기를 하는 어르신을 흔히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알파오메오를 ‘감성의 메카닉스(La Meccanica delle Emozioni)’라고 할까. 그 감성의 브랜드가 1960년대 레이싱에 대한 열망을 담아 만든 차가 알파로메오 33 스트라달레다.
이 차를 타고 가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 밀라노에서 출발해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코모로 향하겠다. 배우 조지 클루니가 별장을 마련할 정도로 아름답고 여유로운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콘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Concorso d’Eleganza Villa d’este)가 열린다. 이 행사는 1929년 시작되었는데, 당시 자동차 기술을 논하거나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열정과 지혜가 넘치는 자리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품위 있게 놀 줄 아는 이탈리아인답다. 코모의 평화로운 리조트에서 자연을 만끽하는 것은 물론,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과 함께 유니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_박성제(루이스 폴센 코리아 지사장)





 Bentley Azure Mulliner 
어떤 차는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운이 좋네요.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흔치 않아요.” 영국 벤틀리 본사에서 헤리티지 모델을 책임지는 존 스매틀리가 말했다. 햇빛은 적도 언저리처럼 뜨거웠는데, 바람이 불 땐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공기에 풀 냄새와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다. 뜨겁고 시원하고 향긋하게, 차 안으로 들어온 바람이 온몸을 휘감은 뒤 다시 나갔다.
우리는 벤틀리 아주르 뮬리너의 천 지붕을 열고 영국 체셔주에 위치한 크루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크루는 벤틀리 본사와 공장이 있는 작은 도시다. 벤틀리는 이 차를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딱 62대만 만들었다. 문은 2개인데 네댓 명이 거뜬히 앉을 수 있는 장거리용 그랜드 투어러. V8 싱글 터보엔진이 내는 최대출력은 무려 420마력.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약 96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6.2초다.
하지만 이런 숫자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벤틀리 아주르 뮬리너를 타고 달릴 땐 비옥한 땅 위에 맨발로 선 것 같았다. 약 30년 전 에어 서스펜션이 도로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모조리 받아내 풍만한 감각으로 승화했다. 우리가 달리는 길 위로 다양한 배경이 스쳐 지나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남부 도시와 알프스를 지나 상상하던 배경이 새벽의 강변북로나 해 질 무렵 소월길에 이르렀을 때 내가 물었다. “혹시 이 차를 살 수도 있나요?”, “그럼요. 아마 1억 원 후반 정도 할 거예요. 인증만 해결되면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죠.”
드림카가 뭐냐는 질문은 취향, 라이프스타일, 나아가 꿈의 크기까지 한꺼번에 묻는 말 같았다. 대학생 때는 미니 컨버터블이 갖고 싶었는데, 현재 오너가 되었다. 도시 사정과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사이즈, 지붕을 여는 낭만. 그러면서도 지구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는 미니만의 패기와 에너지에 반한 것이다. 현재 내 직업은 에디터,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요가 수련자. 미니를 꿈꿨더니 미니와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이 생긴 것 같다. 그럼 지금부터는 벤틀리가 드림카라고 말해볼까? 벤틀리와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이 생기면 벤틀리 오너가 될 수 있을까?
시승을 마치고 ‘곰 발바닥(The Bear’s Paw)’라는 귀여운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안에는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며 식사하는 가족,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커플들이 있었다. 가끔 들리는 웃음소리와 아기 울음소리 사이로 새삼스럽게 ‘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언젠가 가족과 함께 아주르 뮬리너를 타고 영국 시골길을 달려 이런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한국으로 돌아갈 때 아주르 뮬리너와 함께라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물건 중 인연이 닿는 매물을 만나 인증을 해결하고 수입까지 진행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자동차와 사랑에 빠지면 인생이 조금 바뀌기도 한다. 이룰 때까지 꾸어야 비로소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법. 언젠가 ’벤틀리를 꿈꿨더니 그에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이 생겼고,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오너가 되었다’는 문장을 쓰고 싶어졌다.
_정우성(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더파크 대표)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일러스트레이터 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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