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이 - 시대를 마주한 예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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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5

딩이 - 시대를 마주한 예술

상하이 건설과 소비속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리다.

웨스트번드 작업실에 선 딩이, 2018.

1980년대부터 중국 현대미술이 지나온 개혁 과정은 세계화 추세 속 사회 문화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장경제 발전, 사회 문화 공간 재편, 컬렉터 집단 증가와 교류 확대에 따라 현대미술 시장은 크게 성장했고,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더불어 아트 스페이스와 기관이 등장하며 활력 넘치는 미술 생태계를 형성했다. 특히 점진적으로 형성된 예술특구 웨스트번드는 타고난 지리적 이점, 정부의 ‘미술관 대로’ 프로젝트 지원, 경험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의 합류를 기반으로 상하이를 넘어 더 강력한 영향을 미술 생태계에 미치고 있다.
딩이의 작품은 이런 중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함께하며 현대사회와 예술에 관한 개인의 경험을 응축해 담아낸다. 그는 1980년대 사회에 관한 고민에서 출발해 1990년대에 돌파구를 모색하기까지 중국의 ‘고난을 분출하는 표현주의와 아카데미즘을 결합한 초현실주의’에서 벗어나 주류인 서양 현대미술과 함께 호흡했다. 작업 초기에 그가 만든 ‘십시(十示)’는 기호를 매개로 한 일종의 순수이성적 표현 수단으로, 자와 룰링펜을 이용해 해석과 기교를 모두 제거했다. 중기에 들어 그는 한층 대담한 소재와 매체를 실험했는데, 기성품에 그림을 그리거나, 메탈릭 컬러와 네온 컬러를 활용하고 목탄과 분필을 사용해 독특하고 풍부한 시각적 효과를 구현했다. 후기에는 개인과 도시에 대한 관심이 점차 내면을 향한 탐색으로 이어졌다.
2002년 상하이 미술 생태계가 싹을 틔우며 M50 같은 예술 단지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왕싱웨이(Wang Xingwei)와 딩이를 비롯한 작가와 샹아트 갤러리(ShanghART Gallery)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 딩이는 8년 전 작업실을 웨스트번드로 이전했다. 숲과 갤러리, 개인 작업실이 있는 웨스트번드 미술관(West Bund Museum)의 맞은편, 룽화 공항 격납고를 개조한 작업실은 특유의 역사적 흔적을 배경으로 모더니즘을 발산하며 은은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따스한 햇살 아래 지저귀는 새 울음,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만 들리는 산골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이다. 딩이의 말을 빌리면 “이 작업실은 사실상 규칙적으로 울리는 알람 시계”나 다름없다. 평일엔 조용하고, 전시 오프닝이 있는 주말에만 사람이 몰리는 주변 풍경은 하루하루 창작에 매진하는 것 외에도 날로 복잡해지는 현시대에 발맞춰 미술 시장의 풍파와 미술 생태계의 변화를 몸소 겪어야 하는 그의 처지와 비슷해 보인다.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를 주제로 열린 제7회 부산비엔날레 전시, 부산현대미술관, 한국, 2016.
웨스트번드 작업실, 상하이, 2016. Photo by Che Haonan
<What’s Left to Appear>전, 롱 뮤지엄(웨스트번드관), 상하이, 2015.


모든 작품에 창작 연도와 일련번호가 적혀 있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
그보다는 추상성을 더하기 위해서예요. 하지만 작년 여름 티베트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 <Multi-Verse, Ding Yi in Tibet>에서 선보인 작품 2점에는 특별히 부제를 달았죠. 그중 하나가 ‘만다라’(티베트 불교의 우주관에서 파생된 회화의 일종)입니다. 만다라는 안은 둥글고 밖은 각진 형태여야 하고, 네 가지 주요 색상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요. 우리 주변에서 만다라 구조를 차용한 건축물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고, 법당 천장에 그린 벽화도 만다라 형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것을 저만의 언어로 재해석해 좀 더 무한한 원근감을 부여했고, 무한한 원근감이란 결국 존재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티베트 전시로 작가님이 언급하신 내면을 향한 탐색에 한층 가까워졌나요?
긴 과정이지만 결국 본질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금강’이라는 부제의 작품을 제작하며 종교 벽화(문화)를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에 관한 주제를 다루기도 했는데, 에베레스트의 밤 풍경을 표현한 7개 작품으로 승화시켰죠. 구체적으로는 설산과 별의 관계에서 시작해 이후 칭다오 시하이 미술관(TAG Art Museum)에서 개최한 개인전 <Flowing Infinity>에서 바다와 별의 관계로 확장했습니다.
작업실이 위치한 웨스트번드에는 많은 갤러리와 작업실이 있죠. 작가의 관점에서 이 지역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작업실 이전을 결정한 이유, 그리고 이 지역이 앞으로도 살아남으리라 생각하는지도요.
이곳은 ‘예술 시범구’라고도 하는데, 그 자체가 새로운 시도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미술을 테마로 웨스트번드 부지를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울 때 여러 미술관을 유치한 상태였어요. 롱 뮤지엄(Long Museum), 유즈 미술관(Yuz Museum), 탱크 상하이(Tank Shanghai)가 시초였고 이후 웨스트번드 미술관이 생겼죠. 10년간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겁니다. 웨스트번드는 투자 유치에서 중요한 성과를 거뒀을 뿐 아니라, 상하이 미술 생태계의 번영을 이끄는 것을 넘어 중국 전역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어요. 초기만 해도 상하이엔 안정적 아트 페어가 없었는데, 웨스트번드 아트 페어와 ART021이 수년간 시너지를 형성했습니다. 이는 중국 아트 페어 전반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상하이의 국제적 특성 덕에 세계적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죠.





<Flowing Infinity>전, 시하이 미술관, 칭다오, 2022. Photo by Wang Wenlong

미술 생태계에서 웨스트번드 아트 페어의 입지는 특별한데, 아시아의 향후 추세를 어떻게 예측하시는지.
지난 2년간 전 세계 현대미술계는 불안정하고 외부 요인에 쉽게 흔들렸습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로워야 미래도 예측할 수 있는데, 간간이 혹은 연달아 중단되면 그러기 어렵죠. 아트 바젤 홍콩은 팬데믹으로 3년간 중단되면서 그 규모나 참여 갤러리, 방문객 등에 변화가 생겼고, 유럽의 프리즈는 아시아 거점으로 홍콩이 아닌 서울을 선정했습니다. 싱가포르도 도약을 준비 중이지만, 자유항이라는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주요 고객층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분포해 있고 동남아 미술과 주변국 작가에게 집중해 중국만큼 전 세계를 타깃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오늘날 중국 미술 생태계에 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서양의 가치관은 현대미술로 통일됐지만 중국에서는 중국화, 아카데미즘, 자생과 자멸을 반복하는 현대미술의 세 영역이 동시에 발전하고 있어요. 그중 현대미술은 민간 영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중국 미술 시장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에 소멸되지 않고 생기를 유지하고 있죠. 이는 젊은 세대가 미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하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해외 유명 갤러리는 일부 중국 작가의 에이전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저만 해도 샹아트 갤러리 외에 해외 갤러리 세 곳과 함께 일하고 있고요. 이들이 중국 작가의 에이전트를 자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년 전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중국 경제가 크게 발전하면서 현대미술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서양 갤러리들은 변화에 매우 민감한데 이들에게 중국은 무척 생소한 영역이고, 그래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가이드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중국 작가의 에이전트를 자처하는 건 그 자체로 중국 내 인맥을 형성하고 인지도를 쌓으며, 이들이 어떤 갤러리인지 알리는 수단인 거죠. 비즈니스 모델의 관점에서 작가가 서양 갤러리의 중국 에이전트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이들이 소장한 해외 작품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으니 상호 협력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오늘날 중국엔 막대한 잠재력을 지닌 컬렉터 집단이 존재하고, 여기엔 1990년대생과 2000년대생도 포함돼요. 중국 미술 시장의 트렌드는 일단 앞에서 돌진하면 모두가 그 뒤를 따른다는 건데, 지속적 확장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M50에서 웨스트번드로 온 후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요? 작가님은 웨스트번드의 변화를 직접 경험하시기도 했죠.
웨스트번드는 입지 자체가 뛰어나요. 황푸강을 끼고 있고 지리적 이점도 상당하죠. 본래 쉬후이 자체가 상하이 개항 이후 문화적으로 가장 발전한 지역입니다. 이런 곳이 한때 룽화 공항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 않나요? 평온하고 독립된 공간에 많은 미술관이 밀집해 있고, 1.5km 반경 내에 문화시설이 즐비하니 어떤 도시와 비교해도 이보다 사치스러울 수는 없을 겁니다. 한때 공허했던 부지는 이제 높은 빌딩이 주변을 에워쌌고, 주말이면 청년들이 피크닉을 즐기거나 강아지와 산책하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클라이밍을 위해 찾는 곳으로 변모했죠. 생활 속 풍경을 보여주는 것인데, 가끔 이곳을 걷다 보면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속 강변 피크닉을 즐기는 파리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지곤 해요.





<The Cross-Style>전, 롱 뮤지엄, 충칭, 2020. Photo by Wang Wenlong
아래 <The Challenging Souls: Yves Klein, Lee Ufan, Ding Yi>전, PSA, 2019. 사진 제공 PSA

전에 한 인터뷰에서 체계적으로 재편된 시대에 미술 구조는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고, 이것이 보통 사람과 젊은이들의 비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공 영역 이론과 함께 생각할 때, 웨스트번드가 단순히 대중에게 개방된 단계를 뛰어넘어 담화를 이끌 수준에 도달할 거라고 보시나요?
상하이엔 정말 많은 미술관이 있죠. 여기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PSA(Power Station of Art)가 있고 거기서 3km 더 가면 와이탄인데, 그곳에도 갤러리와 경매장이 있어요. 이곳을 보고 있으면 상하이의 비즈니스 중심지가 떠오릅니다. 1960~1970년대에만 해도 상하이 비즈니스 중심지는 난징루, 화이하이루, 쓰촨루 세 곳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모든 구에 비즈니스 중심지가 있고 신흥 도시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죠. 이런 관점에서 아트 중심지도 어느 순간 이런 클러스터에 합류해 여러 분야의 발전을 이끌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웨스트번드에는 5~6개 미술관이 모여 있는데, 이들을 구분하려 해도 현대미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작가님의 작품 속 십자 무늬 뒤에는 상하이의 발전상이 숨어 있고, 네온 컬러는 도시화를 상징하는 소음처럼 느껴집니다. 창작의 관점에서 상하이는 어떤 도시인가요?
2008년 독일 쾰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을 때 몇몇 관람객이 저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이렇게 밝은 컬러를 사용했냐고요. 스스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 의아했는데, 쾰른 밤거리를 산책하다 교회와 일부 쇼윈도 조명만 켜져 있고 도시 전체가 매우 조용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또 지금은 사라졌지만, 와이탄 고가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아시아 최고라 불리는 커브 길이 있었어요. 길을 내려가는 순간 푸둥과 푸시 양쪽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조명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광객이 된 듯한 이질감과 함께 이 모든 게 보통 시민을 위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네온 컬러만 대략 12년(1998~2010년)을 썼는데, 상하이의 도시화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상하이는 도시화의 견본이 됐어요. 조명공학은 물론 밤을 밝히는 오피스 빌딩까지요. 상하이는 뉴욕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상하이만의 방식을 더했습니다. 예컨대 와이탄 루자쭈이의 오피스 빌딩은 밤 10시까지 반드시 모든 조명을 켜야 하지만, 창가 커튼에 설치한 형광등 하나로 대체하죠. 이런 방식을 중국 각 도시에서 따라 하며 상하이는 번화한 도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며 각 도시의 특색이 사라지고 있고, 학계에서도 도시화가 결국 천편일률적 도시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회화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는 건 사회의 거대한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 없으신지요.
일전에 제 작품을 미들 앵글, 하이 앵글, 로 앵글 세 단계로 정의한 적이 있어요. 로 앵글, 그러니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각은 거시적으로 시대정신에 반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중국) 현대미술은 서양 국가의 플랫폼에 진입해 함께해야 하는데, 빈번한 교류를 통해 시야를 확장하고 세계에 관한 인식을 넓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양 국가가 200여 년간 이룬 번영의 성과는 물론, 그 배후에 가려진 뛰어난 문명을 탐구해 그들의 경험을 흡수해야겠죠. 제가 많은 지역을 여행하고, 다양한 문명과 문화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천위안
셰산
사진 제공 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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